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04
“나, 너 알아. 아리안 시로네.”
대답을 하기도, 안 하기도 애매한 상황. 시로네는 잠시 갈등하다가 결국 속삭이듯 대답을 내놓았다.
“아, 네. 그렇군요.”
“작년에 연구 발표회 때 봤거든. 그거, 귀신 소동. 나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 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진짜 기발하더라. 그때부터 완전히 팬 됐어.”
마야는 아직도 그날이 생생했다.
자정 종소리를 듣고 침대에 누웠는데 천장에서 귀신이 튀어나오자 얼마나 혼비백산했던가.
학생들을 따라 도망치다 보니 어느새 중앙공원이었다. 그리고 그때,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의 3인이 건물 옥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심리의 허점을 찌르는 발표에 얼마나 유쾌했는지, 웃다가 복통 경련까지 일어난 그녀였다.
“연극도 정말 재밌게 봤어. 여장 잘 어울리더라? 가슴에는 뭘 넣은 거야?”
스크리머가 인상을 쓰며 돌아봤다.
“어이, 마야. 지금 자기소개 중이잖아.”
“아, 미안. 너무 반가워서.”
“쳇, 하여튼 개념 없기는…….”
마야는 무안한 표정으로 시로네에게 혀를 삐죽 내밀었다.
아직까지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를 바라보는 클래스 투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언제나 꼴등을 도맡아 하니 개중에는 그녀를 졸업반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스크리머였다.
1순위 차이로 클래스 원에 진입하지 못한 그는 마야와 같은 클래스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조차 짜증이 났다.
우여곡절 끝에 자기소개가 끝나자 다시 기분이 좋아진 스크리머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 대충 얼굴은 익혔으니 그럼 이제부터 강철문의 전통 ‘진실의 용기’를 시작해 볼까?”
포니가 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전통은 무슨……. 질 떨어지게.”
“응? 진실의 용기?”
시로네가 눈썹을 올리고 설명을 기다리자 스크리머가 특유의 장황한 동작으로 입을 열었다.
“클래스 투에서 마주 보고 있는 상대에게 질문을 던질 거야. 예를 들어 가장 잘생긴 사람은? 이런 식이지. 그러면 너희는 우리 중에서 한 사람을 지목해 주면 돼.”
‘흐음, 그런 거란 말이지.’
신입생을 기죽이기에는 이보다 좋은 게 없었다.
예시는 가장 잘생긴 사람을 들었지만, 그런 훈훈한 질문을 던질 학생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그래서 에이미가 무조건 나를 고르라고 했구나.’
스크리머가 앳된 소년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이더, 네가 먼저 해라. 막내니까.”
“쳇, 여기서도 나이예요?”
아이더의 나이는 열일곱 살이었다. 작년에 에이미가 졸업반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얻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고양이처럼 큰 눈에 웃을 때 양쪽에 보조개가 들어가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고, 남자치고는 키가 작다는 것도 그런 느낌에 일조했다.
‘어째서 나이를 강조하지?’
시로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모두가 경쟁자인 졸업반에서 막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아이더는 살짝 투정을 부렸을 뿐 순순히 스크리머의 말에 따랐다.
‘막내라는 직함이 더 유용하기 때문이구나.’
어리다는 것을 인정하면 사소한 일에서 귀찮은 일이 생기겠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이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긴. 나조차도 아이더를 보면 방심이 되니까.’
아이더가 질문을 던질 상대는 아린이었다. 클래스 투의 학생들은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다름 아닌 초경의 아린이다. 어떤 질문을 던지든 재밌는 결과가 나올 터였다.
아이더는 생각에 골몰하다가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가장 못생긴 사람은 누구예요?”
“응?”
아린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자신은 사물의 형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또한 이런 정보는 학교에 다니면서 소문이 퍼졌기에 졸업반들도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클래스 투의 학생들은 절로 긴장이 되었다.
그녀의 눈에 못생겼다는 것은, 곧 내면의 일그러짐을 나타내는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못생긴 사람?”
“네. 어쩜 인간이 저렇게 생겼냐? 할 정도로 못생긴 사람을 고르면 돼요.”
“흐음.”
아린은 배시시 웃고 있는 아이더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클래스 투의 모두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몇몇 학생들이 그녀의 시선을 회피했다.
‘왜 이런 질문을 한 거지? 나를 떠보는 건가?’
아린은 검지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오른편에 있는 누군가를 가리켰다.
“너로 할게, 그럼.”
보는 것만으로 더위가 느껴질 만큼 뚱뚱한 학생이었다.
졸업반 행사인데도 손에 감자 칩 봉지를 들고 있는 걸 보아하니 먹을 것에 중독되어 있는 듯했다.
눈은 광댓살에 파묻혀서 가늘었고 머리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더벅머리였다.
펑퍼짐한 옷을 입었으면 그나마 괜찮으련만 몸의 굴곡이 드러나는 작은 옷을 입고 있어 보기에 민망했다.
‘루만이구나.’
졸업반 서열 13위인 루만.
전공은 트랩 마법으로, 계열은 군중 제어였다.
혼자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계열인 만큼 실력은 탁월해도 성격이 괴팍해서 늘 불리한 입장에 놓이는 그였다.
스크리머가 박자를 딱딱 끊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이야, 역시 여자의 눈은 예리하다니까. 초경이라도 외모는 귀신같이 맞히잖아. 아, 혹시 모르지. 외모가 거푸집이라면 그 안에 담긴 마음도 똑같이 생겼을지.”
학생들 중에서 몇몇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 가운데에는 클래스 스리의 보일도 있었다. 다만 그의 웃음에서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심리전은 시작되었고,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가기로 전략을 세운 듯했다.
놀림거리가 되었음에도 루만은 그저 감자 칩을 우걱우걱 씹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보일을 가리키며 물었다.
“근데 너는 왜 웃어? 웃으면 안 되는 거 아냐?”
보일이 과장스럽게 인상을 구겼다.
“뭐? 내가 비웃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상관은 없지. 근데 너도 뚱뚱하잖아. 네가 웃으면 그건 자기 비하가 되는 거 아닌가?”
황당하게 루만을 쳐다보던 보일은 언제나 어머니가 일러 주었던 대로 쏘아붙였다.
“나는 통통한 거고, 너는 뚱뚱한 거야. 엄연히 다르지. 나는 귀티가 흐르는 거고, 너는 그냥 돼지라고.”
루만은 입에 넣은 감자 칩을 잠시 씹지 않다가 다시 빠르게 턱을 놀렸다. 그것이 유일한 반응이었다.
졸업반 설명회(2)
진실의 용기가 시작되고 첫 질문이 끝났다. 그것만으로도 학생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오늘 나온 말은 다시는 꺼내지 않는 게 졸업반의 불문율이지만 당사자들은 감정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필사적으로 기 싸움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거구나. 모르고 당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시로네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에이미를 돌아보았다.
어떤 질문이 나오든 그녀만 지목하면 되니 초반부터 신경전에 휘말릴 위험은 사라진 셈이었다.
시로네와 눈을 마주친 에이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 또한 작년에 졸업반에서 이 과정을 거쳤다. 졸업반 새내기인 시로네에게는 황금보다 값진 도움이었다.
‘고마워, 에이미. 진짜로 고맙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심리적인 압박.
초반부터 경쟁자의 심리적인 견제를 피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졸업반에서 장점으로 작용할 터였다.
“하하, 좋아! 그럼 다음으로 넘어갈까? 이번엔 포니, 네가 하는 게 어때? 어차피 한 번은 해야 하는 거니까.”
포니는 얼음장 같은 얼굴을 고수한 채 맞은편에 서 있는 네이드에게 물었다.
“글쎄. 여기 와서 가장 먼저 본 사람이 누구야?”
심리전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싱거운 질문이었다. 그녀는 진실의 용기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했다.
스크리머가 실망한 듯 그녀를 돌아보았다.
“이봐, 고작 그거야? 좀 재밌게 해 보지.”
“됐어. 이런 거 유치해.”
네이드는 클래스 투의 면면을 확인했다. 어떤 질문이든 의미를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으나, 포니가 가볍게 물은 만큼 그도 솔직하게 누군가를 가리켰다.
“내가 가장 먼저 본 사람은 저 아저씨인데?”
네이드가 가리킨 사람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완벽한 곱슬머리에 오랫동안 태양에 노출되어 까무잡잡한 피부, 깡말라서 광대뼈가 도드라진 장신의 사내였다.
시로네는 네이드가 심리전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사실 자신도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눈길이 간 사람이었다.
‘피쇼구나.’
피쇼는 졸업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스물다섯 살이었고 외모로만 봤을 때 서른다섯 살은 되어 보였다.
전공은 인섹트 계열. 곤충을 다루는 마법으로, 다양한 마법 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위치였다.
인섹트 계열은 마법보다는 학문 쪽으로 발달한 분야라고 알고 있었다.
다른 계열과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만큼 전공자들도 대부분 학자로 전향하지만, 마법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훨씬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기에 스물다섯 살이 되도록 학교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질문만큼이나 시시한 결과에 스크리머는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가 분위기 반전을 위해 직접 나서기로 결심했다.
이제 막 졸업반에 들어온 신입생들을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이대로 날려 버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럼 이번에는 내가 질문하지.”
스크리머의 상대는 단테였다. 클래스 투와 클래스 스리의 1위인 만큼 대장전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무조건 이 녀석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너무 약해 빠져서 손가락 하나로 묵사발을 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 말이야.”
자신에게 한 질문이 아닌데도 시로네는 절로 긴장이 되었다.
누구를 지목하든 자존심이 뭉개질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단테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클래스 투의 학생들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지켜보았다. 어디 나를 고르기만 해 봐라 하는 얼굴들이었다.
“흐음, 이거 진짜 어려운데?”
스크리머가 특유의 붉은 혀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돼. 어떤 선택을 하든 절대 보복은 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니까.”
“그냥 클래스 투 전원이라고 하면 안 되나?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일 것 같은데.”
흥분으로 폭발할 것 같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클래스 투의 표정이 싸늘해지고, 시로네의 눈은 퀭해졌다.
한때 왕국 최고의 유망주였던 단테이기에 내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하여튼…… 네 성격도 대단하다, 진짜.’
스크리머는 흥분하지 않았다.
단테의 의도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모두에게 감정을 분산시켜서 오히려 적개심을 완화하려는 전략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 반드시 1명만 골라야 하거든. 그게 진실의 용기의 규칙이야.”
단테는 대수롭지 않게 스크리머를 가리켰다.
“그래? 그럼 너로 하지 뭐. 네가 클래스 투의 1등이니까, 널 고르면 다 내 아래겠네.”
‘이 자식이 진짜 미쳤나.’
이번만큼은 스크리머도 열이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에어하인 단테. 왕립 마법학교에서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던 제1의 유망주.
현재도 졸업 예정자 1순위를 꼽으라면 꼭 들어가는 인재 중의 인재였다.
하지만 그런 세간의 평가는 어디까지나 고급반의 기준에서였다.
강철문을 넘어서면 더 이상 고급반이 아니다.
제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한번 삐끗하면 나락으로 추락하는 게 고급반의 경쟁 체제였다.
‘이래서 애송이들이 싫다니까. 고급반에서 오냐오냐해 주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군.’
단테의 선전포고는 효과가 탁월했다. 능글맞게 웃고 있던 클래스 투의 얼굴이 비로소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내가 질문해도 돼?”
마야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딱히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스크리머는 마치 자신이 그럴 권리라도 가진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 봐.”
마야는 웃음살에 힘을 주며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질문을 기다리는 시로네는 침이 꼴깍 넘어갔다. 과연 무슨 질문을 할 것인가?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상황이 닥치자 심장이 빨리 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에이미만 선택하면 돼. 이미 약속된 상황이니까. 무슨 질문이 와도 부담은 없어.’
마야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지금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뽀뽀하고 싶은 여자는?”
“음…… 어?”
시로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번 것은 에이미도 예상치 못했는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시로네는 마야의 짓궂은 미소를 빤히 살폈다.
이건 대답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대답을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서 질문을 고른 것이다.
‘어떡하지? 그냥 다른 사람을 지목할까?’
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결국 기존의 전략을 고수하는 것보다 나은 해결책은 없는 듯했다.
“나, 나는…….”
시로네는 빨개진 얼굴을 숙이며 에이미를 가리켰다.
그러자 민망함을 견디지 못한 에이미가 살그머니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았다.
“우와아아아! 정말이네? 진짜로 사귀는 거였어요?”
아이더가 과장스럽게 호들갑을 떨며 시로네를 압박했다.
실제로 졸업반에서는 시로네와 에이미의 관계에 대해서 위장 연애가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졸업반에서는 교내 연애를 기피한다. 최종 10인 안에 연인끼리 손잡고 합격할 확률은 극히 적기 때문이다.
스크리머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야, 그래도 솔직히 지목하다니, 용기가 대단한데?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번 보여 주는 게 어때?”
시로네는 무시하고 마야를 돌아보았다. 그저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마야는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한 것일까?
이 순간이 지나가면 영원히 들을 기회가 없겠지만, 이런 질문은 신입생을 압박할 수도 없을뿐더러 딱히 그녀가 관심을 가질 만한 일도 아니었다.
진실의 용기는 계속 진행되었고, 마지막으로 루만이 이루키에게 질문할 차례가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감자 칩 한 봉지를 해치운 루만은 마지막 남은 부스러기까지 입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그럼 질문할게. 클래스 투에서 절대로 처녀가 아닐 것 같은 여자는 누구야?”
포니의 금색 눈썹이 사납게 기울어졌다.
“저질…….”
이래서 졸업반의 전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왕족인 자신이 어째서 이런 질문의 후보군이 되어야 하는가?
포니의 생각이야 어찌 됐건 루만은 성에 안 차는지 부연 설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