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2
따스한 햇살에 시로네는 눈을 떴다.
묘하게도 하늘이 높아 보였고, 눈앞으로 어치가 뛰어오르자 기억이 되살아났다.
“으아아! 이게 뭐야!”
훈련장 한가운데였다. 어젯밤에 쓰러진 뒤로 여태까지 잠만 자 버린 것이다.
매일이 수면 부족이었고 육체까지 혹사했으니 의식을 잃은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진급 시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흐른 시로네는 곧바로 땅을 박차고 실습장으로 향했다.
시간을 물어볼 여유조차 없었다.
해발 1천 미터를 오르려면 컨디션이고 뭐고 무조건 달리는 게 상책이었다.
‘제발! 제발!’
건널 수 없는 다리(1)
“시작하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음, 그러게.”
시이나가 하늘을 향해 조명 마법을 터트리자 실습장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참가자 쪽 봉우리에서 조명 색을 확인한 에텔라가 학생들을 일렬로 세웠다.
“선생님이 신호를 보내면 절벽으로 달리세요. 순간 이동으로 가장 멀리까지 간 사람이 합격입니다.”
학생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건널 수 없는 다리의 난이도는 레벨 1로 장애물이 없지만, 처음 경험하는 고도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다.
솔직히 700미터를 건널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단순 계산으로도 무려 70회의 순간 이동을 쉬지 않고 연계해야 가능한 거리였다.
리듬이 깨지는 순간 육체는 중력을 받게 되고 추락의 공포는 집중을 방해할 것이다.
‘어차피 완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결국 추락은 기정사실인데…… 안전장치는 정말 있는 거야? 설마 선생님이 직접 구하는 거라면, 날 놓칠 수도 있잖아?’
교사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도 목숨이 걸리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공포를 안고도 절벽 위로 순간 이동을 전개할 수 있는가.
알페아스가 이 테스트를 선정한 이유에는 학생의 의지를 보고자 하는 것도 있었다.
반면에 마크는 여유 만만했다.
‘매일같이 연습했어. 특별히 방해만 받지 않으면 일흔 번 정도야 충분하지.’
의외의 변수라면 시로네의 불참이었다.
진도가 더디다는 첩보를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결국 배우지 못했군. 하긴, 원래부터 스피릿 존 말고는 별 볼 일 없는 놈이었지.’
시로네의 부재로 가장 초조한 사람은 에이미였다.
시큰둥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입술을 계속 깨물며 좌로 우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에이미, 저기!”
세리엘이 반대편 봉우리를 가리키자 에이미는 곧장 망원경을 눈에 대었다.
시로네가 헐레벌떡 정상에 도착했다.
어디서 굴렀는지 흙먼지가 잔뜩 묻었고, 옷 바깥으로 드러난 피부에는 전부 멍이 들어 있었다.
“어디서 뭐 하다가 이제 온 거야? 저 바보가!”
세리엘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시간 내에 도착해서. 하지만 지쳐 있을 텐데 괜찮을까?”
“몰라! 알 게 뭐야! 탈락 안 한 것만 해도 다행이지!”
피를 말려 놔서 짜증이 나긴 했지만 시험장에 도착한 걸 보면 마법은 배운 듯했다.
‘그렇다면 저 상처도…….’
에이미도 육탄으로 순간 이동을 배웠기에 시로네의 훈련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세리엘이 말했다.
“오늘은 바람이 꽤 부네. 어려운 시험이 되겠어.”
준아광속의 경지에서는 풍속이나 기압 같은 요인들이 중요한 변수였다.
“어차피 같은 조건이야. 이제 시로네에게 달렸어.”
나름의 각오로 대기하고 있던 학생들은 시로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했다.
“쳇! 저 자식 일부러 저런 거야. 방심하게 만들어 놓고 뒤통수를 치다니.”
“순진한 척하더니 아주 간사하네.”
경쟁자의 정신력에 약간의 충격을 준 건 사실이나, 시로네는 체력이 방전된 상태였다.
“하아. 하아.”
에텔라는 숨을 헐떡이는 시로네를 보고 고민했다.
‘어떡한다.’
동등한 조건이 핵심인 시험인 만큼 이대로 진행하는 게 형평성에 맞는지 알 수 없었다.
에텔라는 주황색 조명 마법을 쏘아 올렸다.
미리 약속한 몇 가지의 신호 중에서 주황색은 물음표를 뜻하는 색상이었다.
건너편의 교사들이 조명탄을 확인하고 의견을 교환했다.
당장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쪽과, 10분이라도 휴식을 주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렸다.
“교장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시작하도록 하게.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도 학생의 역량이지. 우리가 나설 일은 아닌 것 같네.”
“알겠습니다. 그럼…….”
시이나가 적색 조명으로 테스트 속행의 뜻을 전하자 시로네는 비틀거리며 학생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이쪽으로 와.”
친절하게 자리를 비켜 주는 게 의외였지만, 실은 마크가 심어 놓은 작전조였다.
“후우. 후우.”
학생들의 긴장감이 극을 찍었다.
수없이 훈련했지만 1천 미터 낭떠러지에서 연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부터는 미지의 세계였다.
발밑으로 하늘이 펼쳐질 때 과연 무엇이 보일지, 어떤 기분일지, 얼마나 두려울지는 닥치지 않고서는 모를 것이다.
“지금부터 클래스 세븐의 조기 진급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준비하세요.”
학생들이 달릴 자세를 취했다.
몸속의 심장 소리가 귀로 들리는 전부가 될 무렵, 에텔라가 조명 마법을 시전했다.
적색의 구체가 솟구치는 것과 동시에 건너편의 교사들이 서류철을 넘기며 기록할 준비를 했고, 학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땅을 박찼다.
‘선두! 선두를 차지해야 돼!’
‘1등으로 치고 나가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야!’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슷한 전략을 취하자 힘이 풀린 시로네는 상대적으로 뒤처졌다.
하지만 재기의 기회는 있었다.
막상 절벽이 가까이 다가오면 순간 이동 스타트 시점이 저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지점에서 스타트를 끊을 것인지는 각자의 각오에 달린 문제였다.
베스트라면 절벽에서 뛰어내린 다음에 첫 번째 순간 이동을 시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긴장감이 가장 높다는 테스트 시작 지점인 데다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고도였다.
풍속, 기압, 온도 등 모든 환경이 연습과는 달라서, 절벽에서 뛰어내린 쇼크로 집중력이 흩어지면 시도조차 못 해 보고 시험은 끝이었다.
“으윽!”
절벽까지 5미터가 남은 상황에서 공포를 견디지 못한 학생들이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그렇게 누군가가 스타트를 끊자 당황한 학생들이 속속들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선두 그룹에서 스타트를 끊지 않은 사람은 이제 마크밖에 남지 않았다.
‘안 돼! 조금만 더!’
눈앞의 절벽을 본 마크는 현기증이 일었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100퍼센트 준비를 끝냈다고 해도 실전에서 반드시 드는 의심이었다.
마크를 호위하는 작전조 2명이 버티지 못하고 먼저 섬광이 되어 쏘아졌다.
“큭!”
자신을 호위해야 하는 자들이 멀어지자 마크도 참지 못하고 마법을 시전했다.
시험이 시작되고 3초가 경과된 시점이었다.
중간 그룹까지 절벽을 떠난 가운데 시로네는 여전히 벼랑을 달리는 중이었다.
시로네를 전담해야 하는 작전조는 피가 말랐다.
‘미친놈! 왜 계속 달리는 거야?’
이대로는 추락한다.
결국 벼랑까지 두 걸음이 남은 시점에서 작전조 2명도 순간 이동을 발동했다.
‘아직 아니야.’
시로네는 더욱 나아갔다.
위험의 본질을 이해한 그에게 공포는 허상일 뿐.
‘여기서 따라잡아야 해.’
아직 아무도 1턴이 끝나지 않았기에 스타트를 잘 끊으면 뒤처진 거리를 만회할 수 있었다.
건널 수 없는 다리(2)
관중이 소리쳤다.
“시작했다!”
참가자들의 생각은 복잡했지만 멀리서는 그저 학생들이 와르르 뛰어내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초 단위에서 벌어지는 접전이었다.
절벽이 한 걸음 앞까지 다가왔음에도 시로네의 몸은 여전히 빛나지 않았다.
‘떨어지기 전까지는 떨어진 게 아니다.’
오히려 보는 이들의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였고, 마침내 시로네가 벼랑에 도착했다.
관중의 눈이 커졌다.
“몸으로 뛰었어…….”
시로네는 벼랑의 끝을 힘껏 박차면서 하늘로 뛰어올랐다.
뱃속을 헤집는 부유감. 강풍이 몸을 흔들고, 산새들이 수십 미터 발밑에서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흐으으으!”
시로네는 이를 악물며 집중했다. 그리고 도약의 임계점에서 마침내 그가 광선처럼 튀어 나갔다.
시로네를 마지막으로 1턴이 끝났고, 2턴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순위가 전체적으로 뒤집어졌다.
지상에서의 몇 미터 차이는 순간 이동의 거리 10미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
마크는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시로네를 보고 기겁했다.
‘뭐야?’
얼마나 스타트를 늦게 끊었으면 한 번의 순간 이동으로 자신을 앞지른단 말인가.
물론 아직 1턴 싸움이기에 순위는 다시 바뀌겠지만, 첫 번째 작전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기분이 나빴다.
“이 자식! 거기 안 서!”
간발의 시간 차를 두고, 또다시 시로네와 마크가 순간 이동 마법을 시전했다.
***
진급 시험이 시작되기 10분 전, 우중충한 얼굴로 실습장을 향하는 소녀가 있었다.
에를랑 마리아.
귀족 서열 제3계급 에를랑 가문의 삼녀로, 일찍이 마법적 재능에 눈을 뜬 열아홉 살의 재인이었다.
클래스 세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처지지만, 처음부터 그녀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건 아니었다.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입학해 클래스 텐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경쟁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마법이 좋았을 뿐이다.
최고의 마법사랄지, 남들이 우러러보는 그런 누군가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진급을 해도 또다시 경쟁.
도착지가 없는 마라톤처럼, 끝없이 올라가야 하는 이 세계의 피라미드가 끔찍했다.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
치고 올라갈 타이밍을 놓쳐 버린 건 아니었을까?
클래스 세븐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는 걸 깨달은 순간 이제는 마법조차 싫어진 그녀였다.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관성일까, 조금이라도 열정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하아.”
그녀에게 진급 시험은 남의 일이었고, 그렇다고 어린 학생들과 나란히 자습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단지 그런 이유였다.
마리아가 진급 시험장으로 향하는 것은.
‘곧 시작하겠구나.’
그녀가 시간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봉우리 쪽에서 조명 마법이 솟구쳤다.
푸른색 예비 조명이었고, 학생들의 함성 소리가 메아리를 타고 들려왔다.
“…….”
마리아는 더 걷지 못했다.
마치 그들의 목소리가 자신을 밀어내는 것 같아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곳에 내 자리는 없어.’
여기가 끝일까?
학교를 떠날 용기도 없다는 것을 안 순간 불현듯 공포가 밀려들었다.
‘마크가 합격하면…….’
시로네의 왕따 사건을 밝힌 사람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터였다.
심장이 터질 것같이 뛰고 위액이 역류하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안 돼!’
마크를 막아야 한다는 일념이 가득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산 중턱에 위치한 건널 수 없는 다리의 기관 통제실을 돌아보았다.
“…….”
또다시 갈등했으나, 어떤 상황이 되어도 마크를 합격시키는 것보다는 나을 듯했다.
끼이이, 낡은 철문이 열리고 기관실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이 펼쳐졌다.
직원 1명이 의자에 앉아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언제 끝나려나, 맥주나 한잔하고 싶은데.”
잠시 끔벅거리던 그의 눈꺼풀이 스르르 잠기더니 곧바로 고개가 떨어졌다.
“후우.”
직원의 뒤편에 마리아가 서 있었다.
정신을 이완시키는 수면 마법은 전장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지만 일반인에게는 특효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