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75
역시나 얼음 여왕은 얼음 여왕이었다. 자칫 꼼수를 부렸으면 영락없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약해 빠진 저희와는 격이 다르지요.”
조크레는 한없이 굽실거렸다.
평생을 노력해서 겨우 첫 번째 성과를 얻은 시점이다.
마법사로서의 삶을 누려 보기도 전에 애먼 곳에서 개죽음을 당한다면 시체가 되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터였다.
한겨울의 밤 (7)
조크레의 말을 생각하던 얼음 여왕이 살며시 허리를 구부리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도 강해지고 싶니?”
조크레는 얼음 여왕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하게 눈을 깜박거렸다.
전설 속의 그녀는 왕국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였다. 그렇기에 이런 곳까지 유배를 당한 게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은 생존이 먼저였다. 괜한 유도신문에 휘말렸다가 여왕의 심기를 거슬리면 낭패였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갑자기 비비안이 소리쳤다.
조크레가 경악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이 바보가!’
설마 아직도 술이 덜 깬 건가?
물론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얼마나 평생을 좌절감에 시달렸던가?
어느 날 신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면 부귀영화도, 평생의 연인도 포기하고 마법을 달라고 하는 게 이 바닥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기가 좋지 않았다.
주위의 모든 것을 얼려 버린 것도 모자라 자기 자신마저 얼음에 가둔 여인에게 무엇을 기대한다는 말인가?
어쩌면 지금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녀의 지론인 인생 연극론이 도진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크레의 속 타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비안은 간절한 눈빛으로 얼음 여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설령 이것이 인생의 함정이 될지라도, 아무에게나 오는 기회가 아님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가르쳐 주세요, 여왕님. 저에게 마법을!”
서러운 감정이 북받치면서 억눌려 있던 취기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하지만 정신은 생애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얼음 여왕은 말없이 손을 들었다.
옵트러스였을 때에 습득한 정보는 지금 현재 기억이라 불리는 공간에 저장되어 있다.
또한 그녀는 스스로 탄생했으므로, 이 세계의 규칙을 순수한 정보로 받아들였고, 그렇기에 통제할 수 있었다.
율의 파동.
대기가 동심원을 그릴 정도로 강풍이 퍼졌다.
하지만 조크레 일행은 바람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을 이루는 무언가가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었다.
조크레 일행은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들이 느끼는 세상은 조금 전과 완전히 달랐다.
얼음 여왕이 무심하게 말했다.
“너희가 원하는 율법이 그것이냐?”
감동에 벅찬 조크레는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느낄 수도 깨달을 수도 없다. 그 상황이 닥치기 전에는.
하지만 반드시 느끼고 깨닫는다. 그 상황이 닥친다면.
그것이 바로 율법의 변화였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조크레는 두 손을 움켜쥐었다.
비비안의 생각이 옳았다.
오늘의 사건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거대하고 완벽한 반전이었다.
율의 파동 (1)
다음 날 아침.
시로네와 에이미는 오래된 성터의 감옥을 견학했다.
세월의 흐름이 무너지고 깎여서 지금은 반쯤 지상 위로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마법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학문적으로 정의가 내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800년 전에는 전지에 대한 고찰도 부족한 터라 원초적인 마법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나 당시에는 신성 교단의 힘이 막강해서 현재의 신성 마법의 기초가 정립되었던 시기였다.
그런 만큼 마법사들은 박해를 받았다.
신의 이름을 빌리지 않은 능력은 악마의 힘으로 간주되었고,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은 마법사들도 부지기수였다.
두 사람은 마법사들이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는 감옥으로 들어갔다.
팔다리를 묶은 다음 척추를 늘리는 기구 앞에서 시로네는 오싹한 소름을 쓸어내렸다.
“으, 어떻게 이런 도구를 생각해 내지? 정말 고통스러웠겠다.”
“마법사들도 힘들었을 거야. 마법은 자신이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지금은 축복받은 재능이지만 당시에는 저주나 마찬가지였겠지.”
시로네와 에이미는 지하 감옥을 나왔다.
지상과 연결된 계단을 올라오자 사람들이 모두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편 하늘에서 거대한 먹구름이 밀려들고 있었다.
레스 산맥의 겨울은 편서풍이 산맥을 타고 상승하면서 고기압이 되기 때문에 날씨가 맑기로 유명했다.
가끔씩 국지성 저기압이 눈을 내리기는 하지만 해마다 겨울 축제를 찾는 사람들도 이 정도로 짙은 먹구름이 깔리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뭐지?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은데.”
바람은 강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먹구름은 마치 연기처럼 빠른 속도로 다가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옷을 두껍게 입은 사람들조차 추위를 느낄 만큼의 한파가 몰아치자 관광객들의 얼굴에 비로소 불안감이 드러났다.
“뭐, 뭐야? 날씨가 미쳤나?”
시로네와 에이미도 옷깃을 여미며 사태를 주시했다.
단순히 날씨의 변덕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비정상적인 기온이었다.
“에이미, 뭔가 이상해. 자연 상태에서 이렇게 빨리 온도가 떨어질 수는 없는데.”
“그러게. 꼭 마법 같잖아?”
얼음 여왕의 본성에서 천둥소리가 터졌다. 이어서 태동한 강력한 파동이 먹구름을 밀어내면서 질주했다.
대기가 결을 따라 접히는 형태가 선명하게 보였다.
“위험해!”
시로네는 에이미의 앞을 막아섰다.
회피할 시간조차 없었다. 빠른 속도로 밀려드는 파동이 인파의 외곽부터 휩쓸면서 접근하고 있었다.
“비켜!”
무복을 입은 여성이 시로네와 에이미를 막아섰다.
마도사 리리아였다.
그녀는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수인을 맺었다.
제령의 기본기인 금禁, 반反, 쇄碎의 세 가지 수인이 물 흐르듯이 연속적으로 맺어지면서 율법의 장벽이 펼쳐졌다.
강력한 파동이 그들을 휩쓸고 지나가는 순간 리리아의 눈앞에 펑 하고 충격파가 터졌다.
“꺅!”
리리아의 몸이 대포알처럼 뒤로 날아갔다.
관광객들이 모두 그녀를 쳐다보았다. 파동이 휩쓸고 지나갔으나 실제로 충격을 받은 건 그녀뿐이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리리아는 바닥에 떨어진 뒤에도 데굴데굴 굴렀다.
단테가 가로질러 나타나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정확히 그녀를 가슴으로 받았다.
“괜찮아?”
단테에게 등을 기댄 리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태까지 수많은 제령을 했지만 이토록 강력한 율법을 사용하는 정신체는 처음이었다.
시로네와 에이미는 단테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그들은 직감하고 있었다, 단테의 일행인 여자가 자신들을 무언가로부터 지켜 주었다는 사실을.
“단테, 뭐야?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단테는 대답을 미루고 리리아를 일으켜 세웠다.
율법은 마법과 달라서 물리적인 충격이 없다. 시로네와 에이미가 정상인지는 리리아가 답해야 할 일이었다.
“어떻게 됐어? 성공했어?”
“아슬아슬했어. 너는 어때?”
율의 파동은 빠르게 퍼져 나갔고 리리아가 두 장소를 모두 지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금, 반, 쇄의 의지를 다스리지 못하면 율법을 막기란 불가능했다.
단테는 목에 걸린 토템을 꺼냈다.
“덕분에.”
괴물의 얼굴처럼 생긴 펜던트가 박달나무 껍질을 꼬아서 만든 목줄에 걸려 있었다.
흉악해 보여도, 악귀를 쫓는 수호신이었다.
수호신의 이마를 따라 사선으로 금이 가 있었는데, 율의 파동에 노출당하면서 생긴 상처였다.
손바닥에 올리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쩍 소리를 내며 둘로 갈라졌다.
단테가 머쓱한 표정으로 토템을 내밀었다.
“하나밖에 없는 거라고 했지? 미안해.”
리리아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미안할 필요 없어. 토템은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 나찰이 쪼개질 정도로 강력한 율법이었단 뜻이지. 막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시로네는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상황이 심각해 보였기에 중간에 끼어들었다.
“단테, 무슨 일이야?”
리리아가 대답했다.
“운이 좋았어. 너희는 괜찮을 거야.”
에이미가 답답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뭐가 괜찮냐고.”
리리아는 시로네와 에이미를 번갈아 살펴보았다.
자아를 얻은 정신체가 생존을 위해 주위의 율법을 변화시킬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리리아가 찰나의 순간 율법에서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고작해야 2~3명 정도였다.
현재 이곳만 해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이번 제령에 필요한 능력을 갖춘 사람도 분명히 섞여 있을 터였다.
과연 옳은 선택일까?
그들 모두를 포기하고,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커플을 지킨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할 수 없었다.
“단테, 이 애들은 누구야? 나는 네 친구들이나 구하려고 네 말을 따른 게 아니야.”
단테가 얼음 여왕의 본성을 돌아보며 말했다.
“2등이라고 했잖아.”
“2등? 뭐가 2등?”
단테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하룻밤을 보내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리리아는 참으로 눈치가 없었다.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구구절절 이야기를 해 봤자 자신에게 남는 게 뭐가 있겠는가?
“쟤가 1등이야. 왕국 1등.”
리리아는 놀란 표정으로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아직 프로가 아님에도 단테와 동맹을 맺은 이유는 그가 왕국에서 알아주는 뛰어난 실력자이기 때문이다.
마도사들은 마법사처럼 경쟁 체계가 없기 때문에 2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왕국에 사람이 몇 명인데 1등이건 2등이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냥 2등이면 아주 뛰어난 학생인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었다.
이 넓은 왕국에서 1등과 2등이 한곳에 있다는 것은 그녀에게 충격이었다.
‘이 아이가 정말 단테를 이겼다고?’
선한 인상이었다. 눈빛이 살아 있다는 점만 빼면 전국 1등의 아우라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테의 실력은 어제 새벽에 몸소 체험했다.
그의 실전 대응력이나 판단, 탁월한 실력은 프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솔직히 그를 뛰어넘는 실력이 어떤 것인지 마도사인 리리아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단테가 얼음 여왕의 본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왔군. 시로네랑 에이미도 준비해. 아마 이해가 안 되겠지만, 일단 긴장은 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얼음 여왕과 똑같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하늘을 가로질러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저, 저거 얼음 여왕 아냐?”
상공에 도착한 얼음 여왕이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멀리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공간 이동의 섬광이 휘어지듯 날아와 그녀의 옆에 추락했다.
에이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조크레? 네가 왜……?”
조크레는 비웃음을 지으며 얼음 여왕의 뒤에 부복했다. 이어서 루드반스와 비비안이 착지했다.
누구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적어도 시로네와 에이미는 위기감은 느끼고 있었으나 관광객들은 오히려 긴장이 풀어진 듯 웃음기를 머금었다.
“하하! 진짜 얼음 여왕이잖아? 이거 무슨 이벤트인가?”
“우와, 진짜 비슷하네? 어떻게 마법사 중에서 저렇게 똑같은 사람을 찾았지?”
축제의 일환으로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얼음 여왕이 실제로 눈앞에서 돌아다닐 리가 없지 않은가?
시로네 또한 리리아의 눈앞에서 터진 충격파를 보지 못했다면 주최 측에서 가장 공연을 열었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얼음 여왕이 인파를 향해 걸음을 내딛자 관광객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겨울 축제는 매년 열리지만 올해의 특별 이벤트는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참신했다.
전설 속의 얼음 여왕을 부활시킬 생각을 하다니.
밀랍으로 만든 얼음 여왕조차도 그 아름다움에 반해 수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 역할을 연기하는 여자의 외모는 밀랍 인형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생명이라는 힘이 가진 찬란한 능력이었다.
“휘유! 얼음 여왕님! 손 한 번만 잡아 주세요!”
배불뚝이 아저씨가 배시시 웃으며 손을 내밀자 옆에 있던 사람이 아서라는 듯 말렸다.
“어허, 무엄하게. 그러다가 얼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어느 누구도 지금이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농담이 날아드는 와중에도 얼음 여왕은 그저 무심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
리리아는 수인을 맺은 상태로 얼음 여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뭘까? 어떤 율법을 건드린 거지?’
율의 파동은 시로네 일행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율법을 변화시켰다.
아직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파동의 위력으로 봤을 때 변화의 폭은 엄청날 터였다.
율의 파동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