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87
리안이 수련장의 중앙에 도착하자 라이는 허리에 차고 있는 흑도를 꺼냈다. 일반 장검보다 길고 가늘지만 오젠트 검술에 맞춘 직도였고 흑철로 만들어서 경도 또한 상당했다.
경쾌하게 엑스 자로 흑도를 휘두른 라이는 하늘로 칼날을 세우고 살폈다.
“빨리 시작하자. 쉬고 싶으니까.”
“쉬는 게 아니라 앓아누울 거다. 파견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취소하는 게 좋을걸.”
“뭐가 됐든지, 빨리 덤비기나 하라고.”
라이는 리안의 말에 대꾸조차 하기 싫은 듯했다.
리안은 그것이 못마땅했다. 어떤 기술이든 순식간에 습득하는 그에게 아무런 재능도 타고나지 못한 리안이 가족처럼 보일 리가 없었다.
어린 날 대결을 펼쳤을 때 보았던 리안의 조소가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쨌든 승부를 받아 줘서 고맙다고 해야겠지. 너와의 악연도 오늘로 끝이다.”
리안은 한 손으로 대검을 들고 겨누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정도로 위태로운 무게중심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라이는 흑도를 사선으로 내렸다. 그럼에도 바닥에 닿을 정도로 장대 같은 검이었다.
대검과 흑도의 간격은 막상막하. 하지만 흑도 쪽이 가벼운 만큼이나 속도는 빠를 것이다.
‘어차피 기술에서는 밀린다.’
리안은 전투를 설계했다. 그의 성격만큼이나 단순한 전략이었다.
‘힘으로 찍어 누른다!’
어금니를 깨무는 순간 두 눈에 불이 켜졌다. 강력한 축발이 땅을 박차며 그의 몸을 밀어냈다.
“간다!”
리안은 대검을 치켜세우고 돌진했다. 무려 3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묵직한 대검의 위력은 당하지 않고서도 상상할 수 있었다.
동시에 라이의 몸에서 흑빛 섬광들이 뻗어 나와 리안의 빈틈 곳곳으로 침투했다. 리안은 검을 채 절반도 휘두르지 못하고 방어로 전환했다.
빠르고 날카로운 라이의 공격이 대장장이의 망치질처럼 대검의 표면을 강강하게 두들겼다.
“크윽!”
의외로 묵직한 충격에 리안의 몸이 흠칫 놀랐다.
테스의 세검과는 느낌이 달랐다. 신속하고 정확하지만 오젠트 가문 특유의 힘이 살아 있는 검술이었다.
한번 주도권을 내주자 리안은 끝없이 밀렸다. 밀리는 과정이 너무 일방적이라서 다시 주도권을 되찾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라이는 마치 공터에서 홀로 검무를 추는 듯 날뛰었다.
어느새 리안이 연무장의 끝에 도달하자 지켜보는 자들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새어 나왔다. 리안을 응원하는 테스까지도 넋을 잃게 만드는 검술이었다.
“이야아아아!”
리안의 검이 가로로 그어졌다. 공기가 불에 타는 소리를 내며 울었다.
가까스로 공간을 만든 리안은 한 걸음을 전진했다. 하지만 라이의 전광석화 같은 공격에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다시 물러서고 말았다.
라이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가두어 두고 두들겨 패는 형세였다.
리안의 반격 횟수가 줄어들더니, 급기야는 막아 내는 것조차 벅차 보였다.
‘쯧, 발전이 없어, 발전이.’
싱거운 승부에 라이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리안의 검을 집중적으로 두들겨서 정신을 빼 놓은 다음 흑도를 역수로 돌리고 땅에 박았다. 푹, 칼날이 박히는 순간, 리안의 발바닥을 타고 진동이 전해져 왔다.
“뭐……!”
리안이 놀란 눈으로 아래를 향하자 땅속에 바람이 차오르는 것처럼 지면이 부풀어 오르더니 펑 하고 폭발했다.
“크윽!”
땅이 폭발할 정도의 충격파가 양 발바닥을 때리면서 종아리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기술의 이름은 지폭.
라이가 불과 열두 살 때 성공시킨 검살을 땅에다 박은 것이었다.
리안은 무릎이 후들거려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차라리 주저앉아 버린 그는 상체의 힘만으로 대검을 들었다.
라이의 흑도가 쾅 소리를 내며 박히자 대검을 타고 진동이 밀려들었다.
리안은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아 냈다.
팔근육이 덩어리째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몸속을 타고 흐르던 충격파가 바깥으로 발산되면서 상의가 퍽퍽 소리를 내며 튀었다. 마치 수십 개의 칼에 찔린 것처럼 옷이 너덜너덜해졌다.
리안은 무겁게 인상을 쓰고 라이를 노려보았다. 여전히 흑도를 대고 있는 라이의 표정은 무심하기만 했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대결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충격파가 몸을 헤집었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도 이미 제대로 움직이는 근육이 없을 터였다.
오젠트 가문의 차남, 오젠트 라이.
그의 실력은 진짜였다.
검사의 신념 (4)
‘저게 갓 스물이 된 검사의 기술인가?’
쿠안은 라이의 검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정밀함은 물론 절묘하기까지 하다. 오젠트 가문에 두 가지 혈통이 내려온다면 이번에는 두말할 것 없이 흑발의 시대였다.
“후우! 후우!”
리안은 연거푸 공기를 빨아들이며 후들거리는 두 팔로 대검을 지탱했다. 1년 동안 밥 먹는 시간만 빼고 휘둘렀던 대검이 이토록 무겁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들어 올린다. 들어 올린다.’
라이의 눈매가 꿈틀했다. 흑도로 짓누르고 있는 대검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도 힘이 남아 있어?’
검진동의 충격파가 제대로 들어갔으니 몸에 힘이 들어갈 리가 없을 터였다.
조금 더 무게를 실어 짓눌러 보았으나 막아 낸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힘이 그를 밀어내고 있었다.
불길한 느낌을 받은 라이는 검을 떼고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리안이 검을 휘두르며 일어섰다. 넝마가 되어 버린 상의를 잡아 뜯어내자 팽팽하게 불끈거리는 근육이 드러났다.
라이는 리안의 특징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회복력이 엄청나군.’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적초월을 기술의 경지로 승화시키려면 보통의 고행으로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피드백을 높이기 위해 리안이 얼마나 피나는 훈련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건 인정해 주마. 하지만, 가문을 이끄는 건 나다.”
라이는 외중력을 통해 리안의 측면으로 돌아들어 갔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의 오른팔을 노리고 흑도를 휘둘렀다.
정상적이라면 방어 자세가 나와야 마땅한 상황.
하지만 오히려 리안은 갈빗대를 열어 주면서 대검을 수직으로 치켜들었다.
‘뭐지?’
찰나의 순간 라이의 생각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아니면 공격은 최선의 방어?
어떤 경우든 말이 되지 않았다. 대검의 움직임은 세검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그때 리안의 대검이 잔상을 일으키며 라이의 미간으로 뚝 떨어졌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검의 가속이었다.
라이는 몸을 튕겨 근진동을 일으켰다. 외중력을 따라 몸이 미끄러지듯 반원을 그리며 반경을 벗어났다.
하지만 어느새 리안의 대검이 공기를 울리며 따라붙고 있었다.
‘젠장! 대체 뭐야?’
간발의 차이로 회피한 라이는 모골이 송연했다. 하마터면 목이 떨어져 나갈 뻔했다.
그러자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레이나가 안절부절 발을 굴렀다.
두 사람의 감정이 충돌할수록 살초의 강도도 세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형제 중에 하나는 초상을 치를지도 모른다.
“안 되겠어! 대결을 끝내야 해.”
“그럴 수는 없어요. 그건 리안도 라이 오빠도 원하지 않을 거예요.”
레이나는 서운한 감정을 담아 테스를 돌아보았다.
“테스, 아무리 리안을 감싸고 싶어도 이건 아니야. 저 두 사람은 죽일 생각으로 싸우고 있는 거라고. 처음부터 리안을 말렸어야 했어.”
“라이 오빠가 미워서 싸우는 게 아니에요.”
테스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검술 학교에서 야식을 들고 리안의 숙소로 찾아갔던 날, 방문을 통해 새어 나왔던 끔찍한 신음 소리를.
“리안은 날마다 한계를 넘는 수련을 했어요. 그리고 밤이 되면, 리안은 아파서 죽어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을 참으려고 입에 헝겊을 물고 밤을 새운단 말이에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테스의 얼굴에 레이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비록 피가 통하는 가족이지만 그녀는 리안이 받은 고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리안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리안과 똑같이 검의 길을 선택한 자들뿐이었다.
라이의 발 차기가 리안의 명치를 때렸다. 공중에 떠오른 리안이 바닥을 구르다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중심을 잡았다. 급소를 맞아서 기색할 지경이었다.
라이의 얼굴에서는 냉정한 기운이 사라져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리안의 방어가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자신이 감정에 휘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못마땅했다.
“이 멍청아!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왜 모르는 거야! 오기도 적당히 부리란 말이야!”
리안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쓰러지기 전과 똑같은 자세로 라이를 겨누었다.
“덤벼.”
“이 자식이 진짜……!”
부릅뜬 라이의 눈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몸 밖으로 발산하는 불길한 아우라가 수련장 외곽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전력을 다하는 라이의 움직임은 귀신을 보는 듯했다. 빠르고 정확한 검술에 리안의 몸에 생채기가 늘어나면서 점차 동작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실력의 차이는 여실하다. 제아무리 노력해도 메울 수 없는 재능의 격차가 있다. 하지만 그 간극이 명확해질수록 화가 나는 쪽은 라이였다.
이런 한심한 놈에게 기대를 거는 가족들이 바보 같았다. 리안에게 미래 따위는 없다.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은 검술은 그저 힘자랑에 지나지 않는다.
“얼빠진 자식!”
절묘한 기술로 대검을 비껴 내고 돌려 차기를 가하자 리안의 목이 팽이처럼 휘돌았다.
목이 부러졌다는 착각이 드는 것도 잠시, 고개를 따라 몸이 회전하며 떠오르더니 쿵 하고 추락했다.
라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리안을 노려보았다. 퍼져 있는 모습마저 한심했다. 턱에 정타가 들어갔으니 아마도 내일까지는 의식이 없을 터였다.
“크크.”
그때 리안의 허파가 들썩였다. 천천히 고개를 세운 리안이 입가를 찢으며 말했다.
“간지러운 공격이군. 이런 걸로 날 죽일 수 있겠냐?”
아무리 두들겨도 좀비처럼 일어나는 리안의 맷집에 라이는 황당했다. 하지만 이내 한심한 눈빛으로 동생을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죽여? 네가 죽일 가치나 있는 놈이냐?”
리안의 눈이 부릅떠졌다.
“할아버지의 귀여운 막내 손자를 죽여서야 쓰나. 너 같은 건 굳이 죽일 필요도 없어. 정신을 잃을 때까지 두들겨 패면 되니까. 알겠냐? 너는 실력도 재능도 없는, 그냥 검술 가문의 막내일 뿐이야. 덜떨어진 등신이란 말이야, 이 자식아!”
“그래!”
리안이 온몸을 웅크리며 소리쳤다.
“나는 덜떨어진 등신이다!”
리안은 검을 휘두르며 돌진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바람 소리만 듣고서도 접근할 생각이 뚝 떨어지는 공격이었다.
라이는 황급히 흑도를 들어 올렸다. 쾅! 대검이 내리찍히면서 무릎까지 충격이 전해졌다.
리안은 검을 맞댄 채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의 입가가 귀밑까지 찢어진 것을 보자 라이는 어쩌면 동생이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계속해도 되나? 지금이라도 의사를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얼마든지 조롱해라. 어차피 평생을 들어 왔던 말이니까. 한심한 놈이라고, 덜떨어진 놈이라고 욕해라. 경멸하고, 무시하고, 악담을 퍼부어라. 그래도 나는……!”
리안은 대검을 끌어당기고 풀스윙의 자세를 취했다.
“절대로 멈추지 않아!”
리안의 대검이 수십 배는 커진 듯한 환각에 라이의 머릿속이 창백해졌다. 압도적인 일 검을 상상한 뇌가 쇼크를 받으면서 예상 검로들이 뒤죽박죽 헝클어졌다.
“이야아아압!”
리안의 기합 소리와 동시에 라이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발목!’
뒤늦게 검의 궤적을 읽은 라이는 뛰어올랐다.
대검이 땅바닥을 파내면서 반대편으로 빠져나오자 검의 반경만큼 넓적한 흙이 장판처럼 일어섰다.
장판의 한가운데를 흑색 선이 질주했다. 쩍 소리를 내며 반으로 쪼개지더니 라이가 흙을 가르고 튀어나왔다.
하지만 기다리는 건 또다시 대검을 퍼 올리는 리안의 공격이었다.
기존의 운동성을 무시하는 연계 공격에 라이는 식겁했다. 상체를 활처럼 펼치자 강풍이 턱 끝을 스치는 감각이 전해졌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모두가 조롱해도 나는 오직 전진할 뿐이다!”
리안은 여태까지의 울분을 토해 내듯 라이를 몰아붙였다.
대결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라이가 밀리는 상황에 가족들은 물론 쿠안까지도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리안…….’
레이나의 눈빛이 안쓰럽게 변했다.
태어날 때부터 두 살 터울의 형과 비교를 당하면서 자란 아이다. 솔직히 그녀가 검을 잡았더라도 라이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자신은 음악을 핑계로 청발이 지어야 할 짐을 리안에게 떠넘겨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청발의 혈통은 대대로 문제아들이 많지.”
레이나가 입술을 샐쭉거리며 클럼프를 돌아보았다.
“흑발은 언제나 자기 몫을 하는 편이고. 합리적이고 냉철하거든. 반면에 청발의 성격은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외골수에 고집도 세지. 그래서 청발이 가주일 경우에는 복불복이라고들 하는 거야.”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할아버지도 청발이면서?”
“크크, 분명 사고뭉치 청발의 존재는 오젠트가 제2계급에 국한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가문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검의 가문으로서 오젠트라는 이름을 알린 건 결국 청발이었다.”
클럼프는 무거운 대검을 폭풍처럼 휘두르고 있는 리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우회하지 않는다. 돌아보지 않는다. 설령 부딪쳐 깨지더라도 그것을 뚫고 나아가려는 의지, 그것이 청발의 신념이지. 리안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마침내 도착한 곳에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 길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대직도일 것이다.”
“간다아아아아!”
리안이 공격 일변도의 자세로 덤비자 라이는 칼을 맞부딪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사람을 상대하는 기분이 아니었다. 리안의 등 뒤에 무언가 절대적인 존재가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신적초월? 정신의 힘이라고?’
라이의 눈에 불꽃이 켜졌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튕기듯 몸을 날린 라이는 리안의 검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시선과 시선의 중심에서 대검과 흑도가 불똥을 튀기며 소용돌이쳤다.
무지막지한 충격이 손잡이를 통해 전해진 뒤에야 라이는 정신을 차렸다. 자신도 모르게 너무 흥분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미 감각은 손아귀를 떠난 뒤였다.
‘이게 뭐야? 무식해도 정도가 있지.’
외중력을 등 밖으로 빼내 빠르게 후진하는 순간 리안이 늑대처럼 뛰어들어 라이를 물었다. 마치 공에 역회전이 먹힌 것처럼 라이의 앞에 뚝 떨어지는 움직임은 정상적인 관성이 아니었다.
대검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라이는 발목을 완전히 뒤틀어 회전했다. 동시에 반대쪽 발바닥으로 리안의 아킬레스건을 내리찍었다.
“크윽!”
용틀임하듯 회전과 동시에 솟아오른 라이는 한쪽 무릎이 굽혀진 리안의 후미에 흑도를 내리그었다. 무아지경에서 발휘된 동작. 더 이상 생사를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리안!”
테스의 외침과 동시에 리안은 상체를 뒤틀었다.
비정상적인 자세에서 대검을 한 손으로 크게 휘두르자 흑도가 튕기면서 라이의 두 팔이 등 뒤로 넘어갔다.
“우와…….”
라이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졌다.
중심이 완전히 무너진 자세였다. 그런데도 체중을 전부 실은 수직 베기를 한 손으로 튕겨 내는 완력이라니.
‘아니, 그런 수준이 아니다.’
리안의 검에는 작용반작용의법칙이 통용되지 않았다.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절대적인 힘이 리안의 일 검 하나하나에 녹아들어 있었다.
“후아.”
시로네는 참았던 숨을 토해 냈다. 라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리안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검사가 아닌 그의 가슴도 뜨겁게 타올랐다.
“테스.”
시로네를 돌아본 테스의 얼굴은 긴장감에 하얗게 질려 있었다.
“리안, 정말로 강해졌구나.”
시로네의 인정에 테스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리안이 여태까지 해 왔던 고행이 누구를 위해서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목이 잠긴 그녀는 대꾸하지 못하고 연신 고개만 주억거렸다.
“이야아아아!”
리안은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검을 휘둘렀다. 이제는 라이도 물러서지 않고 리안이 내지르는 모든 공격을 받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