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97
무거운 부담감이 시로네의 가슴을 눌렀다.
세상에는 수많은 강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을 놔두고 굳이 자신을 지목한 가올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고대에는 네피림들이 인간을 천국으로 인도했지. 하지만 거핀 말소 이후 더 이상 순수 네피림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아 있는 건 거핀의 유적뿐이지. 말인즉슨, 천국 또한 거핀의 유적이 아니면 우리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다는 거야. 따라서 우리는…….”
가올드는 뜸을 들였다. 강난과 자신밖에 모르는 기밀이 마침내 제3자의 귀에 들어가야 하는 순간에 생기는 경계심이었다.
“아카식 레코드를 해킹, 이 세계의 좌표를 바꿀 것이다.”
“아카식 레코드를…… 해킹한다고요?”
너무 황당한 말이라 호불호를 따질 겨를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카식 레코드는 전체를 통해 부분을 바꾸는 율법의 총체다. 가능 여부를 떠나서 잘못 손댔다가는 심각한 일이 벌어질 터였다.
“정말 괜찮은 일인가요? 만약 좌표를 바꾸면…….”
단어 하나의 의미만 변해도 이 세상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진다. 거핀 말소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거핀 말소 이전의 세계가 어떠했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물론 인간에게는 재앙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우리가 바꾸려는 건 행성 간의 좌표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가올드가 검지를 위로 쳐들고 말했다.
“태초의 좌표를 바꾼다.”
시로네는 잠시 대답을 못 했다. 그의 말을 이해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까, 우주의 시작 말인가요?”
“그래. 3차원 공간 좌표에 시간을 더한 4차원 좌표가 되겠지. 정확히는 11차원이지만. 태초의 좌표를 바꾸면 탄생 이후의 사건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면 결국 천국은 더 이상 우리를 찾지 못하게 되는 거지.”
“상댓값은 그대로라도 절댓값이 변했으니까요.”
거핀 말소하고는 달랐다. 세상을 초기화시키는 게 아니라 초기화 지점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이해했다는 듯, 가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좌표가 변했기에 미로에게 가해지는 압력도 사라진다. 그러면 우리는 미로를 데리고 탈출하는 거지. 그런 다음에는 세계에 퍼져 있는 거핀의 유적을 전부 봉인하면 끝이야. 천국하고는 영원히 안녕이 되는 거지.”
시로네는 비로소 작전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성공 여부는 여전히 장담할 수 없지만 최소한 이론상으로 가능했다. 그리고 이론상 가능하다면, 결국에는 도달하고 마는 게 인간이다.
‘최후의 전쟁을 피할 수 있다. 아무도 죽지 않을 수 있어.’
거기까지 정리한 시로네가 물었다.
“만약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저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되죠?”
가올드는 시로네의 만약이라는 가정법이 마음에 들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몸에 밴 아이였고 그런 신중함은 팀에 도움이 될 터였다.
“아카식 레코드는 제불의 잉그리스에 있다. 하지만 천국은 상위에서 하위로만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지. 따라서 제불에 무혈입성하려면 반드시 아라보트를 거쳐야 해.”
시로네는 천국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만약 이카엘이 아라보트로 자신을 초대하지 않았다면 천사들의 안식처인 제불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라보트를 뚫느냐가 관건이 되지. 천국의 보안장치는 대부분 메카 시스템으로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메카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잉그리스로 침투할 거야.”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천국의 메카 시스템이 얼마나 정교한지 직접 경험해 본 시로네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고대 병기 타기스를 사용한다. 강력한 전자기파(EMP)를 발생시키는 무기지. 타기스로 요격하면 잠시나마 메카 시스템을 다운시킬 수 있어. 다만 한 가지 불안 요소가 있다.”
시로네의 얼굴이 긴장감에 굳었다. 그 불안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자신의 몫일 터였다.
“잉그리스에 있는 아카식 레코드는 비정상적 종료 시 보조기억장치를 통해 2분 안에 리부팅된다. 즉 태초의 좌표를 바꾸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분이라는 거야.”
“보조기억장치에도 타기스를 사용하면요?”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한 시로네를 보고 가올드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보조기억장치는 메카 시스템이 아니야.”
메카 시스템은 전기력을 기반으로 하는 마도공학과 흡사한 기술로, 아카식 레코드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시스템이었다.
“메카 시스템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으로 아카식 레코드를 저장할 수 있죠?”
고민하던 시로네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퍼뜩 떠올랐다.
“설마…….”
가올드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천국에는 잉그리스 외에 또 하나의 아카식 레코드가 있지. 바로 앙케 라다.”
가올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짐작한 시로네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앙케 라는 우주를 인식한 최초의 생명체일 것이라 추정된다. 그리고 완벽한 통제를 위해 잉그리스를 만들었지. 놈이 멀쩡하게 있는 한 결국 우리는 시간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이라면? 작전 성공률은 급격히 높아지겠지.”
시로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에게 앙케 라를 암살하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가올드는 무슨 소리냐는 듯 손을 저었다.
“아니, 아니야. 아주 심각하게 착각하고 있구나. 나는 너에게 천국을 날려 버리라고 말하는 거다.”
시로네의 눈이 벼락을 맞은 듯 번쩍 튀었다.
천국을 파괴하라고? 황당함은 둘째 치고 이성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았다.
천국의 거대함은 지금 당장 눈을 감고 떠올려도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 대체 자신이 무슨 수단으로 천국을 날린단 말인가?
“협회장님이 할 수 없는 걸 제가 어떻게 하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가올드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너는 할 수 있다. 아니, 아타락시아라면 할 수 있어. 내가 너의 공격을 막아 낸 건 아타락시아가 허접해서가 아니야. 너의 포톤 캐논이 약했기 때문이지.”
그것만은 시로네도 부정하지 못했다.
아타락시아의 원래 주인은 대천사장 이카엘이다. 그리고 그녀는 갈리앙트의 화산활동을 2만 배 증폭시켜 케르고족을 한순간에 끝장낸 전적이 있었다.
“하지만 마찬가지예요. 아타락시아는 저만 구사할 수 있고, 포톤 캐논의 위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란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너에게 묻는 거다. 너라면 어쩌면,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시로네는 답답했다. 프로젝트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말을 하셔도 대체 어떻게…….”
“시로네.”
가올드의 눈빛이 시로네를 관통했다.
“할 수 있다. 아니, 해야만 해. 포톤 캐논의 위력을 끌어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 하지만 불가능하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라. 아타락시아는 성전이 보유한 어떤 고대 병기보다 강력한 마법이다. 아타락시아의 모든 걸 이해하려고 노력해라. 그리고 방법을 찾아내. 남이 걸어간 길을 빠르게 달리는 건 천재가 아니다. 천재라는 것은 없는 걸 만들어 내는 거야. 너는 여태까지 고유의 전지를 통해 수없이 많은 마법을 개발해 왔어. 나는 그런 너의 천재성에 기대를 걸어 보는 거다.”
가올드는 검지를 세웠다.
“1년. 앞으로 1년 안에 천국의 내구력 이상의 파괴력을 낼 수 있는 마법을 개발해라. 가능하면 일곱 개의 하늘을 전부 날리는 게 베스트.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메카 시스템을 복구하지 못할 정도의 위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시로네는 말을 잃었다. 머릿속이 생각으로 가득 차서 폭발할 지경이었다. 반면에 가올드는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되돌아와 시가를 물었다.
“여기까지가 합격의 대가로 들을 수 있는 전부다. 만약 네가 이걸 성공시킨다면, 아니, 일말의 여지라도 붙잡는다면 너는 1년 후에 선발대에 들어가게 될 거다.”
시로네는 신중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아껴 두었던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제가 정말로 그런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수많은 신민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요.”
“글쎄. 그건 1년 후에 생각하면 되는 일이겠지. 판단은 그 후에 할 것이다. 네가 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천국으로 간다. 너를 비난하지도 않을 거야. 만약 네가 프로젝트에 동참한다면 성전은 물론 전 세계의 적이 되는 셈이다. 반면에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반승낙에 가까운 말에 강난이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고 임무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 일이 잘못되면 세계의 역적이 되고, 성공한다고 해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시로네의 대답에는 그러한 계산이 조금도 들어 있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가올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념 이외에는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가? 그래…… 어쩌면 네가 내 구세주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가올드는 짐짓 태연한 척 시가에 불을 붙였다.
“그래, 말해 봐라.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지원해 주지.”
“만약 제가 천국을 파괴할 능력이 있고, 또 그런 상황에 도달한다면…….”
“도달한다면?”
“제가 마법을 시전하는 건 반드시 만나고 싶은 누군가를 만난 뒤여야 할 것입니다. 그게 되지 않는다면 저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겠습니다.”
“흐음.”
가올드는 시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시로네가 만나고 싶은 자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이카엘이로군.’
시로네에게 아타락시아를 전수한 대천사.
물론 그녀를 만나는 건 개인적인 이유겠지만, 이제는 반드시 만나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셈이었다.
하지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거기까지 고려한다면 작전의 난이도는 대폭 상향된다.
하지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시로네가 정말로 앙케 라를 무력화시킬 방법을 찾아낸다면, 그 효과는 난이도 상승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누구인지는 묻지 않겠다. 하지만 어째서 만나려고 하는 거지? 세계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만나야 할 가치가 있는 거냐?”
시로네는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협회장님은 어째서 세계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미로 씨를 구하려는 거죠?”
가올드의 입에서 퍽 하고 시가 연기가 터졌다.
“크크, 알았다. 말 안 해도 알겠지만 오늘의 일은 기밀이다. 당분간은 여기에서 지내라. 이번 일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지원해 주마. 학교생활에도 도움이 될 거다. 죽기 전에 졸업은 하고 싶겠지.”
“감사합니다.”
사양할 필요는 없었다. 이제 한배를 타게 되었으니 이 정도의 조력은 당연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시로네는 소파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붙잡고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미로 씨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러냐.”
대답은 의외로 싱거웠다.
무한의 영역에서 미로에게 하이재킹을 당한 사건은 알페아스와 친구들밖에 모르는 일이지만 시로네의 행적을 추적해 왔던 가올드는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괜한 얘기를 꺼냈나?’
나름의 책임감이 느껴져서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담담하다는 것은 이해의 범주를 넘어설 정도로 상처를 받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럼, 가 볼게요.”
시로네가 문을 잡아당기는 순간 가올드가 말했다.
“잘…… 지내고 있더냐?”
시로네는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 생각해도 딱히 좋은 만남은 아니었다. 그녀는 미로의 시공에 자신을 가두려 했었고, 결국 블랙홀을 지나 본래의 육신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가올드를 돌아본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들었던 대로, 엉뚱한 분이더군요.”
“…….”
시로네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가올드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피식 웃으며 재떨이에 시가를 비벼 껐다.
“착한 놈이군.”
강난이 예의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네. 협회장님하곤 달리.”
특별훈련 (1)
시로네는 정식 견학생으로 등록되어 협회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상한 소문이 돌기 전에 공표를 하는 게 안전하다는 강난의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에 부칠 편지를 적는 것이었다. 강난이 검수했고, 허락이 떨어졌다.
도시로 나가 전보를 부치고 돌아오자 플루가 3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편지는 보냈어?”
“네. 5일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를 기다리신 거예요?”
“응. 비서실장님에게 부탁을 받았어.”
가올드의 면담에서 받았던 충격파가 여전히 남아 있는 시로네였다. 강난이 무언가를 부탁했다고 하자 덜컥 겁부터 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부터 내가 너의 훈련을 도울 거야.”
이곳에 있는 동안 가올드가 무언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프로 마법사가 직접 가르치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뻐할 수 없는 이유는, 다른 사람도 아닌 잔소리꾼 플루에게 걸렸기 때문이다.
“표정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니에요. 그냥 너무 갑작스러워서.”
“뭐가 갑작스러워? 특훈이, 아니면 내가?”
“그게…… 둘 다요.”
플루는 통쾌한 듯 낄낄 웃었다.
“잘 걸렸지 뭐. 그래도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내가 직접 가르치는 건 아니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플루는 속주머니를 뒤졌다. 혀를 내밀고 눈을 굴리는 게, 어지간히 깊은 곳에 넣어 둔 모양이었다.
“짜잔! 비서실장님에게 받았지. 너 이게 뭔지 알아?”
플루의 손에는 큼지막한 금빛 열쇠가 쥐여 있었다.
“글쎄요. 높은 확률로 열쇠 같기는 한데요.”
“이게 바로 마법협회의 상징인 마법서고 열쇠라고! 협회장님 승인 없이는 누구도 출입 불가능한 구역에 들어가는 거야!”
시로네는 잠시 반응할 거리를 생각했다. 그렇게 말한들 마법서고가 어떤 곳인지 알아야 기뻐하든 화를 내든 할 게 아니겠는가?
“뭐 하고 있어? 빨리 가 보자.”
시로네를 위한 가올드의 배려지만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는 쪽은 플루였다.
그녀가 시로네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협회의 16층이었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 코앞에 단단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습관처럼 걸음을 내디딘 시로네는 하마터면 머리를 부딪칠 뻔했다.
플루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열쇠를 꽂았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면서 장관이 펼쳐졌다.
16층 전체가 서고였고 책장들이 마치 2개의 거울 사이에서 비치듯 열을 맞추어 뻗어 나가고 있었다.
“어서 와. 네가 그 견학생이로구나?”
철문에 갇힌 시야 바깥에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단아한 미녀가 가로질러 나타났다.
사무적인 검은색 정장을 입고 검은 머리는 단정하게 위로 틀어 올렸다. 연한 화장에 핑크빛 립스틱을 발랐고 눈썹은 가늘게 다듬었으며 쌍꺼풀이 짙은 눈은 크고 깊었다.
“안녕하세요, 이자벨 님.”
깍듯이 고개를 숙인 플루는 시로네를 돌아보며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인사드려. 마법서고 총책임자이신 공인 3급 마법사 이자벨 님이야.”
시로네는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숙였다. 직급과 얼굴의 나이가 인지 부조화를 일으켰다.
“안녕하세요. 아리안 시로네입니다.”
“그래. 협회장님에게 얘기는 들었어. 마법협회에서도 주목하는 인재니까 앞으로 열심히 해. 일단 들어와. 서고를 안내해 줄게.”
이자벨이 먼저 몸을 돌리자 플루와 시로네가 뒤를 따라 들어갔다.
“여긴 마법서가 보관되어 있는 층이야. 대략 2만 8천 권 정도의 마법서가 있지. 왕국에 등록된 규정 마법은 대부분 구비하고 있다고 보면 돼.”
“네? 2만 8천 권요?”
시로네는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에 있는 모든 서적이 누군가가 개발한 마법이라는 얘기였다. 고양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플루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가락을 치켜들고 말했다.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이곳에 들어오는 건 엄청난 특혜라고.”
시로네에게는 플루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서고에는 열 페이지의 얇은 책도 있고 1천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도 있었다. 속성과 계열에 따라 표지 색상과 디자인이 달랐고 높이도 제각각이었다.
마치 세상에 퍼져 있는 수많은 마법들을 형상화한 예술 작품처럼 보였다.
‘아, 그래서 대마법사가 관리해야 하는 거구나.’
마법서에는 특정 마법에 대한 전지와 전능이 기록되어 있다.
스피릿 존에 들어갈 수 있고 비상한 머리만 있다면 독학으로 새로운 마법을 터득할 만큼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는 것이다.
고등 마법서 같은 경우는 가격을 매겨도 엄청난 고가일 것이고, 2만 8천 권의 장서라면 금액을 세는 것도 귀찮을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였다.
“죄송해요.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이자벨 님이 너무 젊어서 대마법사처럼 안 보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