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10
‘50퍼센트라면 죽어도 같이 죽자.’
판도라가 청색 팀을 선택할 무렵에는 어느 정도 팀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역시나 평가에서 높은 성적을 내지 못한 학생들이 마지막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그중의 한 사람이 마야였다.
졸업반에 오래 몸담았기에 페르미 쪽으로 붙는 게 유리하다는 사실 정도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으음, 아무래도…….’
마야는 페르미가 있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자 청색 팀에 가 있는 스크리머가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야, 너 설마 여기 오려는 거야?”
콜리가 엄중하게 일렀다.
“스크리머, 팀 선택에서 외압은 금지다.”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요.”
“경고다. 한 번 더 경고를 받으면 탈락이다.”
“쳇!”
스크리머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것 또한 계산의 일환이었다.
마야는 경고 한 번으로 밀어낼 가치가 있다.
여태까지 전략 전술에서 계속 마야랑 같은 조가 되는 바람에 점수 손해가 막심한 그였다.
여기서 같은 팀이 되면 이기든 지든 점수 차는 그대로라 전략 전술에서 한 조가 되는 걸 피하지 못한다.
반면에 팀이 나뉠 경우, 그리고 자신이 승리했을 경우 무려 40점의 격차가 벌어지게 되니 지긋지긋한 마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제발 여기서 찢어지자. 너는 클래스 스리로, 나는 클래스 원으로 가자고.’
마야는 의기소침해 있다가 적색 팀으로 걸음을 옮겼다.
외압까지는 아니었다고 해도 스크리머의 적대적인 태도를 보고 한 팀이 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시로네에게 다가갔다.
가장 먼저 적색 팀을 고른 사람이니 시로네의 팀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었다.
“나, 받아 줄 수 있어?”
시로네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1명이라도 많은 게 유리하니까. 그리고 내가 받아 주는 게 아니라 네가 우리 팀을 선택한 거야.”
이루키와 네이드가 좌우로 물러서서 들어오라는 듯 자리를 내주었다.
스크리머의 심술에 화가 난 것도 있지만 그녀에게 소속감을 심어 주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극기는 심리에 좌우되지. 1명이라도 더 오래 버텨 주는 게 중요하니까.’
결국에는 내구력이 강한 자들이 남겠지만 팀원과 함께 있다는 건 그 자체로도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나도 이쪽으로 갈래.”
도로시가 졸린 눈으로 적색 팀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루만이 따르고, 소심한 수아비도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호오, 이건 의외네?’
네이드는 막 들어온 세 사람을 곁눈질로 살폈다.
시로네를 달가워하지 않는 루만이 적색 팀을 선택했다는 것은 판단의 동기가 도로시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루만이 그나마 친하게 지내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도로시이기는 하지만, 결정 장애처럼 우유부단한 수아비까지 즉각 동참했다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었다.
‘클래스 투의 몇몇은 도로시의 판단에 상당한 신뢰감을 갖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정말 이루키의 말대로 두뇌파라는 건가?’
모두가 팀을 고른 가운데 아이더만 남았다.
막내라서 곤란한 건 이런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형들과 누나들이 양 팀으로 갈라져 있어서 어디에 적을 두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흐음, 어느 쪽으로 가야 줄 잘 섰다고 소문이 날까.’
시로네가 선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팀으로서 신뢰감을 느낀 아이더 또한 웃음기를 머금으며 냅다 그곳으로 뛰었다.
“흠! 흠!”
그때 스크리머가 입을 막고 헛기침을 했다.
한 번 더 경고를 받으면 탈락이기에 소리로 신호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는지 아이더가 고개를 돌렸다.
콜리의 눈이 예리하게 좌중을 살피고 있기에 스크리머는 딴청을 부리며 시간을 끌었다.
‘스크리머 형…….’
졸업반에서 아이더를 가장 부려 먹는 사람은 스크리머였다.
하지만 그런 만큼 챙겨 주는 것도 많아서, 절대 밉보여서는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생각을 바꾼 아이더는 적색 팀 모두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방향을 틀어 청색 팀으로 달려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 팀 바꿀게요.”
콜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심증만으로 경고를 줄 수는 없었기에 결국 그것으로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공교롭게도 적색 팀과 청색 팀의 구성원은 15 대 15로 정확히 반반이었다.
‘흐음, 박빙이라. 꽤나 오랜만이군.’
아니, 페르미가 생존 테스트에서 두각을 드러낸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로네의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는 건가.’
고급반과 졸업반은 엄연히 다른 세계지만 왕국 제1의 유망주라는 칭호는 역시나 강력했다.
전 최강이었던 단테를 꺾고 차지한 칭호라는 것도 한몫을 했을 터였다.
“팀이 결정되었으니 버추얼 존으로 입장하도록.”
30명이 떼를 지어 버추얼 존의 중앙으로 자리를 옮기자 콜리가 그들을 뒤따르며 설명했다.
“모두 잘 들어라. 목숨과 직결된 문제니까.”
생존 테스트가 처음인 클래스 스리의 학생들이 유독 긴장한 표정이었다.
“버추얼 존은 이천번이 아니다. 정보를 안티매직으로 변환하여 전달하는 게 아니란 뜻이다. 바닥에 새겨진 룬문자는 정교한 마도공학의 기술을 빌려 너희의 스피릿 존에 특정 감각을 실제처럼 주입한다.”
육체가 정신의 지배하에 있다면 상온의 냉동 창고에 갇힌 사람이 얼어 죽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극도로 예민한 정신 상태인 스피릿 존에 직접 정보를 때려 넣는 방식이었다.
“아무리 가상이라도 정신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거다. 일단 생존 테스트에 들어가면 너희의 뇌는 쇼크에 의해 반수 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버추얼 존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할 거다.”
클래스 스리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특히나 4단계 이상부터는 정말 위험하고, 그래서 교사들도 비전을 통해 너희의 상태를 확인할 것이다. 하지만 레드 라인 공식 평가인 만큼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나서서 구해 줄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콜리가 검지 2개를 펼쳤다.
“너희가 버추얼 존을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스피릿 존을 해제한다. 둘째, 만의 하나 스피릿 존의 해제가 불가능할 경우 ‘토아코’라고 외쳐라. 반드시 기억해. 토아코다.”
토아코는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은 단어로, 생존 테스트를 위해 임의로 만든 암호였다.
의미 있는 단어를 사용하면 테스트 상황에서 악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토아코가 아닌 단어에 교사들은 절대로 반응하지 않는다. 살려 주세요, 포기합니다, 버추얼 존이 이상해요, 등 어떠한 말을 해도 너희를 구해 줄 수 없다는 뜻이다.”
졸업반의 모든 학생들이 비장한 눈빛을 드러냈다.
“당부하고 싶은 건, 최선은 다해도 고집은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건 예행연습일 뿐이다. 또한 버추얼 존에서 나온 뒤에 이상이 느껴질 경우 바로 말해서 정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모두 숙지했나?”
“네!”
학생들의 목소리가 훈련장의 산맥을 타고 메아리쳤다.
생존의 의미(3)
콜리가 버추얼 존을 내려가고 30명의 학생들은 적색 팀과 청색 팀으로 나누어 섰다.
시로네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었다.
생존 평가는 사람하고 싸우는 대인 전투도, 몬스터와 싸우는 전략 전술도 아니다.
대자연을 상대로 이길 방법은 없다.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고, 이제 그 고통이 닥치기까지 10초가 남았다.
그래서인지 작년에 경험한 몇몇 학생들은 벌써부터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있었다.
‘젠장. 이것만 아니면 졸업반 10년이라도 다니겠어.’
졸업반 학생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종목 1순위.
그것이 바로 생존 테스트였다.
-버추얼 존에 정보를 전송합니다. 대기 시간 5초. 4초. 3초…….
여자의 안내 음성이 들리자 눈을 질끈 감는 학생, 어깨와 목을 푸는 학생, 담담한 표정으로 정신을 안정시키는 학생 등 제각각의 군상이 드러났다.
시로네 또한 정면을 응시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팔을 쳤다. 이루키였다.
“살아서 보자, 시로네.”
-데이터 전송 완료. 버추얼 존 가상 혹한 프로그램을 가동합니다.
씁쓸하게 웃고 있는 이루키의 얼굴 너머로 풍경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버추얼 존의 풍경이 그림책을 넘기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설산의 정상이 나타났다.
시로네는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코로 들어오고, 사방에 깔린 눈은 햇살에 반사되어 광채를 내고 있었다.
하늘이 손에 닿을 만큼 가깝다.
장벽처럼 주위를 휘감고 있는 설산들이 마치 암석에 연유를 부은 듯 선명한 색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가…… 생존 1단계?”
클래스 투 이상의 학생들이라도 평가 때마다 생존 프로그램이 재설정되기 때문에 상황 자체는 처음이었다.
이루키가 뒤를 돌아보며 손가락을 들었다.
“저기서부터 시작이군.”
그곳을 돌아본 시로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생전 처음 보는, 그리고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연기가 느리게 내려오고 있었다.
눈사태였다.
“이런 젠장!”
보일과 판도라 등 다수의 학생들이 순간 이동을 시전하여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시로네를 포함한 몇몇은, 그저 서 있었다.
눈사태의 접근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느리다. 엄청난 높이에서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거대하게 보인다는 것은 결국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눈이 밀려들고 있다는 얘기였다.
“피하라고 만든 상황이 아니야…….”
쿠우우우우우웅!
천문학적인 질량의 눈덩어리가 정상에 내려앉으면서 공기를 바깥으로 밀었다.
뺨이 뜯겨 나갈 듯한 강풍이 몰아치더니 무려 300미터 높이의 눈 폭풍이 0.1초 만에 정상을 쓸어 담았다.
“크으윽!”
시로네는 이를 악물며 정신을 다잡았다.
급류보다 빠르게 흐르는 눈사태가 그를 가차 없이 정상 밖으로 밀어냈다.
‘안 돼! 정신 차리자!’
입으로 쳐들어오는 눈을 그대로 삼키며, 시로네는 눈덩어리를 헤치고 나아갔다.
“푸하!”
눈덩어리는 빙산보다 거대했고, 땅이 보이지 않는 아래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 눈덩어리의 꼭대기에서 시로네가 얼굴을 팍 하고 내밀었다.
“푸하! 푸하!”
입속의 것을 전부 뱉어 내고 눈을 뜨자 동그란 태양이 맑은 하늘에 박혀 있었다.
하늘로 날아오른 시로네는 플라이 마법을 유지한 상태로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시로네와 같은 판단을 내린 학생들이 하나둘씩 추락하는 눈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시로네!”
이루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얼굴과 온몸에 덕지덕지 눈을 묻힌 그가 아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일단 천천히 내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 폭포가 이루키를 삼켰다.
놀란 시로네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하얀 눈으로 완전히 가로막혀 있었다.
“진짜 미치겠……!”
시로네가 있던 자리에 백색 급류가 흘렀다.
“으아아, 으아아아…….”
“아파…… 사람 살려…….”
콜리는 버추얼 존을 굴러다니는 학생들을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눈사태에 휩쓸리는 것을 기점으로 30명 전원 예외 없이 반수 상태에 빠져든 상태였다.
‘얼마나 힘들꼬. 귀하게 자란 아이들이거늘.’
승패는 최종 승리자의 손에 달려 있지만, 그런 이유로 평가를 쉽게 포기할 학생은 없었다.
팀이 아닌 개인의 성취도도 협회와 스카우트에게 공개되는 만큼 어떻게든 사력을 다해 버티려고 할 것이다.
‘어쩌면 평생 겪을 필요 없는 상황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희가 살아갈 세상은 그곳보다 더욱 가혹하단다. 단지 현실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은 지옥이 되는 것이니까.’
“벌써 시작한 모양이로군.”
콜리는 황급히 뒷짐을 풀고 돌아섰다.
“교장 선생님.”
알페아스가 올리비아 교감을 대동하고 버추얼 존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반수 상태에 들어갔구먼. 하긴, 당연한 일이지.”
“프로들도 질색을 하지 않습니까. 졸업생 티오가 적은 비명문은 채택하지도 않는 종목입니다.”
생존 평가는 협회에서도 말이 많이 나오는 종목이다.
실전 능력을 평가하는 것도 좋지만, 학생들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망가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졸업을 하지 못한 학생들도 장기적으로는 사회의 구성원이 될 소중한 인재들이다. 마법 상점을 열고, 교사가 되고, 치안대에 들어가고, 길드에서 의뢰를 수행하고, 행정기관에서 민원을 보는 마법사가 없다면 마법사회는 돌아갈 수가 없다.
그렇기에 협회에서는 열 장 이상의 졸업 티켓을 부여받는 5대 명문에 한해서 생존 평가를 실시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선택받은 자만이 치르는 만큼 졸업생 동창회에서 빠지지 않고 술안줏거리가 되는 종목이 생존이었다.
학창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해 보라면 치를 떨겠지만, 그런 감정 또한 명문 학교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올리비아가 물었다.
“올해 협회에서 제공한 프로그램이죠? 현재 1단계 ‘설극’인가요?”
“네. 이제 2분 남았습니다. 학생들에게는 2시간처럼 느껴지겠지만요.”
올리비아의 미간이 언짢게 좁혀졌다.
“그런데 탈락자가 1명도 없네요. 이래서는 저득점자들 간의 변별력이 떨어지는데. 앞으로는 난이도를 더 올려 달라고 건의를 해야겠어요.”
알페아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교사회의 감사께서는 제자들에게 더욱 멋진 훈장을 달아 주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크으으윽!”
눈앞으로 들이닥치는 암석을 발견한 시로네는 두 팔로 얼굴을 가린 채로 추락했다.
짜릿한 통증이 팔뼈를 울리고 코가 시큰했다. 머리 위로 눈덩어리가 퍽 하고 그를 때렸다.
정상에서 상당히 내려온 지점이라 눈의 양도 사람을 압사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골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팔, 팔이 부러졌어.’
에어 실드로 몸을 감쌌는데도 충격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떨어졌다.
암석 위에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자 뾰족하게 부러진 팔뼈가 피부를 뚫고 나와 있었다.
가상의 세계라 조만간 재구성되겠지만 신경을 타고 전해지는 고통은 현실보다 짜증 났다.
“후우! 후우! 후우!”
떨어진 장소는 절벽 중턱에 돌출된 암반 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