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16
그리고 마침내 주머니의 오른손이 빠져나왔다.
‘하늘이 빛의 세계라면…….’
검지와 중지의 손가락이 우뚝 기립했다.
“땅 밑은 어둠의 세계다.”
카니스의 장기인 톱날 형태의 어둠의 권능이 지하를 빠르게 질주하면서 어스웜을 베어 나갔다.
키에엑! 킥!
수직으로 서 있던 어스웜들이 한 마리도 빠짐없이 축 늘어지며 녹색 침을 게워 냈다.
-몬스터 328마리 섬멸 완료. 수행 시간 3분 28초.
원맨팀 (3)
하늘, 지상, 지하의 몬스터들이 거의 동시에 전멸하자 이천번에서 안내 음성이 나왔다.
“후우.”
이마의 땀을 닦은 시로네는 전광판을 돌아보았다.
“우와! 잘 나왔네?”
5조의 이름이 무려 2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1위는 페르미가 속한 2조의 차지였다.
2조의 수행 시간은 3분 15초.
불과 13초 차이로 패했으니 아쉬웠지만 2조 전원이 페르미 일행이라는 걸 감안하면 괜찮은 성과였다.
‘하긴, 우리는 인스턴트 파티니까.’
클로저는 기분이 나쁜 눈치였다.
“쳇, 이번에도 페르미야? 저것들은 어떻게 순위도 같이 묶어서 올라가지?”
단테가 말했다.
“그만큼 점수 관리에 잔뼈가 굵었다고 봐야지. 어쨌거나 조 2위면 나쁘지 않아. 전체 10위에 든 셈이니까. 평가마다 10위 안에만 들면 결국에는 졸업하게 되어 있어.”
손발을 맞춰 본 적도 없는 세 그룹이 모여서 2위를 한 것에 단테는 만족했다. 파티 기여도로 보자면 모두 1점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루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의 경우에는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만약 이게 졸업 시험이었다면, 단테 1.01, 클로저 0.99, 시로네 1, 카니스 1.02, 나 0.98 정도인가.’
5조의 베스트 플레이어는 근소한 차이로 카니스의 차지였다. 혼자서 지하의 몬스터를 섬멸시킨 게 컸다.
‘파티 기여도를 높이려면 상성에 맞는 적을 고르는 게 중요하군. 졸업 시험에서는 격차가 훨씬 벌어질 테니까.’
그러는 사이 1조가 3위로 등재되었다. 시간은 조금 격차가 벌어져서 4분 18초였다.
“아무튼 내려가자. 다른 조들도 봐 두고 싶어.”
단테는 조원들을 데리고 이천번을 내려갔다. 그리고 곧바로 조를 해산시켰다.
“시로네, 수고했다. 이루키, 카니스도.”
시로네도 좋은 기분으로 인사했다.
“그래, 너도 고생했어.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같이하자.”
4위가 결정되었고 이어서 5위가 섬멸 임무를 완수했다. 각각의 기록은 4분 24초. 4분 28초.
“와, 이번 주도 굉장히 근소하네.”
조 2위를 차지한 시로네지만 아직까지는 몬스터의 티어가 높지 않기에 파티 운이 잘 따라 준 게 컸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다른 조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이루키가 말했다.
“아마 8티어까지도 이런 흐름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혼자서 상대하려면 어림도 없지만, 마법사는 뭉쳤을 때 엄청나게 강해지니까. 물론 이것도 학교니까 가능한 일이지.”
마법학교에 있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마법사지만 졸업반 30명도 결국 졸업하면 세계 각지로 흩어져서 얼굴 한번 보기 힘든 고급 인력이다.
인구의 0.0001퍼센트도 안 되는 직업군인 만큼 최소한 왕성근위대, 수도경비대, 국경방위대급은 되어야 부대 단위로 마법사를 보유할 수 있다.
실제로 길드를 전전하는 삼류 마법사라도 20명 정도가 모일 경우 화력은 어마무시하다.
10초마다 파이어볼 한 발씩을 쏜다면 단순 계산으로 10분에 무려 1.200발을 갈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법사조차도 몸값이 비싸기 때문에 20명이 모였을 경우 수지타산이 맞는 의뢰는 거의 없다.
설령 있어도 높은 등급의 마법사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예외적으로 테러의 경우가 있지만 레드 라인이라는 공권력 앞에서는 그들도 고양의 앞의 생쥐에 불과했다.
정식 레드 라인 소속, 즉 공인 마법사 부대의 전투력은 삼류 마법사하고는 위력의 궤를 달리한다.
티어 외의 몬스터, 예를 들어 마족이 등장했을 경우 마법협회는 국왕의 승인하에 공인 4급에서 6급으로 이루어진 최정예 대형 파티를 구성하는데 이를 ‘케이지’라고 부른다.
즉 우리에 가두고 두들겨 팬다는 뜻으로, 각 분야에서 최고의 재능으로 평가받는 마법사들이 20명 정도 모이면 걸어 다니는 군단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위력을 뽑아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급 대마법사부터는 대륙 전체를 봐도 숫자가 현격하게 줄어들기에, 전문가들은 범세계적 재앙이 닥치지 않는 이상 최강의 파티는 케이지라 보고 있다.
‘나도 사회에 나가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파티를 구성하는 일은 없겠지. 이 기회에 많이 배워 두자.’
이천번 가동이 멈췄다.
“4조 평가 완료. 마지막으로 임무를 수행한 4조는 획득 점수 0점이다.”
시로네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4조를 바라보았다. 하필이면 에이미가 속해 있는 조가 꼴등을 할 줄이야.
‘역시 밸런스가 중요하구나. 에이미라는 엄청난 딜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안 되네.’
4조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 하나 콕 집어서 잘못했다고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은 스크리머를 필두로 현란하고 다채로운 공격으로 적진을 유린했다. 다만 밸런스가 맞지 않아서 다른 조보다 섬멸 시간이 더 오래 걸린 것뿐이다.
‘차라리 내가 버프를 받았어야 했는데.’
에이미는 그 점이 못내 아쉬웠다.
마권사 필살 전략은 동급에서 감당할 수 없는 전투력을 1명에게 부여하지만 6주 차의 임무는 섬멸이었다.
팀이 하나가 되어 적들을 확실하게 제거하는 디테일이 요구되는 임무에서는 약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지 뭐. 다음 주를 노려야지.’
에이미는 쿨하게 0점을 받아들였다. 어쨌거나 조장은 고집불통 스크리머였고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납득이 안 가면 순위를 올려서 조장을 하면 된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졸업반의 룰이었다.
‘아, 진짜. 짜증 나서 미치겠네.’
반면에 스크리머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꼴등을 하는가? 작년 졸업반에서도 전략 전술에서 0점을 받은 적이 없는 그였다.
‘전부 너 때문이잖아.’
스크리머는 폭발 직전의 분노를 감당하지 못하고 마야를 향해 소리쳤다.
“이 멍청아아아아!”
마법학교 졸업반에서는 들어보기 힘든 고함 소리에 학생들이 스크리머를 돌아보았다.
팀이 졌다면 개인의 역량을 따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녀 때문에 망친 전략 전술 평가가 벌써 몇 주째인가.
스크리머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마야의 눈썹이 팔자로 올라가며 표정이 굳었다.
“너 때문에 몬스터가 더 난폭해졌잖아!”
요동의 광시곡은 불안감을 유발시킨다.
전략적으로 도움이 되는 마법이지만, 섬멸 같은 경우에는 적들이 날뛰는 바람에 시간이 더 걸린 감이 있었다.
“아니, 난폭해진 게 아니라 소요를…….”
“닥쳐! 돼지 멱따는 소리나 내는 주제에! 그걸 음향 마법이라고 하고 있어? 이제 어쩔 거야?”
마야는 억울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스크리머를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마야는 음향 마법에 소질이 없고 스크리머는 졸업 예정자 2순위 실력자다. 괜히 나서서 그와 척을 지는 건 앞으로의 일정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도대체 네가 하는 게 뭐야? 나보다 졸업반에 오래 있었으면 경험이라도 있어야 할 거 아냐? 하란다고 그냥 하냐? 워울프 떴으면 딱 답이 안 나와?”
“미안해. 미안…….”
마야는 미안하다는 소리만 되풀이했다.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하여튼 평민은 안 된다니까. 재능이 없으면 자퇴를 하든가. 마법사로 한몫 잡아 보겠다고 구질구질하게 버티니까 다른 사람한테 민폐를 끼치는 거 아냐.”
마야의 어깨가 떨렸다.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얼굴 아래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평민이었구나, 마야…….’
시로네는 스크리머를 노려보았다.
마야가 평민이라는 얘기는 처음 들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전공을 돼지 멱따는 소리라고 비하하다니.
마야의 음색은 오히려 전투적인 음향 마법에 비해 청아해서 효과가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인신공격이다. 그녀가 뚱뚱하지 않았으면 결코 들을 일이 없는 말이었다.
“미안…… 흑! 미안해…….”
스크리머는 더욱 짜증이 났다.
욕 좀 먹었다고 질질 짜는 마법사라니. 그것도 졸업반에서.
모두에게 인생이 걸린 평가다. 그런데 괜히 자신을 나쁜 놈으로 몰아세우고 있지 않은가?
“됐어, 꺼져! 그리고 부탁인데 실력이 없으면 제발 자진해서 내려가라. 운 좋게 순위 좀 올랐다고 버티면 다른 사람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스크리머는 차갑게 돌아서서 멀어져 갔다. 시로네가 그를 뒤따라가며 불렀다.
“야.”
다시 몸을 돌린 스크리머가 턱을 치켜들었다.
“뭐야?”
“마야에게 사과해.”
스크리머의 눈빛이 황당하게 변했다.
사과를 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이런 식으로 간섭하는 건 졸업반에서 결코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다.
‘이 자식 봐라? 페르미에게 찍혔다고 막나가나?’
시로네가 사즉생 선언을 했을 때도 스크리머만큼은 콧방귀를 뀌었다.
마법이고 뭐고, 바깥에서 원터치로 쪼개면 전부 무릎을 꿇을 것들이 학교 안이라고 덤비고 있다.
‘아니, 차라리 잘된 일인가?’
스크리머는 결코 멍청하지 않다. 생존 평가 7단계를 통과한 시로네를 깔아뭉개면 자신의 주가가 올라갈 터였다.
‘일단 한번 찔러볼까?’
스크리머는 작심하고 시로네를 긁었다.
“그러고 보니 너도 평민이었지? 아니, 왕족이었나? 아, 왕족인 줄 알았다가 다시 평민으로 까였지. 하하하!”
카즈라에 갔던 것도 벌써 몇 개월 전이니 학생들은 시로네가 평민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평민이건 뭐건 상관없어. 마야에게 했던 말 전부 취소하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해.”
“싫은데? 왜 그래야 하지? 나는 내 몫을 했어. 꼴등을 한 건 마야 책임이라고.”
“아니, 공동 책임이야. 그리고 누구 하나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조장인 너고.”
“무슨 헛소리야? 파티 기여도 몰라? 내가 몬스터를 얼마나 많이 해치운 줄 알고나 하는 소리냐?”
네이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유틸 몰방한 주제에 큰소리치는 것도 쪽팔린 일 아닌가?”
스크리머의 얼굴이 분노로 달아올랐다. 시로네만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날파리까지 꼬이고 있었다.
이루키가 한마디를 보탰다.
“메인 딜러인데 서브 딜러랑 별 차이도 없잖아? 마권사 필살 전략이 섬멸 작전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결국 0점이 나왔다는 것은 조장의 판단 미스야.”
스크리머는 눈살을 찌푸렸다.
“제3자가 말이 많군. 내 판단은 옳았어. 팀원 중에 구멍이 있었을 뿐이지. 어차피 마야를 끼고 있으니 모험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누가 고작 1, 2점 따려고 평가를 하냐? 심지어 나는 내 기여도를 1.4까지 끌어올렸다고.”
“그게 네 한계지.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파티 기여도를 생각했다는 게 팀원을 못 믿는다는 증거야. 마야 또한 정식 졸업반이야. 그녀를 포함해서 점수를 따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거라고.”
“하하하! 그래? 만약 네가 나 대신에 4조에 있었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물론이지. 내가 조장이었다면 최소한 3위 안에는 들 수 있었을 거야.”
“하아.”
스크리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신참내기가 싫은 것이다. 겪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놈들.
마야는 구제 불능이다. 실력을 떠나서, 그녀는 마법사가 될 수 있는 성격이 절대로 아니었다.
“마야를 끼고 고득점을 받을 수 있다? 너는 정말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에이미가 말했다.
“최소한 너 같은 조장을 둔 팀보다는 높았겠지.”
스크리머는 뒤를 돌아보았다. 에이미가 팔짱을 끼고 발을 까닥거리고 있었다.
“지금 나한테 한 소리냐?”
마야처럼 경쟁자 축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앞으로 충돌할 여지가 있는 경쟁자하고는 갈등을 피하는 게 졸업반의 정석이다.
괜한 소모전에 휘말려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득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에이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작년 탈락으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에는 다를 것이다. 서로에게 피해를 줄까 봐 조심스러웠던 세리엘과 달리 이제는 그녀도 모든 걸 믿고 맡길 수 있는 아군이 생겼다.
에이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루키와 네이드가 비장한 표정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전략적 동맹 관계가 아닌 전우들의 지원사격에 자신감이 더욱 올라갔다.
원맨팀 (4)
에이미는 스크리머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럼 너한테 하지 나한테 했겠니? 솔직히 마권사 필살 전략이 실패했던 건 맞잖아? 거기까지라면 나도 이해하겠는데, 왜 애꿎은 팀원에게 화풀이야?”
스크리머의 얼굴이 멍해졌다.
아무리 그가 감정적이라도 앞뒤 상황은 봐 가면서 하는 편이다.
그에 반해 시로네 일행은 아무런 대책조차 없이 무대포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것들 단체로 미친 거 아냐?’
감정에 치우치면 이용만 당할 뿐이다.
그리고 스크리머는 즉각 방법을 찾아냈다.
이것은 기회였다.
5점을 잃은 대가로 손쉽게 20점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테니까.
‘마야만 있으면 어떤 팀이든 지게 되어 있어.’
결정을 내린 스크리머가 제안을 했다.
“좋아, 너희가 그렇게 자신한다면 검증해 보는 게 어때?”
“검증?”
“2주 뒤에 전체 평가 있는 거 알지? 고지 점령. 너희가 마야를 팀원으로 해서 나를 이긴다면 인정해 주지.”
고지 점령은 양쪽 진영에 깃발을 꽂아 두고 공수의 밸런스를 조절하면서 상대의 깃발을 뺏는 대결이다.
졸업 시험에서는 15 대 15로 이루어지지만 단체 평가에서는 5 대 5로 미니 게임을 하게 된다.
‘역시 졸업반. 제대로 물고 들어오네.’
시로네는 스크리머의 전략을 간파했다.
구멍이라 생각하는 마야를 팀에 포함시켜 놓고 확실하게 20점을 획득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시로네가 대답을 미루자 스크리머는 입가를 찢었다. 붉은 혀가 넘실거렸다.
이래서 덮어놓고 덤비면 안 된다는 것이다. 거절이든 승낙이든 결국 자신이 이기는 판이었다.
“왜? 막상 하려니까 자신 없냐? 그러면서 나에게 큰소리를 쳤던 거야?”
시로네는 장고 끝에 입을 열었다.
“마야의 음향 마법이 평균보다 떨어지는 건 사실이야.”
“하하하! 이제야 실토하는군! 그래, 결국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하지만.”
시로네의 얼굴이 같잖다는 듯 찡그려졌다.
“적어도 너 같은 놈이 팀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