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20
시로네는 격렬한 진동을 느끼며 공기의 몸체를 뚫고 지나갔다. 공기가 이토록 단단한 물질인지 처음 알았다.
시로네를 발견한 학생들이 벌떡 일어났다.
“피해! 여기로 추락하면 끝장이야!”
하지만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정확한 도착 지점을 예측할 수 없기에 상체만 좌로 우로 흔들릴 뿐이었다.
내비게이션은 평가장에 도착해서야 마지막 제안을 꺼내 들었다. 점. 여기에서 멈추는 게 신상에 좋을 거라는 뜻이었다.
“흐읍!”
시로네는 눈을 부릅뜨며 광익을 전방으로 휘둘렀다.
퍼어어어어어엉!
고막이 찢어질 듯한 소리가 터졌다. 훈련장의 흙먼지가 밀려 나가 전방에 부연 연무를 퍼트렸다.
고개를 돌린 학생들이 먹먹한 귀청 속에 흐르는 이명을 들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내 두려운 표정으로 흙먼지가 내려앉는 광경으로 시선을 옮겼다.
피떡이 되어 버린 시로네의 시체를 상상하면 차라리 흙먼지가 걷히지 않는 편이 나을 터였다.
“시, 시로네?”
마야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몸이 굳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시로네! 시로네!”
에이미와 친구들이 그녀를 지나쳐 평가장으로 내달렸다.
펄럭!
느리고 거대한 소리가 흙먼지를 사방으로 날렸다. 흙을 먹은 네이드가 퉤퉤 하고 침을 뱉다가 앞을 살폈다.
5미터 상공에 떠 있는 시로네가 천천히 날개를 펄럭이며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시로네, 괜찮아?”
시로네는 미소로 화답하고 마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안도한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자 짜릿한 희열이 차올랐다.
그것은 분명 이율배반적인 감정이었다.
“나는 괜찮아. 일단 평가부터 끝내고.”
광익을 접으면서 소멸시키자 금빛 파편이 한순간 찬란하게 퍼지다가 종적을 감추었다.
평가 교사가 기록을 시작했다.
“시로네, 무브먼트 제어 마스터 난이도 통과다. 이것으로 오늘 획득 점수는 30점이다.”
페르미의 100점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졸업반 모두의 머릿속은 또다시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올 마스터의 페르미. 올 마스터가 아닌데도 페르미의 역량을 넘어선 시로네.
아직까지도 두 사람의 대결 구도는 박빙이었다.
‘이걸로 더 어려운 문제가 됐군. 이러다가 정말 페르미가 깨지는 거 아냐?’
페르미 일행을 제외하면 이번 졸업 시험에 사활을 건 자들이니 갈등이 생기는 게 당연했다.
일렉트릭 몬스터 라이컨이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저렇게 질긴 놈은 처음이군. 페르미, 슬슬……!”
고개를 돌린 라이컨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페르미의 눈동자가 정상이 아니었다. 오른쪽 동공은 위로 말려들어 가 있고 왼쪽 동공은 옆으로 밀려 있었다.
사업가의 가면 뒤에 감추어진 진정한 괴물의 모습이었다.
‘젠장, 이러면 같이 자폭하자는 것밖에 안 되는데.’
규정외식자. 아무리 냉철한 사고를 지녔어도 속은 뒤틀릴 대로 뒤틀린 괴물.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페르미가 감정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다.
‘한 달에 벌어들이는 게 얼만데…….’
차라리 시로네 따위는 그냥 보내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 페르미. 너…….”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간부급 전원 금화륜으로 모여.”
페르미는 짧게 지시를 내리고 멀어져 갔다.
마치 이목구비가 사라진 귀신을 본 것처럼, 라이컨은 조금 전 페르미의 얼굴을 기억할 수 없었다.
***
고지 점령 평가가 2일 앞으로 다가왔다.
학생들은 남몰래 모여서 전략 회의를 할 것이고, 팀을 정하지 못한 자들도 지금쯤은 결정을 내릴 시점이었다.
졸업 시험의 모의 평가답게 팀의 구성부터 대진까지 모든 게 자율적이었다.
원하는 팀을 지목하면 되고, 복수 지목을 당하거나 지목을 당하지 않았을 시에는 구슬 뽑기로 결정한다.
현재까지 전체 멤버가 공개된 팀은 시로네 팀뿐이었다.
반면에 스크리머 팀은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적어도 시로네 팀에게는 그랬다.
‘오늘도 음악실에 있으려나?’
시로네는 졸업반 건물로 들어갔다. 이루키의 요청으로 전략 회의 약속 시간보다 빨리 마야를 찾아 나선 그였다.
예상대로 음악실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자 석양이 저물던 그날의 감정이 떠올라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야가 해밝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어, 시로네! 여긴 웬일이야? 이따가 만나기로 했잖아.”
시로네는 알다가도 모를 기분이었다. 거리감이 느껴지다가도 이럴 때는 다시 누구보다 친근했다.
“이루키가 조금 빨리할 수 있냐고 해서. 스크리머 팀의 맞춤형 전략이 떠올랐대.”
“아, 그렇구나. 어디서 보기로 했어?”
피아노를 닫고 일어선 마야는 시로네를 지나쳐 문으로 걸어갔다. 그녀에게서 아이처럼 우유 냄새가 났다.
전투준비 태세 (5)
시로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마야.”
“우리 맛있는 거 먹으면서 회의하면 안 될까? 나, 예전부터 해 보고 싶었거든.”
“마야.”
두 번째 부름에 마야가 돌아섰다.
“응?”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막상 눈을 마주치자 머릿속의 말들이 사방으로 도망치는 기분이었다. 명확하지 않은 걸 이야기할 수는 없다. 명확하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우리 때문에 스크리머와 싸우는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돼. 요즘 고민인 것 같아서.”
이루키의 말을 빌리는 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것으로 해결된다면 따질 필요는 없으리라.
“에이, 아니야. 어차피 전체 평가잖아. 오히려 짐이 되는 것 같아서 내가 미안하지.”
마야가 문고리를 돌리고 나가려고 하는 순간 시로네는 자신이 더 이상 참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대체 왜 그러는데?”
시로네의 언성이 높아졌음에도 마야는 놀라지 않았다. 난감한 듯 미소를 지으며 습관대로 볼을 긁적거릴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요즘 왜 나를 피하는 거야? 다 느껴진단 말이야.”
“내가…… 잘못한 거라도 있는 거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그럼 왜 내가 너에게 다정하게 대해야 하는데?”
마야에게 다가가던 걸음이 멈췄다. 날카로운 칼날이 훅 하고 가슴을 찌르고 들어오는 듯했다.
“나에게 뭘 원해? 내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어? 항상 너만 바라보면서 헤헤 웃고 있어야 하는 거야?”
시로네는 마야가 이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오해가 있다면 풀면 된다. 하지만 이건 오해가 아니었다.
“나를 대하는 태도야 너의 자유지만…….”
마야는 쓴웃음을 지었다. 속 터져 죽는다는 에이미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녀에게 했던 답변을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시로네, 나를 사랑할 수 있어?”
시로네의 얼굴이 굳었다.
예상했던 반응에 마야는 슬픈 눈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날 음악실에 불었던 바람을 가슴에 담은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시로네, 나는 에이미와 달라. 냉철하지도, 강하지도 않아. 너에게 안길 수 없다면 매일이 지옥 같을 거야. 너만 생각하게 될 거야. 나를 사랑할 수 없다면 여기서 끝내야 해.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두어야 해.’
시로네의 떨리는 눈동자가 점차 가라앉았다. 토끼처럼 놀라 있던 얼굴도 차분해졌다.
마야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기대감이 심장을 뛰게 했다.
시로네는 어떤 대답을 할까?
사랑해? 사실은 나도 널 좋아했어?
온갖 설레는 말들이 떠올랐지만 그녀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미안해.
벌써부터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야. 여기서 끝내는 거야.’
각오를 끝낸 마야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단호한 눈빛의 시로네를 보는 순간 여지없이 심장이 떨어지고 말았다.
“마야, 나는…….”
“아, 아하하하하!”
시로네의 얼굴이 황당하게 변했다. 정말로 웃긴 듯 눈물까지 흘리며, 마야가 검지로 눈 밑을 훔치며 다가왔다.
“농담이야, 농담! 어휴, 순진하기는.”
“농, 농담?”
“졸업반 행사 때도 그러더니 또 그러네. 너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에이미에게 이른다?”
시로네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비현실적인 세계의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네가 요즘 말도 안 하고…….”
“아아, 머리가 복잡해서 다른 생각 할 겨를이 없었어. 집에서는 기대하고 있고 성적은 계속 떨어지고. 미안해. 앞으로는 절대로! 저얼대로 모르는 척 안 할게.”
시로네는 맥이 탁 풀렸다. 무언가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야는 일말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자, 자! 빨리 가자! 이루키 기다리겠다. 고지 점령! 무조건 이길 거지?”
“응? 어, 그래야지.”
마야는 시로네의 등을 떠밀며 음악실을 나섰다. 문턱을 넘어서는 그녀의 얼굴은, 어금니를 깨문 채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하아, 들어와 버렸어. 이제 어떡하지?’
지옥의 문턱을 넘어서는 기분이었다.
***
알페아스 마법학교 북동쪽 산맥에는 지하 20미터 아래로 내려가는 동굴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복잡한 미궁을 빠져나가면 페르미가 회장으로 있는 금화륜이 나온다.
저택이라 봐도 무방할 만큼 넓고 화려한 방이었다.
테이블에 온갖 진미가 요리되어 있고, 턱시도를 입은 웨이터가 와인을 들고 다니며 비어 있는 잔을 채웠다.
중앙에는 아름다운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 있고 7명으로 구성된 악사들의 연주가 잔잔하게 깔렸다.
금화륜에 상주하는 최고급 직원의 숫자는 40명.
인건비만 하루에 700골드가 넘었고 이 모든 게 5명의 회원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다.
페르미는 소파에 앉아 와인을 즐겼다. 양탄자에는 백색 털의 호랑이가 목줄을 차고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좌우에 놓인 4개의 소파에는 소위 페르미 일행이라 불리는 금화륜의 회원들이 앉아 있었다.
“드디어 한 달 수익이 700만 골드를 넘었군. 1천만을 돌파하는 것도 가시권에 들어왔어.”
학생 수준에서 만질 만한 금액이 아니었으나 페르미는 그저 심드렁했다.
눈치 빠른 회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오늘처럼 긴급회의가 소집된 날이면 말을 가려서 해야 할 것이다.
“아리안 시로네…….”
페르미가 포문을 열자 회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준비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굳이 신경 쓸 필요 있을까? 언젠가 밟기는 해야겠지만 사업에 더 치중하는 게 어때?”
“내 생각도 같아.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야. 차라리 그냥 졸업시켜 버려도 되지 않아?”
날파리 하나 잡자고 집을 허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페르미가 감정을 드러낸 이상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 또한 없었다.
“그래서 더욱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거야.”
“페르미, 너무 스트레스받는 거 아냐? 도발 같은 건 무시할 수 있잖아.”
“도발은 무시할 수 있지. 하지만 이건 위험이야. 금화륜의 존속 여부가 걸린 위험.”
페르미의 말이면 무엇이든 따르는 그들이지만 시로네를 위험 요소로 분류하는 것만큼은 공감할 수 없었다.
“물론 시로네는 대단한 루키지. 하지만 알잖아? 우리는 프로야. 돈을 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력도 그렇다고. 졸업 시험에서 충분히 통제할 수 있어.”
페르미는 차가운 눈으로 와인 잔을 빙빙 돌렸다.
“어째서 큰돈을 못 버는지 알아? 지금 닥친 문제가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지. 혹은 알면서도 간과하거나. 오늘의 위험은 미래에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 된다.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막상 닥쳤을 때에는 해결책이 없어.”
회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페르미가 옳다.
“이제부터 시로네는 금화륜을 위협하는 최고 등급의 위험 요소로 분류한다. 분석부터 제대로 할 거야. 스크리머랑 붙는다던데, 걔들 팀원이 어떻게 되지?”
소나의 헤르시가 도청한 결과를 보고했다.
“스크리머, 포니, 루만, 수아비, 아이더야. 팀은 어제 완성됐고.”
“흐음, 루만에 수아비라. 2유틸, 마권사 필살 조합이군.”
예상대로 스크리머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꾸린 팀이었다. 도로시가 빠진 게 의외이긴 하지만 아마도 그녀가 거절했을 공산이 크다. 촉 하나는 기가 막히게 예리한 여자니까.
“자존심이 강한 만큼 증명하고 싶겠지. 전략 전술하고는 완전히 다를 거야. 아무리 시로네라도 마야를 데리고 스크리머 팀을 격파하기란 쉽지 않아.”
섬멸 임무처럼 팀워크가 중심이 되는 대결이 아니라면 마권사 필살 전략은 상당히 강력하다.
전략 전술 상황에서 시로네 조는 3분 28초에 삼백 마리 이상의 몬스터를 섬멸했지만 스크리머 조는 스크리머 혼자서 백쉰 마리 이상을 해치웠다.
1명을 극단적으로 강화시켜 밸런스 붕괴를 유발시킨다.
이러한 전략은 오 대 오 대결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고, 시로네 팀이 이기기 위해서는 완벽한 밸런스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마야의 존재는 독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이번 기회에 시로네가 지닌 장점을 모조리 파악할 거야. 속에 감춘 것까지 싹싹 긁어내는 거지.”
“어떻게 하려고? 어차피 전체 평가는 획득 점수가 높아서 참가자들도 최선을 다하는 종목이야. 스크리머 팀도 만반의 준비를 갖췄고.”
페르미는 소파를 톡톡 두어 번 두드렸다. 그의 몸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일렁이더니 들어 올리는 손 아래로 시커먼 것들이 촤르륵 소리를 내며 빠르게 왕복했다.
규정외식-감가상각의 거래.
팅! 소리를 내며 카지노 칩 하나가 회전하며 튀어 올랐다.
세로로 떨어지는 칩을 가로로 낚아챈 페르미는 헤르시에게 다시 던졌다.
칩의 중앙에는 소용돌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테두리는 흑과 백이 교차하는 패턴이었다.
“이건…….”
헤르시는 의외라는 듯 페르미를 살폈다.
이런 종류에 쓰기에는 상당히 귀한 칩이었다. 시가로 환산해도 40만 골드가 넘었다.
‘진심이구나, 페르미.’
시로네는 반드시 미래의 주적이 된다. 그렇게 확신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칩이었다.
“그걸로 거래하고 와. 계약 조건은 고지 점령에서 시로네가 전력을 다하도록 할 것. 살살 긁으면 본색을 드러낼 테니까.”
“알았어. 다른 전할 말은?”
잠시 생각하던 페르미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찢어졌다.
“뒷감당 생각하지 말고 화끈하게 해 보라고 해.”
고지 점령 (1)
고지 점령 평가가 치러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