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02
쑥스러운 듯 시로네의 어깨를 때린 그녀가 발을 구르며 웃었다.
“그게 뭐야? 외모 말고 각오가 좀 다른 게 느껴져?”
“아, 응. 뭐랄까, 조금 더 예리한 느낌?”
“흐음, 그래?”
에이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다가 다시 되돌아와 물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됐어? 협회에서 일은 잘 끝낸 거야?”
“응. 천국에 대해서 물어보고, 견학도 좀 하고 그랬어.”
시로네는 거짓이 섞이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얼버무렸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라도 감당할 수 없는 기밀까지 발설할 수는 없었다.
에이미는 미묘하게 미소를 흘렸을 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두 달 만에 만난 그녀는 확실히 자신감이 올라온 상태였다.
“잘 어울리기는 하는데, 머리는 왜 자른 거야?”
“그냥. 수련하는 데 귀찮기도 하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에이미는 작년 졸업반 서열 5위까지 올라갔던 유력한 졸업 후보생.
2년 차 징크스를 탈피하는 게 관건인 만큼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듯했다.
“그나저나 일찍 왔네? 행사는 2시부터잖아. 바보 콤비 만나러 가는 거야?”
“응. 이루키랑 네이드 만나서 같이 올라가려고. 너는?”
에이미가 멀리 보이는 오르막길을 엄지로 가리켰다.
“나는 강철문. 너희 맞이할 준비 해야지. 아, 맞다. 이따가 무조건 ‘나’라고 말해.”
“나?”
시로네가 자신을 가리키며 되묻자 에이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 말고 나 말이야. 알았지? 무조건 나라고 그러면 돼.”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후후, 행사 때 보면 알아. 나한테 엄청 고마워하게 될걸. 그럼 2시에 강철문에서 보자.”
에이미는 콧잔등을 찡긋하며 웃고는 돌아섰다. 머리 스타일이 변한 만큼 성격도 전보다 밝아진 듯했으나 시로네는 아직까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에이미가 뒷짐을 지고 빙글 몸을 돌리더니 말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해.”
“하하! 그래, 정말 고맙다.”
에이미는 무엇이 그리 신났는지 키득키득 웃으며 멀어져 갔다.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돌아선 시로네의 입가에도 어느새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래, 드디어 같은 곳에 서게 됐구나.’
에이미의 기분이 좋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
이루키는 수식으로 가득한 칠판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드디어 졸업반에 들어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어쩌다 보니 그냥 여기까지 온 셈이었다.
‘마법사가 된다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올 수 있었던 곳이다. 적어도 이루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그를 정체하게 만들었던 것은 괴물 같은 두뇌가 세상에 어떻게 쓰일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결국 시로네를 따라 여기까지 왔군.’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졸업 시험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도 차분할 수 있는 이유는 시로네라는 거대한 제어장치가 자신의 뇌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 시로네는 마법사가 천직이지. 준비는 잘하고 있으려나?”
솔직히 시로네는 걱정할 것이 없다. 확고한 목표가 있는 이상 절대로 멈추지 않을 테니까.
‘반면에 네이드는…….’
이번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아마 창고에 처박혀서 하루 종일 이상한 장치나 만들다가 돌아올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네이드는 마법사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벌써 6년이나 됐나?’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이루키는 왕립 마법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알페아스 마법학교로 전학을 왔다.
물론 성격은 여전히 괴팍했기에 누구도 그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이루키 또한 교우 관계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 그의 눈에 유독 들어온 사람이 바로 네이드였다.
언제나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살벌한 눈으로 칠판을 노려보고 있는 소년.
‘흐음, 특이한 놈이군.’
며칠 동안 네이드를 주시한 이루키는 특유의 뻔뻔함으로 동기들에게 물어보았다.
“네이드? 나도 잘 몰라. 말도 안 하고. 성적은 그럭저럭 나오는 것 같던데.”
“난 네이드 싫더라. 음침하다고 해야 하나? 변태 같기도 하고.”
“네이드는 왜 궁금한데? 안 건드리는 게 좋을 거야. 눈빛이 너무 살벌하잖아.”
이루키는 네이드의 학교생활이 어떤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네이드가 이루키의 자리로 다가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이었다.
이루키는 태연하게 손을 들었다.
“안녕? 무슨 일이야?”
“네가 내 뒷조사 하고 다니는 놈이냐?”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이루키가 네이드에 대해 물어보고 다닌다는 소문이 퍼지자 당사자가 직접 찾아온 상황이었다.
“뒷조사? 내가 네 엉덩이를 왜 조사해?”
어딘가에서 풋 하고 웃음소리가 터졌다. 동시에 네이드의 주먹이 이루키의 턱을 후려갈겼다.
의자와 동시에 쓰러진 이루키는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했다.
“다시 묻는다. 네가 내 뒷조사 하고 다니는 놈이냐?”
“퉤.”
이루키는 피가 섞인 침을 뱉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그것은 기만전술. 곧바로 달려들어 손가락 2개로 눈 찌르기를 시도했다.
“아쵸!”
이루키의 팔이 쭉 늘어났다. 상체를 젖힌 네이드의 두 눈동자 앞에 가까스로 손가락이 멈췄다.
그럼에도 네이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
팔을 거두어들인 이루키는 뱀을 모사한 자세를 취하면서 싸울 태세를 갖췄다.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저급반 아이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후우.”
이루키의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바라보던 네이드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이런 머저리가 마법학교에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상대하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경고하는데, 다시는 나에게 관심 갖지 마라. 그땐 정말 가만 안 놔둘 테니까.”
“싫은데?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네이드의 눈에 사나운 기운이 번뜩였다.
“너…… 정말로 죽는다.”
“알아. 나도 인간이니까 언젠가 죽겠지. 너 혹시 바보냐?”
네이드는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당장 주먹을 날리지 않는 이유는 자칫하면 이루키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너, 수업 끝나고 나 좀 보자. 내가 말한 곳으로 나와.”
“호오, 이게 말로만 듣던 방과 후 결투인가? 하지만 괜찮겠어? 나 꽤 세다고.”
네이드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겁을 먹고 나오지 않는다면 그걸로 됐다.
하지만 만약 그 자리에 나온다면…… 이루키는 내일부터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우, 주먹 한번 맵네.”
의자를 일으켜 세운 이루키는 자리에 앉아 입술을 매만졌다.
수업이 시작되었으나 네이드는 들어오지 않았다.
날씨는 우중충했고,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회색빛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이루키는 퉁퉁 부은 볼을 어루만지며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가 오겠군.’
번개가 점멸하고, 뒤늦게 따라온 천둥소리가 세상을 찢어발겼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장대비 속에서 전격과 폭발이 숨 고를 틈을 주지 않고 서로의 꼬리를 물어뜯고 있었다.
“하아, 하아.”
이루키는 턱을 내리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정수리를 두드려 대는 빗물은 이내 뜨거워졌고 흠뻑 젖은 머리카락 아래로 빗방울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살아 있는 건 오직 눈빛뿐이었다. 그의 초점은 여전히 빗줄기 속의 어둠을 예리하게 꿰뚫고 있었다.
폭우의 장막 너머로 네이드의 실루엣이 보였다.
볼트들이 뱀장어처럼 꾸물거릴 때마다 실루엣의 일부분이 색감을 되찾았으나 처음에 봤던 괴물 같은 얼굴은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이건 좀 심각한데.’
이루키는 자신의 계산이 어긋났음을 인정해야 했다.
보통 놈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정상 범주를 넘어도 너무 넘었다.
이루키의 목소리가 빗속을 관통했다.
“너…… 대체 어쩌다가 ‘그 꼴’이 된 거냐?”
찰박찰박 물소리를 일으키며 네이드가 다가왔다. 끔찍한 표정이 지워진 자리에는 여의치 않다는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
“도대체 뭐야? 왜 나에게 관심을 갖는 거야?”
“관심이 아니라 탐색이야. 내가 근래에 뭘 좀 찾고 있거든.”
“찾는다고? 뭘?”
“보다시피 나는 천재야. 진짜 끝내주는 천재지. 내 능력은 사용하기에 따라 재앙이 될 수도 있어. 어쩌면 수많은 사람을 죽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를 제어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해.”
네이드는 비웃지도,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고?”
“너라면 알 수 있을 텐데. 내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어처구니가 없군.”
네이드가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너. 사람 죽여 본 적 있냐?”
거대한 천둥소리가 세상을 짓눌렀다.
이루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칠판에서 몸을 돌렸다.
죽음 직전까지 싸웠던 상대가 이제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물론 네이드의 성격이 온화해진 것은 당시의 사건이 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이루키를 친구로 받아들인 것은 그때부터였다.
“여어, 전우여. 이게 얼마 만의 재회인가.”
문을 박차고 들어온 네이드가 몸을 꼿꼿이 세우더니 경례를 했다. 6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 이루키는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강철문 (2)
“왔냐?”
네이드는 가방을 집어던지자마자 소파로 뛰어들었다.
“아우, 피곤해. 중부에서 남부는 길이 너무 험하다니까.”
“나는 수도에서 왔어.”
“내가 설마 집마차 타고 왔겠냐? 밥 굶고 화장실 참으면서 왔다. 메르코다인 가문의 마차였으면 먹으면서 쌌을 텐데 말이야.”
“혹은 싸면서 먹거나.”
“됐고! 아무튼 잘 지냈냐? 설마 배신 때리고 특훈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
이루키는 부정하지 않았다.
“뭐, 여기까지 왔으니 나도 졸업은 해야 되지 않겠어?”
네이드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짜야? 제길, 너까지 그러면 나는 뭐가 돼? 어떤 마법인데? 캔슬레이션보다 더 대단한 거야?”
“아직 전지 수준이라서 마법이라고 부를 단계는 아니야. 어차피 졸업 시험 전까지만 완성시키면 되니까. 소기의 성과가 나오면 말해 줄게.”
졸업반이라면 누구나 신체 리듬을 시험 당일 날 최고조에 오르도록 계획을 세운다.
과정이 어쩌니 해도 결과가 전부라는 건 에이미의 경우만 봐도 알았다.
“쳇, 좋겠다. 나는 방학 때 펑펑 놀았는데.”
이루키는 씁쓸한 눈빛으로 네이드를 돌아보았다. 말과 달리 딱히 서운한 얼굴이 아니었다.
졸업반에 들어왔어도 여전히 마법사에는 관심이 없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너…….”
“응? 뭐?”
이루키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삼켰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쳇! 싱겁기는.”
열려 있던 문이 전보다 더 심하게 열리면서 시로네가 들어왔다.
반가운 친구들과 재회한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야! 너희, 대체 이게 무슨 냄새야!”
하지만 좋은 기분은 잠시였고 곧바로 코를 막고 인상을 썼다.
연구회 바닥이 쓰레기로 난장판이었다. 대체 저 아이들은 어떻게 이 냄새를 참아 내는 것일까?
네이드와 이루키가 서로를 돌아보며 낄낄거렸다.
“미안. 오랜만에 향수를 뿌렸더니. 그렇게 좋았어?”
“시끄러! 빨리 청소부터 해!”
세 사람은 각자 청소 도구를 들고 대청소를 시작했다.
대형 쓰레기 창고 같던 곳이 얼추 깨끗해질 무렵에는 어느덧 행사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기진맥진하여 소파에 드러누운 네이드가 천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몇 시지?”
“1시. 슬슬 준비해야겠군.”
퍼뜩 깨달은 시로네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맞다! 나 정복 안 찾아왔는데!”
“내가 아침에 찾아왔어. 너랑 네이드 것까지.”
네이드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역시 철두철미하다니까. 근데 저거 꼭 입어야 되나? 진짜 입기 싫은데.”
정복은 마법학교 교복으로 특별한 행사가 아니고서는 착용이 금지되어 있지만 막상 학생들은 우스꽝스럽다는 이유로 1년에 한 번 입는 것조차도 꺼렸다.
“졸업식도 아니고 입학식에 무슨 정복 소집이야. 저걸 입고 거울을 보느니 치질 약을 바르는 내 모습을 보는 게 낫겠어.”
시로네가 네이드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 치질이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준비하자. 치질 약, 아니 내 정복 어디 있어?”
이루키는 구석을 가리켰다. 3개의 박스가 탑처럼 세워져 있었다.
각자의 이름이 적힌 박스를 들고 정복을 펼치자 하얀색 바탕에 어깨선을 따라 줄이 그어진 가운이 유령처럼 나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