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82
“아니. 마지막에 날 구해 준 것 말이야. 만약 그때 죽었더라면 다음은 없었겠지.”
“그거야 뭐…….”
에이미는 머쓱하게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비비안을 위한 행동만은 아니었다. 옥왕박요진을 성공시키기 이해서였고, 마지막에 소리친 것도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 다음 졸업 시험에서 꼭 마법사가 돼라. 너는 충분히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으니까.”
에이미는 울컥했다. 잔인한 생각이라는 것은 알지만, 패배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여태까지 들었던 어떤 위로보다도 자신감을 갖게 했다.
비비안은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비참한 패배자의 말로를 지켜보던 에이미가 입을 열었다.
“야.”
비비안이 돌아보자 에이미는 가방의 한쪽 어깨 끈을 풀고 짐을 뒤지며 다가갔다.
“자. 이거. 너 가져.”
에이미의 손에는 미니 게임장에서 상품으로 받은 얼음 여왕의 인형이 쥐어져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받아든 비비안은 한참이나 얼음 여왕을 바라보았다.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았던 삶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감싸주었던 얼음 여왕의 얼굴은 어린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다.
“흑. 흐윽.”
비비안은 눈물을 쏟으며 얼음 여왕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조크레가 다가와 그녀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잠시 에이미를 바라보더니 비비안을 데리고 멀어졌다.
에이미는 떠나는 그들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각자의 인생에서 끝까지 싸우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저들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래. 고작 한 번 탈락했을 뿐이야. 이게 내 인생이라면, 얼마든지 싸워서 이겨 주겠어.’
에이미는 주먹을 불끈 쥐고 돌아섰다. 단테에게 향하는 그녀의 걸음걸이는 어제와 달리 거침이 없었다.
신적초월 (1)
수도 바슈카에 있는 카이젠 검술 학교.
현 공인 6급의 검사이자 아킬레스건을 다치지 전에는 죽음의 마술사라고 불렸던 쿠안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악몽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군인 가문에서 태어난 쿠안은 6살 무렵 전쟁터에서 가족들을 전부 잃었다. 숙부가 그를 데려다 키웠으나 재산만 가로채고 타지의 검술학교로 보내버렸다.
하지만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의지할 곳은 없지만 고작 20살의 나이에 공인 6급의 검사가 될 정도의 천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악몽은 10년 전의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나이 21살, 암흑 교단의 창시자 코인트라를 붙잡기 위해 수색대대의 제2중대장으로 부임했을 당시의 일이었다.
대원들은 쿠안을 반기지 않았다. 평균 연령 38살의 베테랑 부대에 21살의 애송이가 전입을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쿠안 또한 신경 쓰지 않았다. 지휘관인 그에게 병사란 전쟁을 이기기 위해 필요한 소모품일 뿐이었다.
대원들과 인사를 나눌 시간도 없이 쿠안은 부임하자마자 병력을 이끌고 귀신의 숲으로 들어갔다.
여태까지 수많은 수색부대가 들어갔으나 모두 예외 없이 연락이 두절되고 있었다.
겁을 집어먹은 전임 중대장이 병가를 이유로 고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쿠안이 긴급 투입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쿠안은 자신 있었다.
설령 숲에 정말로 귀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자신의 검에 베지 못할 것은 천하에 없었다.
‘잡아주마. 귀신이라는 거.’
첫 날은 무사히 지나갔다.
하지만 숙영을 끝낸 2중대가 새벽 무렵 정비를 하고 있을 때 일이 터졌다.
“습격! 습격이다!”
보초병의 외침이 한 번을 끝으로 사라졌다. 이미 돌파했음을 깨달은 쿠안은 검을 쥐고 막사 밖으로 나갔다.
다른 대원들도 저마다 병장기를 갖춘 채 새벽 어스름 바깥에서 밀려오는 적을 경계하고 있었다.
강풍이 불었다. 아니, 실제로 바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모두의 귓가에서 울리고 있었다. 쿠안은 반사적으로 어둠을 베었지만 칼끝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신적초월 (2)
“사방진을 갖춰라!”
40명의 대원들이 원을 그리며 뭉쳤다. 적을 판별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각개격파를 당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다.
쿠안은 마침내 적을 포착했다.
20미터 밖에서 시커먼 장막이 어른거리더니 순차적으로 하얀 가면이 휙휙 뒤집어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뭐지?”
올빼미처럼 생긴 가면을 쓴 자들이 어떤 지점에서 소용돌이처럼 맴돌더니 삼각편대로 기립했다.
스르릉!
30명이 동시에 검을 뽑았으나 소리는 하나였다. 사선을 겨누는 똑같은 자세로 오롯이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지휘관 교육시절에 들었던 어떤 집단의 정보가 떠올랐다.
“설마…….”
지상 최강의 검술 집단 풍장.
‘어째서 풍장이 이곳에?’
풍장은 카샨 제국의 여황인 테라제의 호위기사. 그런 자들이 나타났다면 이유는 하나였다. 암흑 교단의 교주 코인트라가 테라제의 비호를 받고 있다.
“무슨 짓을 꾸미는 거지, 카샨?”
“저승에 가면…….”
풍장의 전매특허인 집단 살기 각시가 쏘아졌다.
“알 수 있을 것이다.”
“으아아악!”
2중대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쿠안이 느끼기에도 어마어마한 살기였다.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일반 병사가 맞서 싸울 수 있는 수준의 기운이 아니었다.
“쳇!”
쿠안이 땅을 박차고 돌진하자 풍장이 바람처럼 흩어지며 다시 모여들었다. 수십 개의 검이 수천 개로 잔상을 일으키고 쿠안의 몸은 중력을 무시한 듯 움직였다.
‘젠장. 외중력점이 대체 몇 개야?’
풍장의 실력은 실로 놀라웠다. 인간의 몸으로 유체역학을 구현하는 자들. 방향감각이 사라지고 무중력의 한복판에서 검을 나누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놀라고 있는 쪽은 풍장이었다.
‘오래 걸리는군. 몇 번 휘둘렀지?
‘대략 2만 3천 번.’
풍장의 검술을 1,000회 이상 버틸 수 있는 자는 극소수다. 즉 어떤 존재든 1초 안에 갈아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신은 얼마나 개구쟁이인가.’
이 세상이 100퍼센트 완벽하다면 모든 생물체는 미물로써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자연은 0.1퍼센트의 돌연변이를 만든다. 그 0.1퍼센트의 존재가 남은 99.9퍼센트를 하찮은 존재로 격하시킨다.
‘우연의 산물로 태어난…… 특별히 선택받은 존재.’
그것이 풍장의 일인이 쿠안에게 느낀 감상이었다.
기술, 기교, 신체 밸런스, 중력을 다루는 능력, 새로운 루트를 창출하는 발상.
‘이 남자는 천재다.’
생각과 동시에 풍장의 인원들이 날개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다시 강풍이 되어 쿠안의 주위를 뱀처럼 휘돌았다.
‘천재를 죽인다.’
풍장의 검은 모든 공간을 잠식했다. 너무 빨라서 오히려 느리게 다가오는 듯 느껴졌다.
“우아아아아! 돌진! 돌진하라!”
그 순간 중대원들이 달려들었다. 풍장의 반경에 들어가자마자 기계장치에 끼인 고깃덩어리처럼 살점이 갈아졌다. 쿠안이 검막에서 빠져나온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웠다.
‘이런 미친……!’
중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코비라는 늙은이가 마지막으로 쿠안의 곁을 지나갔다. 작별의 말을 건넬 여유조차 없었지만 웃고 있는 그의 눈빛이 천 가지 말을 대신 전하고 있었다.
‘살아가십시오. 중대장님.’
순식간에 몰살당하는 중대원들을 바라보며 쿠안은 그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그렇구나. 적어도 한 사람은 빠져나가야 한다.’
카샨의 개입을 상부에 알릴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수색대원들이 풍장의 덫에 걸려들 테니까.
‘이게 최선이다. 누군가 살아야한다면 내가 가장 가능성이 높으니까.’
외중력의 힘으로 멀어지는 쿠안은 어둠속에 몰아치는 시커먼 폭풍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하루도 알고 지내지 않은, 아니 눈조차 마주친 적이 없는 대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왜…….’
속에서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이미 꺼져버려 재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거대한 화염이 타올랐다.
“도대체 왜! 빌어먹을!”
쿠안이 외중력을 터뜨리며 날아가자 깃털처럼 산개한 풍장이 20미터 떨어진 곳에 다시 삼각편대로 모여들었다.
“너희들…… 전부 살아서 돌아갈 생각을 말아라.”
풍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들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임무에 실패했다.’
아니, 실패할 뻔했다.
쿠안이 마음먹고 도망쳤더라면 풍장이 그를 잡을 수는 없었을 터였다. 하찮은 40명의 목숨이 지상 최강의 풍장에게 돌이킬 수 없는 전례를 만든 것이다.
선두에 서 있는 풍장이 천천히 손을 들어 가면을 벗자 쿠안의 미간이 씰룩했다. 눈썹이 없다시피 옅고 두툼한 눈두덩 아래로 눈초리가 가느다랗게 찢어진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살아 있는 자가 풍장의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다.”
“그래서 뭐? 감격이라도 해주길 바라나?”
“풍장으로 들어와라. 우리가 너를 이끌어주겠다.”
세상이 인정하는 쿠안에게도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3황계인 테라제의 직속수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검사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로 수직상승하는 셈이었다.
쿠안은 비로소 검을 거두고 어깨에 걸쳤다.
“거절한다.”
여자의 고개가 살며시 기울어졌다. 세상의 어느 검사가 풍장의 제안을 마다한다는 말인가? 동료들의 죽음으로 현실감각을 상실한 것이 분명했다.
“부하의 죽음은 유감이다. 하지만 너에게는 새로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재능을 과거에 묻어두지 마라.”
쿠안은 코웃음을 쳤다. 풍장이 아무리 대단한 자들이라고 해도 하늘 아래 최고는 둘일 수가 없는 법이다.
“착각하지 마라. 내 부하들은 군인으로써 사명을 다 했을 뿐이다. 어리석은 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지휘관이지.”
“그렇다면 어째서 거부하는 거지?”
쿠안의 검이 다시 여자의 미간을 겨누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쪽팔리지 않나? 떼로 뭉쳐서 베고 다니는 주제에 최강이라 칭하는 게?”
“……결렬이군.”
여자가 올빼미 가면을 쓰는 것과 동시에 30인의 풍장이 바람처럼 흩어져서 쿠안에게 날아들었다.
‘기다려라. 최소한 한 명은 데리고 갈 테니.’
부하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남은 마당에 저승길 동무조차 만들지 못하면 저승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겠는가?
쿠안은 외중력을 사방으로 퍼트리면서 풍장의 폭풍 속으로 빠져들었다. 외중력의 고수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전투를 넘어 기예에 가까웠다.
‘그렇군. 정답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었어.’
쿠안은 벽을 뛰어넘었다. 살고자 하지 않았기에 넘을 수 있었던 어떤 경지였다. 이번만큼은 풍장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수십 자리의 검이 내는 귀곡성에 귀신의 숲이 떨었다.
‘검이란, 이다지도 아름다운 것인가.’
환희의 끝에서 쿠안의 검이 궤적을 갈랐다. 풍장이 목이 몸에서 이탈하고, 동시에 또 한 명의 심장이 칼날에 박힌 채로 멈췄다.
‘두 명. 이 정도면 밥값은 했군.’
휘오오오오오오오!
동료의 죽음을 깨달은 풍장의 흐름이 난기류처럼 폭발했다. 동시에 두 명이 살해당한 일은 풍장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극히 희귀한 사건이었다.
쿠안은 그들의 분노가 열풍의 형태로 휘몰아치는 것을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쿠안을 죽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아킬레스건을 생선살처럼 덜어냈다.
“으아아아아!”
쿠안은 비명을 질렀다.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니었다. 조금 전의 깨달음을 포함한 그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30그램의 살점이 떨어져나감으로써 사라져버렸다.
전장의 마술사라는 별칭은 언제 어디서건 상대의 목을 취하는 그의 신기 같은 검술실력에서 나온 것이지만 천재적인 활동성과 기동성의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킬레스건이 없다면 천재성도 없다. 더 이상 그는 전장의 마술사가 아니었다.
“크으으으……!”
쿠안은 일어서지 못했다.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팔을 뻗어 산비탈을 기어갔다. 주위를 맴도는 풍장의 귀곡성이 들렸다. 28명이 한 음절씩 내뱉는 목소리는 평생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터였다.
– 한낱 미물이 되었구나.
쿠안은 계속해서 기어갔다. 모든 걸 잃었기에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40명의 대원들을 저버리고 스스로 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 벌레처럼 발버둥 쳐라.
“으아아아! 닥쳐!”
– 개처럼 짖어라.
“죽여! 죽이란 말이야!”
– 너의 주인에게 고해라. 풍장이 살려주었다고. 꼬리를 흔들며 일러바쳐라.
풍장의 바람이 거세지면서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쿠안에게는 세상이 불타는 것과 같았다.
땅에 얼굴을 처박은 그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평생을 바친 신념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낼 수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
풍장이 사라진 귀신의 숲에 쿠안의 절규가 메아리쳤다.
“…….”
쿠안은 눈을 떴다. 여전히 무심한 얼굴이었으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빌어먹을.”
가위에 눌린 듯 손가락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풍장의 꿈을 꾸고 나면 언제나 그랬다. 10분은 시체처럼 굳어 있어야 한다. 아킬레스건이 잘려나간 10년 전의 그날처럼.
귀신의 숲을 기다시피 벗어난 쿠안은 복귀와 동시에 의식을 잃었고 토르미아로 긴급 후송되었다.
테라제가 암흑 교단을 비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했으나 예상대로 정세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수색대대는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산맥을 포위한 상태에서 지지부진한 국지전을 이어가다가 해산했다.
카샨 제국과 모종의 협약이 있었던 것 같지만, 거기서부터는 정치인들의 문제이기에 쿠안이 끼어들 일이 아니었다.
쿠안은 영웅이 될 수 없었다. 그날의 사건은 풍장의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군에서 기병대 대대장 자리를 제안해오기는 했다. 2계급 특진인 셈이지만 입막음의 용도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쿠안은 전역을 택했다. 이미 그의 정신은 더 이상 검을 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파괴되어 있었다.
한동안 폐인처럼 살았다. 대원들을 생각하면 자결은 꿈도 꾸지 못했고 그렇다고 마땅한 조력자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일한 친구인 키요라 엘리스의 제안으로 카이젠 검술학교에 부임하게 된 것이었다.
‘이제 움직여지는군.’
침대에서 빠져나온 쿠안은 오른다리를 절뚝이며 창가로 걸어갔다. 커튼을 젖히자 아침 햇살이 낡은 책상을 비추었다.
수많은 논문들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심적초월 현상에 관한 정신 분석학적 견해’, ‘화신술’, ‘의지와 현상의 상관관계’ 등 제목은 달라도 주제는 상통했다.
책상 귀퉁이에는 직접 생각을 기록한 메모지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쿠안은 건조한 눈빛으로 그것들을 내려다보다가 손으로 쓸어서 전부 날려버렸다.
심적초월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했으나 여전히 그는 도달하지 못했다. 의지의 힘으로 육체를 움직인다는 것은 그렇다고 해두자. 하지만 대체 의지라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현재도 그는 다리를 절고 있다. 아무리 제대로 걸으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오젠트 리안.’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세상이 인정한 천재인 쿠안이 하지 못한 것을 재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소년이 해낼 것이라는 사실을.
‘설마 바보만 되는 건 아니겠지?’
쿠안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검은 부러졌다는 것을. 아킬레스건이 떨어져 나간 순간 검의 신 또한 자신에게서 눈길을 돌렸다는 것을.
‘또 다시 1년이 끝났군.’
오늘은 검술 학교 후반기 마지막 날이었다. 그가 전담하는 생도들의 측정 과목은 박투, 중에서도 레슬링이었다.
리안이 신적초월을 구사할 수 있다고 해도 스키마 유저들의 증강된 완력을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오늘은 그에게 또 다시 비참한 날이 될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반년 간의 성과가 궁금하기도 했다.
***
테스는 같은 조에 속한 여자 생도들과 탈의실로 들어갔다.
레슬링은 신체를 밀착할 수밖에 없는 평가 항목이지만 검술 학교에서 남녀 구분이란 의미가 없기에 평가를 할 때는 모두 상의를 탈의해야 했다.
다만 여자들은 탱크탑을 입는 것까지는 허용되었다.
테스는 탱크탑을 착용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원체 골격이 크기도 하지만 볼륨이 좋아서 거의 우겨넣듯이 가슴을 조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