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95
“어, 어떻게……?”
플루는 시로네의 태연함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설마 대초열지옥이 아니란 말인가? 하지만 가올드의 괴기스러운 얼굴은 자신을 공포에 질리게 했을 때와 한 치의 다름이 없었다.
‘이게 플루 씨가 당했던 거구나. 겁을 먹을 만도 하네.’
시로네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감상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러다가 지옥 관광은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하고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그의 눈빛이 예리하게 전방을 관통했다.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현실의 공간에서는 가올드가 서 있을 터였다.
‘미케아 가올드…….’
플루에게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빼어나게 강한 마법사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지옥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니 어디까지 떨어져 봤는지 짐작이 갔다.
시로네는 눈을 감고 생각을 하나로 모았다. 지옥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이 눈앞에 펼쳐져 있더라도, 완벽한 율법으로 정의된 화신은 흔들리지 않는다.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불바다가 쩍 하고 좌우로 갈라지더니 순식간에 지옥이 사라졌다. 이어서 흰자를 드러내고 괴물같이 웃고 있는 가올드의 얼굴이 보였다.
“크크크, 크크크크.”
가올드는 목을 긁어 대는 웃음소리를 내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불타오르는 눈으로 시로네를 바라보며 말했다.
“심적초월.”
이번 일에 비관적이었던 강난이 시로네를 데려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당장의 실력은 몰라도 재능만큼은 확실히 일류로 갈 수 있는 재목이었다.
“심적초월이라고? 이제 열여덟 살이?”
간도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플루 또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적초월이 무엇인지는 그녀도 알고 있다. 하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깨달음보다는 이름 모를 막연한 형태의 개념만이 그려질 뿐이었다.
“흐음.”
가올드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시로네를 프로젝트에 참여시킬 생각을 한 이유는 강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시로네보다 강한 자는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발상만큼은 확실히 천재적이다.
언로커 중에서도 특이한 질량 부여의 전지. 거기에서 이어지는 수많은 실전 마법들.
시로네는 자신이 조직한 팀에 천재성을 가미할 수 있는 재목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돌파구를 찾아내는 그의 재능은 불리한 상황에서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핵심 코드가 된다.
그런 의미로 봤을 때 제1급 대마법사의 마음을 되돌린 것 또한 재능이었다.
“실전으로 가자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는 거겠지?”
“네. 적당히 하실 분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죽어도 좋습니다.”
간도는 시로네의 치기가 걱정스러웠다. 마법사라면 죽음을 쉽게 입에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죽는 상황에서는 어떤 마법사도 저런 말을 꺼내지 않는다.
“좋다. 하지만 먼저 하나만 물어보자.”
가올드가 눈을 희번득 치켜뜨며 말했다.
“왜 죽으려고 하냐?”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이 자리에서 삶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보고 있는 건 어쩌면 자신 혼자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겨울밤의 한기처럼 몸을 떨리게 했다.
가올드는 질문을 조금 바꿨다.
“그러니까 내 말은…… 무엇을 상상하고 있지? 네가 도달한 결론이 뭐야? 어째서 너를 불렀는지는 아냐? 아무것도 모르면서,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게 내 뒤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호오? 이를테면?”
시로네는 대천사 이카엘의 얼굴을 떠올렸다. 따듯하고 상냥한 천사였다. 하지만 한때 케르고 유적을 멸망시킬 정도로 강력한 천사장이기도 했다.
어째서 그녀는…… 자신에게 미래를 맡긴 것일까?
“한 번은, 반드시 만나야 할 누군가가 있습니다.”
처음 생각을 한 건 카즈라 왕국에서 일을 겪고 나서였다. 정확히는 거핀의 보안장치가 풀렸을 때부터.
답을 알고 있는 베히모스는 심적초월과 함께 사라졌지만 뇌리에 새겨진 의문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카엘을 만나야 한다.
시로네의 대답은 가올드가 예상했던 선택지에 들어 있지 않았다. 재미있는 아이라고 느끼면서도 사정을 봐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입만 산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애송이 주제에 협회를 개인적인 일에 이용하겠다는 거냐?”
시로네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올드의 질문은 감정적이었고 그렇기에 핵심을 비껴가고 있었다.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에는 말이 필요치 않았다.
가올드는 그것으로 됐다는 듯 몸을 돌렸다.
“좋아, 마지막 기회를 주지. 휴식 시간은 1시간이다.”
아타락시아를 시전했으니 정신력이 상당히 소진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상대가 편의를 봐준다면 정신을 회복하는 것보다 더 유용한 것이 있었다.
“괜찮습니다. 대신 다른 조건이 있습니다.”
시로네는 허리에 차고 있는 아르망을 꺼냈다.
“금강무장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이 정도의 메리트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올드는 시로네의 손에 쥐인 검을 바라보았다. 이라는 오브제는 시로네의 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덜떨어진 놈인 줄 알았더니 주제 파악은 하는군.”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최선을 다한다는 건 그만큼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다는 뜻. 어쨌거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가올드로서도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작 오브제 하나 들었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니 룰을 정하자.”
가올드는 손바닥 위로 공기를 압축시켰다. 밀도가 상승하면서 투명한 구체가 아른거렸다.
“보다시피 내가 구사하는 건 아무나 배운다는 에어 마법이다. 그중에서도 프레스 계열이지. 나는 마법에 재능이 없어서 복잡한 건 몰라. 그저 남들보다 조금 위력이 세서 이 자리에 있는 거지.”
시로네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타락시아를 한 손으로 막아 내는 마법사가 위력이 조금 세다면 세상 모든 마법사는 죽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가올드가 주먹을 쥐자 공기 방울이 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어쨌거나 룰은 이렇다. 나는 바쿰 프레스로 다시 한 번 아타락시아를 받아 낼 거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딱 한 번, 너에게 공격 마법을 시전한다는 것이다.”
가올드는 검지와 중지를 붙여 시로네를 겨누었다. 손가락 끝에 작은 공기 방울이 맺혔다.
“너를 공격할 마법은 보다시피 에어 건이다. 원리는 단순해. 공기를 압축시켰다가 방출하는 거지. 이 정도면 1만 프레스 되려나? 모르겠군.”
가올드의 팔이 빠르게 위로 튕겨 올라갔다. 엄청난 힘으로 압축되어 있던 공기 방울이 폭발하면서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들렸다.
시로네의 옆을 지나간 에어 건이 벙커의 끝에 처박혔다. 그때까지도 시로네는 무언가가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귀가 멍멍했다. 그러다가 진동을 느끼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에어 건이 강타한 곳을 중심으로 거대한 원이 함몰되어 있고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균열의 반경은 대략 직경 20미터 정도였다. 또한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에어 건의 크기는 아무리 커도 직경 2센티미터가 넘지 않을 터였다.
시로네는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멍하니 앞을 돌아보았다. 에어 건을 쏘았던 손을 까닥까닥 흔들며 가올드가 웃고 있었다.
“뭐, 애들 장난 같은 마법이지만, 그래도 맞으면 조금 따끔할 게다.”
따끔하다고? 최고의 방어 태세를 갖춘 금강무장이라도 맞는 순간 즉사였다. 하지만 제1급 대마법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농담처럼 들리지만은 않았다.
“어쨌거나. 열심히 해 봐라.”
미소를 지은 시로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두려울 정도로 강한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아르망의 마력 증폭, 이모탈 펑션, 심적초월, 아타락시아의 4대 조합으로 포톤 캐논을 날렸을 때, 과연 그 위력은 어디까지 치솟을 수 있을까?
“금강무장.”
수직으로 세운 아르망이 시로네를 집어삼키더니 찰나에 변신이 끝났다. 인공두뇌 외가 주위를 질풍처럼 회전하다가 시로네의 어깨 위에 고정되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시로네의 변한 모습에도 가올드는 여유로웠다. 에어 건의 형태를 유지한 채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러자 마치 끌려가듯 시로네가 쳐들어왔다.
서 있던 자리에는 이미 헤일로가 그려지고 있었다. 외의 시분할 능력 덕분에 전보다 빠르게 아타락시아가 집적되기 시작했다.
‘분할 연산이군. 그것도 꽤나 빨라. 이 정도면 50초대도 끊겠는데?’
시로네는 건틀렛에서 뼈 재질의 칼날을 만들어 휘둘렀다. 하지만 가올드는 여전히 아타락시아를 주시하며 상체만을 흔들어 모든 공격을 회피했다.
‘역시 완력으로도 이길 수 없다. 실전의 경험치가 달라.’
시로네는 필사적으로 몰아붙였다. 벙커가 워낙에 넓어서 촉수를 박는 건 손해였다. 하지만 그런 만큼 아르망의 육체 증강 능력을 극대화시켰다.
‘지금 뭐 하는 거지?’
플루는 고개를 갸웃했다.
두 사람 모두 마법사임에도 마법을 시전하지 않고 있었다. 가올드는 한 번만 에어 건을 시도할 수 있으니 그렇다 쳐도, 시로네가 육탄전을 고집하는 건 의아한 일이었다.
“어째서 장기를 발휘하지 않죠? 시분할이라면 슬롯 하나가 남잖아요? 공격 마법을 연사하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협회장님은 방어 마법도 쓸 수 없으니까요.”
간도가 전장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진심이기 때문이야.”
“네?”
긴장감에 사로잡힌 간도는 설명을 이어 나갈 여유가 없었다.
어차피 지금 저들이 펼치고 있는 움직임에는 아무런 의미도 담겨 있지 않다. 승부는 결국 찰나에 끝나게 될 터였다.
‘어쩌면……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질 수도.’
마법협회 (9)
시로네는 맹목적으로 칼날을 휘두르며 공세를 이어 나갔다. 차분하게 하나씩 공격을 피해 나가던 가올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답이다. 첫 번째 문제는 맞혔군.’
시로네는 마법을 아끼는 게 아니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가올드가 공격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한 번. 하지만 그 한 번은 100퍼센트에 근접한 확률로 시로네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공격 마법은 안 돼! 일단은 무조건 막아 내야 해!’
가올드가 진심이라면 아타락시아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 줄 리가 없다. 반드시 그 전에 죽는다. 따라서 모든 공격은 허초였다. 대신 온 신경을 집중하여 가올드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었다.
‘언제지? 대체 언제야?’
시분할은 두 가지 전지를 동시에 완성시킬 수 있지만 아타락시아를 제외하고 남은 슬롯에 포톤 캐논 따위를 장착할 여유는 없었다. 에어 건을 피해야 한다. 실패하면 죽음뿐이었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시로네의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물론 최선의 판단이다. 다만 한 가지 오판이 있다면, 에어 건의 위력이나 속도가 조금 전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점이었다.
‘정말로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 그렇다면 조금 안타까운데.’
가올드는 시로네의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두 번이나 기회를 주었고, 한 번의 반격만 가능하도록 룰까지 정해 주었다. 이 정도로 밸런스를 맞춰 줬으면 생사의 문제는 온전히 시로네의 몫이다. 그런데도 이기지 못한다면? 어쩌겠는가, 죽는 수밖에.
아타락시아가 완성되기 직전, 가올드가 손가락을 내밀었다.
‘잘 가라, 시로네.’
동시에 오직 하나의 반응에만 대응하도록 대기하던 아르망이 촉수로 땅을 치며 물러섰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이미 가올드의 예상 범위 안이었다.
‘이건 차원이 다를 거다.’
가올드는 전과 같은 여유를 주지 않고 공기를 압축시키자마자 에어 건을 쏘았다. 마치 쇠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엄청난 속도로 공기 탄환이 날아들었다.
시로네는 볼 수 없었고, 느낄 수도 없었다. 그것이 스키마를 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다. 하지만 그에게는 상상력이라는 또 하나의 탈출구가 있었다.
미리 설계해 둔 것은 이지선다의 선택지. 만약 가올드가 아타락시아가 완성되기 전에 공격을 한다면 그건 자신을 죽이겠다는 뜻. 따라서 방어할 부위는 오직 한 군데였다.
‘암구!’
시로네의 얼굴 앞에 검은 구체가 탄생했다. 베히모스의 강제적 리바운드를 통해서도 도달할 수 없었던 마법이지만 심적초월의 힘으로 오버 페이스를 하자 소규모 중력장이 발생했다.
미간을 향해 날아들던 에어 건이 어둠 속으로 쉭 하고 빨려 들어갔다.
카즈라에서 1톤의 식물을 먹어 치운 전적이 있지만 가올드의 에어 건은 차원이 달랐다.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한 검은 구체가 시로네의 눈앞에서 충격파를 일으키며 터졌다.
“크윽!”
아르망의 로브가 순식간에 딱딱하게 경화되어 주인을 보호했다. 충격에 날아간 시로네는 촉수를 땅에 꽂아 옆으로 뛰었다. 어느새 완성이 끝난 아타락시아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력 증폭!’
시로네는 양손을 내밀어 손바닥에 달린 두 개의 마력 증폭구에 정신을 집중했다. 강력한 포톤 캐논이 탄생하면서 주위에 물방울 같은 작은 빛의 거품을 만들었다.
‘여기서 이모탈 펑션!’
포톤 캐논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사방의 공기를 밀어냈다. 황금색으로 물든 빛이 어지러이 진동하자 지켜보는 사람들의 망막에도 잔상이 맺혔다.
‘심적초월!’
한계치까지 질량을 부여하자 사람의 몸통만 한 광자 덩어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게 흔들렸다. 질량이 난회전을 일으키는 소음이 천둥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플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룰에 의해 가올드는 더 이상 시로네를 공격할 수 없다. 반대로 시로네의 포톤 캐논은 첫 번째 시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막강했다.
‘어떻게 저 정도로 빛을 압축시킬 수 있지?’
시로네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듯 더욱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어차피 가올드는 자신을 공격하지 못한다. 피하거나 막아 내거나, 둘 중의 하나. 그렇다면 피할 수조차 없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으아아아아!”
가용한 모든 것들을 쏟아 내자 초신성을 연상시키는 백색 구체가 탄생했다. 그것이 아타락시아를 통해 극단적으로 증폭된다. 아마도 벙커 전체가 에너지로 가득 차게 될 터였다.
가올드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빌어먹을…….”
번쩍!
거대한 빛의 파동이 반경 전체를 밀어냈다.
아타락시아의 뒤편에 서 있는 강난 일행조차도 망막이 타 버릴 정도의 섬광에 고개를 틀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형체가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시로네는 볼 수 있었다. 아르망이 주인의 눈동자에 들어오는 빛을 98퍼센트나 차단한 덕분이었다.
이어서 데자뷔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빛의 테두리부터 빠르게 조여들더니 상상을 초월하는 대기압이 포톤 캐논의 에너지를 바쿰 프레스에 가두었다.
“크으으으으!”
가올드는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바쿰 프레스를 더욱 강하게 조였다. 마침내 에너지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손바닥보다 작은 빛의 구체로 모여들었다.
시로네는 넋이 나갔다.
‘저 사람…… 정말로 인간인가?’
가올드는 짐승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로 팔을 늘어뜨렸다. 그의 머리카락은 한 가닥도 남기지 않고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주먹을 쥐자 바쿰 프레스가 터지면서 포톤 캐논이 소멸했다.
“후우. 아슬아슬했군.”
놀란 건 시로네만이 아니었다. 플루는 물론 간도조차도 여태까지 가올드를 보좌하면서 머리가 탈색된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가올드는 한참이나 구부린 자세로 머물렀다. 그러다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합격이다.”
“벌써 기절했습니다.”
강난이 안경을 올리며 벙커 중앙으로 들어왔다.
시로네는 죽은 듯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제는 아타락시아를 구사한 정도로 정신까지 잃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이번 시연은 최고의 한 방이었다.
“크크, 완전히 쥐어짜 냈군. 뭐, 좋아.”
가올드는 얼얼한 팔을 두어 번 털어 내더니 바닥에 떨어진 코드를 들고 어깨에 걸쳤다.
강난은 하얗게 새어 버린 가올드의 머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번의 바쿰 프레스는 가올드 또한 진심을 다했다는 얘기였다. 그렇기에 합격이다.
“머리는 염색하시죠. 가뜩이나 삭았는데 더 늙어 보이네요.”
“내버려 둬. 다시 자라겠지. 요즘은 탈색하는 게 유행이라며?”
“그렇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협회장님 얼굴은 유행이 아니잖아요.”
“크하하하!”
고개를 쳐들고 호탕하게 웃은 가올드는 승강기로 향했다.
버튼을 누른 그가 플루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이, 꼬맹아.”
“네, 네!”
바짝 긴장한 플루가 차려 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2년 동안 지내면서 가올드에 대해 많이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여태까지 알고 있던 가올드는 진짜가 아니었다.
쓰러진 시로네를 턱짓으로 가리킨 가올드가 말했다.
“데려가서 재워. 일어나면 내 방으로 올리고.”
“네! 알겠습니다!”
가올드가 플루에게 드러낸 관심은 그게 전부였다.
플루는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울며, 눈물 콧물을 쏟으며 존경한다고 외쳤다. 그녀 평생 가장 큰 용기였다. 하지만 가올드에게는 어떠한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한 듯했다. 아니, 어쩌면 벌써 기억에서 지워졌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플루.”
간도가 플루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시로네는 내가 데려가마.”
“아, 아니에요. 당연히 제가 해야죠.”
“남자는 무거워. 1층으로 올라가면 마법도 사용할 수 없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