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13
시로네의 질문은 여태까지 졸업반에 몸담으면서 떠올렸던 모든 의문을 함축하고 있었다.
“글쎄? 누굴까?”
페르미라고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상태를 거울삼아 더욱 시로네의 신경을 긁었다.
“어째서 에이미를 공격한 거야? 왜 졸업을 하지 않지? 당신 같은 실력자가 학교에 남아 있는 이유가 뭐야?”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난 그냥 다른 사람보다 멘탈이 좋아서 잘 버티는 것뿐이야.”
두 사람의 대화에 학생들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몸이 불타는 상태에서 졸업반 얘기를 하고 있다니. 두 사람 모두 미쳤다고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슬슬 오는군.’
페르미는 한계를 직감했다. 태연함을 가장하기에는 내면의 영혼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버틸 수는 없는 일이다. 간판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고객들이 달라붙겠는가?
‘사업은 홍보가 중요하니까.’
머릿속의 타이머를 작동시킨 페르미는 시로네에게 걸음을 옮겨 마지막 기회를 제공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그건 사실이 아니야. 물론 나도 의심을 받는다는 건 알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어차피 졸업반에서는 튀는 놈이 먼저 얻어맞는 게 아닌가? 그게 경쟁의 자연스러운 순리라고.”
시로네는 불타는 눈으로 페르미를 노려보았다.
‘알고 있어. 너는 그걸 이용하는 거고.’
학생들의 경쟁 심리에 범죄를 은폐시킨다. 마치 그날 기분이 나쁜 경비가 감정대로 강도를 두들겨 패도 아무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탁월한 전략이었다.
“졸업반 선배로서 조언 하나 해 주지. 너무 튀는 건 좋지 않아. 그러다가는 초반에 탈락하고 말 거야.”
시로네의 콧잔등이 일그러졌다. 눈과 입에서 흘러나오는 화염이 분노를 대변하는 듯했다.
“협박하는 거야?”
“협박이라니. 어디까지나 조언이야. 20점은 큰 점수지. 하지만 그게 졸업반을 1년 더 하는 것보다 중요할까?”
협박이었다.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으면 에이미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졸업 시험에서 자신을 떨어뜨리겠다는 뜻이었다.
페르미에게 찍힌 자의 말로는 알고 있다. 천하의 에이미도 대책을 세울 겨를도 없이 초반에 탈락했다.
어떤 종목이 걸리든 전원에게 린치를 당할 것이다. 1년간의 노력이 허무하게 물거품이 되어 버릴 것이다.
반대로 20점을 헌납하는 것으로 제안에 응한다면 페르미는 반드시 자신을 합격시켜 줄 것이다.
1년 더 하는 것보다 중요할까, 라는 물음은 1년 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과 같으니까.
‘빨리 포기해, 빌어먹을 애송아. 사업 방해하지 말고 학교에서 꺼지라고. 너 같은 건 바로 졸업시켜 줄 테니까.’
시로네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앙다문 이빨 사이에서 뜨거운 열기가 새어 나와 치아가 달라붙었다.
비열한 페르미.
‘너 같은 놈 때문에…….’
에이미가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 마법사가 되기 위해 어떤 고통을 감내했는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을 페르미가 날려 버렸다. 억장이 무너지는 서러운 울음을 밤새도록 터뜨리게 만들었다.
“탈락? 시킬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해 봐. 적어도 너 같은 인간에게는 절대로 지지 않을 테니까.”
초열지옥 속에서도 페르미는 한순간 시체처럼 생기가 빠진 눈동자로 시로네를 내려다보았다.
협상은 결렬이다.
그리고 시로네는 자신이 학교에 있는 한 영원히 마법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좋아, 그럼 기대하지.”
페르미는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한계였다.
“기다려. 아직 내 말…….”
시로네가 입을 여는 순간 페르미의 모습이 사라졌다. 스피릿 존을 해제한 것이다.
버추얼 존에 누워 있던 페르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초열의 고통이 여전히 생생하여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머릿속의 타이머는 쉬지 않고 정확하게 시간을 체크해 나가고 있었다.
‘……2초. 1초. 이제 시작이군.’
안내 음성이 들렸다.
-생존 프로그램 7단계, 공겁으로 돌입합니다.
‘내가 주는 선물이다, 시로네.’
6단계를 경험한 페르미는 설령 규정외식자라도 7단계를 버틸 수 없다는 걸 짐작했다.
또한 알페아스 마법학교 역사상 오직 1명밖에 통과하지 못한 난이도라면 시로네라고 무사할 리가 없었다.
‘포기한다면 그걸로 됐다. 하지만 과연……?’
콜리는 버추얼 존을 끄기 위해 기관 장치로 향했다. 팀이 승리했더라도 개인 평가를 위해 더 높은 단계에 도전하는 건 가능하지만, 적어도 그 단계가 공겁은 아니었다.
‘인간이 할 수 있기 때문에 만든 단계가 아니다. 단지 생존 테스트의 한계를 정하는 뚜껑일 뿐. 여기서 끝내야 한다.’
버추얼 존의 스위치에 손을 얹은 콜리가 알페아스를 돌아보며 선포하듯 말했다.
“버추얼 존의 가동을 종료하겠습니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페르미가 비전을 가리켰다.
“아뇨. 계속할 것 같은데요?”
“뭐?”
콜리의 고개가 부러지듯 돌아갔다. 비전에 비친 시로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서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공겁의 시작 지점이었다.
‘비열한 페르미.’
시로네는 처음으로 평온을 되찾았다.
여태까지의 모든 과정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으나 지나온 과거는 이미 소실된 사건일 뿐이었다.
‘너 같은 인간에게는 절대로 굽히지 않아.’
시로네는 스피릿 존을 해제하지 않았다.
최종 승리자가 됐음에도 기분이 좋지 않은 건 그가 마지막까지 치사한 수작을 부렸기 때문이다.
오늘로서 페르미는 시로네를 제물로 삼았다. 언제가 되었든 특유의 선동 능력으로 압박을 가해 올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나는 페르미 너를 압박하겠다.’
그것이 페르미의 전략에 맞서는 시로네의 전략이었다.
절대로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다. 양자 간에 팽팽하게 힘의 균형을 맞추면 선동은 불가능하다.
생존 7단계는 분명 위험한 도전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시도할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여긴 대체 어디지?’
시로네는 주위를 살폈다.
어둠이 보인다는 말은 이상하지만, 실제로 자신을 제외하고 보이는 건 어둠뿐이었다.
쿠쿠쿠쿠쿠쿠쿠!
진동이 느껴졌다. 방향을 느낄 수조차 없는 공간 전체의 떨림이었다.
“어? 어어?”
시로네는 불길한 기분에 손을 내밀었다. 사방에서 어둠이 단단하게 밀려들어 와 그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압사인가?’
두 팔이 몸 쪽으로 구부러졌다. 그런 상태에서도 어둠은 계속해서 미는 힘을 키워 나갔다.
생존의 의미(6)
* * *
학생들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소문으로도 들은 적이 없는 7단계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뭐야, 계속 짓눌리고 있잖아? 설마 저런 식으로 벽에 깔려서 죽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야. 그렇다면 절사랑 다른 게 없으니까.”
콜리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공겁은 압사 따위가 아니다. 자칫하면 마법사로서의 인생이 끝장날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경지였다.
‘공식 평가인 이상 학생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시로네, 너는 이미 승리했다. 마법사가 되기 위해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어. 그러다가 모든 걸 잃게 된다.’
양심에서 들리는 소리를 외면하지 못한 콜리는 평가 교사임에도 이례적으로 재고를 요청했다.
“교장 선생님, 이대로 진행시킵니까? 시기를 놓치면 버추얼 존을 해제해도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콜리의 말에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장치를 꺼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에이미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빠져나올 수 없다니요? 아니, 만약 그렇더라도 미리 말씀을 해 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지는 않았다.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지. 그리고 생존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는 극비다. 우리 학교만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게 아니야.”
현재 만국 표준 시간을 기준으로 동시간대에 속한 모든 국가에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생존 평가가 치러지고 있다.
어차피 미리 알았더라도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진짜로 여기까지 도달할 줄은 몰랐다.
‘19년 만이군. 이걸 보는 건…….’
어쨌거나 평가 교사에게 주어진 권리를 사용했으니 남은 건 알페아스의 판단이었다.
“결정하고 말고가 어디 있나? 학생이 하겠다는데. 버추얼 존에서 나오는 방법은 이미 숙지시켰을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다만 공겁은…….”
“차원이 다르지. 하지만 그렇기에 단계가 있는 게 아닌가? 아무 학생이나 잡아다가 7단계에 가둔다면 살인죄가 되겠지만 시로네는 모든 난이도를 깨고 도달한 것일세. 그렇다면 평가를 받을 자격은 충분하지 않나? 자신의 목숨에 대한 판단도 내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마법사가 된단 말인가?”
일견 냉혹한 교육관이지만 이미 수많은 위험을 헤치고 이 자리까지 올라온 학생들은 침묵으로 수긍했다.
“크으으윽!”
비전 속의 시로네는 온 힘을 다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육체가 납작하게 짓눌렸다.
콜리가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하는 것인가.’
이제부터 공겁의 시작이었다.
* * *
‘뭐야? 내가 어떻게 된 거야?’
시로네는 2차원 사각형에 박제된 상태였다. 시간과 높이를 잃어버린 그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도대체 여기서 뭘…….’
사각형의 밑단이 위로 올라와 종이처럼 접혔다.
이어서 좌에서 우로 접히고, 위에서 아래로 접히고, 우에서 좌로 접히는 패턴이 끝없이 반복되었다.
줄어들고 있다.
1차원의 점으로 한없이 작아지고 있다.
실제 물질을 무한히 접는 건 불가능하지만, 마법협회는 가상의 프로그램을 통해 공겁의 개념을 구현시켰다.
‘어어어어어어…….’
거대한 쇼크가 머리를 강타했다. 천하의 시로네라도 스피릿 존이 거의 붕괴 직전까지 치달았다.
자신이 작아지는 것인지, 세계가 거대해지는 것인지.
스케일의 격차가 초월적으로 벌어질수록 머릿속에 압력이 차오르고 눈동자가 말려 올라갔다.
하나의 사이클이 진행될 때마다 16분의 1로 작아진다. 끝없이 작아진다. 분자보다, 원자보다 더.
‘안 돼. 이건 못 버틴다.’
학생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떤 고통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비전의 포커스가 시로네를 추격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볼 수 있는 건 일정한 패턴으로 접히는 모습뿐이었다.
하지만 설령 공겁의 메커니즘을 깨달았더라도 받아들이는 느낌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깨닫기 전까지는 절대로 깨달을 수 없는 경지. 그것이 바로 공겁에 담긴 거대한 진의였다.
“시로네!”
에이미가 창백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버추얼 존에 쓰러진 시로네의 허리가 펄떡펄떡 튕기고 있었다.
콜리의 두 주먹이 잔뜩 움켜들었다.
‘시로네, 포기해라! 지금 포기하면 살 수 있어! 스피릿 존을 해제해!’
공겁 프로그램은 우주 단위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격차를 정신에 때려 박는다.
고작 행성 하나에 머무는 인간에게는 이러한 성질의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감각기관조차 없다.
여기에서 더 진행되면 장치를 끄더라도 정신은 계속해서 1차원을 향해 빨려들게 되고, 급기야는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식물인간이 되어 버리고 만다.
등으로 바닥을 때린 시로네의 허리가 활처럼 휘어져서 올라왔다.
초열에서도 멀쩡했던 육체가 이 정도로 심각하게 요동친다는 것은 분명 위험한 상태라는 뜻이다.
“비켜! 시로네를 구해야 돼!”
에이미가 버추얼 존으로 달려가자 네이드가 황급히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기다려! 끼어들면 너나 시로네나 낙제야!”
“상관없어! 시험은 내년에 또 보면 돼! 여기서 시로네가 잘못되면 평생 나를 용서하지 못할 거야!”
네이드는 에이미의 불타는 눈동자를 보았다. 진심이었다.
잠시 동공이 흔들린 그가 몸을 돌렸다.
“네 말이 맞아. 같이 구하자.”
그러자 이번에는 이루키가 두 사람을 말렸다.
“섣불리 판단하지 마. 시로네잖아.”
“무슨 소리야! 만약 시로네가……!”
“변화가 아예 없지는 않아.”
에이미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비전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틀었다.
여전히 같은 패턴의 장면만이 반복되고 있었다.
“변화라니? 대체 뭐가?”
“접힘 현상이 느려지고 있어. 미세하지만.”
에이미는 홍안을 통해 살폈다.
확실히 전보다 진행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더욱 느려지고 있었다.
‘크으으윽!’
시로네는 이모탈 펑션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정신을 무한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영원히 깊어지는 공겁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작아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정신을 확장시키지 않으면 영겁의 굴레를 탈출할 수 없었다.
‘이 정도로는 안 돼. 더 거대한 확장을…….’
정신의 결합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보통의 언로커라면 이미 자아를 잃고 만물에 스며들기 직전의 상태였다.
하지만 시로네는 결코 자신을 잃지 않았다.
심적초월.
스케일의 허구를 깨고, 이모탈 펑션이 공겁의 영역 밖으로 벗어나자 비전에서도 접힘 현상이 정지했다.
“멈, 멈췄다.”
학생들이 술렁거렸다. 이어서 여태까지 접혔던 과정의 역순으로 시로네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뭐야? 왜, 왜 저러는 거야?”
더욱 놀라운 일이 버추얼 존에서 벌어졌다.
학생들은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쓰러져 있던 시로네가 비틀거리며 일어서고 있었다.
“어떻게 움직이지? 반수 상태인데?”
“저기 봐! 비전!”
학생들의 시선이 다시 비전으로 향했다. 화면 속의 시로네가 버추얼 존의 시로네와 똑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로 움직이지 않던 그가 두 팔을 들더니 어둠의 벽을 좌우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저, 저건……!”
콜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현실의 시로네와 비전 속의 시로네가 똑같은 동작을 보이면서 완벽하게 싱크로율을 맞춰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