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74
한겨울의 밤 (6)
새벽 4시.
얼음 여왕의 본성.
갈색 술병이 성벽에 부딪쳐 깨졌다.
“이 자식들아! 다 나와! 덤비라고!”
술에 취한 조크레는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동공은 완전히 풀어진 상태였고 걸음은 갈지자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루드반스와 비비안이 좌우에서 그를 부축했다.
“조크레, 하지 마. 그러다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이 시간에는 여기 들어오면 안 된단 말이야.”
우울한 기분이 취기를 통해 분노로 돌변했다.
조크레에게는 싸울 대상이 필요했고, 세상을 향한 투쟁심은 결국 그를 출입 금지 구역까지 넘어서게 만들었다.
“하하! 누가 나를 건드려? 나는 마법사야! 정식 마법사라고! 오라고 그래! 경비 따위 마법 한 방에 날려 버리겠어!”
조크레가 몸을 흔들며 친구들을 떨쳐 냈다.
비비안과 루드반스는 말리지 못했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그들 또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주사가 없는 루드반스가 조크레에게 다시 달라붙어 본성 안으로 인도했다.
“춥다. 일단 들어가자. 여기서 더 소리치다가는 큰일 나겠어.”
“술! 루드반스! 우리 술을 마시자! 실컷 마시자!”
“알았어. 그러니까 조용히 좀 하고 따라와.”
사람들이 빠져나간 홀은 스산했다.
낮에 봤을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기물들이 생명을 가진 것처럼 괴기스러운 느낌을 발산하고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달빛에 비친 얼음 여왕의 모습은 특히나 으스스했다.
비비안이 어깨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조명 마법 좀.”
조크레는 마법을 시전할 정신이 아니었기에 루드반스와 비비안이 조명 마법을 시전했다.
하지만 그들도 취한 상태였기에 몇 번이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야 마법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펑 소리를 내며 2개의 빛이 천장으로 떠오르자 순식간에 홀이 밝아졌다.
조크레는 미끄러운 얼음 계단을 기다시피 올라갔다.
1.5층의 복도로 진입한 그는 거대한 얼음에 갇혀 있는 얼음 여왕의 밀랍 인형에게 시비를 걸었다.
“어이, 얼음 여왕 씨? 주무세요? 같이 술이나 마실래요?”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하하! 거봐! 전설의 마법사도 별거 아니라니까. 고작해야 얼음에 갇혀서 잠이나 자는 주제에! 그딴 것도 마법이냐?”
-마법. 현상을 뒤트는 율법. 얼음 여왕. 마법사.
정신체는 조크레의 정보를 빨아들였다.
리리아의 강령소혼으로 실체화된 옵트러스는 본능적으로 가장 익숙한 사념이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 피신했다.
그 장소가 바로 얼음 여왕의 본성이었다.
관광객들이 토해 내는 정보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게 얼음 여왕이었기 때문이다.
옵트러스는 수많은 정보를 토대로 빠르게 이 세계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어느 시점을 지나자 감각만이 존재하던 정신체에 인지가 발생했다.
감각과 인지가 서로 소통하면서 단순한 지식의 보존이 사유의 단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옵트러스는 존재를 증명할 형태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자신의 사유를 물질화시킬 수 있는 특별한 그릇을 찾았다.
얼음 여왕이 번쩍 눈을 떴다.
조크레는 놀라지 않았다. 밀랍 인형의 발판을 밟고 서 있으면 눈을 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얼음 여왕의 아름다운 모습은 여자에게 하찮게 내팽개쳐진 그의 상처를 더욱 욱신거리게 했다.
조크레는 문을 노크하듯 얼음을 두드렸다.
“어이, 여왕님. 나랑 연애나 할까? 응? 흐흐흐.”
비비안이 조크레의 주사를 한심한 듯 쳐다보며 혀를 찼다.
“완전히 맛이 갔네. 야, 정신 좀 차려. 여기서 정신 잃으면 얼어 죽는다고.”
조크레는 소매를 걷고 얼음 여왕과 싸울 자세를 취했다.
“좋아, 붙어 보자. 마법사 대 마법사의 대결이다. 대신에 내가 이기면 나랑 사귀는 거야.”
여태까지 수집한 정보들이 경험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면서 옵트러스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강함이란 무엇인가? 어떤 특성의 상위. 성질의 통제. 물리계의 변질, 변성, 변화.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나는 강한가?
“이제 그만해. 돌아가자고. 우리도 좀 자자. 언제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을 거야.”
조크레의 눈이 반쯤 잠겨 있는 것을 본 루드반스가 그를 뒤에서 끌어안고 질질 끌었다.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던 비비안은 얼음 여왕을 흘끗 살핀 다음 루드반스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녀는 경악에 찬 얼굴로 부러지듯 목을 돌렸다.
“어, 어어?”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야 할 얼음 여왕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비안은 술이 덜 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정신을 가다듬어도 얼음 여왕의 시선은 명백하게 옆으로 돌아가 있었다.
머리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리면서 쇼크가 일어났다.
“저, 저기, 얘들아…….”
조크레의 목소리가 계단 아래로 멀어져 갔다.
“음냐, 나랑 사귀자고…… 음?”
나를 두고 가지 마!
비비안은 공포에 질려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밀랍으로 만든 게 분명한 얼음 여왕의 시선은 이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느낌상으로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물질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있는 듯했다.
비비안은 아픈 곳도 없는데 죽을 것 같았다.
아니, 심지어는 죽는 것보다 무서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과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자 살고 싶은 욕망이 배 속으로 공기를 밀어 넣었다.
비비안은 생애 가장 큰 소리로 외쳤다.
“야아아아아!”
홀이 쩌렁쩌렁 울리면서 그녀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계단을 내려가던 루드반스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얼음 여왕이 있는 곳에서 빛이 번쩍 터졌다.
“뭐야?”
루드반스는 조크레를 놔두고 계단을 올라갔다.
얼음 여왕이 광채에 휩싸여 있었고, 창백한 얼굴의 비비안이 턱을 떨며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루, 루드반스…… 이거, 이거…….”
얼음 여왕의 밀랍 피부가 쩍쩍 갈라지면서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진동하자 얼음덩어리에 균열이 가더니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수천 개의 금으로 나누였다.
‘피해야 해. 피해야 하는데…….’
얼음덩어리가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동시에 루드반스가 비비안을 붙잡고 몸을 날렸다.
얼음 파편이 홀의 끝까지 퍼졌다.
계단에 있던 조크레는 파편이 날아오자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비비안은 엉덩방아를 찧은 순간에도 얼음 여왕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산산조각 깨진 밀랍 인형의 안에는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인광이 있었다.
그것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난간으로 다가갔다.
빛이 점차 잦아들면서 조금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생동감이 넘치는 얼음 여왕이 등장했다.
비비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얼음 여왕이…… 부활했어?”
얼음 여왕의 재림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그녀는 마치 거푸집처럼 밀랍 피부가 깨지면서 그 안에 새로운 얼음 여왕이 채워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건너편 복도에 도착한 조크레는 비비안에게 달려가려다가 황급히 걸음을 멈췄다.
비비안과 마찬가지로 그의 얼굴도 하얗게 질렸다.
“얼음 여왕?”
전설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지금 상황이 꿈이 아니라면, 그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떨어뜨렸던 마법사와 대치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아아아.”
얼음 여왕은 입을 벌리고 공기를 내뱉었다. 서리가 새어 나오면서 대기가 박빙처럼 쩍쩍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것이 빙결 현상.”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얼음 여왕의 무생물적인 눈과 마주친 조크레는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다.
조크레를 무심한 눈길로 살피던 얼음 여왕이 말했다.
“나를 이기면 해 주마, 연애라는 것.”
“으…… 으아아아!”
조크레의 신경이 죽음을 향해 치달았다.
반대로 살고자 하는 욕망은 순식간에 알코올의 기운을 제거하고 가장 오랫동안 훈련했던 마법을 전개시켰다.
손바닥 위로 파이어볼이 탄생했다.
조크레의 전공은 근거리 화염 마법.
발사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지만 위력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조크래! 안 돼!”
비비안이 소리쳤다.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막상 얼음 여왕과 눈이 마주치면 그녀도 조크레와 똑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죽, 죽어라!”
조크레가 던진 파이어볼이 얼음 여왕의 머리에 직격했다.
아니, 처음부터 피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펑 소리가 터지면서 그녀의 목 위가 불타올랐다.
“꺄아아아악!”
원래는 밀랍 인형이었기에, 인간 양초를 상상해 버린 비비안이 비명을 질렀다.
어쨌거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나마 이성적인 루드반스가 얼음 여왕의 동태를 신중하게 살피며 중얼거렸다.
“죽었나?”
얼음 여왕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모든 신경이 뇌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형태를 얻은 이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감각이 흥미로웠다.
생물의 형태로 율법을 변화시켰기에 얼굴이 타들어 가는 고통은 끔찍했다.
하지만 고통을 명확하게 정의 내리지 못하는 그녀에게 통증이란 비정상적인 감각 상태일 뿐이었다.
‘이것이 열인가? 에너지를 흡수시켜 제압한다.’
율법을 통해 에너지를 빨아들이자 순식간에 불이 사라지며 주위의 대기가 얼어붙었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음 여왕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렇게 만든 당사자인 조크레는 오금이 저리다 못해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으아아, 사, 살려…….”
얼음 여왕은 얼굴에 모여 있는 신경계가 발작을 하는 것을 음미했다.
고통이란 참으로 불쾌한 감각이었다.
‘뇌가…….’
조크레에 다가가는 얼음 여왕의 얼굴이 조금씩 재생되기 시작했다.
“녹을 뻔했다.”
뇌가 녹으면 죽는다.
그것이 생물.
“살려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조크레는 납작 엎드려 목숨을 구걸했다. 얼굴을 태워도 살아 있는 마법사와 상대한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조크레!”
비비안과 루드반스가 달려와 조크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이라고 얼음 여왕의 상대가 될 리는 없으나 조크레는 자신의 앞을 지켜 주는 친구들이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비비안이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
“살려 주세요! 제 친구가 술에 취해서 그런 거예요! 결코 여왕님에게 덤빌 생각은 없었습니다.”
“술?”
알코올. 뇌. 교란 물질.
“그렇군.”
자신에게 고통을 가한 이유가 뇌의 교란 물질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얼음 여왕은 관심을 껐다.
“술이라는 것을 흡수하는 건 생물에게 그다지 이로울 것 같지 않다.”
“네! 네! 죄송합니다.”
“그러면 이제 너희는 어떡할 거지?”
얼음 여왕은 순수한 의문을 담아 물었다.
인간으로 태어났고 인간을 만났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신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가 궁금했다.
순수와 광기는 상통하는 바가 있기에, 얼음 여왕의 솔직한 질문은 조크레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시키는 일을 한다고?”
“네, 뭐든지…….”
얼음 여왕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조크레는 황당한 눈으로 얼음 여왕을 올려다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의 말투나 행동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설이 사실이라면 무려 800년이나 동면을 취한 셈이었다. 기억을 잃었을 가능성도 다분했다.
“다, 당연히 여왕님은 지배자시니까요. 위대한 마법사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다시 지배하셔야죠.”
“지배?”
얼음 여왕의 고개가 더욱 기울어졌다. 그러다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인간의 형태를 빌려 개성을 얻었지만, 정보처리 속도는 현격하게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신경계의 불일치 또한 불쾌가 아닌 생물이 지니는 특성으로 받아들여질 뿐이었다.
“그렇군. 나는 지배한다. 왜냐하면 나는 강하니까.”
조크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