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12
네이드라면 절사는 무난히 통과하리라 생각한 이루키였다. 하지만 무언가에 생각이 미치자 이내 수긍이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가?’
네이드는 죽음 이후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의도적인 억제일 것이다.
만약 그의 정신이 죽음을 넘어서게 된다면, 지금처럼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은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야. 아무튼 나가자. 너무 죽었더니 죽겠군.”
콜리가 알페아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30초 후에 5단계 충왕으로 돌입합니다. 비전을 열까요?”
“흐음, 충왕이라…….”
프로 마법사의 기준인 ‘사경’을 넘었으니 이제부터는 이론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세계다.
자칫하다가는 정신에 치명적인 손상이 오는 만큼, 비전을 열어 학생들의 상태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비전을 열게.”
“네. 마스터 디바이스를 가동하겠습니다.”
콜리가 장치를 조작하자 버추얼 존의 허공에 오목하게 휘어진 대형 홀로그램이 등장했다.
졸업 시험에서는 처음부터 천장에 거대한 홀로그램이 등장하지만 현재의 비전으로도 프로그램 내부의 상황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가상 혹한 프로그램 5단계, 충왕에 돌입합니다.
“으윽! 저게 뭐야!”
비전에 충왕의 현장이 나타나자 버추얼 존 앞에 모여 있던 탈락자들이 질겁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온갖 징그러운 벌레들이 끝없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수억 마리의 벌레가 넘실대는 광경이, 마치 대지가 움직이는 듯했다.
생존자들은 아마 저곳 어딘가에서 벌레에게 파묻혀 고통을 받고 있을 터였다.
5단계 충왕.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의 공포와 혐오, 고통이 도사린 곳이었다.
* * *
벌레들이 뒤엉켜 있는 광경은 인간 본연의 공포를 충동질하지만 이번에는 그저 보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들은 피부로, 신경으로, 내장으로 침투하여 실물 감각을 전달하고 있었다.
신체의 모든 구멍을 파고들어 와 살점을 파먹는 고통은 단지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견딜 수 없는 자들이 속출하면서, 벌레가 무덤처럼 쌓여 있는 곳이 들썩들썩하기 시작했다.
먹칠을 한 듯 벌레들로 둘러싸인 누군가가 벌떡 일어서더니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가상에서 터지는 비명 소리를 버추얼 존에 쓰러져 있던 아이더가 이어받았다.
“……아아아아악!”
온몸을 털면서 바닥을 뒹굴던 그는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어딘가로 기어 나가려고 애를 썼다.
“으아악! 으아악! 으아악!”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심한 쇼크 상태에서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오히려 더 큰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도 절사를 통과한 재능인지 아이더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갔다.
“허억! 허억!”
가상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그는 겁에 질린 얼굴로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으아, 이거, 진짜 무섭다.”
“…….”
무섭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사경에서 탈락한 자들은 아이더의 모습을 보고 4단계에서 끝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스크리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다른 종목은 몰라도 생존 평가만큼은 작년부터 아이더가 좋은 점수를 받고 있기에 청색 팀에 끌어들인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5단계를 넘어서지 못했고,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인 시로네는 여전히 충왕 속에 있었다.
‘아이더가 못 견디는 걸 시로네가 버틴다고?’
네이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목에 얼음찜질을 하며 버추얼 존을 지켜보던 그가 이루키에게 말했다.
“아이더 녀석, 그래도 5단계까지 갔잖아? 나이도 어리면서 제법인데?”
“어쩌니 해도 현재 졸업반 최연소야. 실력은 몰라도 재능만큼은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충왕의 난이도는 절사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아이더를 시작으로 속속들이 학생들이 탈락하기 시작했다.
카니스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상체를 세우고, 잠시 후에 아린이 천천히 눈을 떴다.
아이더와 달리 그들은 차분하게 정신을 갈무리했다.
“카니스, 괜찮아?”
“그럭저럭. 예상보다 훨씬 어렵네. 4단계 이후부터는 스피릿 존이 너무 예민해져.”
“독성 물질을 분비하는 벌레들이 너무 많아. 내장으로 들어가서 쏘아 대니까 부동심을 유지하기 힘들어.”
‘부동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미친놈들.’
정신 계열의 전문가다운 아린의 평이었으나 사경 이전에 탈락한 학생들은 황당할 뿐이었다.
벌레들이 창자를 헤집고 다니는 상황에 독성 물질이니 부동심이니 하고 있으니 미친 것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경지라고 불리는 것이다.
수치로 측정할 수 없는 깊이의 영역은 도달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다들 대단하구나.’
탈락자들이 버추얼 존에 모여든 반면에 마야는 여전히 휴식 장소에 머물고 있었다.
가장 먼저 탈락했으나 회복은 가장 느렸고, 누구도 그런 마야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경쟁의 냉혹함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경쟁자로서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그녀를 슬프게 했다.
그녀는 시로네의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졸업반에서 그나마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그들뿐이었다.
“에이미, 괜찮아? 정신은 좀 어때?”
마야의 목소리를 듣고 에이미가 고개를 돌렸다.
“응. 우리는 괜찮은 것 같아. 너는?”
“나도 이제 좀 편해졌어. 미안해. 2단계에서 탈락해 버렸어.”
마야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팀으로 받아 준 시로네의 기대에 응하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이었다.
“괜찮아. 사실 나도 엄청 당황했어. 너무 신경 쓰지 마.”
에이미는 오히려 마야를 달랬다. 2단계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비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시로네는 괜찮을까? 아직 안 나왔는데.”
에이미는 버추얼 존을 살폈다. 전부 5단계에서 탈락하고 마지막 두 사람만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적색 팀의 시로네와 청색 팀의 페르미였다.
“어쨌거나 마지막까지 균형은 유지됐네. 저기서 이긴 쪽이 승리하는 거야.”
마야는 허공에 떠 있는 비전을 살폈다.
멀리에서 봤을 때도 역겨웠지만 눈앞에 펼쳐진 화면을 보자 다시금 구토가 밀려들었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 버티는 거야?’
2단계 빙옥만으로도 너무 무서웠던 그녀다. 그런데 누군가는 저런 끔찍한 곳에서도 투쟁하고 있다.
‘나라면 그냥 죽고 말았을 거야.’
마야는 차마 비전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믿어 준 시로네가 싸우고 있기에 끝까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저, 저기……!”
보일이 경악의 눈빛으로 비전을 가리켰다.
벌레들이 들썩거리더니 시로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세, 세상에…….”
마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른 학생들도 충격을 받았는지 멍하니 입을 벌린 채로 비전에서 눈을 돌리지 못했다.
시로네의 모습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떤 부위는 살점이 완전히 발라져서 뼈가 보이고, 어떤 부분은 피부가 부풀어 올라서 썩어 가고 있었다.
마야는 인간의 정신이 저런 것을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몸의 힘을 완전히 뺀 시로네는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벌레들이 피부를 찢고 나와도 미동조차 없는 모습에 알페아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법이군. 완벽한 부동심이다.”
고통이나 혐오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집중을 유지하는 탈인간적인 경지였다.
생존의 의미(5)
바지직. 바지직.
벌레들을 짓뭉개며 다가오는 소리에 시로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페르미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걸어오고 있었다.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은 이미 절반 이상이 해골로 변한 상태였다.
입안의 벌레들을 자각자각 씹어 대던 그가 퉤 하고 껍질을 내뱉자 비전을 통해 보고 있는 학생들이 인상을 구겼다.
“윽!”
화면으로 보는데도 버틸 수 있는 비위가 아니었다.
“페르미도 만만치 않군요.”
올리비아의 말에 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작년에도 5단계까지 가서 최종 생존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로네가 있으니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흐음…….”
올리비아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페르미가 졸업과 상관없는 담합을 했음을 알고 있다. 다만 증거가 없기에 몰아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역시, 규정외식자가 분명해.’
사과를 사과로 깨닫는 게 전지라면, 사과를 딸기로 받아들이는 게 규정외식자의 전지다.
사실을 부정할 정도의 인지적 왜곡.
시로네처럼 이모탈 펑션도 아니고 가올드처럼 극기도 아니라면, 처음부터 뒤틀린 인간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퍽!
시로네의 오른쪽 눈이 짓뭉개지듯 터졌다. 이어서 혐오스러운 구더기들이 우글우글 빠져나왔다.
페르미는 태연한 자태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연신 벌레를 씹어 대고 뱉어 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목구멍이 계속 간질간질했다.
‘확실히 좋은 기분은 아니군.’
솔직히 여기까지 버틸 줄은 예상치 못했다.
졸업반에 몸담은 기간 동안 자신을 따라 5단계의 끝까지 버틴 사람은 시로네가 처음이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더니…….’
귀신 소동 때만 해도 그저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1년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이곳에 와 있었다.
‘조금 더…… 가 볼까?’
5단계 이후부터는 페르미도 가 본 적이 없다. 승패나 점수에 집착하지 않는 성격이니 여기서 멈춰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상대가 시로네라면 얘기가 달랐다.
사업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페르미였다.
“여기서는 승부가 안 나겠군. 넘어가자고. 다음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퉤, 말을 끝낸 페르미는 다시 벌레를 뱉었다.
“…….”
시로네는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자연체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순간 정신은 폭풍을 만난 바다처럼 뒤집어지고 만다.
퍽!
시로네의 남은 한쪽 눈마저 터져 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5단계 충왕이 종료되었다.
* * *
“6단계! 초열로 진입합니다!”
냉정한 평가 교사인 콜리의 목소리는 흥분과 불안으로 떨리고 있었다.
학생이 여기까지 도달한 경우는 그의 긴 교사 경력하에서도 고작 두 번째였다.
깨달음의 깊이는 마법 수준과도, 나이와도 무관하다. 하지만 초열은 수행자라도 위험한 경지였다.
“저, 저건…….”
학생들의 눈동자에 화염의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오직 불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시로네와 페르미가 마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옷깃이 조금씩 타들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괄한 불길로 치솟으며 육체를 불태웠다.
“으으으……!”
학생들은 질린 표정으로 목을 움츠렸다.
3미터에 이르는 불길이 사람을 완전 연소시키는 광경은 버추얼 존에 들어가지 않고서도 뜨거움을 느낄 정도였다.
신경을 통해 고통을 느낀다면 불은 신경을 직접 자극해서 통증의 한계치를 유발시킨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이곳이 육체가 재구성되는 가상의 세계라는 점이었다.
화르르르륵! 화르르르륵!
촛대 위의 촛불처럼 두 사람은 타오르고 있었다. 표정은 바뀌지 않았지만 정신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사경을 넘었다고 죽음을 초월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고통은 몸속을 돌아다니고 공포는 톱니바퀴처럼 정신과 맞물려 돌아간다.
‘큰일인데. 이건 정말 위험하다.’
시로네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금강태의 정신으로도 태연함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대체 가올드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지옥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 한계를 모르고 치미는 끔찍한 고통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비전을 통해 지켜보는 학생들은 더 이상 응원의 함성을 지르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정도인데 당사자들이 느끼는 심정은 어떻겠는가?
여기서 힘을 내라고 소리를 지르는 순간 사이코로 몰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크크크.”
페르미는 불길 사이로 어른거리는 시로네를 눈에 담았다. 감히 자신을 상대로 끝까지 버텨 보겠다는 것인가?
‘건방진 놈이군.’
페르미에게도 6단계는 힘들었다. 아마 이 정도인 줄 알았다면 판단을 재고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짜증 나는 거지.’
이제 평가 점수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오로지 돈.
여기서 반드시 시로네를 끝장내야 올해의 1년 사업이 정상적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꽤나 잘 버티는군. 여기 사우나 괜찮은데?”
시로네는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차라리 이곳이 현실이라서 빨리 몸이 불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육신은 실시간으로 재구성되고 신경의 역치 또한 매순간 초기화되었다.
“그만 포기하는 게 어때? 고작 4주 차잖아.”
시로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현재 그의 정신 상태는 짜증의 극치에 도달해 있었다. 세상 모든 게 싫고,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지긋지긋했다.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스피릿 존에서 이탈해 버릴 정도의 울분이 무한으로 축적되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페르미는 분명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신경을 살살 건드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방식으로 응수해야 한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지?”
비전을 통해 지켜보는 학생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