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78
‘스타일. 나의 스타일.’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에이미는 오직 스나이퍼 모드에 생각을 집중했다. 동시에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핵심적인 발상이 번개가 치듯 머릿속에 새겨졌다.
‘어쩌면…… 아니, 할 수 있다. 나라면 할 수 있어.’
성벽의 구조를 살핀 에이미는 임의의 A지점과 B지점을 설정해 가상의 현을 그렸다. 그리고 성벽의 곡률을 토대로 라디안값을 계측한 다음 세평방 정리와 삼각함수를 접목시켜 비비안의 본체가 있는 중심 좌표를 도출해 냈다.
‘좌표는 나왔다. 하지만 타격을 가하려면…….’
스나이퍼 모드만 가지고는 불가능했다. 사방이 벽으로 막힌 상황에서 화염이 뻗어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이미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로네와 단테가 그랬듯이, 더욱 더 전략을 심화시켜 나갔다.
‘가능해. 공기보다 무겁기만 하다면…….’
에이미의 홍안이 전기처럼 빠르게 번쩍거렸다.
‘더, 더 강한 위력이 필요해.’
위력. 위력. 위력. 위력. 위력.
자기상 기억이 초당 수백 장의 백업을 반복하면서 에이미의 잡념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극한의 자기 검열.
그녀의 정신은 1퍼센트의 불순물조차 섞이지 않은 상태로 하나의 목적을 위해 침투해 들어갔다.
집중에 집중한다.
머릿속에서 폭발이 일어난 듯 그녀의 정신력이 곱의 제곱으로 증폭되었다.
일도一道.
일말의 잡념도 섞이지 않은, 오직 하나의 생각에 치중했을 때에 발생하는 일시적인 삼매현상이었다.
‘인페르노.’
에이미의 양쪽 다리 아래에서 2개의 불줄기가 꽈배기처럼 꼬이면서 머리 위로 올라왔다.
“저, 저건 뭐야?”
에이미가 만든 화염의 크기를 발견한 조크레 일행은 돌진을 멈추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스의 밀도가 너무 진해서 마치 물감처럼 불꽃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을 정도였다.
“저건…….”
화염 계열을 전공한 조크레는 에이미가 무엇을 시도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프로 마법사도 도달하기 어렵다는 천 도 시의 불.
불꽃의 색을 보아하니 최소 1,300도 이상의 고열이 머리 위에서 불타오르고 있었다.
“너, 너…… 그거…….”
조크레 일행은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페르노가 폭발하면 반경 내의 모든 게 녹아내릴 터였다.
에이미가 성벽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그래. 너는 흉내조차 낼 수 없겠지.”
조크레가 의아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기껏 상황을 타개할 마법을 시전해 놓고 엉뚱한 곳을 겨냥하고 있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비비안은 곧바로 깨달았다. 석화된 얼굴임에도 경악에 찬 표정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안 돼! 조크레, 막아!”
에이미는 양손을 들어 거대한 불꽃을 떠받쳤다.
“막아! 막으라고! 본체를 공격할 생각이야!”
조크레는 비비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30미터 높이의 장벽으로 막혀 있는데 어떻게 본체를 공격한다는 말인가?
에이미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게 내 스타일이거든.”
활처럼 상체를 젖힌 그녀는 허리를 튕기면서 아래로 양손을 휘둘렀다. 천 도 시의 화염 인페르노가 30미터 높이의 장벽을 넘어 저편 하늘로 날아갔다.
루드반스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곡사포…….”
무지막지한 가스 밀도를 자랑하는 불덩어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가로질렀다.
곡사 사격은 엄폐물을 무시할 수 있는 반면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지만, 에이미는 자기상기억을 통해 기계처럼 정밀하게 목표지점을 타격할 수 있었다.
“꺄아아악!”
비비안의 분신이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미로의 중심에 인페르노가 떨어지면 석화된 상태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는 순식간에 녹아버릴 터였다.
쿠쿠쿠쿠쿠쿠쿵!
반경 1킬로미터에 걸친 성벽이 동시다발적으로 땅속으로 꺼지고, 석화 상태에서 풀려난 비비안이 분신의 비명을 이어받으며 황급히 자리를 이탈했다.
지상에 도착한 인페르노가 폭발하자 지면이 쇳물처럼 녹아내렸다. 야광처럼 시뻘건 빛을 내는 용암에 탁하고 검은 불순물들이 둥둥 떠다니다가 찬 공기에 빠르게 식어갔다.
인페르노의 낙하 전과 후의 지형은 완전히 달랐다. 지면이 악마의 얼굴처럼 괴기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 비비안이 조크레에게 도착했다. 미로는 사라졌으나 에이미는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살피던 조크레가 짜증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길! 어디로 숨은 거야?”
루드반스가 있는 곳에서 퍽 하고 둔탁한 소리가 터졌다. 불붙은 돌멩이가 뒤통수를 강타하자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가 쓰러졌다.
율의 파동 (5)
“파이어 콜?”
조크레는 암석이 날아온 방향을 눈으로 훑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풍경과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에이미가 서 있었다.
“감히 우리를 깔봐?”
조크레는 순간 이동을 시전한 상태에서 스피드 기어를 10단계로 올렸다. 에이미가 황급히 파이어 콜을 쏘았으나 관성을 조절할 수 있는 그는 손쉽게 회피했다.
“하하하! 고작 이거냐?”
에이미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조크레가 의아함을 느끼는 순간 하늘에서 수십 발의 파이어 콜이 비처럼 쏟아져 그를 강타했다.
“컥!”
곡사각 88.97도의 저격.
인지 밖에 머물고 있던 파이어 콜이 갑자기 사각에서 내리꽂히는 공격은 스피드 기어라도 막아 낼 수가 없었다.
에이미는 멈추지 않고 비비안에게 돌진했다. 영의 반경은 아군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지만 본인은 석화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결국 비비안은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에이미에게 배를 얻어맞고 한 뼘이나 떠올랐다.
“끄윽! 끅!”
비비안이 엎드린 채로 배 속의 것을 게워 내자 에이미가 손을 탁탁 털면서 코웃음을 쳤다.
“흥, 그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인 줄 알아.”
마음 같아서는 혼쭐을 내고 싶지만 상황이 여유로운 편이 아니었다. 조크레 일행과 싸울 때 하늘에서는 폭음성이 터지고 있었다. 시로네의 장기인 화력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뜻이었다.
“시로네는?”
서쪽 하늘에 시로네가 떠 있었다. 얼음 여왕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건너편에 냉기의 구름이 뭉쳐 있는 게 보였다.
“응? 저건…….”
에이미의 얼굴이 충격에 잠겼다. 연무 사이로 드러난 얼음 여왕의 모습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삼위일체 (1)
시로네는 굳은 얼굴로 침을 삼켰다.
냉기 구름이 걷히면서 얼음 여왕의 거대한 눈이 뒤룩뒤룩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아마도 쉽게 찾지 못할 터였다. 인간 또한 자신의 눈동자보다 작은 물체를 포착하기가 어려우니까.
먼지나 모기, 털 같은 것들.
솔직히 모르겠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보다 거대한 눈동자가, 동공이, 홍채가, 인간의 안구 운동과 똑같은 속도로 돌아다니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얼음 여왕의 눈동자가 사람의 크기라면 얼굴은 집채만 했다. 수십 미터 길이로 가지런히 정렬한 치아 사이로 냉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얼굴만 커졌다는 사실이 가장 기괴했다.
거대한 얼굴에 작은 몸이 달라붙어 있다. 이게 꿈이라면 최악의 악몽이었다.
어째서 저런 선택을 한 것일까?
놀라게 해서 심장을 정지시킬 생각이었다면 제법 괜찮은 전략이지만, 그런 원초적인 의미는 분명 아니었다.
‘뇌 용량을 키웠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던 얼음 여왕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감정이랄 것이 진하게 묻어 나왔다.
공포와 분노.
포톤 캐논의 연사에 소멸의 위기를 경험한 순간 비로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감정에 도달한 것이다.
‘인간은 강하다.’
얼음 여왕은 시로네를 통해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더 강해진다.’
시로네의 강함은 뇌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시로네보다 거대해지면 된다. 어떤 의미로는 무식한 방법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직관적이고 명쾌한 해답이었다.
“오오오오오오!”
얼음 여왕의 입에서 냉기가 퍼졌다. 공기가 수축하면서 하늘이 통째로 좁혀져 오는 듯했다.
여파는 지상에까지 미쳤다. 땅이 얼면서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공기가 냉각되고 있었다.
단테와 리리아는 강력한 추위에 몸을 떨었다. 철갑 피부를 지닌 괴인들조차도 활동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비비안의 팔을 뒤로 꺾은 에이미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단테! 박요진은 어떻게 된 거야? 빨리 하지 않으면 전부 얼어 죽을 거야!”
리리아는 침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얼음 여왕의 형태 변화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위력을 떠나서 저런 괴물을 이겨낼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여기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얼음 여왕을 가두어두는 편이 나았다.
“에이미! 비비안을 풀어줘!”
추위에 정신을 차린 조크레와 루드반스가 달려왔다. 하지만 그들조차 하늘에 등장한 얼음 여왕의 변화를 발견하고 멍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저…… 저게 뭐야?”
조크레가 알고 있던 얼음 여왕은 없었다. 얼굴만 거대해진 괴물이 하늘에 떠 있을 뿐이었다.
에이미가 인질로 잡은 비비안을 앞세우고 소리쳤다.
“이제 알겠어? 너희가 어떤 괴물을 깨웠는지? 그러니 그만 항복하고 우리를 도와!”
비비안이 몸부림을 치며 말했다.
“알 게 뭐야! 조크레, 공격해!”
조크레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기온이 심각할 정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공격이고 뭐고 이대로는 전부 얼어 죽는다.
“에잇! 얌전히 있어!”
“꺅! 야! 조심히 다뤄!”
보다 못한 에이미가 비비안을 내동댕이치고 일행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파이어 월을 시전하여 불의 장벽으로 일대를 두르자 한순간 온기가 전해져왔다.
“조크레! 너도 뭐라도 좀 해! 이대로 죽을 거야?”
조크레 또한 불의 마법사. 퍼뜩 정신을 차린 그는 에이미의 파이어 월 반경 안쪽에 또 하나의 장벽을 그렸다.
하지만 허사였다. 전능으로 만든 불은 발화점이 현실보다 훨씬 낮지만 그조차도 견디지 못하고 꺼져버렸다.
극한의 추위가 엄습했다. 폐부가 얼어붙고 눈이 침침해졌다. 마치 세상의 종말을 향해 치닫는 듯했다. 얼음 여왕이 스스로 얼어붙었던 800년 전의 그날처럼.
조크레는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얼굴이 울상으로 변하면서 단말마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사, 살려 줘!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루드반스가 목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크윽! 숨을 쉴 수가 없어!”
현재 지상의 기온은 영하 120도.
모두를 죽이는 데에 3분이면 충분한 온도였다.
‘시로네, 제발……!’
에이미는 간절한 눈으로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극한의 추위에서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금강무장의 힘으로 보호받고 있는 시로네뿐이었다.
“시로네! 이대로는 다 죽을 거야!”
아르망의 청각기관이 에이미의 소리를 수집하여 시로네의 뇌에 전송했다.
하지만 듣지 않고도 시로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르망이 신체의 발열 기관을 모조리 강화하고 있음에도 견딜 수 없는 추위였다.
초당 소모 열량이 무려 1킬로칼로리에 달했다.
심지어는 방한 효과를 극대화시킨 유기질의 로브마저 딱딱하게 굳을 정도였으니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거동할 기력조차 없을 터였다.
‘부딪칠 수밖에 없는 건가.’
시로네는 광익을 뒤로 쳐 내며 여왕에게 쇄도했다.
맞바람이 더해지자 체감온도는 더욱 내려갔다.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시도지만 아르망은 어떠한 불평도 없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체온을 유지시켰다.
하지만 결국 그조차도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생체 조직 괴사. 유기질 생성 불가능. 생명 활동 유지 가능 시간. 4초. 3초. 2초.
“크으으으으!”
시로네는 이를 앙다물고 돌진했다. 몸 전체가 차가운 돌덩어리로 변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려는 순간, 냉기의 근원 지점인 얼음 여왕의 입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에이미가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미쳤어! 시로네!”
얼음 여왕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은 극한의 냉기를 정면으로 맞는 것보다도 정신 나간 짓이었다. 단순히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저 안에 무엇이 있을지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단테가 입김을 뿜어내며 말했다.
“에이미. 기온이 올라가고 있다. 파이어 월을 시전해.”
시로네를 삼킨 얼음 여왕은 눈조차 깜박이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시적인 활동 정지 상태인 듯했다.
결과적으로 시로네의 판단은 탁월했다. 단,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모두를 살릴 생각이었다면.
파이어 월을 시전하는 에이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벌써부터 시로네가 세상 밖으로 떠나 버린 기분이었다.
“돌아올 거야. 시로네는 반드시 돌아올 거야.”
단테는 희망적인 대답은 하지 않았다. 미지의 세계에 몸을 던진 시로네가 돌아올 확률은 계산 불가능이었다.
“일단 시간은 벌었어. 얼마나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안에 우리도 뭔가 해야 돼. 모여 봐, 작전을 짜자.”
단테 일행이 작전을 토의하는 동안 조크레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것이 얼음 여왕의 실체.’
얼음 여왕의 거대한 얼굴은 끔찍했다. 마치 세상 밖의 누군가가 돋보기로 얼굴만 비추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곳에 시로네가 뛰어들었다.
어쩌면 그는 조금 더 버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엄청난 비행 능력이 있으니 최악의 상황에서는 친구들을 데리고 도망쳐 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오히려 사지로 몸을 던졌다.
세상을 구하고 싶어서? 영웅이 되고 싶어서? 그렇지 않다면 이 또한 오만함의 발로인가?
“어째서?”
조크레는 진심을 담아 물었지만 대답을 해야 할 시로네는 이미 얼음 여왕의 율법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
시로네는 율법의 세계를 부유했다.
거리를 측정할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쉴 새 없이 반짝거리면서 신호를 교환하고 있었다.
빛과 어둠은 1과 0. 이진수의 신호체계가 얼음 여왕의 율법을 집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정말로 중요한 정보는, 이곳에 공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잔여 산소 소모 시간 2분 37초.
시로네는 덜컥 겁이 났다. 아르망이 전달한 시간은 말 그대로 자신의 수명이었다.
‘침착하자. 흥분하면 산소를 많이 써.’
애써 냉철함을 되찾았으나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1과 0의 신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에 상황을 타개할 변수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이대로 산소가 떨어져 죽는 것인가? 시체가 되어 영원히 차가운 세계를 떠돌아다니게 되는 것인가?
그때 별들이 반짝이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