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81
단테는 고개를 갸웃했다. 세상에는 정말로 정신 나간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로네와 에이미는 허투를 들을 수 없었다. 또한 천국을 알고 있다면 이 여자 또한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사실 율법자는 그리 위험하지 않아. 오로라처럼 단순한 현상에 불과하지. 하지만 환경이 바뀌면 골치가 아파진다. 골든 타임은 발생 시작부터 72시간. 그 이후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진화하지. 너희가 아슬아슬하게 맞췄어.”
강난은 스타킹을 배꼽까지 끌어 올린 다음 치마를 탁탁 내리쳐서 주름을 폈다.
“판단을 잘했기 때문에, 독단적인 행동은 넘어가 주도록 하지. 율법자가 활동 반경을 넓혔다면 군대가 출동했을 거야. 너희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다.”
거기까지 얘기한 강난은 돌아서서 하이힐을 신었다. 그리고 발차기를 했을 때 돌아간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런데 누구신지부터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시로네가 후드를 벗으며 다가오자 얼굴을 확인한 강난의 눈매가 살며시 가늘어졌다.
‘실물이 더 어리군. 정말로 율법자를 이길 줄은…….’
초기 발생 케이스라도 각성한 율법자는 발키리가 설정한 현상 등급 B에 랭크되어 있다. 평천사가 A급이니 대략 타락천사에 준하는 강적과 싸운 셈이다.
‘하지만 어떻게 율법을 막은 거지?’
우오린 공주에게 선물로 받은 이라면 어느 정도 율법을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것만으로는 절대로 율법자를 이길 수 없었다.
‘설마…….’
강난이 생각할 수 있는 건 한 가지였다.
‘심적초월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고작 열여덟 살짜리가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닐 텐데.’
강난이 듣기로 모든 생물은 결국 화신을 깨닫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기간이 너무 길기에 대부분은 주어진 수명 안에서 자신을 찾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
예외가 있다면 천국이었다.
앙케 라에 의해 수명이 정해지는 그곳에는 수백 년을 사는 인간은 물론 수십만 년을 사는 식물도 존재한다.
화신술을 천국의 기술이라고 부르는 이유였다.
깨달음에 도달하는 기간은 생물마다 다르다고 알려져 있는데, 평균적으로 인간은 220년, 고양이는 400년, 원숭이는 600년, 뱀은 700년, 여우는 1천 년이 걸린다.
결국 시로네가 심적초월의 경지를 깨달았다면 대략 2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셈이 되는 것이다.
‘협회의 평가에 과장은 없었던 것 같군.’
강난은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또한 협회에서는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요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직속상관인 가올드의 지시가 아니었다면 단순히 면담을 하기 위해 마법학교 학생을 찾아올 일은 없었을 터였다.
강난은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시로네라면……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아리안 시로네를 말하는 것인가요?”
“그래. 지긋지긋한 내 모교에 다니는 후배 놈 말이야. 어째 그 학교는 아직도 안 망하나 몰라.”
가올드가 너스레를 떨었으나 강난은 상관의 의도를 간파하고 예리하게 찌르고 들어갔다.
“설마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시킬 생각은 아니겠죠?”
예상대로 가올드는 대답이 없었다.
“전 반대에요. 너무 위험 부담이 커요. 아타락시아 하나만 보고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고요. 20년 동안 준비한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 생각이세요?”
어느새 진지해진 가올드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고 들었는데.”
강난은 코웃음으로 맞받아쳤다. 시로네에 대한 것이라면 협회에서 그녀보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왕국을 대표하는 유망주 중의 1명이죠. 빛에 질량을 부여하는 전지를 구사하는 언로커고요. 아마 부지런히 업적을 쌓으면 스무 살 쯤에는 6급을 딸 거예요. 뛰어난 관리자는 어느 조직에나 부족하니까요.”
강난은 가늘게 눈을 뜨고 가올드의 반응을 살폈다. 역시나 알아들었는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지금 장난해요? 그래 봤자 6급이에요. 그 시로네를 가르치고 있는 로미 에텔라도, 올리페르 시이나도 스무 살에 공인 6급을 땄죠. 하지만 그들도 최연소는 아니에요. 왕국 어디에나 몇 명씩은 있는 천재일 뿐이라고요. 여기서 10년을 더 기다릴 생각이 아니라면 시로네는 포기하는 게 옳아요.”
“모르겠어. 최연소니 뭐니, 나는 천재가 아니라서.”
가올드는 시가를 입에 물고 등받이에 목을 기댄 채로 강난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최고잖아?”
강난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알기로 가올드는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명실공히 토르미아 왕국 최고의 마법사였다.
“그건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고…….”
가올드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아, 됐어. 내 말대로 해. 20살 때 6급이 되든, 40살 때 6급이 되든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아뇨. 현실은 수많은 스카우트들이 재능의 척도로 기간 대비 성과를 따지고 있죠. 도대체 그게 중요하지 않으면 뭐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손가락 사이에 시가를 끼운 가올드는 괄한 연기를 내뿜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결국에는…… 무엇을 해내는가가 중요하지.”
강난은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지만 가끔 이렇게 할 말을 없게 만들 때가 있었다.
“똥개야. 내가 마법의 정점에 올라보니까 말이야…….”
가올드는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실제로 늑대 부족의 마지막 후예를 똥개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도 그가 유일했다.
“최고라는 것은 1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서열의 무리에서 완전히 이탈한 존재지. 물론 남들이 닦아 놓은 길을 빠르게 따라가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일 거야. 하지만 세상을 봐라. 우리가 최고라고 부르는 자들은 인류가 평생을 바쳐도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서 불을 밝히고 있다. 1등이니 2등이니, 그런 수준이 아니야. 순위를 비교할 대상조차 없는 무언가지. 그건 이미 존재하는 길을 빠르게 따라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야.”
강난은 가올드의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시로네가,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장담할 수는 없지. 하지만 성장 속도는 상식을 파괴할 정도로 빠르고, 아타락시아를 구사할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정확한 타이밍에 맞물린다면, 특정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도달할 수는 있겠지. 그렇다면 최소한 한 번의 변수를 더 만들어 낼 수 있을 지도 몰라.”
20년을 준비한 프로젝트지만 여전히 난이도는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 번의 변수란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도 얻을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강난은 용납할 수 없었다. 인류 전체의 목숨과 맞바꿀 정도로 중대한 사안에서 불확실한 대상에게 근거 없는 믿음을 갖는 건 좋지 않았다.
“이해는 했어요. 하지만 그거 알아요? 정확한 타이밍, 특정 상황, 순간적으로, 최소한. 지금 한 얘기의 대부분이 가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
가올드는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입꼬리를 올렸다.
“알아. 그러니까 만나 보라고.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0.1퍼센트라도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면 써먹을 수 있는 건 전부 써먹어야 되지 않겠어?”
강난은 회상에서 벗어나 시로네에게 말했다.
“나는 마법협회 비서실장 아호야 강난이다.”
“마, 마법협회 비서실장?”
시로네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뒤에서 지켜보던 친구들도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비서실장이라면 마법 협회의 서열 2위라고 봐도 무방했다. 마법사로 평생을 살아도 대면하기 힘든 사람이 눈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시로네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강난은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했다.
“시로네, 국가 비상사태다.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다. 나와 함께 수도로 가자.”
시로네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국가 비상사태라는 말도 그렇지만 학생에 불과한 자신을 그런 상황에 찾는다는 것 또한 이상했다.
“저를 만나고 싶어 하시는 분이 누구죠?”
강난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토르미아 마법협회 협회장, 미케아 가올드.”
“네? 미케아 가올드?”
시로네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살면서 그가 만나 보지 못한 사람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이름이었다.
비단 시로네뿐만이 아니다. 토르미아 왕국에서 마법에 발을 담근 사람 치고 미케아 가올드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단테가 관심을 갖고 물었다.
“그런 높으신 분이 어째서 시로네를 찾죠?”
시로네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짐작이 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얼음 여왕하고 관련이 있는 건가요?”
“맞아. 얼음 여왕은 천국의 존재. 그런 존재가 이 세계에 강림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니?”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천국의 존재가 강림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최후의 전쟁이었다.
“서, 설마?”
“그래. 미로의 시공에 균열이 생겼다.”
천국의 군대를 막고 있는 유일한 방호벽에 금이 갔다면 국가 비상사태라는 강난의 말도 납득이 갔다.
리리아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그 미로의 시공이라는 것이, 예언서에 나오는 율법의 장벽을 말하는 것인가요?”
리리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강난이 물었다.
“신단이?”
“아케아니스요.”
“그렇군.”
강난은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을 이었다.
“일단 당장 심각한 문제는 아니야. 작은 균열이었고 현재는 다시 복구된 상태지. 하지만 균열이란 언제나 붕괴의 시초가 되는 법이니 지금보다 상황이 더 좋아질 수는 없을 거야. 우리는 거기에 대해 대비를 해야 돼.”
“그렇다면 미로 씨는 지금…….”
강난은 손을 들어 시로네의 말을 끊었다.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나머지는 내 상관이란 작자에게 직접 듣든지. 나와 함께 수도로 가자.”
시로네는 신중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인생의 주인공 (4)
율법이 풀리면서 인간의 모습을 되찾은 관광객들은 헐벗은 몸을 보고 기겁했다. 한바탕 난리가 났다.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가리고 남자들은 쩔쩔 매며 숨을 곳을 찾았다. 시로네 일행이 성벽 외곽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겨우 모두를 여관으로 피신시킬 수 있었다.
시로네는 카페테라스의 난간에 앉아 건물마다 들어차 있는 관광객들을 바라보았다.
관광청에 고소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리인을 불러오라고 고래고래 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저들 또한 천국의 존재를 만났다. 오늘의 사건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예측할 수 없었다.
시로네는 강난을 돌아보았다. 그녀 또한 관광객들을 향해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는 얼굴이었다.
“이제 어떡하죠? 사람들을 설득시킬 건가요?”
“그럴 필요가 있나?”
“네?”
“우리가 자질구레한 일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협회에서 사람들이 올 거야. 그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수습하기 어려울 텐데요. 소문이라도 퍼지면 어떡하죠?”
“얼음 여왕의 신화가 진짜였다는 식으로 공표하면 돼. 믿든 안 믿든 정보를 오염시키는 거지. 하지만 사실대로 말한다고 해도 상관은 없어. 어차피 알고 있다고 해서 일반인이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까.”
강난은 이런 상황을 자주 경험했다. 천국에 대한 정보가 세상에 퍼지면 마치 대혼란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보이지만, 단언컨대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오늘 하루 먹을 일을 걱정할 것이고, 내일 있을 중대한 계약에 잠을 설칠 것이며, 무럭무럭 커 가는 자식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할 뿐이다.
강난은 조크레 일행을 돌아보았다. 특별히 지시를 내린 게 없음에도 옆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수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강난에게는 귀찮을 따름이었다.
“너희들의 처우도 협회에서 결정할 거다. 그러니 따라오지 말고 저리 가. 도망치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
조크레 일행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마법협회를 적으로 두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다. 설령 감옥에 가더라도 레드 라인에 소속되어 있는 한 마법사 자격증은 박탈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망치는 순간 그들이 몸담을 곳은 블랙 라인밖에 없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자들의 세계에서 조크레 일행이 버틸 재간은 없었다.
“네. 죄송합니다. 협회분들이 오면 자수할게요.”
에이미는 멀어지는 조크레 일행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삶은 여기까지였다. 어떤 일이 닥치든 결국 살아가야 하고,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
어느 정도 후속조치가 끝나자 강난은 떠날 채비를 했다. 말을 꺼내기 전에 그녀는 시로네를 빤히 바라보았다.
금강무장을 해제하고 보니 예상보다 훨씬 앳되었다. 물론 외모로 상대를 평가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하지만 협회에 들어가면 이러한 특징들이 골치 아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가올드의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시로네. 이제 출발해야 된다. 마차에서 기다릴 테니 빨리 정리하고 따라와라.”
“네. 금방 갈게요.”
시로네는 강난을 따라 마법협회로 갈 생각이었다. 가올드와 대면할 기회가 흔치 않다는 점도 한몫을 했지만 미로의 사정이 어떤지도 궁금했다.
‘수도에 가면 리안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테스도.’
시로네는 배낭을 메고 에이미에게 다가갔다.
“미안해. 이렇게 돼 버려서.”
에이미를 볼 면목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휴가를 즐기고 싶었건만, 또 다시 그녀를 위험에 빠트리고 말았다.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다시는 너랑 여행 안 할 거야.”
“하하! 정말로 미안해. 뭐라고 할 말이 없네.”
에이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 시로네. 덕분에 나, 자신이 생겼어. 이제는 다시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로네도 느끼고 있었다. 조크레 일행을 제압한 실력도 그렇지만 초고열의 인페르노는 에이미가 아니고서는 동급 나이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마법이었다.
전투 중에 깨달음을 얻은 것이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백 사람이 있다면 백 가지의 깨달음이 있고, 에이미의 스타일이라면 누구도 따라할 수 없다. 언젠가 담소를 나누며 들어볼 날이 올 것이다.
“갔다 오면 연락할게. 그리고 단테,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에이미를 잘 부탁해.”
단테는 어깨를 으쓱했다. 졸지에 라이벌의 여자 친구를 에스코트하게 되었지만 손해 보는 일만은 아니었다. 천국도 그렇고 미로의 시공도 그렇고, 시로네와 에이미는 무언가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가는 길에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천국에 대해 물을 생각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잘 갔다 와.”
“그래. 그럼 학교에서 보자.”
시로네가 떠나자 단테와 에이미도 발길을 돌렸다. 출구로 가는 길에 단테가 카페를 가리키며 물었다.
“가기 전에 카피 한 잔? 물론 네가 사는 걸로 하고.”
“이게 어디까지 빌붙으려고! 네가 좀 사! 너 돈도 많잖아!”
“어허. 집까지 에스코트해 주는 데 커피 정도는…… 응?”
단테는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리리아가 처음 봤을 때처럼 커다란 배낭을 메고 서 있었다.
율법자를 봉인했으니 그녀는 아케아니스 신단으로 돌아가 보고를 올려야 한다. 아마도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단테와 만날 일이 없을 터였다. 마법사와 마도사는 양지와 음지, 애초부터 가는 길이 다른 자들이니까.
하지만 리리아는 미련이 남았다. 단테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번 파견은 실패로 돌아갔을 공산이 컸다. 떠돌이 마도사가 누군가와 정을 나눈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많은 부분을 의지했기에 칼로 자르듯 마음을 덜어내지 못했다.
“커피는 내가 사 줄게.”
“흐음.”
단테는 눈빛에서 드러나는 리리아의 호감을 읽어냈다. 정말이지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여자였다. 연애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오는 여자를 막는 주의도 아니었기에 단테는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고 어딘가를 가리켰다.
“좋아. 커피는 됐고. 어디 조용한 데라도 들어갈까?”
단테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리리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떡 하니 여관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리리아로서는 인스턴트식 사랑방식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하! 뺄 필요 없어. 어차피 알 거 다 아는 나이잖아.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리리아는 끙 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자기중심적인 성격까지는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여성 편력은 용납이 안 되는 부분이었다.
“바람둥이 같으니라고! 이거 놔!”
리리아가 뿌리치자 단테는 순순히 물러났다.
“바람둥이라니? 우리가 뭘 어쨌다고 벌써 바람이야?”
“됐어! 내가 갑자기 정신이 나갔지! 다 필요 없고, 신단으로 돌아가겠어!”
단테는 피식 웃었다. 인연이 여기까지라면 굳이 그녀를 잡을 이유도 없었다.
“그래. 조심해서 가.”
‘무심한 자식…….’
단테가 정말로 떠나보내자 리리아는 서운했다. 하지만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여기서 고개를 돌리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재밌는 일 생기면 편지해!”
멀리서 들리는 단테의 목소리에 리리아는 눈을 깜박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에어하인 단테. 18세.
토르미아 왕국 마법사 지망생 서열 2위.
‘후후. 기억해 두겠어.’
밝은 표정으로 지평선을 향해 걸어가는 리리아를 떠나보내고, 단테와 에이미는 다시 출구로 향했다.
이제는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성터를 벗어나려는데 개찰구 쪽에서 조크레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뭇 당당한 얼굴이었다. 두려움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듯했다.
비비안이 에이미에게 다가왔다.
“미안해.”
에이미는 손을 저었다. 이번 사건은 애들 장난이 아니었다. 그들이 체포되는 것으로 상황의 형평성은 갖췄다고 보았다.
“됐어. 너나 나나 소신대로 싸운 거니까. 단지 졌다고 해서 사과할 필요는 없는 일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