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80
“왜 싸우는 거야? 너희는 아무 죄도 없으니까 도망치면 그만이잖아! 살고 싶지 않아? 그렇게 강하면서, 그렇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면서! 창창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데 이딴 곳에서 개죽음당하고 싶다는 거야?”
단테는 황당하게 조크레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알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성공하고 싶어서 마법을 배운 거냐?”
“뭐?”
“순서가 바뀐 거 아냐? 마법이 좋으니까 마법을 배운 거고, 마법을 잘하게 되니까 성공이 따라오는 거지. 여기서 도망치면 속이 안 부글거리겠어? 나는 내가 배운 마법으로 싸우고 있을 뿐이야.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보고나 있어.”
수열식을 끝낸 에이미가 눈을 떴다.
“끝났어. 지금 시작할게.”
홍안이 붉은 광채를 내뿜으면서 발밑에서부터 2개의 불기둥이 솟구치더니 거대한 불덩어리로 합쳐졌다. 영의 반경에서 쏘았던 것보다 몇 배나 커다란 인페르노였다.
조크레는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불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마법에 미친 놈들…….’
인생의 주인공 (2)
재능이니 뭐니, 처음부터 핑계에 불과했다.
이들의 머릿속은 처음부터 마법으로 가득 차서 성공이나 명예 같은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이기고 싶은 것이다. 경쟁에서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최고의 마법사가 되고 싶은 것이다.
단테는 인페르노를 보고 눈을 빛냈다. 졸업 시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막강한 마법이었다.
‘자기상 기억을 이용해서 엔트로피를 낮췄군. 홍안이라면 0퍼센트에 근접하겠지. 저건 먹히겠는데.’
“단테, 단테.”
무릎을 꿇고 있는 리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뒤편에 있는 단테를 불렀다.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진짜로…… 해도 되는 거지? 성공할 수 있는 거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리리아는 고개를 돌려 단테를 올려다보았다. 울먹이는 얼굴을 보니 심적 갈등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너는 언제나 확실한 선택만 하잖아! 그러니까 말해 줘! 네가 말해 주면 안심이 될 것 같아.”
단테는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다. 전투에서 마법사의 냉철함은 검사의 신념만큼이나 중요하다. 두려움은 위기가 아닌 불안함에서 온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할 수 있을 때 동료들은 용기를 내서 싸울 수 있는 것이다.
“낙관적이진 않지. 하지만 비관적이지도 않아.”
말 그대로 동전의 양면이었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마법사가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최소의 확률이었다.
“시로네가 밀어붙일 확률은 50퍼센트. 내 방어 마법진이 통할 확률도 50퍼센트. 에이미의 마법이 적에게 통할 확률도 50퍼센트야. 세 가지 경우를 더하면 어떤 상황인지 알겠지?”
단테의 말을 웅얼거리던 리리아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그, 그럼 150퍼센트?”
단테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넌 마법사는 하지 마라.”
박요진 설치 지점까지 남은 거리, 220미터.
시로네는 무아지경으로 포톤 캐논을 갈렸다. 손등 너머로 쏘아지는 섬광들이 눈을 멀게 만들 지경이었다. 양손에 박힌 마력 증폭구가 뻘겋게 달궈진 상태였다.
“크아아아아아아!”
천수관세음의 허리가 휘어지며 지상으로 밀려났다.
남은 거리, 200미터.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 같은 거대한 천수관세음을 바라보는 조크레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저게 시로네인가…….’
왕국 최고의 수비력인 단테를 화력으로 압도한 인물.
그래 봤자 학생 수준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자괴감을 견딜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포톤 캐논은 어지간한 프로들조차 구사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모든 면에서 프로보다 월등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이미 프로급에 도달한 자들.
그것이 바로 5대 명문의 학생들이었다.
남은 거리, 170미터.
“들어왔다! 2차 장벽을 만들 거야!”
단테는 육방면체의 맨션에 천수관세음을 가두었다. 마법진의 안쪽 면에만 정보를 집적시켰기에 바깥에서 들어오는 공격은 적용되지 않았다. 반면에 좁은 벽에 갇힌 꼴이 된 천수관세음은 강하게 몸부림을 쳤다.
“크으으으으!”
단테의 인상이 구겨졌다. 천수관세음을 가둔 채로 맨션을 지상으로 끌어내리고 있지만 예상보다 저항이 거셌다. 특히나 사방으로 퍼지는 불덩어리의 위력은 최고 내구력으로 구조한 방어 마법진을 30초 이내로 파괴시킬 정도였다.
남은 거리, 120미터.
단테가 핏줄이 올라온 얼굴로 소리쳤다.
“에이미! 지금!”
“알았어!”
에이미가 자리에서 뛰어오르며 양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인페르노가 주인의 손을 떠나 멀어졌다. 느릿느릿 창공을 가로지르는 불덩어리가 자기상 기억의 좌표를 따라 오차 없이 천수관세음을 강타했다.
“크아아아아아!”
천수관세음의 몸이 불타오르자 단테는 조금이나마 압박감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화염 계열의 마법은 지속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포톤 캐논보다 유리했다.
남은 거리, 40미터.
리리아가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아직도 부족해! 이대로는 박요진에 가둘 수 없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천수관세음은 맨션 안에서 마법진을 마구 긁어 대며 괴성을 내질렀다. 결국 내구력의 한계에 다다른 마법진이 마치 유리처럼 산산조각 깨졌다.
리리아의 얼굴이 비참함에 젖어 들었다.
“끝났어. 데미갓이 세상 밖으로 나가고 말 거야.”
“아니, 안 끝났어.”
리리아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양손에 빛의 광채를 모으고 있는 시로네가 천수관세음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 안의 빛이 커지자 마치 하늘에 또 하나의 태양이 떠 있는 듯했다.
“이야아아아아!”
시로네는 온 힘을 다해 포톤 캐논을 쏘았다. 직경 1미터의 거대한 섬광이 천수관세음의 옆구리에 처박혔다.
남은 거리, 30미터.
“크아아아아아!”
천수관세음이 팔을 허우적거리며 발악했다. 하지만 자신의 율법으로도 버틸 수 없는 질량이 계속 쳐들어오고 있었다.
남은 거리, 20미터.
“지금이야! 시작해!”
리리아는 양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악이 멸하기를.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굶주림도, 살인도, 간음도 없는 선의 낙원을 이룰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몸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도 상관없고, 악마에게 미움을 사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고 해도 웃을 수 있었다. 세상을 위한 거름이 되리라. 모두가 선의 의지를 품을 수 있다면 기꺼이 가장 더러운 곳으로 들어가 몸을 굴리리라.
그녀는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렸다. 범인의 한계를 초월한 의지가 오래된 성터에 박힌 토템의 기운을 끌어들였다. 금마진이 사라지면서 직경 10미터의 박요진이 형체를 드러냈다.
“리리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이여, 이곳에 잠들라!”
리리아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타올랐다. 흐르던 눈물이 순식간에 증발하고 율법으로 만든 빛의 기둥이 하늘을 뚫고 올라갔다.
“크아아아아!”
포톤 캐논의 섬광이 밀어붙이자 천수관세음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수십 개의 손을 허우적거렸다.
남은 거리, 10미터.
“으아아아아!”
시로네는 포톤 캐논의 출력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심적초월을 통해 다시 위력을 끌어올리자 섬광이 증폭하면서 천수관세음을 완전히 뒤덮었다.
남은 거리.
0미터.
천수관세음이 박요진의 영역에 들어오자 리리아는 모든 의지를 한곳에 집중시켰다.
“끼야아아아아!”
아케아니스 신단 최강의 금마사법.
옥왕박요진.
빛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팔이 꽈배기처럼 꼬아져 올라오더니 천수관세음을 붙잡고 지상으로 끌어당겼다.
“크아아! 크아! 크아아아아!”
천수관세음은 필사적으로 버텼다. 선의 의지로 가득 찬 공간에 악의 율법이 존재할 이치는 없다. 그럼에도 버틴다는 건 데미갓이라는 분명한 증거였다.
‘하지만 이제 끝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하면……!’
리리아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비비안이 그녀를 지나쳐 옥왕박요진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얼음 여왕님!”
단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바보가!”
리리아가 충격을 받은 눈으로 소리쳤다.
“접근하면 안 돼! 끌려가고 말아!”
박요진은 금마진과 다르다.
좁은 영역에 선의 의지를 집중시켰기에 조금이라도 악에 치우친 인간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비비안은 리리아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하지만 결코 달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가 끝이야. 이게 내 연극의 마지막이야.”
누구도 주목해 주지 않던 삶이었다. 하지만 얼음 여왕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설령 실체가 괴물이라고 해도, 그녀의 자상함과 배려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비비안에게는 그것만이 유일한 스포트라이트였다.
비비안의 눈물이 눈가를 타고 멀어져 갔다.
박요진으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쩌면 연극이 끝난 적막함만이 영원히 이어질 터였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얼음 여왕을 만날 것이다. 그녀와 손을 맞잡고 관객에게 인사할 것이다. 한 편의 멋진 공연을 봐주어서 고맙다고 세상에 소리칠 것이다.
“이야아아아아!”
눈물이 차올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비비안은 땅을 박차고 옥왕박요진으로 몸을 날렸다.
“비비안! 돌아와!”
조크레가 오열하며 소리쳤다.
그녀는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다. 어쩌면 책임질 수 없는 사태 앞에서 마음이 무너져 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모든 게 자신의 탓이었다.
술에 취해 얼음 여왕의 본성에 들어가지만 않았어도, 아니 에이미를 신경 쓰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비아아아안!”
조크레의 절규는 비비안을 붙잡을 수 없었다. 그녀를 붙잡은 건 에이미였다. 몸을 날려 비비안을 끌어안은 에이미가 간발의 차이로 봉마진을 피해 떨어졌다. 동시에 천수관세음이 옥왕박요진에 파묻히듯 추락했다. 수백 개의 손톱으로 땅을 긁어 대는 소리가 흉흉하게 들렸다.
“크아아아아!”
땅이 갈아지는 완력에 지켜보는 자들은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가공할 힘도 옥왕박요진의 이치를 이겨 내지는 못했다.
신비롭고 오묘한 율법의 힘이었다.
천수관세음은 수천 개의 손톱자국만을 남겨둔 채 율법의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그러자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고 있던 비비안이 에이미에게 고개를 돌리고 소리쳤다.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나도 들어갈 거야!”
“미쳤어! 저기 들어가면 죽어!”
“언제부터 네가 나를 신경 썼는데? 내 마음을 알아? 평생 주인공처럼 살아온 네가 내 비참한 심정을 알아?”
“그래서 죽겠다고? 비참해서?”
“아니, 끝까지 괴롭혀 줄 거야! 절대로 너희가 성공하지 못하게 할 거야! 이 순간만큼은 내가 주인공이야!”
“헛소리하지 마, 멍청아! 이렇게 쉽게 삶을 포기하는 주인공이 어디 있어!”
에이미의 목소리가 비비안의 고막을 찔렀다.
“누구나 싸우는 건 힘든 거야! 그래도 주인공이 되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거란 말이야! 포기하면, 포기하면……!”
말을 하다가 울컥한 에이미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녀 또한 누구보다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 순간부터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거란 말이야.”
세상의 스포트라이트 밖으로 튕겨진 기분.
모두가 합격자만을 바라볼 때, 에이미는 홀로 방안에서 울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싸워야 한다.
설령 기다리는 것이 베드엔딩일지라도, 끝까지 싸우지 않는 자에게 주연의 자격은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에이미가 갑자기 흥분한 이유를 알지 못하는 비비안은 멍한 표정을 짓다가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입을 열었다.
“나는…….”
그때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비비안이 고개를 돌리고, 이어서 모두가 옥왕박요진을 쳐다보았다.
시로네가 지상에 착지하자마자 소리쳤다.
“아직 안 끝났어!”
옥왕박요진에서 수십 개의 손이 올라왔다. 수직으로 올라온 것들이 동시에 꺾이며 바닥을 밀어내자 천수관세음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세상의 지배자다!”
시로네 일행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직은 옥왕박요진의 힘을 완벽하게 이기지 못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율법자를 잡은 건가? 운이 좋았군.”
시로네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불고불한 금발 머리에 어두운 피부색, 몸에 달라붙는 슈트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마법협회 비서실장 아호야 강난이었다.
“누구시죠?”
강난은 천수관세음에게 걸음을 옮기면서 하이힐을 벗었다. 그리고 시로네 일행을 지나치며 말했다.
“물러서라. 다칠 수도 있으니까.”
리리아가 소리쳤다.
“잠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돼요! 율법을 다루지 못하면 박요진의 힘에 끌려들어 간다고요!”
강난은 머뭇거리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고 옥왕박요진에 몸을 밀어 넣었다. 자신이 선과 악 중에 어느 쪽으로 기운 인간인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다만 태어난 순간부터 람무아이로 살아온 신념은 율법에 흔들릴 만큼 약하지 않았다.
“크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
천수관세음은 마치 바다에 빠진 사람처럼 연거푸 바닥을 긁으며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고 있었다.
인생의 주인공 (3)
강난은 안경을 벗어 안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마치 늑대를 형상화한 듯 두 주먹을 얼굴 위 까지 올리고 왼발을 앞으로 빼내어 살짝살짝 리듬을 탔다.
시로네 일행은 어리둥절했다. 람무아이는 알지 못하더라도 박투 자세라는 건 짐작이 가능했다. 하지만 거대한 천수관세음의 앞이라 오히려 우스꽝스러울 지경이었다.
보다 못한 리리아가 인상을 쓰며 다가갔다.
“이봐요! 지금 무슨……!”
동시에 강난의 몸이 흐릿해졌다.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하이킥에 흙먼지가 실처럼 따라서 궤적을 그렸다. 그녀의 발등이 천수관세음의 얼굴을 직각으로 부러뜨리고 지나갔다.
천수관세음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했다. 잠시 눈을 뒤룩뒤룩 굴리더니 손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리고 마침내 수면에 잠기듯 옥왕박요진의 심해로 빨려들었다.
“저, 저게 뭐야……?”
시로네 일행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비록 옥왕박요진에 갇힌 상태였지만 발차기로 목을 부러뜨리는 순간 너무 놀라서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시로네는 시선을 내려 강동한 정장치마 아래로 내려온 그녀의 허벅다리를 보았다. 임팩트 순간 발등의 스타킹이 타 버리면서 말려들어 가는 바람에 오른 다리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근육이 조각처럼 갈라져서 불끈거렸다. 하지만 이내 부드러운 피하지방이 되돌아오면서 매끈한 각선미를 드러냈다.
‘대체 누구지?’
어쩌면 정부 관계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국의 제령사가 찾아올 정도라면 자국의 어떤 부서에서도 충분히 사태를 예측했을 것이라는 통찰이었다.
“후우.”
강난은 홀가분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안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시로네는 친구들과 시선을 맞추고 그녀에게 걸음을 옮겼다.
“저기, 누구시죠? 혹시 왕국에서…… 윽!”
강난이 대뜸 치마를 걷어 올리자 시로네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스타킹을 돌돌 말아서 내린 그녀는 새로운 스타킹을 꺼냈다. 소년들의 은근한 곁눈질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스타킹을 갈아 신으며 말했다.
“너희가 상대한 적은 천국 북방 한계선 너머에 서식하는, 코드명 ‘율법자’라고 불리는 정신체다.”
“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