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1
목적지에 도착한 시로네는 앞으로 구르려는 상체를 황급히 붙잡았다.
“…….”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서 있었다. 이번만큼은 지독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헤헤, 해냈다.”
처음으로 성공한 마법치고는 맥 빠지는 반응이지만 이미 한계를 넘은 상태였다.
댕. 댕. 댕.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시로네는 선 자세 그대로 고꾸라졌다.
차가운 흙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해냈다고.’
30일 동안 순간 이동으로 전진한 거리는 고작 10미터.
‘이걸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건널 수 없는 다리의 700미터를 통과하려면 최소 70회의 순간 이동을 연계해야 한다.
더군다나 경주인 만큼 집중력도 엄청날뿐더러 스태미나도 관건이었다.
순간 이동을 1회 시전하는 것은 공격 마법 1회보다 훨씬 비효율적이었다.
단순히 10미터를 움직이고 싶은 거라면 빠르게 달리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핵심은 연계성이야.’
매번 같은 집중력으로 순간 이동을 시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소가 변하면 환경도 변하기에, 전지와 전능을 새롭게 일치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누워 있을 시간이 없어. 조금 더 연습해야 돼. 적어도 연계성을 보강해야…….’
의욕은 아직 넘쳤으나 육체적으로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의식이 심연으로 가라앉고, 시로네의 눈꺼풀이 스르륵 잠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테스트 날 아침이 찾아왔다.
***
마크는 창문을 열었다.
상쾌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그는 욕실로 들어가 세안을 했다.
옷을 갈아입는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드디어 오늘이네.’
그의 인생에서 역사적인 날이 될 터였다.
‘클래스 세븐에서 파이브로 고속 진급이라. 클래스 식스 놈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되는데?’
시로네 왕따 사건은 누구 하나의 잘못이 아니지만 그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건 사실이었다.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장한 그는 클래스 세븐을 덩치로 호령했다.
마법계에서 육체 능력은 중요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일단 크기에 주눅이 드는 법이다.
거기에 마법적 재능도 있으니, 누가 말하지 않아도 클래스 세븐의 대장은 마크라는 사고가 깔려 있었다.
“도련님, 기분은 어떠십니까?”
마크에게 순긴 이동을 개인 지도한 앙상한 체구의 남성이 방으로 들어왔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 가문에서 급하게 구인한 사람이지만, 공인 9급의 마법사인 데다 모사에 능하기 때문에 마크는 만족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아요. 시로네는 어떻게 하고 있어요?”
“여전합니다. 순간 이동이 공식화되어 있다고 한들 혼자서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진급 시험을 치른다고 해도 도련님의 상대는 되지 못할 겁니다.”
“흠,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되죠. 스피릿 존만큼은 나보다 크니까.”
마크는 자신의 말에 만족했다.
천재의 약점을 게으름이라고 하지만 그는 달랐다.
‘타고난 재능에 노력까지 하는 게 바로 나. 그딴 녀석에게 패할 리가 없지.’
마크가 물었다.
“그건 그렇고, 작전 참가조는 몇 명이죠?”
“어제까지 들은 바로는 4명입니다.”
“꽤나 적네요. 공인 마법사에게 개인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주제를 모르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죠. 어쩌면 알량한 자존심일 수도 있고요.”
마크는 이번 작전 참가를 거부한 동급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설마 너희들이 진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재능은 쥐뿔도 없는 것들이.’
마크는 거울 앞에서 웃었다.
‘알아서 하라지. 어차피 클래스 파이브로 가는 건 나, 슬라이더 마크니까.’
슬라이더 가문은 귀족 서열 제3계급으로, 마크의 아버지는 마법협회의 기술고문관이었다.
물론 알페아스 마법학교에는 더 강한 권력의 귀족들이 다수 버티고 있지만, 마법사회에 국한하자면 마크보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크는 그런 가문의 힘을 이용해 시로네를 방해하는 작전조를 편성했다.
자존심 강한 귀족들이 반칙성 계략에 따른 건 의외였으나 그의 제안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마법협회의 인맥을 동원해 공인 10급 마법사의 전담 교육을 받게 해 주겠다, 또한 졸업 여부와 상관없이 확실한 취직을 보장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제안을 받아들인 학생들은 나름대로 뛰어났고, 그렇기에 자신들의 위치를 명확히 깨닫고 있었다.
1명을 뽑는 테스트에 어설프게 참가하느니 거래에 응하는 게 현실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4명이면 충분해요. 초반에 밟아 버릴 테니까.”
“순간 이동 성과는 어떻습니까?”
마크는 문밖으로 나가기 전 돌아보며 엄지를 세웠다.
“완벽해요. 700미터는 눈 감고 건너 드리죠.”
“건승을 빕니다, 도련님.”
계약이 끝난 시점에도 공인 9급의 마법사는 마크를 깍듯하게 대우했다.
학번으로는 10년이나 후배지만 마크의 아버지는 그에게 하늘 같은 상관이었다.
마크는 고급반 건물로 향했다.
진급 시험이 있는 날이라 수업은 없었고, 응시하지 않은 학생만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시험을 치를 자격조차 얻지 못한 자괴감 때문인지 대부분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크는 우월감을 만끽했다.
‘멍청한 놈들. 하긴, 여기 남은 것들이 나중에 사회에서 내 구두나 닦는 거겠지.’
저 멀리 마리아가 보이자 손을 들고 소리쳤다.
“여어, 너도 시험 포기야?”
마리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필이면…….’
시로네 왕따 사건을 시이나에게 털어 놓은 이후로 더욱 소심해진 그녀였다.
겁에 질린 마리아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마크, 실습장에 안 갔어? 너도 자습하려고?”
“하하! 그럴 리가 있겠어? 내가 너랑 똑같은 인간도 아닌데 말이야. 일이 좀 있어서.”
네 살이나 어린 학생에게 하대를 당하지만 이젠 기분 나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는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하냐? 오늘 하루 공부 좀 더 한다고 뭐가 달라져? 그러니까 성적이 안 나오지. 실습장에 올라와서 견학을 하라고, 견학을. 잘하는 사람을 보고 배우는 것도 공부야.”
“응, 그렇지…….”
마크의 거만한 훈계를 듣고서도 마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짓는 게 전부였다.
그저 빨리 대화를 끝내고만 싶었다.
“그럼 힘내. 꼭 합격하길 바랄게.”
“킥! 정말 그렇게 생각해?”
마크의 비소에 마리아는 심장이 굳었다. 마치 자신의 일을 아는 듯했다.
“지금까지는 동급생이라 참아 준 거야. 내가 선배가 되면 그때는 각오해 두라고. 선생님에게 고자질한 일은 잊지 않고 있을 테니까.”
“그, 그걸 어떻게?”
지레 놀란 마리아는 실수를 깨닫고 입을 가렸다.
“하하! 그럴 줄 알았지. 다 정보가 들어온다고. 너처럼 소심한 애가 갑자기 교무실을 찾는다는 건 분명 뭔가 일이 있다는 거거든. 아무튼 기대해도 좋아.”
마리아는 현기증을 느꼈다.
‘마크가 이번 테스트에 합격하면…….’
그때는 차라리 학교를 떠나는 게 나을 정도로 지독한 시달림을 받을 터였다.
마리아가 입을 다문 채 오들오들 떨자 마크는 콧방귀를 뀌며 지나쳤다.
‘잔뜩 쫄아 가지고. 저래 가지고 무슨 마법사가 돼? 하긴, 덕분에 나에게도 기회가 생겼지만.’
그런 생각으로 교실로 들어가자 텅 빈 강의실에 4명의 동급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가 셋, 여자가 하나.
시로네를 방해하기 위해 한 달 동안 합을 맞추며 훈련을 한 자들이었다.
‘초반에 떨어뜨려야 해.’
고의적인 충돌은 분명 반칙이지만 초반의 아수라장에서는 구분하기 쉽지 않을 터였다.
“어때, 작전은 제대로 세웠겠지?”
여자가 답했다.
“응. 출발하자마자 두 사람이 먼저 시로네에게 붙을 거야. 그사이에 남은 두 사람이 너를 엄호할 거고. 거기서 시로네가 더 치고 나온다면 최후의 방법을 써야겠지.”
거리로 따졌을 때 시로네를 탈락시킬 기회는 고작해야 두 번 정도일 것이다.
마크가 말했다.
“시로네의 1회 도약 거리는 정석이라 불리는 10미터야. 첩보로 얻은 사실이니 확실해. 100미터 안에 승부를 본다면, 초반 10회 이내에 성공시켜야 해.”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맡겨 둬. 확실히 할 테니까.”
“오늘의 도움은 잊지 않을 거야. 내가 조기 진급하면 너희들을 이끌어 주지.”
“그래. 우리는 너만 믿고 있을게.”
마크는 만족스러웠다.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고, 자랑스러운 조기 진급의 주인공은 자신이 될 터였다.
“좋아! 출발해 볼까?”
순간 이동(5)
***
순간 이동 실습장.
해발 1천 미터의 봉우리에 학생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클래스 세븐은 물론이고 상위 클래스의 학생들까지 잔뜩 모인 상황이었다.
오늘이 지나면 클래스 세븐에서 1명의 학생이 클래스 파이브로 진급한다.
보통 하나의 클래스를 넘는 데 평균 2년이 걸리는 걸 감안하면 최악의 경우 네 살 이상 어린 학생이 동급생으로 올라오게 된다는 얘기였다.
“우와! 여기가 건널 수 없는 다리구나. 처음 와 봐.”
진급 시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실습장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혀를 내둘렀다.
700미터 떨어진 봉우리에 있는 교사들과 선배들이 점처럼 작게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 건널 수 없는 다리지? 다리가 없잖아?”
“바보야, 저길 봐.”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것은 팔뚝 두께의 가느다란 봉이었다.
길이가 길수록 장력은 떨어지기에, 700미터짜리 철봉이 직선으로 뻗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학생들은 단순한 재질이 아님을 직감했다.
몇몇 학생들이 절벽 쪽으로 다가가 아래를 살폈으나 안전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걱정할 필요 없단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조금 전만 해도 반대편 봉우리에 있었던 사드가 어느새 학생들 뒤편에 서 있었다.
참가자 중의 1명이 물었다.
“하지만 다른 학교에서는 순간 이동 실습 중에 사망자가 나온 적도 있다고…….”
“물론 그렇지. 하지만 마법학교의 모든 교과과정에서 사망자가 나올 수 있지. 그건 직접 수업을 받는 너희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걱정하지 말라는 건 추락사야. 실제로 타 학교에서 벌어졌던 일도, 떨어져서 죽은 게 아니라 학생 간에 충돌이 일어났기 때문이니까.”
“그, 그럼 우리끼리 충돌할 경우는 위험하다는 뜻인가요?”
사드의 표정이 냉엄해졌다.
“무서우면 포기해도 좋다.”
“…….”
“더 노련하게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지 훈련을 거듭한 다음 도전하는 것도 좋겠지. 아니, 학교 입장에서는 오히려 권장하는 바야. 하지만 이건 조기 진급 테스트란다. 자신의 몸 정도는 지킬 수 있는 수준, 즉 클래스 파이브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을 뽑는 거지. 만약 각오가 부족했다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렴.”
참가자 중에서 포기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눈빛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돌아서는 사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흐흐, 완전히 얼었네.’
교사들이 참관하는 만큼 위험한 일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첫 실전 테스트였다.
‘긴장도를 바짝 높여 두면 안전사고는 일어나지 않아. 정말로 위험한 건…….’
공포를 이긴 맹수들의 투쟁심이었다.
“후우.”
사드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벌써 몇 놈이 보이는군.”
한편 건너편 봉우리로 모여드는 학생들 중에는 교내 유명 인사도 있었다.
“후우, 여기 진짜 오랜만에 온다. 에이미, 저쪽으로 가자. 저기가 제일 잘 보여.”
세리엘이 손을 잡아끌자 에이미는 못내 싫은 기색을 하면서도 순순히 따라갔다.
“보고 싶지 않다니까. 클래스 세븐 수준이야 뻔한데, 이럴 시간 없어.”
“어머, 얘는! 남자 친구가 당당하게 클래스 파이브에 오르는 날인데 무슨 소리야? 이런 날에 애인이 응원해 주지 않으면 언제 점수를 따겠어?”
“쳇! 응원을 하나 마나 합격할 놈은 합격하고 떨어질 놈은 떨어지는 거지, 무슨.”
대범한 척하는 에이미였지만 솔직한 마음은 누구보다 결과가 궁금했다.
과연 시로네는 한 달 사이에 순간 이동의 수준을 얼마나 끌어올렸을까?
‘아니, 할 수 있기는 한 거야?’
순간 이동을 익히는 데에는 실전 연습이 최고지만, 과정이 워낙 고통스럽기에 몸을 지킬 수 있을 무렵부터 시작하는 게 정석이었다.
물론 에이미는 맨땅에 헤딩하는 타입이었고 스키마 덕분에 크게 힘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로네는 아니겠지. 그렇다고 포기할 성격은 더더욱 아니고. 컨디션이 괜찮아야 할 텐데.’
아직 나이가 어릴 뿐, 클래스 세븐에도 주목할 만한 재능이 제법 있었다.
‘누가 탈락해도 이상하지 않아.’
“어? 그런데 시로네가 아직 안 온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여.”
세리엘이 고개를 갸웃하자 에이미가 그녀의 망원경을 뺏어 들고 살폈다.
20명의 학생들이 벼랑 근처에서 몸을 푸는 가운데 시로네만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마법 구현에 실패한 건 아니겠지?”
“…….”
장담할 수 없었다.
시로네라서 믿고 맡긴 것이지만, 사실 마법의 초심자가 독학으로 익힐 만큼 쉬운 마법이 아니었다.
에이미는 이를 악물었다.
‘이 멍청이! 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