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
“거짓말! 천민이 무슨 책을 읽어?”
알페아스가 시로네의 눈빛을 살펴보니 확실히 거짓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순진한 얼굴로 밥 먹듯이 어른을 속이는 게 저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다.
“그래, 어떤 마법을 보고 싶으냐?”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뭐든지 좋으니 보여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시로네가 고개를 숙이자 알페아스가 손을 저으며 웃었다.
“이 늙은이의 유일한 즐거움은 우리 귀염둥이에게 마법을 보여 주는 것이지. 좋다! 그렇다면 이번엔 바람을 일으키는 마법을 보여 주마.”
“우아아! 바람이다, 바람!”
아이들이 손뼉을 치는 와중에도 시로네는 긴장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바람? 어떻게 바람을…….’
그 순간 알페아스가 손을 들어 올리자 시로네의 눈이 충격에 크게 뜨였다.
“헉!”
몸의 무게가 사라지더니 족히 20미터가 넘는 높이로 날아오른 것이다.
마법학교의 수많은 건물들과 그 너머로 흐르는 산맥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으아아아!”
절로 비명이 터졌으나 다른 아이들은 공중제비까지 하며 즐기고 있었다.
잠시 후 아이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추락 속도가 엄청났고, 시로네는 빠르게 들이닥치는 땅바닥 앞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어?”
절망적인 충격은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시로네가 살며시 눈을 뜨자 지면 근처에 두둥실 떠 있는 상태였다.
시로네를 보고 아이들이 웃음을 터트리자 알페아스도 짓궂게 웃음살을 볼록였다.
“어떠냐? 이게 바로 마법이란다.”
물론 그는 온화한 성품이지만 아이의 반응을 즐기지 못할 만큼 건조하지도 않았다.
평소보다 과격했던 것도 그런 이유일 테지만, 시로네는 대답할 수 없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만이 전부였다.
‘이게…… 마법.’
생애 처음으로 경험한 현상은 막연한 소년의 환상마저 완전히 넘어서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시로네가 물었다.
“마법이라는 건 뭐죠?”
“흐음, 어디 보자. 마법이라는 것은…….”
“제가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사실 그대로를 말씀해 주세요.”
아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나이는 어려도 알페아스가 마법세계에서 어떤 입지를 가진 인물인지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내로라하는 귀족의 자제들도 여기서는 그저 아이처럼 구는 것이다.
‘선생님들도 저런 말은 못 하는데.’
알페아스도 처음에는 당돌하다고 생각했으나 잠시 후 평가를 달리했다.
‘똑똑한 아이다.’
당장 이해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이 어떤 기회인지를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수준에서 쉽게 이해하려 하지 않고, 어렵지만 정확한 정보를 얻어 스스로 연구할 생각인 거야.’
마법에 대해 교육을 받을 수 없다면 아이의 판단은 분명 탁월한 것일 테지만…….
‘정말로?’
혼자 할 수 있다고 믿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알페아스는 조금 전과 다른 눈빛으로 시로네를 살폈다.
마치 목숨을 건 사람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껄껄! 편하게 들으렴. 사실 어려운 얘기도 아니니까. 하지만 원한다면 난이도를 조금 올려 보마. 마법이란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위란다. 달리 말하자면 현상의 진리를 탐구하는 정신 작용이지.”
시로네는 생각에 몰두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도 된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니지만 사실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건가요?”
알페아스는 눈을 깜박였다.
“어디서 그런 걸 배웠느냐?”
“어, 음, 책에서요.”
“그런 내용이 담긴 책이 있더냐?”
“아뇨. 책이라는 게 왜 쓰이는 것일까 생각해 봤어요. 모두가 아는 사실을 굳이 적어 봤자 아무도 보지 않잖아요. 진실은 우리가 아는 상식과 무언가 다르기에 책이라는 게 쓰이고 읽히는 거겠죠.”
알페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워서 읊조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의 개념에 대한 이해는 고유의 개성. 통찰력이 있어. 정말로 평민인 것인가? 아쉽구나.’
차림새를 보아하니 평민 중에서도 도시 밖에 사는 천민일 확률이 높았다.
시로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마법은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나요? 특별한 힘이 필요한가요?”
“특별한 힘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한 정신력이 필요하기는 하지.”
의외로 시시한 답변이었다.
“정말로 그게 전부라고요? 바람을 떠올리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건가요?”
“흠, 그건 어려운 문제구나. 하지만 과장을 보태서 얘기하자면 그렇단다. 물론 평범한 생각만으로는 안 되지. 마법사의 정신이 세계와 일치해야 한다. 이를테면 극도로 예민한 정신 상태라고 할까?”
알페아스의 진지한 모습에 아이들은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예민한 정신 상태라는 건 어떤 거죠?”
알페아스가 미소 지었다.
‘호기심 같은 게 아니다. 정말로 여기서 마법을 배워 갈 생각인 거야.’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애석하지만 평민이다. 정식 교육을 받을 수는 없겠지. 더 부추기면 아이의 인생만 불행해져.’
알페아스는 더 깊은 대화로 가기 전에 흐름을 차단할 생각으로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마법사가 집중을 하면 주변의 모든 것을 감각할 수 있을 만큼 정신이 예민해진단다. 마법사들은 이것을 스피릿 존에 들어갔다고 표현하지. 시범을 보여 줄 테니 여기 있는 아이가 하는 것을 보거라. 슈아민, 스피릿 존에 들어가 보겠니?”
“네, 교장 선생님.”
갈래 머리 소녀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이니 실력을 뽐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했다.
슈아민이 눈을 감자 다른 친구들도 알아서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 태도가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한다는 듯이.
“존에 들어갔어요.”
“그럼 시작하자꾸나.”
동전을 꺼낸 알페아스가 손안에서 흔들더니 갑자기 잡아채며 내밀었다.
“자, 여기에 몇 개의 동전이 들어 있지?”
“6개요.”
손바닥을 펼치자 은화 6개가 놓여 있었다.
시로네가 놀란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알페아스는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3개요.”
이번에도 정답이었다.
그 후로 몇 번을 더 시도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됐다, 슈아민. 아주 잘했구나.”
“후우.”
슈아민은 숨을 길게 뿜어냈다.
단지 은화의 개수를 맞혔을 뿐이건만 이마에 식은땀이 잔뜩 맺혀 있었다.
알페아스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이게 바로 극도로 예민한 정신 상태란다. 스피릿 존에 들어간 순간 마법사는 외부 세계를 초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지. 뛰어난 마법사들은 먼 거리에 있는 나뭇잎의 개수까지 맞힐 수 있다. 물론 슈아민이 보여 준 실력도 대단한 것이지만 말이다.”
시로네도 감각에 의지해 천둥패기를 성공시켰기에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동전의 숫자를 센 것이 아니야.’
그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하는 원초적 정보들의 총체를 감각한 것이다.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통째로 느끼는 것.
스피릿 존의 달인이 나뭇잎의 개수까지 맞힌다는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의문.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알페아스가 말했다.
“누구나 할 수 있단다.”
스피릿 존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부단한 노력과 재능의 총합, 그것이 마법이었다.
“조용한 곳에서 연습을 해 보렴. 우선은 너를 느끼는 거다. 그런 다음 지우는 것이지. 그게 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니?”
“알겠어요.”
시로네는 이해했다.
“자신을 느끼지 못한다면, 자신을 지우는 것 또한 불가능할 테니까요.”
알페아스는 재차 감탄했다. 열두 살짜리가 음미할 수 있는 통찰이 아니다.
두 가지 경우가 떠올랐다.
타고난 재능을 갖췄거나, 짓궂은 지인이 장난을 치려고 보낸 아이거나.
“한번 해 보겠니? 여기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시로네는 눈을 감았다.
‘천둥패기의 경험을 살려서.’
막상 집중하자 나무의 홈에 감추어진 급소를 찾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는 우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나는 누구지?’
시로네는 자신을 명확히 정의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착각이었어.’
나에 대한 정의는 너무 많았고 또한 하나도 정확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나. 나는 대체 뭐지?’
그 순간 시로네는 아주 단순한 하나의 진리가 물고기처럼 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극도로 예민한 정신 상태.
알페아스의 표현은 소름 끼치도록 정확했다.
‘뇌.’
신체 기관이 아니다.
‘나는…… 뇌 너머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뇌라는 개념.
자신이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과 현실이 실상은 자의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정의할 필요 없어. 느끼는 거야. 나라는 존재가 예민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민한 정신만이 남는다.
시로네는 정의하는 대신 자신이라 생각되는 것을 모조리 지워 나갔다.
그렇게 소거하면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
시로네의 생각마저 사라졌다.
어느 순간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하아. 하아.”
눈앞의 정경은 평온했다.
아이들은 하품을 하고 있었고 슈아민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중이었다.
어느새 1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시로네는 알지 못했다.
“어떠냐, 뭔가 느껴지더냐?”
알페아스는 딱히 기대하지 않았다.
10분을 버틴 집중력은 인정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네, 들었어요.”
의외의 대답에 알페아스가 눈썹을 쫑긋 세웠다.
“호오, 무엇을 들었지?”
“소리. 모든 소리를 들었어요.”
“허허, 그랬구나.”
알페아스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안되는가.’
감각이 예민해지기는 한 것 같으나 스피릿 존에서 벌어지는 일은 차원이 달랐다.
우선 공감각을 경험한다.
소리에서 냄새가 나고, 빛에서 맛이 느껴지고, 풍경의 형태가 피부에 닿는 것이었다.
‘아쉽구나. 재능은 있는 아이인데.’
귀족이었다면,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았다면 이곳의 아이들과 비슷한 성취를 이루지 않았을까?
물론 그 정도로는 알페아스의 눈길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이곳의 아이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진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잘했구나. 앞으로 열심히 연습하면 더욱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게다.”
스피릿 존은 성공시키지 못했으나 집중하는 훈련은 아이의 삶에 도움이 될 터였다.
“자, 특별 수업은 이것으로 끝이다. 너희들도 모두 학교로 돌아가거라.”
알페아스가 아이들을 데리고 멀어지자 시로네는 지체하지 않고 담장을 넘었다.
그는 알페아스의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시로네가 떠나기 전에 먼저 자리를 피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한 배려를 한 셈이었다.
“하아. 하아.”
담을 넘은 시로네는 바닥에 주저앉은 뒤에야 연거푸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뛰어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다.
“진짜로 됐어.”
마법을 만나다 (4)
거대한 소리를 들었다.
어쩌면 소리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마땅히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세상 만물에 입이 달린 듯 시로네에게 무언가를 전했고, 그 모든 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결국 소리가 아니게 되어 버리는 그런 느낌.
‘당시의 나는 내가 아니었어.’
세계 그 자체였다.
한도 끝도 없는 거대함을 회상하는 그때 하나의 진리가 뇌리를 강타했다.
나는 무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