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8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공지할 사안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쾌재를 불렀다.
수업만 일찍 끝내 준다면 귀신 볍씨 까먹는 소리를 해도 들어 줄 아량이 있었다.
“조기 진급 예정자가 결정되었습니다. 아리안 시로네, 잠시 일어서 주세요.”
시로네는 화들짝 놀랐다.
‘내가?’
반면에 이런 상황에 익숙한 아이들은 대상이 시로네라는 사실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시로네 학생은 클래스 파이브로 진급할 것입니다. 내일부터 그쪽 시간표대로 수업에 참석하세요. 다른 학생들도 더욱 정진하여 기회를 얻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강의실이 술렁거렸다.
학생들은 마치 전쟁이 터졌다는 비보를 접한 사람처럼 충격에 잠겼다.
‘이건 조기 진급 수준이 아니잖아.’
클래스 세븐에서 클래스 파이브라면, 한 번에 두 계단을 건너뛴 것이었다.
“선생님! 이의 있습니다. 어떻게 시로네가 두 클래스나 상향될 수 있죠? 무엇보다 시로네는 마법을 하나도 구사하지 못하는데요.”
시이나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에텔라 선생님께선 그런 말씀 없으셨는데.’
어쩌면 그녀도 모르는 것이다. 통합 교육 시간에는 딱히 마법이 필요 없으니까.
“정말이니, 시로네?”
동급생들이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눈동자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제발 못 한다고 해라. 못 한다고 말해.
“네. 아직 구사할 수 있는 마법은 없어요.”
“흐음.”
시이나는 안경을 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조기 진급에 문제는 없어. 학교 방침상 마법은 클래스 파이브 교과이니.’
그럼에도 마법을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특이한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배우면 기본은 할 수 있을 텐데. 혹시……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인가?’
하지만 왜?
마법에 열광하는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말리더라도 알아서 시도하기 마련이었다.
“선생님도 의문이군요. 하지만 클래스 식스까지는 마법 평가 항목이 없습니다. 시로네의 조기 진급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절대로 용납 못 해요!”
클래스 세븐의 암묵적 리더인 마크가 일어섰다. 거구의 덩치에 사각 턱이 발달한 학생이었다.
“이건 편애입니다. 선생님도 스피릿 존이 마법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시로네에게만 특별한 조건을 적용하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습니다.”
“맞아요! 솔직히 지금 시로네랑 성적으로 경쟁한다고 해도 제가 이길 자신이 있어요! 시로네는 이론 수업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잖아요!”
“시로네를 조기 진급시킨다면 학생회에 건의해서 청문회를 열겠습니다!”
예상보다 반발이 거세자 시이나는 놀랐다.
경쟁에 특화된 아이들이니 자극을 받으리라 생각했건만, 노골적인 적개심이 느껴졌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구나.’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학생들의 눈빛에서 시이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아직 정식으로 결정이 난 사안은 아닙니다. 정확한 공지는 교사회의를 거친 다음에 공표하도록 하죠. 오늘 수업은 이만 끝내겠습니다.”
교무실로 돌아온 시이나는 생각에 잠겼다.
‘뭘까, 그 반발은?’
특수 목적 학교의 편리함이라면 학생들이 과정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인이 계급제에 불만을 갖지 않고 격투가가 맞는 것에 불만을 갖지 않듯, 마법학교 학생에게 실력 위주의 경쟁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무서우면 입학하지도 않았지.’
교내 원칙에 문제가 없는 한 시로네는 선택과 집중을 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건 감정적인 문제야. 하지만 대체…….’
“시이나 선생님.”
마리아라는 여학생이 그녀를 찾아왔다.
클래스 세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열아홉 살로, 벌써 4년째 진급을 못 하고 있었다.
재능이 없지는 않지만 겁이 많은 성격이라 학교 측에서도 안타깝게 여기는 학생이었다.
“무슨 일이니, 마리아?”
“그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마리아는 모든 걸 털어놓았다.
현재 시로네가 학급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으며 아이들이 왜 그렇게 반발했는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시이나의 미간이 구겨졌다.
안 좋은 감정을 넘어 악질적인 수법으로 시로네의 생활을 방해하고 있었다.
마리아가 울먹이며 이야기를 끝냈다.
“지금은 제가 나이가 많아서 관심이 없어졌지만, 사실 저도 그런 적이 있어요. 저만 보면 토할 것처럼 굴고, 일부러 제 옆에서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그때는 공부고 뭐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저는 시로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도 차분할 수 있는지.”
“그런 일이…….”
클래스 세븐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인 시이나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고마워. 이제부터 선생님이 알아서 할게.”
자정이 넘은 시각.
도서관에서 돌아온 시로네가 세안을 마치고 책상에 앉으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일단 기숙사에 들어온 학생은 외출이 불가능하고, 직원들도 퇴근한 시간이었다.
혹시 동급생들이 찾아온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데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로네, 자고 있나?”
“시이나 선생님?”
황급히 문을 열자 정말로 시이나가 서 있었다.
“들어가도 될까?”
“아, 네. 들어오세요.”
오늘이 당직이었던가?
여자 기숙사 공용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왔는지 머릿결에 물기가 남아 있었다.
시이나는 시로네의 방을 둘러보았다.
흔한 남학생들 방과 달리 깔끔하게 정리 정돈이 잘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말없이 책상으로 걸어간 그녀는 시로네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살폈다.
‘호오.’
교과서적도 있지만 아직 배울 필요가 없는 분야의 책들이 한 무더기였다.
‘역시 생각하는 게 남다르다.’
아예 다른 분야라도 내용을 아는 사람이 본다면 꽤나 밀접한 관계를 가진 책이었다.
‘이론이 약하다는 걸 알고 있는 거야. 당장의 성과를 내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어.’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어릴 때 교육을 받지 않았을까?’
시로네가 평민이라는 것을 모르기에 드는 생각이지만, 기본기가 부족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도모한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저기, 선생님. 차라도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거야.”
시이나가 침대에 걸터앉자 시로네도 책상 의자를 가져와 그녀의 앞에 자리했다.
수업은 많이 받았어도 시이나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인 듯했다.
수업 시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고, 머리를 풀어 헤친 모습이 훨씬 여성스러웠다.
시로네가 긴장한 듯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시이나에게는 사뭇 의외였다.
‘의외로 부끄러움을 많이 타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학교생활이 힘들지는 않니?”
“네, 재밌어요. 공부하는 것도 즐겁고요.”
“어째서 말하지 않았지? 아이들이 너를 괴롭힌다던데.”
그녀가 방에 찾아왔을 때부터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사실 근래 들어서는 아예 대놓고 괴롭히기에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마리아에게 아이들의 행패를 낱낱이 들은 시이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해도 돼.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정말로 괜찮아요. 친구를 사귀지 못해서 아쉽지만, 저를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시로네의 눈빛에서 시이나는 진심을 읽었다.
“놀랍구나. 이런 상황에서는 친구들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물론…….”
시로네는 입술을 삐죽였다.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건 있죠. 하지만 자신을 부정하면서까지 관계에 집착하는 건 어리석은 일 아닐까요? 클래스 세븐의 모두가 제가 틀렸다고 해도 고작 40명일 뿐. 세상 어딘가에는 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조기 진급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말에 시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우였구나.’
시로네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래, 시로네. 너의 각오는 잘 들었다. 교사회의에 참고하도록 하마.”
순간 이동(1)
“이상으로, 시로네의 조기 진급에 관한 소견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알페아스 교장과 고급반 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이나는 클래스 세븐의 집단 따돌림 사건과 관련된 서류를 제출하고 자리에 앉았다.
서류를 읽어 가는 교사들의 인상이 구겨졌다.
시로네가 마법을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을 빌미로 집요하게 따돌린 정황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깁니까? 고작 이런 이유로 학급의 아이를 괴롭힌다는 게?”
“하위 클래스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죠. 어린아이들도 많고, 머리는 굵어도 재능이 없어 머무는 학생도 있고. 일단 변별력 자체가 떨어지는 클래스니까요.”
“그렇다면 시로네를 빨리 진급시키는 게 좋겠군요. 그 아이라면 최소 4년 안에 졸업할 수 있을 겁니다. 인근 학교에서 알페아스 마법학교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지금, 조기 졸업생은 많을수록 좋아요.”
졸업생의 나이는 학교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가장 편리한 데이터였다.
물론 사회에 나가서 활약을 하지 못한다면 신뢰도가 떨어지겠지만, 현재 여타 학교에서 경쟁적으로 조기 졸업생을 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평범한 학교를 명문 반열에 올릴 때 사용하는 정석적인 수법으로, 일단 명문 타이틀부터 얻어 놓고 수업의 질을 높이는 방식이었다.
주변 학교의 견제가 심한 상황에서 알페아스 마법학교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조기 진급은 물론이고 질적으로 우수한 학생을 다수 배출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들은 시로네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저는 조금 부정적입니다.”
사드의 발언에 시이나가 미간을 구겼다.
대체 전생에 무슨 원수가 졌는지 만나는 사건마다 충돌이었다.
알페아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부정적이라. 이유는?”
“시로네가 재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은 시로네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의 반발도 거기에서 나온 것이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이나가 말했다.
“이미 말씀드렸을 텐데요. 시로네의 전략은 지식의 전반적인 상향이라 마법의 습득을 미루고 있습니다. 학생 개인의 선택일 뿐, 교과과정 외적인 일까지 학교 측에서 강요할 수는 없어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게 아닙니다. 시이나 선생님이 시로네를 편애하니 문제죠.”
“뭐라고요?”
“클래스 세븐의 아이들도 학교에 들어와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평가 항목에 마법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학생들의 박탈감도 중요한 문제 아닌가요? 시로네보다 전능이 약하더라도 전지는 우위에 있습니다.”
“궤변 늘어놓지 마세요!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감정적인 판단이죠. 저는 교칙에 따라 결론을 내린 겁니다. 하위 클래스의 주된 평가 항목은 스피릿 존이에요.”
“학생들의 반발은 어떡하실 겁니까? 이번 일로 의욕이 떨어질 수도 있어요. 1명의 천재에게 모든 걸 쏟아부으라고 교사가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학생들의 어긋난 질투심 때문에 재능 있는 학생의 앞길을 막는 것도 교사가 할 일은 아니죠!”
두 사람이 동시에 쾅 하고 테이블을 치며 일어섰다.
회의 때마다 나오는 진풍경이었다.
순간 이동(2)
‘또 시작이군.’
교사들이 눈살을 찌푸렸으나 두 사람의 언쟁에 끼어드는 사람은 없었다.
마법사회는 실력 본위제라, 시이나와 사드가 어리다고 해도 등급은 엄연히 위였다.
20대 중반에 공인 6급 마법사에 오른 그들은 에텔라를 포함해 학교의 자랑거리였다.
논쟁을 듣고 있던 알페아스가 미소 지었다.
‘열정이 없으면 싸우지도 않지.’
열정의 대상이 다를 뿐.
사드는 모교의 발전을, 시이나는 학생의 성장을 핵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교사라면 응당 시이나의 편을 들어야겠지만 이곳 출신인 사드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그만하면 됐네. 자리에 앉지.”
알페아스가 입을 여는 순간 거짓말처럼 시이나와 사드가 싸움을 멈췄다.
아마 두 사람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알페아스를 향한 존경심일 터였다.
“내가 듣기로 양쪽 모두 일리가 있네. 시이나 선생의 말은 논리에 합당하지. 하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교사. 아이들의 마음에 편견이 자리 잡는 것도 지양해야 하지 않겠나?”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교장 선생님.”
사드는 웃었고 시이나는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알페아스도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예의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웃음살을 볼록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런 건 어떻겠나?”
고급반 게시판에 공문이 붙었다.
학생들로 바글거리는 가운데 내용을 확인한 자들의 눈에 충격이 휘몰아쳤다.
“뭐, 뭐라고?”
다름 아닌 클래스 세븐 전원에 대한 진급 평가를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공문의 골자는 이러했다.
1. 아리안 시로네의 조기 진급을 납득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은 관계로 클래스 세븐의 모든 학생에게 조기 진급의 기회를 제공한다.
2. 진급 대상자는 1명이며, 테스트에 통과할 시 클래스 파이브로 상향한다.
3. 학생들의 생각을 십분 공감하는 바, 평가는 이례적으로 스피릿 존이 아닌 마법으로 채점한다.
4. 평가 항목은 순간 이동이다.
“순, 순간 이동? 나 할 줄 모르는데. 너 할 줄 알아?”
“당연히 못 하지. 클래스 파이브 정식 지정 마법이잖아.”
“2년 전에 시도한 적이 있긴 한데 무서워서 두 번은 못 하겠더라.”
“원래 공식만 적용하면 쉬운 마법이야. 응용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문제지.”
그때 아이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잦아들더니 게시판을 중심으로 인파가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