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9
시로네가 걸어오고 있었다.
“…….”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게시판 앞에 선 그는 차분히 공문을 읽어 내려갔다.
교사회의가 내린 결론은 진검 승부인 듯했다.
‘순간 이동.’
그 하나의 단어가 시로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
소위 클래스 세븐 왕따 사건이라 칭해지는 이번 사태는 상급반 학생들에게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특히나 대상이 시로네라는 것에 말들이 많았다.
“세상에나!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에이미, 너도 알고 있었어?”
일과가 끝날 무렵에야 게시판을 확인한 에이미는 멍하니 공문을 읽어 내려갔다.
세리엘이 주워들은 소문으로 구체적인 정황을 들려주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따돌림을 당했다고? 그것도 나 때문에?’
동급생들은 시로네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며, 통합 수업 시간에 에이미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면 아예 대놓고 욕을 하는 애들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날 피했던 거야?’
세리엘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하긴, 클래스 세븐이라면 어린애들도 있으니까. 사실 나도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거든. 금방 진급해 버려서 별일은 없었지만.”
“어리다고 면죄부가 되지는 않아. 그런 식으로 따지면 우리들은 안 어린가?”
“나이도 그렇지만 클래스도 생각해야지. 클래스 세븐이면 정말 미성숙한 거야.”
에이미는 이것저것 따지고 싶지 않았다.
사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멍청이! 어째서 말하지 않은 거야?’
솔직히 털어놓고 상의를 했으면 더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얼마나 착하면 그냥 당하고만 있어? 차라리 나랑 사귄다고 떵떵거리기라도 하지.’
시로네를 괴롭힌 놈들이라고 해 봤자 자신과는 눈도 못 마주치는 까마득한 후배였다.
“시로네에게 가 봐야겠어.”
“가는 거야 좋지만 뭘 어쩌려고?”
“잔소리 좀 해야지. 그런 다음 클래스 세븐 애들 전부 집합시킬 거야.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연인 사이니까 그 정도는 할 자격 되잖아?”
“뭐어? 너 미쳤어? 절대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그럼 당하고만 있으란 말이야? 그것도 나 때문에 저렇게 됐는데!”
“어휴, 넌 정말 남자를 모르는구나. 어째서 시로네가 얘기하지 않았는지 알아? 자존심이 상하니까 그런 거잖아! 그런데 거기다 대고 불을 지르면 어떡해?”
세리엘이 말을 이었다.
“남자들은 말이야, 인정받기를 좋아한다고. 자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 게 남자야. 그런데 왕따를 당했으니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하고 싶겠어?”
그녀의 말에도 일리는 있지만, 그건 진짜로 사랑하는 사이일 경우에나 해당되는 얘기였다.
‘우린 실제로 사귀는 게 아니라고.’
그런데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세리엘이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지 않니? 진급 시험에 합격하면 클래스 파이브에 들어갈 수 있어. 순간 이동 테스트는 정말 잘 정한 거지. 아직 아무도 배우지 않은 마법이니 시로네에게 불리한 것도 없잖아.”
에이미의 생각은 달랐다.
특정 마법을 못하는 학생과 마법 자체를 못하는 시로네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터였다.
‘게다가 순간 이동이라니.’
처음 순간 이동을 시도한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공포였다.
비행 마법하고는 차원이 다른 속도감, 무엇보다 단거리 이동 방식이기 때문에 자칫 장애물에 부딪치기라도 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엄청 위험한 테스트잖아? 대체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거야?”
“적당히 난이도를 조절하겠지. 학생들의 열정을 시험해 볼 수 있기도 하고. 클래스 세븐의 절반 이상이 시험에 응시할 예정인가 보더라고.”
“뭐어? 배운 적도 없으면서 그렇게 많이?”
“합격하면 클래스 파이브잖아. 두 계단을 건너뛰는 거니까. 게다가 순간 이동이라면 누구나 공평한 조건이니까 불만도 없을 테고.”
이미 순간 이동 테스트를 해 본 입장에서 에이미는 과정을 생각해 보았다.
시험에 응시한 학생들은 선배의 도움을 받거나 개인 교사를 붙여 집중적으로 공부할 것이 분명했다.
‘시로네는 할 수 없어.’
전담 교사는 아예 불가능하고, 왕따를 당할 정도면 조언을 해 줄 사람도 없을 터였다.
‘이러다 진짜 떨어지는 거 아냐?’
시로네의 재능은 누구보다 그녀가 인정하지만, 단기적인 과정만 보자면 결코 합격을 보장할 수 없었다.
“맞다! 에이미 네가 시로네를 도와주면 어때? 이번 기회에 화해도 하고.”
“흥! 그런 꼴을 당해 놓고 상의 한마디 없었는데 도움을 받겠어? 난 그냥 계속 모른 체할래.”
“어휴, 너희들도 정말 어지간하다. 서로 좋아하면 되는 거지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신경 끄셔. 그게 우리의 연애 방식이니까. 어차피 나도 한가한 처지는 아니야. 졸업반 진급 테스트가 코앞인데.”
“아, 맞다! 그랬지. 미안해.”
학생에게 진급만큼 중요한 건 없다.
아무리 에이미라고 해도 졸업반이라는 높은 장벽을 넘으려면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시로네가 알아서 하겠지. 그 정도도 못하면 어디 가서 나랑 사귄다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해.”
몸을 돌린 에이미는 속으로 말을 이었다.
‘가짜 애인이라고 해도 말이지.’
***
자정 무렵, 얼굴에 복면을 쓴 인영이 남자 기숙사의 정원으로 침투했다.
고양이처럼 날렵한 몸놀림에, 내딛는 걸음에는 풀이 스치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7층에 불이 켜진 것을 확인한 복면인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였다.
‘이건 절대로 신경 쓰여서가 아니야. 내 책임도 있으니까 도와주는 거라고!’
에이미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냥 넘어가려고 애를 써도, 시로네가 신경 쓰여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두고 봐라. 아주 싹싹 빌게 만들어 줄 테니까.”
스키마의 능력으로 높은 벽을 타고 오른 에이미는 7층 창문 앞에 섰다.
밤중에 남자 기숙사 문턱을 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테지만, 절대로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는 에이미였다.
‘스키마를 배우길 잘했다니까.’
난간을 타고 시로네의 방에 도착한 에이미는 창문을 열자마자 침투했다.
착지와 동시에 작전이 세워졌다.
시로네를 제압하고 침대에 던진 다음 비명을 지르지 못하도록 입을 막을 생각이었다.
“……어?”
하지만 작전은 작전으로 끝났고, 그녀는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채 굳어 버렸다.
시로네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에이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시로네의 옆에 시이나가 있었다.
“선생님?”
“너…… 에이미니?”
시이나가 다시 살폈으나 눈매도 그렇고 붉은 머리카락도, 영락없는 에이미였다.
사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근래에는 각자의 목표를 위해 공부만 하는 줄 알았다.
“설마 여태까지 이런 식으로 만난 거니? 낮에는 모르는 척하고 밤에는 밀회를 즐긴다?”
“오, 오해예요, 선생님! 그건 정말 엄청난 오해라고요!”
시이나가 황급히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다 댔다.
“쉿! 옆방에 들리겠다.”
다른 곳도 아닌 남자 기숙사였기에 에이미는 입을 가리고 옆방의 눈치를 봤다.
시로네의 방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는 소문이 퍼지면 첫 번째 용의자는 무조건 그녀였다.
에이미가 복면을 벗으며 말했다.
“아니, 잠깐만. 저야 그렇다 쳐도 선생님은 여기 웬일이세요? 그것도 이 시간에?”
따지고 들면 이 상황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시이나였다.
호출 한 번이면 되는 학생을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에 홀로 찾아오다니.
“말씀해 보세요.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에이미의 이유 있는 오해에 시이나도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당당하게 말했다.
“진급 시험 일로 조언을 할 게 있어서 온 거야. 학급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조용히 얘기하려고.”
그런 이유라면 에이미도 대꾸할 말이 없었다.
“저기, 선배님.”
시로네가 차를 준비해서 가져왔다.
“일단 차라도…….”
“흐음.”
에이미는 찻잔을 들고 향기를 맡았다. 손님을 맞이하는 기본자세가 되어 있었다.
“……는 개뿔! 이게 다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잖아!”
“죄, 죄송해요.”
에이미는 더욱 열이 받았다.
저렇게 착해 빠졌으니 어린애들이 무시하는 게 아닌가.
“일단 전부 앉아. 하던 얘기는 끝내고 싶으니.”
시로네와 에이미가 침대에 나란히 앉자 시이나가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테스트의 평가 항목은 순간 이동이야. 교장 선생님이 직접 내리신 결정이지.”
“네? 교장 선생님이요?”
에이미는 마지막 퍼즐을 맞춘 기분이었다.
역시나 알페아스의 장난기가 발동한 것이다.
“그래. 사실 나도 그분의 의도를 모르겠어. 순간 이동은 하위 클래스에서 하기 위험한 마법이니까.”
에이미가 물었다.
“테스트는 아마도 ‘건널 수 없는 다리’에서 하는 거겠죠?”
“확실한 건 아니지만, 사실 거기밖에 없지.”
순간 이동(3)
건널 수 없는 다리는 훈련장에서 가장 높은 해발 1천 미터의 두 산봉우리를 연결하는 다리였다.
다리의 길이는 700미터였고, 그 아래로는 골짜기 사이로 급류가 흐르고 있었다.
“어째서 건널 수 없는 다리죠?”
에이미가 대신 설명했다.
“말 그대로 건널 수 없는 다리니까. 순간 이동 실습을 하는 훈련장이거든. 난이도는 1에서 10레벨까지 있는데, 클래스 포인 나도 8레벨 이상부터는 정말 위험해져.”
시이나가 말을 보탰다.
“당연히 진급 시험 난이도는 1레벨로 맞출 거야. 장애물이 없는 상태. 클래스 세븐에게는 700미터를 완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니까.”
에이미가 돌아보았다.
“어? 그러면 어떻게 평가해요?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진급하는 거 아니에요?”
“가장 멀리 도약한 학생이 이기겠지.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안전장치가 있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고급반 선생님들이 참관할 테니까. 문제는 학생들이야. 경쟁심이 지나치면 자기들끼리 충돌하는 경우도 있거든.”
에이미는 그 지점이 승부처라 보았다.
“당연히 시로네는 집중 견제를 받겠죠. 한 가지 방법은 있어요. 초반부터 치고 나가는 거예요. 시작부터 가속하면 정신력이 크게 소모되겠지만, 시로네 정도라면 버틸 수 있을 테니까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래서 내가 오늘부터 시로네를 전담할 거야.”
“네에? 선생님이요?”
시로네도 처음 듣는 얘기인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시이나가 살짝 미소를 짓자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빠진 에이미가 되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이번 일에는 내 책임도 있으니까. 난 처음부터 시로네를 클래스 파이브에 편입시킬 생각이었어. 하지만 다른 선생님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지. 내 말에 따랐으면 시로네가 쓸데없이 이런 일을 겪을 일도 없었을 거야.”
“하지만 알려지면 문제가 커질 텐데요. 물론 다른 학생들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순간 이동을 연구하겠지만, 선생님이 직접 시로네를 전담했다는 말이 퍼지면 기껏 합격한 테스트도 물거품이 될 수 있어요. 그러지 말고, 당분간 제가 시로네를 맡을게요. 레벨 1의 난이도라면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으니까요.”
시로네의 눈이 이번에는 에이미를 향했다.
애써 그녀를 무시했던 만큼 그녀 또한 자신에게 화가 나 있을 줄 알았다.
시이나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졸업반 진급 신청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거기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시로네에게 신경 쓸 여유는 없을 거야.”
“어? 정말요, 선배님?”
시로네는 에이미의 대담한 결정에 놀랐다.
아직 누구도 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먼저 접수를 했다는 건 정공법으로 뚫겠다는 뜻이었다.
‘확실히 성격 끝내주네. 정말 대단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창 정신이 없을 그녀가 찾아와 준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한편 자존심에 불이 붙은 에이미와 시이나는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무리 바빠도 순간 이동 정도는 봐줄 수 있으니까 선생님이 포기하시죠? 오히려 시로네의 진급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시로네가 처음 마법을 배우는 거야. 이런 중요한 문제는 학생이 아닌 교사에게 지도를 받는 게 좋아. 너야말로 졸업반에 신경 쓰는 게 좋을 텐데? 알고 있잖아? 졸업반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1년에 딱 한 번이야.”
두 사람 모두 살짝 미소를 머금은 표정이지만 눈은 결코 웃고 있지 않았다.
에이미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물었다.
“좋아. 그럼 네가 선택해. 나야, 선생님이야? 물론 여자 친구가 가르쳐 주는 게 더 좋겠지만.”
시이나가 반박했다.
“졸업반 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얼마나 신경을 쓸 수 있겠어? 고집부리지 말고 선생님 말에 따라.”
시로네가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말했다.
“그냥 저 혼자 할게요.”
“뭐?”
여자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심사관으로 있는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는 건 공정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시험을 앞둔 에이미 선배의 도움을 받고 싶지도 않고요. 이번 시험은 혼자 해 볼게요.”
에이미가 소리쳤다.
“이 멍청아! 이게 어떤 기회인지 알아? 다른 애들은 전문 과외 교사를 섭외해서라도 시험을 준비할 거라고. 게다가 모두 너를 견제하고 있어. 혼자서 어떻게 해 볼 수준이 아니니까 이러는 거야.”
“그건 그것대로 납득할 수 있어요.”
“응?”
“에이미 선배님이 이른 시기에 졸업반 진급을 강행하는 이유도 그런 거잖아요. 여기에서 머뭇거리는 정도로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없으니까. 저에게도 클래스 파이브는 마법사가 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해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선배님처럼요.”
“흠흠.”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에이미가 헛기침을 하자, 시로네는 시이나를 돌아보았다.
“믿어 주세요. 반드시 합격하겠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할 거고, 후회는 없을 겁니다.”
진심을 읽은 시이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학생의 생각이 그렇다면 선생님도 받아들여야겠지. 하지만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와서 물어보렴. 그건 다른 학생도 마찬가지니까.”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