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91
낫이 목을 꿰뚫기 직전에 대원의 손이 멈칫했다.
대업 완수를 위해 3년 동안 훈련했지만 이런 경우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느 누가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주겠는가?
“너를 인질로 잡으라고?”
시로네는 속주머니에서 마법협회 직원증을 꺼냈다. 그리고 플루의 사진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린 상태로 내밀었다.
“보다시피 나는 마법협회 직원이에요. 민간인보다 나를 인질로 잡는 게 훨씬 효과가 좋을 거예요.”
대원은 비로소 소년의 작전을 간파했다.
이제 보니 시간을 벌려는 수작이었다. 마법협회 직원증은 본 적도 없을뿐더러, 이 자리에서 확인하기도 불가능했다.
“흥! 네가 마법협회 직원이라고? 너같이 어린 애가?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그때 창문 앞에서 시로네를 유심히 바라보던 테러범이 말했다.
“어이, 저 녀석 데려와.”
골드 타워에 있던 모든 대원이 그를 바라보았다. 후드에 가려 표정을 살필 수는 없지만 모두 의아하게 여긴다는 건 분위기만으로 알 수 있었다.
“조장, 설마 저 녀석 말을 믿는 겁니까?”
“믿고 자시고, 마법협회 직원이 맞아. 아킴 상회에서 이미 확인했어. 마법협회 직원이 인질로 붙잡힌다면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게 훨씬 수월해진다.”
대원 중의 하나가 창문을 통해 전했다. 조장의 말이었기에 의심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어이, 조장이 그렇게 하래. 저 녀석 데리고 들어와.”
낫을 든 대원은 쳇 하고 혀를 차더니 아리아를 우악스럽게 뒤편으로 던졌다. 그리고 낫으로 시로네를 가리키며 긁어내듯 손목을 휘저었다.
“좋아.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와라. 허튼수작을 부리면 여기 있는 인질들을 모두 죽이겠다.”
“나도 알아요. 그것 때문에 인질이 되는 거잖아요.”
시로네는 괜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철제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낫을 든 대원이 긴장감만큼이나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잠깐. 그건 뭐야?”
“이건 연금술 상회에서 구입한 물품이에요.”
대원이 확인을 위해 뒤를 돌아보자 조장은 생각에 잠겼다.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물건을 사러 상회에 들른 것만은 확실했다.
“맞을 거야. 저것도 가져오라고 해.”
검은혁명단에게 화폐는 필요 없다. 한 다발을 줘도 블랙마켓에서 사과 하나 살 돈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물건은 달랐다. 특히나 마법협회에서 주문한 물건이라면 분명 상당한 양의 무기와 교환할 수 있을 터였다.
“어이, 그거 머리 위에 들고 이쪽으로 와.”
시로네는 철제 상자를 양손으로 들고 골드 타워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를 넘어서자 동시에 3명의 대원이 에워쌌다. 1명은 상자를 빼앗았고 1명은 시로네의 두 손을 뒤로 결박했다. 다른 1명은 그를 무릎 꿇리고 대검을 목에 걸었다.
“얌전히 있어. 저항하면 죽인다.”
시로네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인질들이 한군데에 모여 있었고 3명의 테러범들이 지키고 있었다. 아리아만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시로네의 옆에 무릎이 꿇린 상황이었다.
비로소 살았다는 실감이 든 아리아는 자신을 구해 준 시로네를 다양한 감정으로 바라보았다. 미안하기도 했고, 마법협회 직원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너, 마법사였어?”
시로네는 돌아보지 않고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마법사라고 해도 골드 타워 내에는 마력 제어장치가 작동되어 있기 때문에 스피릿 존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마력 제어장치가 켜져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긴, 외환은행이라면 당연한 거겠지.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침투한 거지?’
시로네는 골드 타워의 바닥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곁눈질 했다. 땅굴을 파서 들어온 게 아닌가 싶었다. 족히 몇 달은 걸리는 작업이었을 테니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었다.
‘이거, 위험할지도 모르겠는데.’
시로네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도리깨를 든 테러범이 다가왔다. 로브를 입고 있어도 우람한 덩치를 감추지는 못했다.
“크크크, 내가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마법협회 녀석이 오다니. 이걸 어떻게 해 버릴까?”
상식을 벗어나는 저음이었다. 발음이 아무리 또렷해도 아둔하게 느껴졌다.
테러범은 쪼그려 앉아 거대한 손으로 시로네의 턱을 붙잡았다. 나무처럼 까칠한 피부였다.
시로네의 얼굴을 좌로 우로 돌려보던 그가 좋은 생각을 떠올리고 품에서 단도를 꺼냈다.
“그래, 이렇게 하면 재밌겠군. 어이, 여자.”
아리아는 불안한 눈초리로 테러범을 쳐다보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집에 돌아가서 열심히 공부나 하라고 부른 건 절대로 아닐 터였다.
테러범은 거대한 손으로 날렵하게 단도를 휘돌렸다. 그러다가 손가락으로 날을 붙잡고 손잡이 부분을 내밀었다.
“너를 살려 준 사람이라 아주 고맙겠군. 그렇지 않아?”
“네, 그렇죠.”
“그럼 보답으로 칼침 한 방 먹여 줘. 허벅지가 좋겠군.”
여자의 눈에 경악의 감정이 차올랐다.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턱이 덜덜 떨려 왔다.
“네? 어, 어떻게 그런…….”
그냥 사람을 찌르라고 해도 무서워 죽을 지경인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인질이 되어 준 사람에게 고통을 주라는 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쌍도끼를 든 테러범이 관심을 드러내며 다가왔다.
“캬캬캬! 그것 좋겠군. 어이, 빨리해! 안 그러면 너부터 죽일 테다!”
고음과 저음이 동시에 겹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죽인다는 말에 흠칫 놀란 아리아는 일단 단도를 받아 들었다. 하지만 차마 시로네의 허벅지를 찌르지는 못했다.
“호오? 역시 마법협회 직원은 다르구먼. 이런 상황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걸 보니.”
시로네는 담담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반응을 보여 봤자 테러범들의 기분만 좋게 만들 뿐이었다. 물론 칼에 찔리면 아프겠지만,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일 뿐이다.
대원의 말에 아리아는 고개를 들어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앞을 향하고 있는 그의 입에서 죄책감을 덜어 주는 말이 나왔다.
“저는 괜찮아요. 자신을 지키세요.”
도리깨를 든 대원이 참지 못하고 윽박질렀다.
“빨리 해! 찌르라고! 머리통을 부숴 버리기 전에!”
도리깨가 허공으로 쳐들리자 아리아는 눈물을 쏟아 내며 시로네의 허벅지로 손을 내밀었다.
“미, 미안해…… 미안해요.”
거꾸로 들린 단도가 덜덜 떨렸다. 날카로운 쇠붙이가 살을 뚫고 들어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리아는 오열하며 단도의 끝을 시로네의 허벅지에 대었다.
그때까지도 시로네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어차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은 그들의 가장 소중한 인질이니까.
“너희는 포위됐다! 너희는 포위됐다! 즉각 인질을 풀어 주고 백기를 들어라! 지시에 불응할 시 전면 소탕하겠다!”
테러범들의 고개가 일제히 창문 쪽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토르미아 테러진압반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골드 타워를 포위하고 있었다.
검사들의 긴급기동대, 마법사들의 특수진압반, 연금술사로 이루어진 폭발물해체반, 거너로 구성된 저격부대까지 총출동한 상황이었다.
가증스러운 마법협회 놈을 골탕 먹일 기회가 날아가자 도리깨를 든 테러범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워낙에 저음이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인간의 언어가 아닐지도 몰랐다.
검은혁명단에게 혁명 대업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감정을 추스른 대원은 시로네의 뒷고대를 붙잡고 강력한 완력으로 그의 두 다리를 띄운 채 창가로 걸어갔다.
“우리는 검은혁명단이다! 지금 당장 카니마르 부단장과 동지들을 석방시키지 않으면 인질들이 죽을 것이다! 10분에 1명씩 처형하겠다!”
테러진압반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여기서 요구를 수용하게 되면 앞으로는 더 큰 요구를 들어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인질들을 희생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골드 타워에 갇힌 인질 중에 고위 귀족이 포함되어 있기라도 하면 정치적으로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었다.
“빌어먹을 자식들! 죽고 싶으면 혼자서 죽을 것이지!”
테러진압반의 반장은 테러범을 노려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결국 진압은 할 수밖에 없지만 피해를 최소로 줄이는 타이밍이 언제냐가 관건이었다.
그것은 지금 당장일 수도 있고, 앞으로 5분 뒤일 수도 있다. 저들에게 얼마나 더 시간을 주느냐는 온전히 그의 부담이었다.
그때 천공을 가르는 굉음이 들리면서 장대처럼 긴 마법 지팡이를 든 여성이 착지했다.
마법협회에서 곧장 날아온 플루는 도착과 동시에 상황을 분석했다.
‘일단 테러진압반은 도착했고, 시민들은 전부 빠져나갔군. 그런데 그 자식은……?’
연금술 상회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분명 근처에서 사태를 주시하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시로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안 왔어? 아무리 그래도 진짜로 도망치냐. 하긴, 나로서는 잘된 일…….’
플루의 시선이 골드 타워의 정문에 멈췄다. 해탈한 표정으로 테러범의 손에 붙잡힌 시로네를 보자 눈이 커지고 턱이 빠질 듯 아래로 내려갔다.
“저기서 뭐 하는 거야! 멍청이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악다구니에 테러진압반이 뒤를 돌아보았다.
“아…….”
반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자넨 뭐야? 공간 이동을 한 것 보니 마법사인가?”
정신을 차린 플루는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갔다. 협조 인원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어차피 이곳도 마법협회의 관할구역이니 권한은 있는 셈이었다.
“마법협회 경비부장 플루라고 합니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응?”
가슴을 더듬거리던 플루는 당황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목에 걸려 있어야 할 직원증이 없었다.
뒤늦게 깨달은 그녀가 아픈 표정으로 혀를 내밀었다.
‘아차, 저 녀석에게 줬지.’
반장은 1초마다 표정이 바뀌는 플루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공간 이동을 통해서 날아오지 않았다면 그냥 동네 정신 나간 여자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마법협회 경비부장? 그런데 여기 왜 온 건가? 진압반은 이미 다 꾸렸는데.”
“아, 저기, 그게…… 뭔가 도울 게 있나 해서…….”
자격증이 없다는 사실에 위축이 된 플루의 목소리는 전보다 작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반장은 귀찮다는 듯 다시 정면을 돌아보았다.
“돌아가게. 저들을 제압할 병력은 충분해. 문제는 인질이지.”
플루 또한 테러 현장이 처음이 아니기에 알고 있었다.
테러범을 소탕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불특정 다수의 약자를 방패막이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도 시로네를 남겨 두고 자리를 뜰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생각할수록 짜증 나 죽겠네. 무슨 생각으로 테러범에게 잡힌 거야? 저기서는 마법도 안 통하는데.’
순간 플루의 눈빛이 번뜩였다.
‘잠깐, 마법이라고?’
어쩌면 시로네가 잡힌 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희망적인 전략을 떠올린 플루는 테러진압반의 부대를 가르고 달려가 반장에게 도착했다.
“저기, 반장님! 반장님!”
반장이 한숨을 내쉬며 돌아보았다.
“또 뭔가? 우린 바쁘다네.”
“있어요! 인질을 구할 방법이!”
마법협회 (5)
테러진압반은 시로네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었다. 테러범들의 탁월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인질의 입장에서는 서운할 뿐이었다.
시로네를 붙잡은 도리깨의 장한은 완력이 대단했다. 마법이 아니고서는 빠져나갈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시로네도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이러다가 진짜 죽는 거 아냐?’
그때 플루가 테러진압반을 가르고 등장했다. 도끼눈을 치켜뜬 그녀의 얼굴을 보자 시로네는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도 덜컥 겁이 났다.
‘어째서 플루 씨가 여기에?’
플루가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야!”
검은혁명단의 대원들이 모두 플루를 주목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은 언제나 좋지 않다.
시로네를 붙잡고 있는 테러범이 위협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어이, 저 여자는 뭐야?”
“어, 그게…… 일단 제 상관이기는 한데요.”
플루가 버럭 화를 내며 말을 이었다.
“너 정신이 있는 애야? 연금술 상회에 가라고 시켰더니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시로네는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물론 그녀가 화를 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꺼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왜 저러지? 뭔가 이상한데.’
시로네가 생각에 잠기자 그녀는 더욱 쏘아붙였다.
“내가 분명 ‘마력 제어장치’ 부품을 사 오라고 시켰을 텐데! 너 때문에 ‘애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잖아! 어떻게 ‘책임’질 거야?”
시로네의 눈이 반짝 빛났다.
‘마력 제어장치?’
그러고 보니 플루의 눈빛 또한 평소와 달리 긴장감이 바짝 들어 있었다.
‘아, 이거 암호구나.’
대충 조합해 보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마력 제어장치를 해제할 것이다. 너는 인질을 책임져라.
‘한 번의 기회가 있다는 거군. 하지만 대체 언제지?’
그것까지는 플루도 전달할 수 없었다.
암호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길어지면 의심을 산다. 또한 시간을 조율한다고 해도 찰나의 순간에 성패가 판가름 나는 작전에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었다.
그 순간부터 시로네는 정신을 예열하기 시작했다. 명확히 정해진 시간은 없다. 마력 제어장치가 파괴되는 순간에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게 관건이었다.
골드 타워에서 200미터 떨어진 8층 건물의 옥상.
1명의 거너가 마정탄을 장착한 석궁으로 골드 타워를 겨누고 있었다. 일반 석궁과 달리 틸러가 어깨에 견착될 만큼 길었고 방아쇠 방식의 트리거를 사용하는 무기였다.
거너가 씹고 있는 껌으로 풍선을 만드는 그때 통신 장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알파. 들리나?
“여기는 알파. 저격 대기 중. 오버.”
-지령을 전달한다. 골드 타워에 있는 마력 제어장치를 폭파시키도록.
거너의 입에 붙은 풍선이 퍽 소리를 내며 터졌다. 마력 제어장치를 폭파시킨다고 한들 인질이 붙잡힌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듯했다.
-한 번의 기회다. 실수 없도록.
거너는 생각을 멈추고 석궁의 스코프 안에 마력 제어장치를 가두었다. 전략은 머리가 짜고, 싸움은 근육이 한다. 그는 테러진압반의 신경이었다.
골드 타워 내부 도면을 떠올리자 머릿속의 선들이 면으로 일어서더니 순식간에 3차원 입체구조를 이루었다. 그것을 자유자재로 회전하며 탄도를 계산했다.
마력 제어장치는 벽에 내장되어 있기에 눈으로 볼 수 없다. 심안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로저 댓.”
시로네와 시선을 교환한 플루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불확실한 변수가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마력 제어장치를 파괴시킨다고 해도 시로네가 인질을 피신시킬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제발. 네가 뭔가 해야 돼. 실수하면 끝장이야.’
시로네는 정신의 형태를 미리 바꾸어 두는 일에 필사적이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집단 순간 이동인 매스 텔레포트였다. 마력 제어장치가 파괴됨과 동시에 인질들을 데리고 빠져나가는 것이다.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테러범들을 우회하여 인질들만 스피릿 존에 가두어야 한다. 사방식에 없는 기괴한 형태인 만큼 미리부터 정신을 조율해 두는 게 중요했다. 정신 계열 마법사인 아린이라면 쉬운 일이겠지만 내구력에 강점이 있는 시로네로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예상보다 어렵네. 지금 뭔가 일어나면 안 되는데.’
한편 거너는 저격 준비를 끝냈다. 껌을 씹는 속도가 일정한 간격으로 느려지더니 마침내 이빨로 천천히 짓뭉개기 시작했다.
천천히…… 더욱 천천히 껌이 짓눌리는 감각을 따라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조금씩 구부러져 갔다.
딱.
이빨과 이빨이 맞닿는 순간 방아쇠가 당겨졌다. 핑 하고 탄성이 발생하면서 마정탄이 벌레를 낚아채는 제비와 같은 속도로 쏘아졌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시로네는 최선을 다해 정신의 형태를 바꿔 나갔다. 그러는 한편 주위의 상황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테러진압반의 머리 위에서 빛이 반짝하더니 무언가가 시로네를 지나 정문을 통과했다.
뾰족한 철제 마정탄이 금고 옆의 벽면을 뚫고 마력 제어장치의 기판에 박혔다. 마정탄에서 전기가 발생하면서 전선이 녹아내렸고, 과열된 장치가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지금이다!’
시로네는 무섭게 치켜뜬 눈으로 스피릿 존에 들어갔다. 아메바처럼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의 스피릿 존에 아리아를 포함한 인질들이 포착되었다.
“뭐야! 어떻게 된 일이야!”
갑작스러운 공격에 검은혁명단의 대원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들 또한 피나는 훈련을 받은 자들이기에 마음을 다잡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감히 이것들이 우리를 속여!”
머리 위로 도리깨가 떨어지는 순간 시로네는 눈을 번쩍 떴다. 몸이 빛으로 변하고, 동시에 모든 인질들이 광자화 마법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