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94
강렬한 파공음이 섬광의 굉음을 쪼개고 들어왔다.
벙커의 대기압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포톤 캐논의 에너지를 가올드의 손바닥 앞에 압축시켰다. 에어 계열 최고의 방어 마법, 오직 가올드만이 구사할 수 있는 바쿰 프레스였다.
“어, 어떻게……?”
시로네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버틴 것도, 피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포톤 캐논을 손으로 받아 냈다.
포톤 캐논은 이미 에너지를 잃은 채로 가올드의 손바닥 위에 떠 있었다. 그가 주먹을 움켜쥐자 펑 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허무하게 소멸했다.
시로네를 돌아본 가올드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불합격이다.”
정적이 흘렀다. 벙커의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불합격? 내가?’
시로네는 뒤늦게 깨달았다, 애초부터 합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았음을. 그저 아타락시아로 누군가가 다치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가올드는 풍압에 날아간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김샜다는 듯 승강기 쪽으로 걸어갔다.
“강난, 네 말이 맞았다. 저 녀석은 쓸모가 없겠어. 돌려보내.”
마법협회 (7)
“그래. 그게 바로 네가 이곳에 온 이유다. 그럼 일단…… 응?”
가올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는 간도와 플루를 돌아보았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는 왜 여기 와 있어? 1급 보안 구역인 거 몰라?”
“아, 그게…….”
간도가 머뭇거리자 강난이 한숨을 내쉬었다.
‘또 기억이 날아갔군.’
시로네는 이번 프로젝트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핵심 자원. 내색은 안 해도 가올드 또한 상당히 흥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돌아가. 우리끼리 조용히 할 일이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가올드가 날파리를 쫓듯 손을 휘젓자 간도는 머쓱하게 승강기로 걸어갔다. 가올드 친위대에서 중역을 맡고 있는 그라도 지시를 따르지 않을 방도는 없었다.
하지만 플루는 여전히 자리에 남아 있었다.
‘계속 옆에 있었어요. 협회장님이 데려오신 거잖아요.’
가올드가 기억을 잃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것이 서운한 마음을 달래 주지는 못했다. 실제로 불과 10분 전에 처음 만난 시로네는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은가?
“플루, 뭐 해? 어서 올라가자.”
간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으나 플루는 고집을 부렸다.
2년이 넘도록 가올드 친위대를 자처하며 수많은 임무를 수행했다. 자신에게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 있게 해 주십시오.”
시로네에게 걸어가던 가올드가 우뚝 멈춰 섰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비정상적인 무언가가 고요하게 맴돌고 있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플루는 내친김에 더욱 크게 소리쳤다.
“이곳에 있게 해 주십시오! 저희도 가올드 님을 보좌하는 부하입니다!”
간도가 창백한 얼굴로 플루의 어깨를 흔들었다.
“왜 그래, 플루? 너 미쳤어?”
플루라고 태연하게 버티고 서 있는 건 아니었다. 심장박동이 갈비뼈에까지 전해지고 공포에 질린 눈은 가올드의 시선을 피해 천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크크크, 크크크크.”
무릎을 구부린 가올드는 먹잇감을 엿보는 야수처럼 목을 움츠렸다. 어깨와 정수리에서 공기가 가열되는 듯한 아지랑이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플루.”
“네, 네!”
“나는 마법협회장이 된 뒤로 한 번도 폭행 사건에 휘말린 적이 없다. 이유가 뭔지 아냐?”
플루는 천천히 시선을 내려 가올드를 바라보았다. 기괴하게 입가를 찢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자 심장이 멈추는 듯한 공포가 엄습했다.
“한 대 치면 다 죽어 버리더라고.”
간도가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이런! 시작됐다.’
플루의 시야가 깜깜해지더니 유황불이 타오르는 지옥의 풍경이 펼쳐졌다. 귀를 잡아 뜯어 버리고 싶을 만큼 끔찍한 아귀의 비명 소리가 뇌를 할퀴었다.
“어, 어어…….”
플루의 동공이 저절로 위로 말려 올라갔다.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있는 개처럼 두 무릎이 갈지자로 흔들리고, 흐르는 눈물은 피처럼 뜨겁게 얼굴을 적셨다.
‘무, 무서워……!’
이 순간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가올드에 대한 배신이었다. 그녀의 모든 게 한순간에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흐윽! 흐으윽!”
두 눈을 질끈 감은 플루가 사력을 다해 소리쳤다.
“존경합니다!”
동시에 지옥의 풍경이 사라졌다.
하지만 멀리 날아간 그녀의 넋은 여전히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아지경 속에서 마음대로 말이 튀어나왔다.
“존경합니다! 마법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존경해 왔습니다! 협회장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곳에 남게 해 주십시오!”
‘플루…….’
간도는 자신의 직속 부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인생의 목표로 삼기에 가올드는 너무 멀리까지 가 버린 인간이다. 공인 4급인 자신조차도 그의 앞에 설 때면 떨림을 억제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끼는 부하를 위해 용기를 내어 걸음을 옮겼다.
“저도 부탁드립니다! 저희의 각오를 의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플루의 옆에 멈춘 간도가 허리를 숙였다.
가올드는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실상은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럼 그러든지.”
허탈할 정도로 손쉽게 승낙하자 간도의 얼굴이 멍해졌다. 플루도 아직까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콧물만 연신 훌쩍거리고 있었다.
강난이 짜증 나는 듯 혀를 찼다.
‘하여튼…… 저러니까 미쳤다는 소리를 듣지.’
가올드는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오직 순간의 감정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뇌의 기억장치가 맛이 가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여태까지 칼침을 맞지 않고 살아 있는 이유는 토르미아 왕국의 어느 누구도 그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벙커의 중앙으로 걸어간 가올드는 시로네를 멀찌감치 마주 보는 자리에서 시가를 꺼내 불을 붙였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연기가 유령처럼 빠져나왔다.
“그래, 강난이 데려왔다는 건 가능성을 봤다는 거겠지. 이제부터 내가 직접 판단하겠다. 만약 내 기준에 부합한다면, 우리는 좋은 관계가 될 수도 있겠지.”
다짜고짜 평가를 한다면 기분이 좋을 수 없지만 협회장이라는 감투를 들이밀면 용납이 안 되는 선은 아니었다.
다만 불안한 것은 그가 조금 전에 플루에게 행한 무언가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언제나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그녀가 겁에 질려 오열한단 말인가?
‘정말 괜찮을까? 좀 이상한 사람 같은데.’
대답이 들리지 않자 가올드가 재미없다는 듯 말했다.
“강요하는 건 아니다. 의지박약은 우리도 필요 없으니까. 싫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라.”
“평가라면 무엇을 평가하죠?”
“너에게 기대할 건 하나밖에 없지. 아타락시아를 보자.”
시로네의 예상대로였다. 공인 제1급의 대마법사가 학생에 불과한 자신을 찾는다면 아타락시아에 관심이 있다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최대 출력으로 해라. 네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 테니까.”
‘최대 출력?’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가올드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투기를 접하자 불안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쏘라고요?”
“그래. 뭐가 됐든 최고의 장기를 보여라.”
시로네의 얼굴이 황당하게 변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아타락시아는 공성 마법이다. 정말로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사람에게 시전할 만한 게 아닌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이천번도 아니잖아요.”
“당연하지. 그래서 데려온 거잖아. 마법의 진가는 몸으로 확인하는 게 제일 정확하니까.”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 가올드는 미쳤다.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요구를 한단 말인가?
“너무 위험해요. 협회장님이 다칠 수도 있어요.”
가올드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담배 연기를 내뿜더니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 근래 들어 가장 웃긴 농담이군. 아래에 털도 안 난 꼬맹이가 말이야.”
얼굴이 빨개진 시로네는 울컥했다. 농담의 진위를 떠나서 완전히 깔보는 말이었다.
물론 가올드는 토르미아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다. 하지만 아타락시아도 대천사의 능력이었다.
“진심이에요.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고요.”
가올드가 웃음의 잔재를 털어 내듯 손을 휘저었다.
“아, 그래그래. 그럼 그 순간부터 네가 마법협회장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증인이지. 어때? 완전 초고속 승진이지?”
‘아예 듣지도 않고 있어.’
시로네는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집중했다. 아타락시아가 무엇인지 눈으로 보게 되면 생각을 바꿀 것이다.
허공에서 태어난 별빛 한 점이 곡선을 그리며 원을 그려 나갔다.
헤일로가 탄생하는 순간 플루의 미간이 구겨졌다. 강렬한 통증이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이것이 헤일로, 이모탈 펑션의 실체화구나.’
감도가 예민할수록 충격의 강도는 심하다고 들었다. 예상대로 간도는 상당한 통증을 느꼈는지 한쪽 눈을 찡그리고 숨을 불어 내쉬고 있었다.
반면에 강난은 담담한 표정으로 시간을 체크했다. 가올드 또한 심심한 듯 볼이 홀쭉해지도록 시가를 빨더니 입을 모으고 연기로 도넛을 만들었다. 마치 이렇게 빨리는 안 되냐는 듯했다.
‘진짜구나, 이 사람…….’
헤일로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힌 시로네는 조금 더 나가 보기로 했다.
아타락시아를 집적시키자 색색들이 섬광이 정면에서 쳐들어오며 인간의 지식 기반을 뛰어넘는 개념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우와…….”
플루는 입이 절로 벌어졌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아타락시아. 대천사의 능력이라는 건 알았지만 고작 학생이 시전하는 마법이 얼마나 대단할까 싶었다. 하지만 왕립 마법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녀조차도 헤일로에 집적되는 개념을 10퍼센트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대체 전지가 몇 개나 들어가는 거야?’
아타락시아가 완성되었다. 수백 개의 작은 마법진을 톱니바퀴처럼 돌리며 광채를 내뿜자 거기까지 확인한 가올드가 강난을 돌아보았다.
“어때?”
강난이 손에 쥔 회중시계를 살폈다.
“1분 2초입니다.”
“흐음, 예전보단 조금 단축됐군.”
팍! 가올드가 시가를 튕겨 내자 불똥이 폭죽처럼 터지면서 시가의 꽁다리가 벽까지 날아갔다. 한쪽 다리를 뒤로 잡아 끈 그는 사선으로 시로네를 마주 보며 천천히 자세를 낮추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들어와라.”
가올드가 자세를 취하는 순간 벙커의 기질이 변했다. 스피릿 존에서 마법사가 전지전능하다면, 이곳의 모든 것이 가올드의 의지하에 통제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로네는 갈등했다. 아타락시아는 트리거 계열의 마법에 속한다. 일단 포톤 캐논을 통과시키면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강난의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시로네, 내가 말했을 텐데. 이건 초국가적인 사안이라고.”
시로네는 여전히 가올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할 수 없지만 우리 또한 진심이야. 너의 신념이 그렇다면 지금 돌아가도 좋아. 하지만 도덕률에 얽매이고 있는 거라면 그것 또한 주제넘은 짓이라는 걸 알아 줘.”
“후우!”
시로네는 잡념을 토해 내듯 크게 숨을 내뱉었다. 이제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제1급 대마법사라는 칭호에 걸어 보는 수밖에는.
“시작하겠습니다.”
시로네가 눈을 부릅뜨자 정면에 펑 소리를 내며 광자가 탄생했다. 질량이 집중될수록 마음의 소리도 커졌지만, 단호하게 모든 소리를 외면하고 위력을 끌어올렸다.
‘이제부터는 나도 통제할 수 없다.’
시로네는 어금니를 짓깨물면서 포톤 캐논을 내보냈다.
빛의 구체가 아타락시아를 통과하는 것과 동시에 벙커가 백색으로 물들었다.
그에 따라 플루의 머릿속도 하얘졌다. 막대한 질량의 해일.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초월적 세계의 현상 앞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쾅!
강렬한 파공음이 섬광의 굉음을 쪼개고 들어왔다.
벙커의 대기압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포톤 캐논의 에너지를 가올드의 손바닥 앞에 압축시켰다. 에어 계열 최고의 방어 마법, 오직 가올드만이 구사할 수 있는 바쿰 프레스였다.
“어, 어떻게……?”
시로네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버틴 것도, 피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포톤 캐논을 손으로 받아 냈다.
포톤 캐논은 이미 에너지를 잃은 채로 가올드의 손바닥 위에 떠 있었다. 그가 주먹을 움켜쥐자 펑 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허무하게 소멸했다.
시로네를 돌아본 가올드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불합격이다.”
정적이 흘렀다. 벙커의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불합격? 내가?’
시로네는 뒤늦게 깨달았다, 애초부터 합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았음을. 그저 아타락시아로 누군가가 다치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가올드는 풍압에 날아간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김샜다는 듯 승강기 쪽으로 걸어갔다.
“강난, 네 말이 맞았다. 저 녀석은 쓸모가 없겠어. 돌려보내.”
마법협회 (8)
벙커의 모든 마법사들이 승강기로 걸어갔다.
시로네는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불합격인가? 포톤 캐논을 막아 냈다고 해도, 그것은 가올드의 대단함이지 자신의 못남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위력이 아닌가?’
아니, 처음부터 가올드는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수준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일까?
“협회장님.”
승강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모두가 시로네에게 고개를 돌렸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플루는 황당함에 코웃음을 쳤다. 감히 제1급의 대마법사에게 두 번의 기회를 달라고 하다니. 당돌함을 넘어서 협회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굳이 그녀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 가올드가 싸늘한 눈초리로 시로네에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생각도 플루와 같았다. 유희의 가치를 잃어버린 장난감은 쓰레기나 마찬가지였다.
“뭔가 착각하는 거 아니냐? 여긴 너를 위한 장소가 아니야. 내 도구가 될 자질을 검증받기 위해서 온 거지. 하지만 너는 그조차도 통과하지 못했다.”
시로네도 생각을 잘못했다는 건 인정했다.
“조금 전과 똑같이 대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실전 대결이라도 상관없어요. 그러니 다시 한 번 시연할 기회를 주세요.”
가올드의 얼굴에 감정이 사라졌다. 남은 건 서늘한 살기뿐이었다.
그는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되지도 않는 애송이의 주접을 받아 줄 정도로 선하지도 않았다.
“공격해도 좋다? 말인즉슨, 나랑 붙어 보겠다는 거냐?”
“붙어 본다는 게 아니라…….”
“닥쳐.”
가올드에게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시로네의 시야가 차단되었다. 이어서 사방에 불의 장막이 휘감기더니 온통 불의 바다가 펼쳐졌다.
환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열기에 살이 타 버리는 기분이었다. 고통, 절규, 비탄의 소리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시로네의 상태를 짐작한 플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큰일 났다. 진짜로 죽일 작정이야.’
가올드의 극기인 대초열지옥에 빠진 자는 끔찍한 공포에 눌려 정신이 파괴된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만으로 사람을 질식시켜 죽일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시로네는 공포에 잠식당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무릎이 떨리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대초열지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