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08
‘10분 동안 너에 대한 모든 걸 샅샅이 파헤쳐 주마!’
그로부터 3분 후.
“페르미 승! 승점 3점 획득. 네이드 0점.”
페르미가 손부채로 얼굴을 식히며 말했다.
“휴우, 위험했네.”
말과 달리 이천번 훈련장을 내려가는 그의 얼굴에는 한 방울의 땀도 묻어 있지 않았다.
네이드는 이천번 훈련장의 중앙에 실 끊어진 인형처럼 무릎을 꿇고 있었다.
싱크로율이 80퍼센트인 덕분에 의식을 잃을 정도로 충격을 받지는 않았으나 심리적인 충격은 상당한 듯했다.
땅을 바라보는 네이드의 눈동자는 멍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시로네와 이루키가 황급히 달려왔다.
“야, 네이드, 괜찮아? 정신 좀 차려 봐.”
“완전 넋이 나갔어. 그냥 우리가 데려가자.”
네이드의 두 팔을 붙잡은 두 사람은 포대 자루처럼 질질 끌어서 이천번 훈련장을 벗어났다.
학생들이 폭소를 터뜨리는 가운데 에이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휴, 저 바보들…….’
우스운 꼴을 당하고 말았지만 네이드의 심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전투는 언뜻 격렬한 듯 보였으나 페르미의 정신력 게이지는 90퍼센트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유효타를 거의 허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페르미는 특별한 전공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규정 마법 36종만으로 네이드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네이드는 무엇에 당했는지도 정확히 짚어 내지 못할 터였다.
시로네는 걱정스럽게 네이드를 흔들었다.
“네이드, 정신 차려 봐. 괜찮은 거야?”
언제 그랬냐는 듯 네이드가 멀쩡하게 일어섰다.
“당연히 괜찮지. 설마 이 정도로 쓰러질까 봐?”
이루키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10분은 무조건 버틴다며?”
시로네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허술하게 대응한 거 아냐? 조금만 더 몰아붙여 보지. 그럼 유효타가 꽤나 들어갔을 텐데.”
네이드는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훈련장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페르미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시로네, 조심해라.”
“응?”
“저 녀석…… 진짜로 강하다.”
시로네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몰아붙였으면 네이드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 대결이었다.
방심했다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널 이겼으니까.”
발끈한 네이드의 눈에 불길이 피어올랐다.
“진짜라니까! 내가 그냥 진 걸로 보여?”
“알았어. 아무튼 1패에 너무 신경 쓰지 말자. 어쨌든 같은 상대와 두 번 대결은 없으니까. 너도 빨리 잊어버리고 내일 평가 때는 제대로 해.”
이루키는 시로네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가 봤을 때도 네이드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전투였다.
하지만 네이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희한하군. 이 녀석이 누군가를 강하다고 하다니.’
알고 지낸 지 6년 동안 처음 듣는 얘기였다.
하지만 네이드가 그렇게 말한다면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짐승의 후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난 느끼지 못했다. 결국, 내 인지적 영역 외라는 건가?’
졸업반 전원이 보는 앞에서 철저하게 실력을 감출 수 있는 경우라면 그것뿐이었다.
어쨌거나 네이드의 과거를 알 길이 없는 시로네는 그저 친구의 패배가 가슴 아플 뿐이었다.
네이드의 1패가 이루키의 승패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는 빠르게 분위기를 바꿨다.
“이루키, 너도 방심하지 마. 바인더가 두각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의외의 복병은 언제나 그런 쪽이니까.”
이루키는 언제나 그렇듯 마이 페이스였다.
“내 사전에 방심은 없어. 3분 안에 끝내 주지.”
‘그게 방심이잖아…….’
시로네의 생각은 이미 자리를 떠난 이루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이루키는 이천번의 중앙에서 바인더와 마주쳤다.
겉치레를 싫어하는 성격답게 그는 잠시 눈을 마주치고는 몸을 돌려 멀어져 갔다.
“이루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이다.”
이루키의 등에 대고 바인더가 말을 걸었다.
단지 말뿐이 아닌 듯 그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입꼬리는 비웃는 듯 올라가 있었다.
“영광?”
“메르코다인 알비노 님의 아들이잖아. 용뢰의 수장이신.”
이루키는 뒷짐을 진 채로 완전히 돌아섰다.
“그런 사람이 가끔 우리 집에 오고는 하지.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야?”
바인더가 자신을 가리켰다.
“내 고급반 이론 성적이 몇 점인지 알아? 100점이야. 알페아스 마법학교 역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기록이지. 그리고 아무도 내 기록을 깰 수 없어. 왜냐고? 100점이니까.”
이루키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나는 용뢰에 들어갈 거다. 아니, 언젠가는 반드시 용뢰의 수장이 될 거다.”
용뢰의 수장은 무려 300년 동안 메르코다인 가문이 독차지하고 있는 자리다.
그런 만큼 가문에서도 이루키를 차기 용뢰의 수장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바인더는 이루키가 아닌 메르코다인 가문에 정식으로 도전장을 던진 셈이었다.
“잘 들어라, 이루키. 왕국 최고의 지성은 네가 아닌 바로 나, 바인더가 될 거다.”
생각에 잠겨 있던 이루키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던 바인더는 예고조차 없이 상대가 다가오자 움찔 놀라며 물러섰다.
“뭐, 뭐야? 대결은 이천번이 가동된 후에…….”
이루키는 두 손을 빠르게 내밀어 바인더의 양팔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부탁한다.”
“……뭐?”
“제발 그래 주라. 태어날 때부터 들었던 말이라 이제는 지긋지긋하니까. 네가 우리 아버지를 끌어내리고 용뢰의 수장이 되는 거야. 응원할게. 파이팅.”
바인더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가 버리는 이루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분노에 불타는 눈빛이 되었다.
‘뭐? 태어날 때부터 들었던 말이라고? 지긋지긋해? 용뢰의 문턱이라도 넘어 보려고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피땀을 흘리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
바인더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1주 차부터 전력을 드러내는 건 싫지만 이루키라면 얘기가 다르다. 미래의 라이벌만큼은 확실히 박살 낼 생각이었다.
바인더는 이천번에 불이 들어오자마자 순간 이동으로 거리를 좁혔다.
이론 시험 100점의 전지는 모든 기본 마법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섬세하게 구사할 수 있게 했다.
파이어볼, 윈드커터, 아이스 스피어의 3종 세트가 번갈아 교차하며 날아들었다.
정신없이 밀어붙이는 공격에 이루키는 멀찌감치 거리를 벌리고 봄블렛 배리어를 발동했다.
소형 폭탄 수백 개가 구체의 막을 펼쳤다. 마법들이 폭탄에 처박히면서 연달아 폭음성이 터졌다.
“흥! 그건 이미 분석 끝났어!”
바인더는 검지를 내밀고 프레스 계열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에어 건을 난사했다.
시로네에게는 간담이 서늘한 마법이지만 가올드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력이 약했다.
다만 명중률은 제법이었다.
봄블렛 배리어의 치밀한 배치 사이를 뚫고 마법이 날아들자 이루키는 순간 이동으로 날아올랐다.
플라이 마법으로 변환하여 공중에 머물자 바인더가 눈을 빛내며 양손을 내밀었다.
“그럴 줄 알았지!”
손바닥 사이에 이글거리는 불의 구체가 뭉쳤다.
‘고작 전지만 완벽할 거라고 생각했냐? 사람 우습게 봐도 정도가 있지!’
바인더의 손에 플레임 스트라이크의 불꽃이 타올랐다.
화염 전공이 아니면 구사하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바인더의 완벽한 전지는 초급 퓨전 마법을 우습게 뛰어넘었다.
“이걸로 끝이다!”
확신을 가진 바인더는 손을 쭉 내뻗는 매지컬 액션까지 취하면서 필사의 마법을 시전했다.
“응?”
하지만 쏜살처럼 튀어 나가야 할 불덩어리는 그가 보는 앞에서 팍 하고 꺼져 버리고 말았다.
‘설마…… 캔슬레이션?’
목덜미 아래쪽으로 소름이 끼쳤다.
경쟁 체제 돌입(3)
이루키는 훈련장에 착지했다. 그리고 씩 하고 미소를 지으며 바인더에게 다가갔다.
“큭!”
물러서는 바인더를 보고도 이루키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미 모든 게 끝난 상황이었다.
“확실히 전지가 깔끔하네. 교과서 보는 기분이었어.”
캔슬레이션은 상대의 스피릿 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분석하여 모든 벡터량을 역순으로 되돌린다.
전능이 초기화되는 효과도 가히 엄청나지만 상대가 느끼는 굴욕감도 무시할 수 없는 마법이었다.
“웃기지 마! 내 전지는 완벽해!”
바인더는 질 수 없다는 듯 다시 마법을 시전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도하기도 전에 전능이 초기화되고 있었다.
“알아. 완벽하지. 완벽하다고.”
바인더의 윗입술이 고릴라처럼 말려 올라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렸다.
아래쪽에서 기폭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차!’
“괜찮아. 고작 10킬로버스터야.”
이루키가 뒤를 도는 것과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다.
이천번 시스템상 대인 전투는 ‘밀림’ 판정이 없기에 바인더는 날아가지 않았다. 다만 정신력 게이지가 쭉 밀려나 0을 찍을 뿐이었다.
방어 마법을 시전했으면 버틸 수 있었겠지만 캔슬레이션 앞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루키는 승리의 브이 자를 그리며 훈련장을 내려왔다.
한때는 패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야유를 받기도 했지만 졸업반에서 그를 비웃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첫날부터…… 캔슬레이션이라니.”
그들의 표정은 심각했다. 이루키는 구사할 수 있는 마법 중에 가장 강력한 무기를 공개한 셈이었다.
‘절대로 패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인가? 아니면 또 다른 마법이 준비되어 있는 것인가.’
막상 필살기를 당당하게 공개해 버리니 오히려 생각이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흐음…….”
페르미는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웃음을 지으며 동료에게 물었다.
“몇 초야?”
“2분 11초.”
“깨진 유리잔을 되돌리는 데 2분 11초라.”
바인더가 아무리 정석파라고 해도 졸업반 수준의 스피릿 존을 3분 내에 분석한다는 건 서번트의 두뇌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졸업 시험에서 대인 전투가 걸린다면, 저건 꽤나 까다롭겠군.’
사업에 관한 계산이 페르미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돌아갔다.
* * *
쿵 소리를 내며 숙소의 문이 닫혔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숙소로 돌아온 시로네는 흐느적거리며 침대로 쓰러졌다.
“으아, 힘들다. 너무 힘들어.”
어느덧 졸업반 일정도 4주 차에 접어들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 평가는 점심 무렵에 끝났지만 그렇더라도 쉴 틈은 없었다.
졸업반은 말 그대로 야생이었다.
어느 누구도 무언가를 가르쳐 주지 않았고, 원하는 게 있으면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시로네 또한 평가가 끝나면 친구들과 하루 종일 수련장에서 훈련을 이어 나갔다.
대인 전투는 여전히 승승장구 중이었고 인지 및 판단도 시로네에게는 유리한 종목이었다.
무시무시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도 그의 정신적 내구력은 흔들림이 없었고, 뛰어난 통찰에서 비롯된 판단으로 정확하게 생존의 출구를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도 한 가지 분야에 있어서는 프로 수준의 장기를 가지고 있었다.
용뢰를 목표로 하는 바인더는 전지 구현에서 만점을 받았고, 정신 활동성에서는 정신 계열의 아린과 조너인 도로시가 주목을 받았다.
피쇼처럼 독특한 전공을 가진 자는 주특기 강화에서 순조롭게 점수를 획득해 나가며 순위를 유지시키고 있었다.
따라서 벌써 여섯 가지 종목을 네 번이나 로테이션했음에도 순위의 변동 폭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힘드네.”
30주 일정을 감안하면 여전히 초반 레이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로네가 체감하는 피로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1점만 삐끗하면 순위가 추락하는 평가를 매일 치러야 한다. 거기에서 나오는 긴장감은 오후의 개인 훈련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숙소에 들어올 때는 아예 녹초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자고 싶다. 자고 싶다. 1시간만 자고 싶다.”
중얼거리는 것과 달리 시로네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른 학생들은 지금쯤이면 잠을 청해도 될 시간이지만 그에게는 또 하나의 과제가 있었다.
가올드가 내건 조건을 완수하는 것.
날마다 피나는 훈련을 하는 이유는 순위를 올리는 것에 더해 혹시 모를 천국행에서 개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개발해야 한다.
천국을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을.
“내가?”
졸업반 평가에 지쳐 허덕이는 자신이 말인가?
“하하!”
허탈한 웃음을 터뜨린 시로네는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한 달 동안 궁리하며 떠올랐던 아이디어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핵심으로 파고들지 못했기에 아직까지는 낙서에 불과했다.
‘오늘은 개념적으로 접근하자. 천국을 파괴하는 마법이라. 과연 어떤 것일까?’
일단은, 원거리 마법일 수밖에 없다.
광역 파괴 마법을 근거리에서 시전하면 그 여파로 마법사까지 죽게 될 테니까.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도 생각을 해 봐야 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