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23
스크리머의 부름에 수아비는 그제야 몸을 돌렸다.
속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졸업반에 강자가 많다는 건 알고 있고 작년 졸업 시험에서도 탈락했다. 하지만 전공 자체가 무력화된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비참함이었다.
스크리머가 팀원을 모아 놓고 말했다.
“뭉치자. 중앙 라인을 최단거리로 뚫겠어. 포니도 이제부터 공격적으로 나가. 이번 라운드마저 빼앗기면 역전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해.”
4 대 1 스코어가 되면 패배는 거의 확정이다. 시로네 팀에는 반드시 1점을 얻을 수 있는 아타락시아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 포니는 계속 리프레시를 걸어 줘.”
수아비가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 볼게.”
스크리머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벌써 1년 넘게 알고 지내지만 수아비가 이토록 단호한 태도를 보인 적은 졸업 시험을 제외하고 처음이었다.
‘흐음, 완전히 열 받았다 이거지?’
마권사인 스크리머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캔슬레이션의 파훼법은 짐작조차 가지 않지만 당사자인 수아비가 괜찮다고 했으니 믿어 보는 게 좋았다.
“좋아, 이번 라운드가 끝이라고 생각하자. 나도 제대로 본때를 보여 주겠어.”
5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스크리머 팀은 가드를 제외하고 전원 중앙 라인으로 결집했다.
역전 승률이 높은 러시 앤드 러시 전술이었다.
전투 패키지가 스크리머에게 들어가자 이루키가 짝눈을 씰룩거리며 이탈형 스피릿 존을 날렸다.
‘어차피 캔슬레이션이면…….’
퍼퍼퍼펑! 퍼퍼퍼퍼퍼펑!
그때 버프 이펙트가 연달아 터졌다. 가드를 제외한 모든 팀원에게 전투 패키지가 들어가고 있었다.
이루키가 눈을 깜박거리며 당황했으나 수아비는 더욱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
‘어때, 이래도 할 수 있겠어?’
머릿속에 예약된 전지의 개수는 무려 137개. 그것도 초당 8개씩 소모되고 있는 상황에서의 누적 개수였다..
‘티키티키타키토키 톡톡 티키타키 탁탁티키톡틱타키톡!’
특유의 리듬감이 뇌리를 두드릴 때마다 머릿속 전지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하하하! 좋아! 바로 이거야!”
무력으로 충만한 스크리머는 거칠 것 없이 시로네 팀의 중심으로 뛰어들어 네 사람 모두에게 연타를 가했다. 그리고 1라운드 때처럼 과감한 마무리 자세를 취했다.
“끼야아아아아아!”
스크리머 팀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수아비의 의지가 느껴지자 윙어들도 아껴 둔 카드를 꺼내기 시작했다.
‘시로네만 끊으면 돼.’
루만은 발바닥에서부터 기운을 끌어 올리듯 두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생각했다.
‘모두가 나를 싫어하지.’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인간에게 화합이란 불신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차선책에 불과하다. 통제할 수 있다면, 타인의 감정은 상관없다.
‘그래, 나는 군중 제어의 일인자(자칭).’
루만의 볼살이 푸들푸들 떨리더니 흰자가 드러나고 입꼬리가 귀밑까지 올라갔다.
“내가 바로 전장의 왕이다!”
비장의 무기 ‘나선 사냥꾼’이 정체를 드러냈다.
쿠르르르르릉!
나선의 형태로 맴도는 지면이 진흙처럼 물컹해지더니 시로네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암석이 되어 그의 허리를 단단하게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이다!”
스크리머가 돌진하자 수아비의 집중력도 사상 최대치로 뛰어올랐다.
머릿속에 수많은 전지들이 광풍처럼 몰아쳤다.
계산을 넘어선 직관의 영역이었고, 전지가 전지를 때릴 때마다 혓바닥이 빠르게 튕겼다.
‘티키타키토키타키타키타키토키타키토키타키티키타키!’
예약 전지 372개.
이루키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졸업반에 들어오길 잘했어.’
여태까지 살면서 누군가를 이기고 싶었던 적은 없다.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지는 것은 더욱 싫다는 것을.
‘멋지구나, 수아비.’
별처럼 많은 재능들이 각자의 장기를 주장한다.
‘매일같이 연습했겠지. 멀어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밤마다 손등을 물어뜯으며, 그렇게 정진했겠지.’
이루키는 자세를 낮추고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수아비의 진심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었다.
‘이걸 하면 수명은 깎이겠지만…….’
마법학교에 들어와서는 6년 전 네이드와 빗속의 혈투를 벌였을 때, 1년 전 의무실 복도에서 카니스의 도발에 흥분했을 때,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였다.
뇌세포가 파괴되겠지만, 상관있을까? 대결을 떠나서 시로네 파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너는 좋은 마법사가 될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세상에서 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두 사람뿐이니까. 하나는 시로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루키의 동공에 실제의 스파크가 튀었다. 대뇌피질에서 전기가 발생하면서 망막에 투영되는 현상이었다.
‘바로 나, 메르코다인 이루키다!’
이루키의 머릿속에 있는 가상의 이미지에 초당 1억 줄에 이르는 데이터가 용오름처럼 치솟았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이 처리되자 더블 스피릿 존이 경이로운 속도로 스크리머 팀을 헤집고 날아다니며 모든 버프를 취소시켰다.
“말도 안 돼…….”
수아비는 망연자실했다. 싸울 의욕조차 사라질 만큼 압도적인 연산 속도였다.
콰콰콰콰콰쾅!
광폭으로 나선 사냥꾼을 파괴한 시로네가 팀원들을 이끌고 반격을 개시했다.
버프가 사라진 스크리머 팀은 급속도로 쇠약해졌고, 급기야는 수세에 몰렸다.
“하아, 결국은 밀리네.”
아이더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권사 필살 전략의 단점은 플랜 B가 없다는 것. 이번 라운드까지 빼앗기면 역전의 기회는 다시는 없을 터였다.
아이더의 얼굴에서 앳된 기가 사라졌다. 흑백 패턴의 칩을 꺼낸 그는 목구멍 속으로 넘겼다.
‘찝찝하긴 하지만, 뭐 상관없나?’
즐길 수만 있다면 졸업마저 포기할 수 있다. 아니, 졸업은 포기할 수 없다. 마법사가 되어 더욱 즐겨야 하니까.
머릿속에 전지가 장착되었다. 거래자의 말에 의하면 에어 계열의 고등 기술 ‘고스트 무브먼트’일 것이다.
내부 원리를 알 수 없어도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이유는 시로네의 아타락시아와 비슷한 기재였다.
“아, 아아아아…….”
아이더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인간을 맛보고 싶어 참았던 나날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거래를 한 이상 자신의 졸업은 확정이나 마찬가지였다.
“하하하하하하!”
아이더는 가면을 벗어 던지고 시로네 팀의 진영으로 똑바로 날아갔다. 리버스 포지션이라는 전술로 분류되지만, 스크리머 팀과 합의된 바는 없었다.
아군들이 황당하게 쳐다보는 동안 시로네 팀에서 각자의 마법으로 요격이 들어갔다.
가장 먼저 도달한 것은 포톤 캐논이었다. 하지만 격추 직전 아이더의 움직임이 기묘하게 뒤틀렸다. 마치 버들가지처럼 동선이 흔들리며 포톤 캐논을 모조리 피해 버렸다.
“어라? 고스트 무브먼트?”
전투장 밖에서 지켜보던 도로시의 눈이 빛났다.
학생 수준에서 구사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더의 움직임은 AT 알고리즘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페르미에게 붙은 건가?’
불과 몇 개월 만에 익혔다고 보기는 어렵다. 난류를 제어하여 물체의 접근을 자동으로 회피하는 AT 알고리즘은 프로들조차 애를 먹는 전지였다.
아이더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언덕에 도착한 그는 깃발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노린 건 깃발이 아닌 마야였다. 빡! 강력한 발 차기가 마야의 턱을 돌리면서 그녀의 몸이 언덕을 굴렀다.
“뭐……!”
아이더는 마야의 배를 깔고 앉았다. 1년 동안 억눌린 욕망을 분출할 생각에 얼굴근육이 경련하고 있었다.
“누나, 좀 아플 거예요. 그래도 참아?”
아이더의 주먹이 마야를 두들겼다. 입에서는 실없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겁에 질린 그녀의 표정을 보자 쾌락 물질이 이성을 날려 버렸다.
“으아아아! 재밌어 미쳐 버리겠네!”
고릴라처럼 양손을 들어 파운딩을 갈기는 아이더의 모습은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눈에는 흰자가 보이고,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팀원들은 물론이고 대결이 끝나고 밖에서 지켜보던 학생들도 할 말을 잃을 정도의 포악함이었다.
“진실의 용기 게임에서 나에게 질문했었지.”
아린이 말했다.
“가장 못생긴 사람? 처음에는 의아했어. 나는 사물의 형태를 구별할 수 없으니까. 당시에는 루만을 골랐지만, 사실 가장 강렬한 초경은 아이더였어. 정신 계통 분류에 의하면 ‘사악’에 해당되는 인물.”
카니스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악을 이해하는 자만이 선을 연기할 수 있다. 그것이 선과 악의 율법이지. 저 아이의 머릿속에 있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타인을 괴롭히고 싶은 마음뿐이야.”
카니스는 딱히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라둠의 모든 인간이 아이더였으니까.
“질문을 던진 이유는 너를 떠보기 위해서였지. 네가 사실을 부정하자 조금 더 연기를 한 거야.”
“맞아. 거래의 카드로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오늘의 초경은 조금 더 노골적이었어. 아마도 페르미 조직에 들어갔기 때문일 거야.”
“너라는 존재가 영향을 미쳤겠지. 초경의 능력자가 들어온 이상 1년 동안 연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어쨌거나 우리가 가진 카드 한 장은 날아간 셈이군.”
카니스는 가볍게 미련을 접었다.
어차피 수십 장의 카드가 남아 있다. 오히려 아린의 초경이 얼마나 졸업반을 압박할 수 있는지 알게 되어 좋은 일이었다.
“마야!”
시로네의 눈에 불이 켜졌다. 얼굴을 감싸고 웅크린 채로 얻어맞고 있는 마야를 보자 머릿속이 창백해졌다.
“히히히! 아파요? 얼마나 아파요? 막 화나지 않아요? 내가 미워 죽겠죠?”
아이더는 풀린 눈으로 주먹을 휘둘러 댔다.
사방에서 달려오는 시로네 팀 따위는 머릿속에 없었다. 고스트 무브먼트가 있는 한 무슨 짓을 해도 자신을 때릴 수 없을 테니까.
파직!
그때 아이더의 눈앞에서 푸른 전기가 번쩍였다.
AT 알고리즘이 뒤늦게 작동하면서 그의 몸을 10미터 이상 밀어냈다. 손톱을 내리긋는 네이드의 얼굴이 망막에 남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언덕 아래로 내려온 상태였다.
희열에 잠겨 있던 아이더의 얼굴에 공포가 섞였다.
‘뭐지? 방금 내가 뭘 본 거지?’
네이드의 얼굴을 본 것 같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뒤늦게 한쪽 다리가 개다리처럼 떨리고 있다는 사실이 인지되었다.
‘겁을 먹어?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한 네이드가 마야를 가로막았다. 죽일 생각으로 손을 휘둘렀던 당시의 얼굴은 파편으로 쪼개져 부분에만 남아 있다가 스며들었다.
“스크리머, 깃발.”
“아…….”
포니의 말에 정신을 차린 스크리머는 황급히 달려가 깃발을 뽑았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시로네는 마야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웅크린 채로 몸을 떨고 있는 그녀를 보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마야…….”
마야는 결코 마법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스피릿 존에 들어갈 정도의 재능은 다른 곳에 쓰여야 한다. 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가였고 천재적인 가수였다.
“마야, 일어나.”
시로네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야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지켜야 할 부족의 명예가 있다. 여기에서 무너지면 그녀는 영영 마법사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일어나. 아직 평가 중이잖아. 여기서 네가 실격당하면 우리 모두 20점을 잃어야 해.”
마야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놈의 20점. 하지만 졸업반의 모두가 그 20점을 따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
‘나는…… 너무 무서워, 시로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냉정함이 너무 무서워.’
포기하고 싶었다. 부족을 위해 버텼고 가족을 위해 싸웠지만, 아이더의 눈을 본 순간 깨달았다.
여기는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시로네…….’
마야는 천천히 일어섰다.
시로네를 사랑하게 되어 버렸다. 마법사 자격증보다 더욱 간절했다. 졸업반의 모두가 비웃겠지만, 마야는 그런 여자였다.
“난, 괜찮아……. 더 싸울 수 있어.”
어떻게든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는 마야의 모습에 시로네는 도리어 눈물이 차올랐다.
적군 진영에서 시시덕거리는 아이더를 돌아보았다. 무서운 분노가 그의 눈에 차올랐다.
고지 점령 (5)
“어때요, 내 전략? 제대로 먹혔죠?”
스크리머는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좋은 놈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좋은 놈이라고 해도 자신보다 남을 더 믿는 자가 졸업반에 있을까?
다만 너무 강한 자기주장은 타인이 소화하기에 껄끄러운 법이다.
“아무튼 됐고. 리버스 포지션을 해? 게임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냐? 미리 말이라도 했어야 할 거 아냐.”
“헤헤, 죄송해요. 회심의 카드라서 아껴 뒀어요. 어쨌거나 마야 누나를 뻗게 했으니 이제 우리가 유리하잖아요. 사실 여기서 실격패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네이드의 방해로 무산되고 말았다.
미쳤다고 자부하는 아이더지만 당시 네이드의 얼굴은 정상 범위에서 너무 심하게 이탈한 무언가였다.
“아이더.”
시로네의 목소리에 아이더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라? 시로네 형, 여기 우리 진영인데요? 아, 규정상 상관없나? 그래도 작전 엿듣는 건 비겁하잖아요.”
“……왜 그랬냐?”
아이더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깨달은 듯 손가락을 튀기며 말했다.
“아, 마야 누나요? 그게 왜요? 설마 답답한 소리나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죠?”
“다시 묻는다. 왜 그랬어?”
아이더의 인상이 구겨졌다.
본색을 드러낸 이상 예전처럼 형들을 어려워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뭐가 문제라는 거죠? 가드를 그로기 상태에 빠트리려고 한 것뿐이에요. 스크리머 형도 때리고, 네이드 형도 때렸잖아요. 마야 누나가 턱없이 약한 거죠. 에이미 누나였으면…….”
“착각하지 마. 화내려고 온 게 아니니까. 내가 묻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야.”
“그래요?”
아이더는 양손을 깍지 끼우고 머리를 받쳤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생존 테스트가 끝나고 말이야.”
시로네의 눈동자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나 건드리지 말라고.”
“…….”
누구든지 수작을 부리는 놈부터 짓밟는다. 분명 그렇게 말했다. 한마디로 아이더는 시로네의 살생부에 오른 셈이었다.
“하하하! 그러면 내가 아,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다신 안 건드리겠습니다, 이래야 하나요?”
예전이라면 겁을 먹은 척이라도 했겠지만 페르미라는 거대한 조직의 힘을 얻은 지금은 거칠 게 없었다.
“알고 있으면 됐어. 그걸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시로네는 몸을 돌려 아군 진영으로 돌아갔다.
친구들이 다가왔다. 6라운드 시작까지 1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전략을 빠르게 세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