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77
얼음 여왕은 곧바로 뒤를 돌아 자신이 부딪혔던 지점에 율의 파동을 시전했다. 펑 소리를 내며 반투명한 돔 형태의 장벽이 하늘을 따라 퍼져나갔다.
‘무언가가 공간을 막고 있다.’
조크레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밤새도록 금마진을 설치했던 단테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밤새도록 봉마진을 설치한 단테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때, 내가 준비한 깜짝 선물이? 이미 이 지역은 봉쇄됐어. 밤새도록 토템을 꽂아서 금마진을 쳤거든. 얼음 여왕은 절대로 여기를 벗어날 수 없다고.”
조크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단테를 바라보았다. 얼음 여왕이 갇혔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고작 저런 괴물에게 빌붙는 주제에 세상을 지배하겠다고? 네가 사는 곳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조만간 군대가 출동할 거다. 설령 우리가 이곳에서 죽더라도 얼음 여왕은 결국 소멸할 거야. 지금이라도 좋게 끝내. 그러면 정상참작은 가능할 테니까.”
조크레의 턱이 부들부들 떨렸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군대가 출동하면 얼음 여왕은 소멸된다. 물론 자신과 친구들도 중죄의 대가를 치를 터였다.
“나를 가두었구나.”
얼음 여왕이 착지했다. 그녀가 몰고 온 한기가 대지를 타고 퍼지면서 사람들의 뼈마디를 시리게 했다.
시로네는 얼음 여왕의 살기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덤벼 보라는 듯 눈을 마주치며 얼음 깨고 되돌아온 아르망의 손잡이를 낚아채듯 붙잡았다. 크로스 가드에 박힌 보석이 강렬한 붉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일합을 겨룬 상대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여왕님, 괜찮으십니까?”
걱정스럽게 물어보는 조크레를 돌아본 얼음 여왕은 다정한 눈웃음을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하지만 시로네를 돌아보았을 때의 눈빛은 완전히 달랐다. 차가운 시선이 마치 얼음의 창처럼 심장을 관통하는 듯했다.
“어째서 나를 방해하는 거지?”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보고도 몰라?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대한 건 그쪽이 먼저 아닌가?”
“어리석구나. 강한 자가 지배하는 것이다. 그것이 너희가 사는 세상의 규칙이 아니던가? 나는 새로운 지배자로서 너희의 위에 군림하려는 것뿐이다.”
얼음 여왕의 머리 위로 한기가 피어올랐다.
“빙결의 연무.”
얼음 여왕을 중심으로 한기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시로네의 코트가 딱딱하게 얼어붙더니 퍼석 하고 깨졌다. 냉각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대로 몇 초만 지나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심장까지 얼어붙을 터였다.
“위험해!”
리리아가 국소 봉마진을 얼음 여왕의 발밑에 시전했다. 원형의 진이 빛을 발하며 그려지더니 불그스름한 빛의 기둥이 높게 치솟았다.
“크윽!”
얼음 여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물체가 중력의 법칙을 어길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을 이루는 핵심적인 것이 아래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얼음 여왕이 율법을 끌어올려 하늘로 솟아오르자 리리아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안 돼. 활동성이 너무 강해서 국소 봉마진으로는 가둘 수 없어. 어떻게든 그녀를 묶어 둬야 해.”
표정을 절제할 수 없는 얼음 여왕의 얼굴은 기괴했다. 그만큼 봉마진의 위력은 어마무시했다. 뇌가 불타고 있을 때에도 이토록 소멸의 공포를 느끼지는 않았던 그녀였다.
“용서하지 않겠다!”
얼음 여왕이 율의 파동을 시전하자 사람들의 목에 걸린 율법이 사라지고 새로운 율법이 탄생했다.
“크아아아아!”
사람들의 주둥이가 개처럼 튀어나오고 이빨이 뾰족해졌다. 근육의 부풀면서 옷이 뜯어지고 손톱은 늑대처럼 길어졌다. 경화된 피부가 마치 갑옷처럼 돌출되고 있었다.
“전투에 적합한 상태로 진화시키고 있어!”
리리아의 말에 단테가 소리쳤다.
“합세하기 전에 끝내자. 화력을 집중하면 이길 수 있어. 리리아는 율법을 방어하는 데 집중해.”
시로네 일행이 얼음 여왕에게 날아가려는 순간 비비안이 양손으로 땅바닥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영의 반경.”
비비안의 몸이 석화되면서 땅이 흔들렸다. 그녀를 중심으로 원형의 장벽이 연쇄적으로 일어서면서 퍼져 나갔다.
쿵! 쿵! 쿵! 쿵! 쿵!
10포마다 한 번씩 방사선의 형태로 퍼져 나가는 벽과 벽의 사이는 10미터였다. 그리고 이 모든 반경이 그녀의 정신을 이루고 있었다.
“젠장! 이건 뭐야!”
시로네 일행은 황급히 물러섰으나 몇 걸음을 가기도 전에 뒤편에 벽이 솟구쳤다. 30미터 높이의 장벽이었다.
그들이 당황하는 순간 정면의 벽이 물컹하게 녹아내리더니 비비안의 얼굴 형태가 양각으로 돌출되었다. 상반신이 빠져나오고, 하체가 뱀처럼 길게 늘어져 벽과 연결되었다.
“후후. 어때? 내 능력, 영의 반경이.”
비비안이 양손을 들자 조크레와 루드반스가 뛰어내려 그녀의 손바닥 위에 학처럼 착지했다.
“하하! 꼴좋군. 잘난 척하더니 고작 이거냐?”
영의 반경은 술자의 정신과 공유하는 장벽을 1초에 10미터씩 세운다. 다만 반경이 넓어질수록 정신의 밀도가 옅어지기에 너무 멀리 벽을 세우면 무생물 수준으로 반응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비비안은 자신의 능력에 만족했다. 모두에게 주목을 받기 원했던 그녀의 심리를 얼음 여왕은 정확히 능력으로 구현시켰다.
“이곳은 완벽한 미로야. 중심에 있는 나를 붙잡으면 영의 반경은 풀리지. 하지만 너희가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생쥐처럼 돌아다닐 필요는 없지.”
단테가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30미터의 장벽쯤이야 뛰어넘으면 그만이었다. 그러자 꼭대기 쪽에서 수많은 비비안이 튀어나와 석화된 손을 휘둘렀다.
“쳇! 까다로운데.”
직선적인 순간 이동으로 석화된 비비안에게 충돌하면 치명상을 피할 수 없었다. 단테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착지하자 시로네가 아르망을 들고 수직으로 세웠다.
“내가 얼음 여왕을 맡을게.”
모두가 시로네를 돌아보는 순간 그가 읊조렸다.
“금강무장.”
칼날이 갈라지면서 곤충의 다리처럼 가느다란 뼈대가 시로네의 얼굴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후드를 깊숙이 내린 마법사로 변하자 조크레 일행의 얼굴이 굳었다.
단테가 물었다.
“그게 금강무장인가? 어쩌려고?”
“아르망은 율법에 견뎠어. 금강무장이라면 얼음 여왕의 율법을 막을 수도 있을 거야.”
리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해. 토템의 원리와 같으니까. 하지만 얼음 여왕은 하늘에 있어.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게 먼저야.”
시로네는 후드에 가려진 얼굴을 치켜들었다. 정신의 속도로 분신을 만들어내는 영의 반경은 확실히 어려운 난관이다. 하지만 빠져나갈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능은 형태에서 나온다.’
시로네는 광자조형술을 극대화시켰다. 그의 몸에서 괄하게 빛이 타오르더니 거대한 빛의 날개가 펼쳐졌다.
빛을 조각했다.
그 사실이 마법사들을 놀라게 했다. 발광성을 가진 빛으로 형태를 빚었다는 것은 엄청난 광자 압축력이었다.
조크레 일행도 마른침을 삼켰다. 하늘을 날겠다는, 오로지 하나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형태를 조형했기에 시로네가 무엇을 하려는 지는 모두 알고 있었다.
“이곳을 부탁할게.”
광자조형술-광익.
하체를 구부린 시로네가 빛의 날개를 아래로 휘두르면서 엄청난 속도로 솟구쳤다. 순간 이동이 아님에도 마치 섬광이 치솟는 듯했다.
‘놓칠 줄 알고!’
그럼에도 비비안은 반응했다. 수십 명의 비비안이 벽에서 튀어나와 시로네를 이빨처럼 깨물었다.
‘잡았다!’
타격감이 확실히 전해져왔다. 하지만 잠시 후 비비안이 의아한 듯 미간을 좁혔다. 금강무장의 촉수가 석화된 분신들의 공격을 지근거리에서 막아 내고 있었다.
“이게……!”
비비안은 온힘을 쏟아부었다. 시로네가 있는 곳에서 돌이 마모되는 소리가 들렸다. 석재의 내구력에서 나오는 완력은 대단했지만 금강불괴의 촉수도 어지간한 암석을 부술 정도로 강력했다.
-외부 압력 1.7톤. 근력 유지 한계치 도달.
시로네는 이를 악물고 촉수를 아래로 밀어냈다.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간 촉수가 시로네를 위로 튕겨내자 비비안의 분신들이 서로서로 충돌하며 부서졌다.
‘얼음 여왕을 제거한다.’
광익이 창출하는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시로네는 소리에 근접한 속도로 얼음 여왕을 추적했다. 시야가 좁아지자 아르망이 신체능력을 재조정했다.
-목표물 인지 불가. 시세포 증가. 황반 기능 증강.
시야가 활짝 열리면서 얼음 여왕이 선명하게 보였다. 인공두뇌 외가 비행의 밸런스를 맞추었다. 거리가 좁혀지자 얼음 여왕이 뒤를 돌며 율법을 시전했다.
“빙결의 눈보라.”
면도칼보다 날카로운 눈송이가 휘몰아치자 시로네는 얼굴을 가렸다. 전신을 가린 망토가 금속질로 경화되자 수천 개의 유리가 깨지는 듯 얼음 파편이 표면을 할퀴었다.
“크으윽!”
얼음 여왕의 율법은 마법처럼 목적성이 첨예하지는 않지만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그녀의 규칙은 이곳의 규칙보다 거대하다. 그것이 바로 스케일이었다.
시로네는 경화된 망토를 다시 유기질로 바꾸고 전방을 노려보았다. 대기가 얼어붙어 거대한 얼음 줄기들이 인간의 신경계처럼 복잡하게 퍼져 나간 상태였다. 마치 마이크로 단위의 미생물이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극저온이라는 얘긴데.’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아르망이 신경계를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숨을 들이쉬자 곧바로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흐읍!”
시로네는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호흡 차단 감지. 인공 산소 대체. 잔여 산소 소모 시간. 1분 27초. 2분 32초. 4분 49초.
아르망이 공기를 비축하면서 시로네의 혈관에 직접 산소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전투력을 되찾은 시로네는 얼음 줄기 사이를 비행하며 얼음 여왕과 공중전을 펼쳤다.
마치 매가 사냥을 하듯 광익을 접고 쇄도하는 시로네는 손목을 붙잡고 건틀렛에 박힌 마력수정구로 분당 백스무 발의 포톤 캐논을 연사했다.
율의 파동 (4)
얼음 여왕이 크게 외곽을 돌았으나 중심에서 회전하는 시로네보다 빠르게 각도를 벌릴 수는 없었다. 첫 발이 처박히는 순간 충격파가 연쇄적으로 들어왔다. 꼬리를 물고 따라오던 포톤 캐논이 모조리 퍼부어지자 얼음 여왕의 폐부에서 가느다란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끼야아아아아!”
하지만 그녀는 파괴되지 않았다. 계속 해서 연사를 퍼붓고 있는 시로네의 손목이 오히려 끊어질 정도였다.
‘크윽! 대체 왜 안 떨어지지?’
포톤 캐논에 두들겨 맞던 얼음 여왕의 몸에서 수증기처럼 냉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확장은 빨라졌고, 급기야는 거대한 구름이 되어 여왕의 몸을 가렸다.
-산소 잔여 소모 시간. 1분 2초. 48초. 35초.
아르망이 비축한 산소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0초가 되면 극저온의 공기를 마셔야 한다. 필사적으로 호흡을 가다듬자 잔여 소모 시간이 4초가 남은 것을 기점으로 다시 공기가 비축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지? 이긴 건가?’
무려 분당 백스무 발의 속도로 포톤 캐논을 갈겼다. 정상적인 생물체라면 으깬 감자가 되어야 마땅했다.
구름처럼 뭉쳐 있던 연무가 흩날리면서 마침내 얼음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건……?’
시로네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경악의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
에이미의 홍안이 번쩍이며 좌표를 저장했다. 그녀의 뒤를 따라 단테와 리리아가 달렸다. 벌써 1킬로미터 이상을 달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원형 미로의 특성상 중심까지는 100미터도 접근하지 못한 듯했다.
상점가로 접어들자 솟구친 성벽에 반으로 절단된 건물들이 보였다. 에이미 일행은 층간 구조가 훤히 드러난 2층 가옥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단테가 창밖을 살폈다. 조크레 일행은 차치하고라도 모든 구역에 괴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언제까지 도망칠 수는 없어. 괴인들은 지치지 않을 거야. 결국 쓰러뜨리고 나가야 한다고.”
리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저들 또한 피해자야. 살생의 대상이 될 수 없어.”
“그러다가 우리가 죽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얼음 여왕은 강해질 거야. 빨리 시로네를 도와야 한다고. 하지만 미로를 파괴하는 건 고사하고 괴인 단계에서 헤매고 있잖아.”
“효율이나 결과의 문제가 아니야. 선의 의지가 담기지 않은 폭력은 악의 방법론과 다르지 않아.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나를 도와줄 생각이라면 우리가 죽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해쳐서는 안 돼.”
단테는 씁쓸하게 웃었다. 가식이나 거짓이 아니다. 의지를 강화시켜 이치를 통제한다는 것은 일말의 거짓도 없는 신념이 있을 때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마도사의 사고방식인가? 하긴, 우리 학교에도 그런 어수룩한 선생님이 있지. 에텔라라고.”
리리아는 가당치 않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어수룩한 게 아니라 신념이야. 악이 궐하는 숫자만큼 선의 의지를 지키려는 자들이 있기에 세상은 유지되는 거야. 상황이 급하다고 악의 방법을 따른다면 결국 악의 지배를 받게 된다고! 마법사인 네가 선과 악의 오래된 대립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단테가 손을 저으며 말을 끊었다.
“알았어. 훈계는 그만하라고. 네 말대로 나는 마법사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흥분을 가라앉힌 리리아가 설명했다.
“성터에 설치한 광역 금마진의 영향권을 축소시켜서 위력을 높일 거야. 박요진이라는 술법이야. 좌표만 정확히 잡으면 데미갓의 율법이라도 빠져나갈 수 없어.”
단테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 말은 곧 실패했을 경우…….”
“그래, 최후의 보루인 금마진마저 소멸해. 세상 밖으로 나간 얼음 여왕은 더욱 강해질 거야. 따라서 기회는 한 번뿐이야. 만약 그 기회를 만들지 못한다면,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박요진을 시도하지 않을 거야.”
단테도 같은 생각이었다. 얼음 여왕이 금마진을 벗어나면 피해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곳에서 모두가 전멸하더라도 차라리 가두어두는 게 효율적이었다.
“좋아. 그래서 우리가 도와야 할 일은?”
“박요진의 좌표는 마음대로 정할 수 없어. 금마진의 힘이 집중되는 지점에 설치해야 돼.”
“거기가 어딘데?”
“금마진에서 역피라미드를 그렸을 때의 꼭짓점이야. 거기로 나를 데려다줘.”
“산 넘어 산이로군.”
괴인들이 돌아다니는 미로에서 박요진의 설치 지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최소한 미로라도 사라져야 작전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좋아. 아무튼 그걸로 가자고. 나와 리리아가 괴인들을 맡을 테니 에이미는 미로를 제거해. 영의 반경 중심으로 갈 사람은 홍안이 있는 너밖에 없으니까.”
리리아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혼자서 괜찮을까? 저들의 능력은 마법이 아니야. 다른 두 사람도 미로에 준하는 능력을 얻었을 텐데.”
“그렇기에 더더욱 에이미가 나서야지. 아마도 놈들은 가장 먼저 에이미를 노릴 거야. 그렇다면 차라리 둘로 나뉘어서 움직이는 게 나아. 에이미. 할 수 있지?”
에이미는 대답하지 못했다. 조크레 일행은 강해졌다. 아니, 강해지기 전에도 졸업반의 시험을 통과한 실력자였다.
‘그리고 나는…… 탈락했지.’
단테가 말했다.
“할 수 있어. 자신을 믿어.”
“못 믿겠어. 정말로 자신이 없어.”
에이미는 진심이었다.
“너를 믿을 수 없으면 네 가문이라도 믿어.”
에이미가 고개를 들자 단테가 어깨를 짚었다.
“가문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을 네가 못할 리가 없잖아. 네가 가진 모든 걸 이용해서 싸우는 거야.”
수많은 가족들이 재능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에이미의 눈에 비장한 각오가 서리자 단테가 만족한 얼굴로 건물에서 빠져나갔다.
“가자, 리리아. 놈들이 에이미에게 집중하는 동안 우리는 최대한 좌표에 접근해야 돼.”
리리아가 단테를 따라붙으며 물었다.
“괜찮겠어? 별로 자신감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하지만 괜찮을 거야. 지금은 좀 헤매고 있는 것 같지만…….”
단테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가 위인지 모를 만큼 멍청이는 아니지.”
***
“호호호! 도망치는 꼴이 일품인걸! 과연 명문 학교 학생답다니까!”
“쳇! 시끄러!”
에이미가 달리는 길목마다 비비안이 벽에서 튀어나와 조롱의 언사를 내뱉었다. 최선을 다해 길을 찾고 있지만 어디를 가도 그녀의 손바닥 안이었다.
에이미가 달리는 방향의 벽면이 갑자기 열리더니 루드반스가 껌을 씹으며 등장했다.
“신의 분노.”
비가시적인 충격구슬을 땅바닥에 내리꽂자 전기력과 탄성력을 가진 충격파가 솟구치면서 에이미의 몸을 띄웠다.
“팬티 보인다.”
에이미가 공중제비를 돌면서 착지하자 측면에서 조크레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스피드 기어!”
1단계에서 10단계까지 관성을 조절하는 스피드 기어의 움직임은 물리법칙에 완벽하게 어긋나 있었다. 기존의 상식이 파괴되자 시공간마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에이미는 황급히 에어 실드를 펼쳤다. 조크레의 파이어볼이 작렬하면서 그녀의 몸을 멀리까지 밀어냈다.
‘이대로는 비비안을 찾을 수 없어. 어떻게든 성벽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공중이라면 에어 터널을 가동하여 비비안의 본체를 직접 타격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크레 일행을 상대로 그런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상은 벽으로 막혀 있는 상황. 결국 스나이퍼 모드는 불가능한가? 차라리 한 명을 부상시켜서 발을 묶어두면…….’
에이미는 고개를 저었다. 또 다시 생각이 많아지고 있었다. 단테에게 들었던 조언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너에게는 스타일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