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11
차라리 이걸로 됐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 1단계가 끝나기를 바랐다.
쩍. 쩌저적.
그런 생각을 조롱하듯 암벽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붕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로네는 부러진 팔을 붙잡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흐흐, 흐흐흐.”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게 정규 종목이라고? 사람 잡을 일 있나?’
만약 졸업 시험에서 생존 종목이 채택된다면 학생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이 갔다.
새삼 세상 모든 졸업자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그래, 어디 한번 끝까지 가 보자.”
시로네는 독기에 차오른 눈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암벽이 끊어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 * *
풍덩!
‘뭐지?’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들은 시로네는 눈을 떴다.
정신을 깨트릴 듯한 차가움이 느껴졌다. 이어서 피아를 가리지 않고 학생들이 포말을 일으키며 가라앉고 있었다.
‘여기가 2단계인가?’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반수 상태에 들어간 자들은 느낄 수 없었다.
정신을 회복시킬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째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지?’
스피릿 존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물론 이 세계가 가상이기에 실제로 마법이 차단된 것은 아닐 터였다.
‘일단 올라가자.’
시로네는 개구리처럼 허우적대며 수면으로 향했다. 물속에서 더 버티다가는 얼어 죽을 것 같았다.
수면 근처에서 손을 내미는 순간 시로네의 눈동자가 충격에 흔들렸다.
올라갈 수 없었다.
만져지는 건 차갑고 단단한 빙벽이었다.
‘뭐야, 그럼 어떻게 나가지?’
빙상 위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보였다. 조금 더 올라가 눈을 가져다 대자 어린 소년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나가야 돼. 슬슬 숨이 막히고 있어.’
구조 요청을 하듯 주먹으로 빙벽을 두들겼다.
한참 쳐다보던 소년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저기로 나가면 된다고?’
시로네는 확인 삼아 검지로 방향을 콕콕 찔렀다.
소년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직접 알려 주겠다는 듯 그곳으로 향했다.
시로네는 빙벽을 밀면서 소년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차가운 물은 그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큰일인데. 이제는 못 버티겠어.’
지금 당장이라도 도착해서 마음껏 공기를 마시고 싶다. 하지만 소년의 걸음걸이는 지독히도 느렸다.
‘빨리! 빨리! 더 이상…….’
의지로 숨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그저 공기가 없어서 마시지 못하는 것뿐이다.
추위와 죽음의 공포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마침내 소년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시로네를 내려다보며 두어 걸음 떨어진 장소를 가리켰다.
‘저기구나!’
시로네는 온 힘을 다해 자맥질을 했다. 앞으로 3미터밖에 남지 않은 거리인데도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됐다! 드디어……!’
시로네는 터질 것 같은 환희를 느끼며 출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턱.
단단한 빙벽이 또다시 그를 가로막았다.
‘뭐……?’
머릿속이 창백해졌다. 시로네는 빙상 위의 소년에게 눈빛으로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소년이 배를 잡고 깔깔대더니 시로네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메롱 하고 혀를 내밀었다.
꺼럭!
시로네의 입에서 공기가 한 움큼 올라왔다.
‘안 돼. 침착하자.’
정신을 불태우는 분노를 황급히 억제했다.
맑은 공기로 가득한 곳에서 혀를 들락거리며 약을 올리는 소년은 지독히 증오스러웠다. 하지만 화를 낸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다시 가르쳐 줘. 출구가 어디야?’
시로네는 간절한 눈으로 빙벽을 두드렸다.
1초가 급한 사람을 발아래에 두고도 소년은 고민하듯 턱을 쓰다듬었다.
시로네의 머리가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야. 냉정을 잃으면 끝이야.’
소년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시로네를 돌아보며 가르쳐 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분노를 다스려. 나는 마법사야.’
시로네의 동공에 생명의 빛이 꺼져 갔다. 산소가 머리로 전달되지 못하면서 신체 기관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분노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 죽는 그 순간까지…… 이성을 놓으면 안…….’
꾸르륵!
장기에 있던 공기 방울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빠져나온 공기만큼 위장 속으로 차가운 물이 흘러들었다.
세포가 얼어붙는 듯했다.
자맥질이 멈추고, 빙벽에 닿아 있던 손바닥이 굳은 채로 천천히 떨어져 나왔다.
가라앉는 그의 눈에 웃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소년은 심연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시로네의 얼굴을 빤히 살폈다.
그러다가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디에서 났는지 모를 삼지창을 번쩍 치켜들었다.
콰아아아앙!
일격에 빙벽이 깨졌다.
그 광경이 시로네의 죽은 눈에 담겼다.
얼어붙은 신경이 그 사실을 느리게 뇌로 전달하자 두 다리가 다시 흔들리고 몸이 조금씩 떠올랐다.
“푸하으아아! 끄어! 끄어어어어!”
수면 위로 올라온 시로네는 무작정 공기를 빨아들였다. 지금 당장은 그것 외에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허억! 허억!”
1분 정도가 지나자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빙상은 평화로웠고, 소년의 모습 또한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푸하! 푸하!”
학생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는 에이미도 보였다.
‘통과했구나.’
에이미는 죽음을 눈앞에 둔 표정으로 연거푸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다가 뒤늦게 시로네를 발견하고 눈을 마주쳤다.
미소를 지으며 반긴 그녀는 훅 하고 공기를 불어 젖은 머릿결을 띄웠다.
“하하!”
시로네는 웃었다. 정말 먹고살기 힘들다.
그리고 그것이 2단계 ‘빙옥’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생존의 의미(4)
* * *
3단계 강독.
지평선 끝까지 늪지대가 퍼져 있는 장소였다.
처음에는 모두 플라이 마법으로 공중에 대기했으나 늪에서 올라오는 맹독 가스를 마시고 하나둘씩 늪으로 추락했다.
강독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늪에 빠진 학생들은 원래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뒤틀린 표정으로 악을 질러 댔다.
모르긴 해도 끔찍한 고통인 게 분명했다.
하늘에 떠 있는 학생들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어차피 저기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협회는 생존 프로그램을 통해 전하고 있다.
대자연의 힘은 마법으로 이길 수 없다고. 끝까지 생존하는 힘은 마법이 아닌 마법사의 의지에 있다고.
공중에 있는 학생들이 구토를 시작했다.
늪에 빠진 학생들이 그것을 맞고 있지만, 이미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조차 할 정신이 아니었다.
“하아.”
네이드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중심이 기울어지는 그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따가 보자, 시로네.”
네이드가 추락하는 것을 기점으로 속속들이 학생들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시로네 또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었다. 고꾸라지는 그의 입에서 비몽사몽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래……. 네이드.”
* * *
생존에서 탈락한 학생들이 하나둘씩 버추얼 존 밖으로 기어 나왔다.
미리 준비한 얼음 수건을 머리에 댄 그들은 장치에서 떨어진 곳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버추얼 존의 계기판을 확인한 콜리가 말했다.
“혹한 3단계, 강독이 종료되었습니다. 현재 생존자는 적색 팀 8명, 청색 팀 7명입니다.”
올리비아가 말했다.
“흐음, 의외로 많이 살아남았네요? 확실히 올해 졸업반은 수준이 높군요.”
“클래스 스리에 쟁쟁한 애들이 모인 데다 페르미 일행도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물론 클래스 투에도 어설픈 애들은 없습니다.”
알페아스가 말했다.
“4단계…… ‘절사’인가? 여기서 승부의 추가 기울겠군.”
마법협회에서 공인 마법사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난이도가 바로 4단계였다.
이곳에서는 그저 고통이 아닌, 실제의 죽음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수십 번.
* * *
휘오오오오오!
심연에서 토해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시로네는 끝없이 추락하는 중이었다.
여태까지 극한의 자연환경을 경험했다면 4단계는 기계적인 공간이었다.
바닥의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거대한 굴뚝 내부였다.
수백수천 개의 칼날이 빠져나갈 틈이 없이 치열하게 회전하며 학생들을 토막 내고 있었다.
죽음은 적응 불가능한 성질의 것이었다.
끔찍하고 비극적인 감정이 머릿속을 강타할 때마다 스피릿 존이 파괴되면서 탈락자들이 속출했다.
시로네는 이를 질끈 깨물었다.
대략 열 번 정도 토막이 나고 재구성이 되었을까? 마치 ‘이래도 버틸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거대한 칼날이 쟁반처럼 잔상을 그리며 기다리고 있다. 살아서 통과할 방법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버틴다! 버틴다!’
시로네는 순식간에 칼날의 잔상을 관통했다. 다만 그의 몸은 이미 세 토막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얼굴보다 먼저 떨어지는 두 다리를 바라보는 기분은 과연 무엇이라 말을 해야 할까?
죽은 사람은 있어도 죽어 본 사람은 없기에, 인간의 언어로는 정확한 표현을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다른 학생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벽에서 튀어나온 칼날에 찔려 잠시 추락을 멈췄다가, 칼날이 빠지자 초라하게 다음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허어어어억!”
몸이 재구성된 시로네는 배 속의 태아가 이제 막 첫 숨을 들이켜듯 공기를 들이마셨다.
‘으으! 차라리 죽여라, 죽여!’
이빨처럼 맞물린 수십 개의 드릴이 장판처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터였다.
턱!
시로네는 그곳에 떨어졌다.
터터터터터터턱!
그리고 순식간에 몸이 갈려 액즙처럼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 * *
“아우! 젠장!”
네이드는 짜증을 내며 버추얼 존에서 깨어났다.
이루키도, 에이미도, 심지어는 페르미 일행도 절사 단계에서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와 바닥을 뒹굴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구토가 밀려들었다. 헛구역질을 하다가 길게 늘어진 느침을 내뱉는 건 공통적이었다.
“미치겠네. 어째서 항상 4단계에서 막히지?”
입술을 닦는 에이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죽음 이후에도 스피릿 존이 유지된다는 건, 생사를 뛰어넘는 강력한 집착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구도자. 종교인. 살인마.
무엇이 되었든 이제부터는 정신적 경지가 범인의 영역을 넘어선 자들의 세계였다.
그런 만큼 이루키가 탈락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죽으면 죽는 거지, 다음은 또 뭐야?”
처음부터 죽을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불확실성을 혐오하는 그의 머리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단계였다.
절사는 협회의 기대를 여실히 충족시켰다.
꽤나 많은 탈락자들이 4단계에서 발생했고 대부분 죽을상을 지으며 버추얼 존을 기어 나가고 있었다.
“어우, 죽겠네. 야, 괜찮아?”
네이드가 뒷목을 주무르며 이루키에게 다가왔다. 그를 돌아보는 이루키의 눈빛이 의아하게 변했다.
“설마, 너도 떨어졌냐?”
“어. 머리 아파 죽겠다.”
잠시 생각하던 이루키가 되물었다.
“왜?”
“왜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