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79
마치 태업하던 개미들이 먹을 것이 땅에 떨어지자 미친 듯이 속도를 높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로네는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별들이 빨라질수록 감각이 멀어져 갔다.
‘아, 그렇구나.’
이곳은 율법의 소화기관이었다.
아르망의 율법으로 보호받고 있지 않다면 이미 분해되어 얼음 여왕의 율법으로 스며들었을 터였다.
실제로 정신이 출렁거릴 때마다 아르망이 집중점을 재조정하여 의식을 유지시키고 있었다.
마치 바다에 던져진 떡밥이 된 기분이었다.
‘제발 버텨 줘.’
시로네는 아르망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단지 도구일 뿐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은 유일한 생명 줄이었다.
아르망은 잘 버텼다.
산소가 얼마나 남았는지 말해 주지 않는 이유는 공포가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이 그렇게 생각했을 테지만, 시로네는 오히려 그게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소 소모량. 그냥 알고 있자.’
-잔여 산소 소모 시간 2분 1초. 2분. 1분 59초.
‘2분 남았구나, 내 인생.’
일부러 편하게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산소 소모 속도가 2배는 더 빨라질 테니까.
물론 숨을 참으면 조금 더 버틸 수는 있겠지만, 그때부터는 정말 인생 막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방법을 찾아야 한다.
“헉!”
시로네는 아까운 산소를 토해 냈다.
갑자기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아니, 정확히는 거대한 소리를 이루는 신호였다.
흔들려라.
물에 푹 잠겨 있던 떡밥이 풍랑을 만나 풀어지듯, 시로네의 의식이 빠르게 해체되기 시작했다.
분해되어라.
‘으으으으으!’
하나를 이루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저마다 독립의 깃발을 흔들면서 떠나가고 있었다.
의식이 멀어졌다. 아르망은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결국 얼음 여왕의 율법이 정신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크으으으으!”
시로네는 인상을 찡그렸다. 눈가의 신경이 올라오면서 동공이 검어지기 시작했다.
심층 1단계에서 무지막지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얼음 여왕의 율법을 바깥으로 밀어냈다.
정신에 침투한 불청객에 대항하여 거핀의 봉마진이 열리면서 다시금 마신을 끄집어냈다.
-다중 정신체 감지. 오버 드라이브 가동.
아르망은 주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발견하고 즉각 베히모스와 접속했다.
삼위일체 (2)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산소 소모량이 치솟았다.
-잔여 산소 소모 시간 1분 17초. 1분 3초. 42초.
사방에서 빛이 날아와 시로네의 몸에 박혔다.
율법의 접근이 차단당하자 물리적인 방법으로 직접 정신에 침투하여 녹이려는 것이었다.
아르망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신경 접합 지점 관측. 도킹 후 카피.
아르망의 촉수가 빛의 바늘과 접속했다. 그러자 더욱 많은 빛이 쇄도하여 시로네의 몸에 박혔다.
수십 개, 수백 개.
끝없이 밀려드는 빛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였다.
해체되어라.
“크으으으으!”
시로네는 무서운 얼굴로 콧잔등을 일그러뜨렸다.
자신의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흡수당하는 기분은 산 채로 짐승에게 먹히는 것과 같은 굴욕이었다.
-잔여 산소 소모 시간. 4초. 3초. 2초.
이대로는 흡수당하고 만다.
“건방진 게……!”
시로네는 정신을 끝없는 한 점에 집중시켰다.
이모탈 펑션이 열리면서 무한의 정신이 율법의 세계 전체로 퍼져 나갔다.
-계측 불가능한 집중점 감지. 침투.
아르망의 유기질이 무한히 증식했다. 촉수들이 뻗어 나와 시로네에게 박힌 가시들과 빠짐없이 도킹했다.
주인의 뇌를 해킹하려는 정보를 카피한 아르망은 그것을 토대로 적합한 방화벽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로네와 얼음 여왕은 개별적인 율법의 주체자로서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방화벽 완성. 가동.
시로네의 망막에서 빛이 터졌다.
소세계창유.
“여긴?”
시로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율법의 세계처럼 어두운 공간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반짝이는 별조차 없다는 것.
하지만 시로네는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볼 수 있지?’
빛이 없는 곳에서 본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어쩌면…….’
시로네는 흥미로운 대답을 찾아냈다.
기억이다. 기억에는 빛이 없다.
빛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현실에 있었다.
그렇기에 이곳은 모든 시간이 펼쳐진 공간.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 지을 수조차 없는 시간의 전체였다.
걸음을 옮기자 어둠의 장막에서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시로네가 성큼 다가왔다.
“뭐지?”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마치 거울을 이용해 공간을 펼친 것처럼 무한한 숫자의 자신이 돌고 있었다.
시로네는 1명을 지목하고 다가갔다. 거리가 짧아질수록 구도가 좁아지면서 수많은 시로네가 평행선으로 늘어섰다.
동공이 시커먼, 사악한 얼굴의 자신이 서 있었다.
시로네는 손을 내밀었다. 시로네도 손을 내밀었다.
차가운 질감의 유리 벽이 느껴졌다.
‘이것이 나라고?’
아니, 이것은 내가 아니다.
여기는 어디일까? 거울의 바깥일까, 안쪽일까? 거울을 보는 게 나인가, 거울에 비친 것이 나인가?
“아…….”
시로네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것이…….”
2명의 시로네가 동시에 말했다.
“너다.”
퍼퍼퍼퍼퍼퍼퍼펑!
무한한 평행선을 그리며 펼쳐져 있던 모든 유리 벽이 빛의 속도로 질주하며 터져 나갔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내며 거울의 경계 면이 빛의 속도로 파괴되기 시작했다.
시로네와 시로네의 손이 맞닿았다. 하지만 감촉을 느끼기도 전에 맞은편의 시로네가 사라졌다.
얼음 여왕의 율법 속에서 시로네와 시로네는 서로를 지칭하여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루었다.
검은 동공의 사악한 시로네는 더 이상 없었다. 어떤 율법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 불변의 시로네가 있을 뿐이었다.
천국에서는 화신술이라 칭해지는 기술. 하지만 마법사들은 이를 하나의 경지로 여겨 이렇게 불렀다.
심적초월.
인생의 주인공 (1)
삼위일체를 완성한 시로네는 눈을 번쩍 떴다. 동시에 다중 율법 네트워크 소세계창유를 통해 아르망이 얼음 여왕의 율법을 역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세계가 흔들리고 별빛이 발광했다. 시로네를 견디지 못한 얼음 여왕이 목을 빼내고 토악질을 했다.
“크악! 크악! 크아아아악!”
지상에서 지켜보던 에이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거대한 얼굴이 눈알이 튀어나올 듯 힘을 주는 모습은 끔찍함을 넘어 처참할 지경이었다.
“크아아아아악!”
얼음 여왕이 마지막으로 힘을 주자 촉수를 주렁주렁 매단 시로네가 토해져 나왔다. 광익을 활짝 펼치고 정지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었다.
“후아! 후아!”
공기에도 맛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시로네! 시로네가 살아 돌아왔어!”
곧 죽을 것처럼 끙끙 앓던 에이미의 얼굴에 비로소 화색이 돌았다. 얼음 여왕의 괴기스러움도 시로네의 무사 생환의 기쁨을 넘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단테의 눈빛은 여전히 심각했다.
무엇보다 얼음 여왕의 상태가 이상했다.
얼음 여왕은 인간의 안면 근육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현재 얼음 여왕의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형태였다.
‘무한? 무한? 무한? 무한? 무한?’
얼음 여왕은 혼란스러웠다.
‘그게 뭐지?’
아르망이 방화벽을 구축하면서 얼음 여왕 또한 시로네의 정보를 카피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옵트러스의 방대한 정보로도 완벽하게 분석하기 어려운 이모탈 펑션이 설치되어 버린 것이다.
율법의 스케일을 뛰어넘는 거대한 고양감이 밀려들자 얼음 여왕은 저절로 벌어지는 입을 통제하지 못했다.
무한으로 가고 있다.
그것만이 얼음 여왕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끝없이 벌어지던 턱이 관절의 가동 범위를 넘어서더니 급기야는 자기 자신을 역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마치 포도 껍질이 벗겨지면서 알맹이가 튀어나오듯, 새로운 존재가 목구멍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무한하다.’
삼면에 인간의 얼굴이 붙어 있고 어깨에서 갈라져 나온 팔이 수십 개로 증식하면서 공작새의 깃털처럼 펼쳐졌다.
삼면 천수관세음.
이모탈 펑션을 흡수한 옵트러스의 2차 헌신이었다.
“갈갈갈갈갈갈갈갈!”
수천 마리의 딱정벌레가 우는 것 같은 소리가 웃고 있는 천수관세음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큭!”
기습적인 음 파동에 직격을 당한 시로네는 아르망을 통해 청각을 조절한 다음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천수관세음의 목이 돌아가면서 눈초리가 올라가고 입가는 삐죽 내려온 얼굴이 정면을 차지했다. 분노의 율법이 터지면서 수많은 불덩어리가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위험해!”
리리아가 쏟아지는 불비를 가리키자 단테가 거대한 방어 마법진을 머리 위에 펼쳤다. 불덩어리가 처박히는 순간 폭음성을 내며 쩍 하고 크게 금이 갔다.
“크윽! 제길!”
단테는 비통한 표정이었다. 고립된 공간에서 정신체는 성장이 제한되지만, 시로네를 삼키고 난 다음의 정신체는 얼음 여왕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율법이었다. 아마도 이모탈 펑션일 것이다. 하긴, 율법을 흡수하는 존재에게 시로네만큼 탁월한 정력제도 없었다.
“지금 당장 박요진을 펼쳐!”
리리아는 혼란에 휩싸인 눈으로 하늘의 전투를 살폈다. 시로네가 포톤 캐논을 연사하고 있지만 천수관세음의 몸에는 금조차 가지 않았다.
“아직은 안 돼. 박요진의 범위는 봉마진보다 훨씬 좁아.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없다면 차라리 이곳에서 죽는 게 나아.”
에이미가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시로네! 괴물을 이쪽으로 밀어붙여!”
아르망이 에이미의 음성을 카피했다. 노이즈가 섞인 목소리가 시로네의 뇌에 전달되었다.
“밀어붙이라고?”
지상에서 무언가 방법을 찾아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포톤 캐논에도 미동조차 없는 괴물을 어떻게 밀어붙인다는 말인가?
‘할 수밖에 없잖아.’
시로네는 눈을 부릅뜨고 포톤 캐논의 위력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그러자 심적초월의 정신이 거대한 확장을 꾀했다.
이모탈 펑션은 무한의 정신력을 빌릴 수 있지만 스피릿 존 이상으로 위력을 높일 수는 없다.
하지만 심적초월은 강제적으로 스피릿 존을 강화시킨다.
물론 신적초월과 마찬가지로 이후에 오는 정신적 후폭풍은 별개의 문제였다.
육체 이상의 속도로 검을 내지른 리안의 팔이 폭발했듯이, 가용치 이상을 도모하다가는 오히려 정신이 파괴될 터였다.
-집중점 확장. 오버 드라이브 발동.
하지만 시로네는 망설이지 않았다. 일전에 경험한 적이 없는 거대한 출력을 느낀 그가 손을 내밀자 수십 개의 섬광이 천수관세음의 몸통에 직격으로 처박혔다.
“갈갈갈갈갈갈갈갈!”
공간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던 천수관세음의 육체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방으로 음 파동을 쏘아댔으나 시로네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위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박요진 설치 지점까지 앞으로 250미터.
지상에서 전투를 지켜보는 자들은 수십 발의 포톤 캐논이 번쩍이는 광경에 넋을 빼앗겼다.
“어떻게 저런 마법을……?”
마도사인 리리아의 충격이 가장 컸다. 그녀가 정신체를 데미갓으로 구분한 이유는 율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때문이다. 율법의 존재는 율법으로 봉인시켜야 한다. 하지만 시로네는 오직 물리력만으로 데미갓을 밀어내고 있었다.
“……순진한 애인 줄 알았는데.”
리리아의 착각에 단테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시로네를 외모로 판단하면 결국 이렇게 된다. 옷 치장에는 관심도 없고, 카페에서 태연히 바느질을 하는 촌스러운 소년. 하지만 그게 바로 자신을 이긴 유일한 소년이었다.
“뭐, 마법사일 때 가장 멋있기는 하지.”
리리아는 갈등했다. 천수관세음의 이동거리가 점차 짧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포톤 캐논의 위력이 더 강해지지 못하면 박요진의 설치지점까지 몰아세우는 건 불가능했다.
“리리아. 박요진을 펼쳐. 시로네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뭔가를 해야 한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나는…… 어떡해야 하지?’
박요진이 실패하면 천수관세음은 세상으로 빠져나간다. 왕국에서 대비를 한다고 해도 율법의 규모로 봤을 때 작은 도시는 몇 시간 만에 초토화시킬 수 있는 적이었다.
리리아가 단테를 돌아보며 말했다.
“박요진을 준비할게.”
시로네에게 걸어 볼 수밖에 없다. 바깥세상의 사람들만큼이나 이곳의 사람들도 소중하다. 괴인을 죽이지 않은 것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좋아. 그럼 작전을 말할게. 시로네가 50미터만 더 밀고 들어오면 내가 방어 마법진을 맨션으로 구축해서 괴물을 가둘 거야. 봉마진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되겠지. 그러는 동안 에이미는 시로네를 화력으로 지원할 마법을 준비해줘.”
에이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가장 강력한 마법을 시전할게.”
조크레는 필사적으로 싸우려는 그들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화가 치솟았다.
어째서 목숨을 거는 것일까?
저들은 그냥 가 버리면 된다. 어차피 모든 죗값은 자신이 치르게 될 것이고, 뒷감당도 왕국에서 알아서 할 일이었다.
“어째서 싸우는 거지?”
리리아를 지키고 있던 단테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야? 방해할 생각이면 너부터 해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