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99
시로네의 몸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것과 동시에 폭발하듯 섬광이 퍼져 나갔다.
정확히 동남쪽 10미터 지점에 도착한 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성공, 성공이다.’
기쁨에 취하는 것도 잠시, 시로네는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들썩였다.
어느새 앞에 도착해 있는 플루가 두 팔을 내밀어 시로네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테러범을 제압했을 때처럼 차분하게 반쯤 감겨 있었다.
평소에는 잔소리를 남발하는 귀찮은 누나지만 이럴 때는 영락없는 공인 8급의 마법사였다.
“어, 저기…….”
“이제 알겠어, 네 문제가 뭔지?”
형태만 놓고 보면 산탄 무브먼트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플루는 8개의 섬광 중에서 정확히 자신을 찾아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시전자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 앞을 가로막기까지 했다.
“연계가 너무 느리다는 건가요?”
그제야 플루는 시로네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맞아. 눈으로 확인할 정도는 아니지만 스피릿 존으로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지. 특히나 나 같은 조작계 마법사라면 딜레이는 더욱 선명해져.”
“하지만 전 최선을 다했는데요?”
“노력의 영역이 아니야. 사실 조금 전에 너의 연계는 훌륭했어. 아마도 시분할에 준하는 속도로 교체를 한 것 같은데…….”
잠시 생각하던 플루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라는 거야.”
시로네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시분할은 하나의 슬롯에 두 가지 전지를 고속으로 바꾸는 사고법.
생각 자체가 느려질 수는 있어도 이보다 빠른 교체는 있을 수 없다.
“조금 전 너의 메커니즘을 설명하자면 이래. 순간 이동을 장착하고 시전, 순간 이동을 박탈, 그런 다음 다시 광자 출력을 장착하고 시전.”
플루는 두 주먹을 넣었다 빼는 식으로 두 마법의 연계를 표현했다.
최소 세 단계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스피릿 존의 공감각으로 포착이 될 정도의 딜레이가 생긴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시로네가 할 수 있는 능력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시분할의 속도로도 딜레이가 생긴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충돌시켜.”
“네?”
“충돌시키라고. 순간 이동 마법을 박탈시키지 말고, 광자 출력 마법으로 때려서 날리는 거야. 그리고 날리는 것과 동시에 광자 출력 마법을 슬롯에 끼우는 거지.”
플루는 두 주먹을 쥐고 앞으로 내밀었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때리자 왼손이 날아가면서 그 자리를 오른손이 대신했다.
조금 전의 설명을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박탈과 장착을 동시에 끝내는 거야. 그럼 메커니즘이 단축되겠지? 그걸 사고의 영역에서 할 수 있어야 해. 기존의 생각을 새로운 생각으로 강타하는 것. 마법사들은 이걸 ‘포스’라고 불러.”
플루는 조금 전의 과정을 다시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제의 느낌을 표현하듯 두 주먹을 거의 맞붙는 거리에 두고 빠르게 충돌시켰다.
그녀의 입에서 빵 하고 효과음이 튀어나왔다.
“이해하겠어? 박탈 과정을 생략하고 그냥 때리면서 들어가는 거야. 너도 언젠가 현장에서 일하려면 포스는 할 줄 알아야 돼. 패시브 액티브 연계는 계열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니까.”
시로네는 멍하니 듣고 있었다. 하나의 생각을 다른 생각으로 튕겨 낸다?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이런 식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법사에게는 굉장히 효율적인 사고법이었다.
“포스라……. 저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당연하지. 이건 실전 기술이야.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아.”
“위험한가요?”
“아니, 안정성이 떨어지잖아. 생각을 충돌시키면서 정확히 슬롯에 장착되어야 해. 감각에 의지하는 부분이 커서 정규 교육과정에 넣을 만한 것은 아니지. 시분할도 프로의 기술이야. 혼자서 터득한 네가 대단한 거라고. 아마 포스도 금방 배울 수 있을 거야.”
플루의 말에 시로네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비록 산탄 무브먼트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새로운 기술을 배운 것은 성과였다.
관건은 포스였다.
특별훈련 (3)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실습은 산탄 무브먼트에 집중했고 쉬는 시간에는 레이저 유도 기술의 전지를 공부했다.
하루 1시간씩 이자벨의 과외를 받은 덕분에 라디오 웨이브에 대해서도 대략적으로 가닥이 잡혀 가고 있었다.
업무를 끝내고 돌아온 플루가 하루의 성취도를 평가해 주었다.
하지만 깐깐한 그녀의 입에서는 합격 판정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느려. 다시.”
시로네는 이를 악물고 산탄 무브먼트를 시전했다. 그럴 때마다 플루는 어느새 시로네의 앞에 서서 양손으로 어깨를 붙잡았다.
요행이라도 바랐지만 프로 마법사에게 실수란 없는 모양이었다.
‘대체 어떻게 나를 찾는 거지? 아니, 인간이 정말로 반응할 수나 있는 건가?’
시로네가 미숙해서라고 보기에는 그녀의 공감각이 너무 예민했다.
어쨌거나 뛰어난 마법사에게 지도를 받는 일에 불만이 있을 수는 없었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가고 있었다.
“으악!”
둔탁한 소리가 터지면서 시로네는 바닥을 굴렀다. 등이 활처럼 펴지고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졌다.
광자 출력에 너무 신경 쓰다 보니 순간 이동의 착지 지점을 놓치고 말았다.
플루가 발 앞에 쓰러져 있는 시로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시.”
훈련장 중앙에 폭죽처럼 화려한 섬광이 터졌다.
광자 출력이 일곱 방향으로 산개하고 시로네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질리도록 봤던 플루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됐다! 이번엔 제대로 됐어!’
산탄 무브먼트를 추적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예상대로 플루는 원래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눈을 감은 그녀가 검지를 가로 그었다.
“다~시.”
시로네가 헐떡이는 얼굴로 되물었다.
“어째서요? 포스도 완벽했고 선배님도 절 못 잡았잖아요.”
“네가 서 있는 곳을 봐.”
시로네는 발밑을 두리번거렸다. 방향도 맞았고 특이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여기가 왜요?”
“대략 봐도 8미터밖에 이동하지 못했잖아. 너, 순간 이동 강박 10미터로 잡고 사용하지 않아?”
“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기초 중의 기초를 실수하다니.
“잘 들어. 순간 이동의 강박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면 안 돼. 실전에서는 수백 턴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복잡한 지형지물 사이도 빠져나가야 돼. 강박이 흔들리면 그 순간 죽는 거야. 그렇기에 고위 마법사들도 어지간해서는 전투 중에 강박을 바꾸지 않아.”
“네, 죄송해요.”
의기소침한 대답에 플루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콧김을 내뿜었다.
“기본이 약해진다는 건 그만큼 네가 기술적으로 능숙해졌다는 거야.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방심해서는 안 돼. 모든 응용은 결국 탄탄한 기본에서 나오는 거니까.”
시로네는 주먹을 움켜쥐고 그녀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기본, 기본이 전부다.
다음 날.
시로네는 마침내 산탄 무브먼트에 성공했다.
플루는 움직이지 못했고 방향도 정확했다. 또한 순간 이동의 거리도 10미터로 완벽했다.
“아…… 드디어 성공했다.”
성공의 기쁨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하지만 플루는 여전히 웃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전보다 차가운 눈빛으로 다가왔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해 보자. 너만의 산탄 무브먼트.”
플루의 말뜻을 이해한 시로네는 즉각 표정을 고쳤다.
산탄 무브먼트는 자체로도 좋은 마법이지만 수많은 마법서 중에서 굳이 이것을 고른 이유는 공격 마법으로 변환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긴장하지 말자. 광자 출력을 포톤 캐논으로 바꾸는 것뿐이야.’
현재까지 산탄 무브먼트에 소요된 시간은 3주. 여기서 합격하지 못하면 다시 며칠이 지체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상급 코스인 레이저 유도 마법을 배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진다.
“시작해 봐. 직접 받아 볼 테니까.”
플루의 눈빛은 산탄 무브먼트를 평가할 때하고는 전혀 달랐다.
포톤 캐논은 광자 출력과 달리 완벽한 공격 마법이다. 또한 최종 평가인 만큼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도 있었다.
시로네는 심호흡을 하면서 타이밍을 쟀다. 1초 뒤를 상정한 그는 0.5초에 순간 이동을 시전하는 것으로 상대의 템포를 끊었다.
몸이 빛나면서 사방으로 포톤 캐논이 튀었고, 동시에 플루가 움직였다.
시로네는 서쪽에 도착했다. 따라서 남쪽에 도착한 플루에게 날아오는 것은 포톤 캐논이었다.
스피릿 존을 통해 포톤 캐논이 느껴지는 순간 플루의 고개가 의지와 무관하게 젖혀졌다.
그녀의 눈앞을 스쳐 지나간 포톤 캐논이 벽에 처박히자 쿵 하고 훈련장이 울렸다.
“어, 어때요? 이 정도면 실전에서 통할까요?”
“…….”
플루는 조금 전의 상황을 복기했다.
포톤 캐논을 받아 내는 압박감이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박력의 주체는 여타 마법과 구별되는 빠른 속도였다.
준아광속은 마법으로 구현한 빛 속도를 정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준이다.
물리계에서는 쓰이지 않지만 생물의 눈으로는 빛과 구별이 가지 않는 속도.
밤에 발광체를 매단 화살을 쏜다면 섬광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경험한 포톤 캐논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오히려 건으로 쏘는 탄의 속도에 가깝다. 질량과 출력의 비를 제대로 맞췄다는 얘기다.
마정탄보다 큰 덩어리가 탄속으로 밀려든다. 따라서 당하는 입장에서는 경직된다.
기존의 산탄 무브먼트는 설령 상대를 포착하지 못하더라도 기껏해야 꽝이지만, 이건 쾅이었다.
“합격. 이 정도면 충분히 실전에서 먹히겠어.”
시로네의 얼굴에 비로소 생기가 돌았다.
“후우, 다행이다. 3주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마법사에게 새로운 마법을 배운 것보다 기쁜 일은 없기에, 시로네의 심정을 이해하는 플루는 깐깐한 표정을 지우고 미소를 지었다.
“지금 감각을 유지해야겠어요. 계속 연습해도 괜찮을까요?”
“당연하지. 성공했을 때의 감각을 기억하는 건 중요한 거야. 단,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그때부터 시로네는 산탄 무브먼트를 지칠 때까지 연습했다.
2시간이 지나자 여덟 방위의 어느 곳으로 이동해도 포톤 캐논의 위력에 오차가 없게 되었다.
“에고, 허리야.”
시로네의 훈련을 지켜보던 플루는 포톤 캐논을 피하면서 뭉쳤던 허리를 두드렸다.
근력으로 피했다면 몰라도 조작계 마법으로 움직였으니 탈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일단 터득하니까 2시간 만에 중급을 숙달시키네. 확실히 재능은 재능이야.’
학술지에서 읽기로 시로네의 장기는 통찰력이라고 했다. 잡다한 기술보다는 핵심을 파고들려는 성향이 극단적으로 강한 마법사.
아마도 가올드가 기대를 거는 부분도 거기에 있을 터였다.
“후우.”
훈련을 끝마친 시로네는 땀에 젖은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성취감에서 비롯된 몰아일체의 상태는 짧은 시간 실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기적의 구간.
마법사들은 이를 피버라고 부른다.
“다 끝냈어?”
시로네는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네. 어느 정도 몸에 익힌 것 같아요.”
“내일부터는 레이저 유도 기술로 들어갈 거야. 하지만 그 전에 짚고 넘어갈 게 있어.”
시로네의 눈빛에서 성공의 기쁨이 사라졌다.
무엇이든 들어야 한다.
협회의 프로 마법사들과 지내면서 그들의 사고방식도 자연스레 몸에 밴 상태였다.
“3주 동안 지켜보면서 느낀 건데, 너 밸런스가 많이 망가져 있어.”
“네? 밸런스요?”
플루는 손가락을 빙빙 돌려 시로네의 스피릿 존을 대략적으로 묘사했다.
“가장 큰 문제는 스피릿 존이 너무 크다는 거야. 그냥 느끼기에도 직경 80미터는 넘는 것 같은데.”
“그게 문제가 되나요?”
“실전에서는 사소한 부분에서 승패가 갈려. 밀도, 부피, 비중, 내구력의 황금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해. 너는 뭐랄까, 오버 페이스를 하는 경향이 있어. 내구력 100인 상대라면 100의 위력이면 충분하지.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120, 130을 쏟아붓는다고.”
스피릿 존은 정신의 실체화이기에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여태까지의 모든 전투를 돌이켜 보면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래. 너랑 스피릿 존을 겹치면 긴장감이 나를 콕콕 쑤셔. 항상 그게 의문이었지. 여태까지 무슨 괴물들하고만 싸운 게 아니라면 말이야.”
시로네는 부정할 수 없었다.
마법을 배우고 1년이라는 시간을 되짚어 보면 대등한 상대와 겨룬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최소한 그의 기준에서는 모든 적이 괴물이었다.
시로네가 침묵하자 플루도 깨달았다. 확실히 그런 전투를 통해 성장했다면 상처 입은 맹수처럼 스피릿 존이 과시 상태에 들어간 것도 이해가 되었다.
“어쨌거나 그런 상태는 좋지 않아. 내가 도와줄 테니까 황금 밸런스를 찾아보자.”
플루는 벽으로 가서 이미지 존의 스위치를 올렸다.
시로네의 스피릿 존이 푸르스름한 빛으로 가시화되자 훈련장의 불을 꺼서 선명도를 더욱 높였다.
시로네는 아름답게 빛나는 스피릿 존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순간 플루가 뒤에서 그를 끌어안고 몸을 완전히 밀착시켰다.
“어, 저기…….”
“가만있어.”
플루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시로네의 말을 막았다.
이어서 스피릿 존을 펼치자 시로네의 스피릿 존이 공감각을 통해서 또렷하게 전달되어 왔다.
‘역시 상당히 긴장하고 있네. 거의 전쟁터에 있는 마법사 수준인데.’
플루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 다음 시로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 봐.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될 때까지 스피릿 존을 줄이는 거야.”
시로네는 몸에 힘을 쭉 빼고 긴장을 풀었다.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있던 스피릿 존이 점차 줄어들면서 머릿속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 계속해…….”
스피릿 존을 더욱 줄이자 여태까지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응…… 조금만 더…….”
플루는 온 신경을 동원하여 시로네를 느꼈다.
“더. 더…… 그렇지. 응, 좋아.”
플루의 목소리는 그 시점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시로네는 어느새 고개를 숙인 채 한없이 포근한 기분을 만끽했다. 마치 어머니의 품속에 들어온 듯 따듯하고 평온했다.
플루의 눈꺼풀이 잠에서 깬 것처럼 천천히 올라왔다.
“……됐어?”
“네, 좋은데요.”
시로네의 허리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물러난 플루는 발소리를 죽이고 이미지 존의 장치로 갔다.
계기판을 들여다보니 직경 62.8미터였다.
불이 켜지자 시로네도 눈을 떴다. 긴 잠을 자고 난 것처럼 정신이 개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