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25
지금 시로네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해도 졸업 시험에서 얼마나 진화되어 나올지는 예측조차 불가능했다.
‘불과 3개월 만에 두 가지 중급, 한 가지 상급 마법을 장착했다. 속도로만 보자면 내 자금 경영으로 이끌어 내는 무력 강화와 거의 흡사한 속도로군.’
페르미는 돌아보지 않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특바겐세일이다.”
“응?”
“전 고객에게 20퍼센트 할인해 준다고 전해. 그리고 앞으로 상급 마법만 구매한다. 졸업 시험 전까지 닥치는 대로 사들여.”
소나의 헤르시가 울상을 지으며 다가왔다.
“하지만 페르미, 그러면 올해 수익이…….”
“내가 뭐라고 했지?”
페르미의 시선에 관통당한 헤르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완벽한 경영가인 페르미는 규정외식자인 페르미만큼이나 무서운 존재였다.
“사소한 변수를 제거하지 않으면 막상 닥쳤을 때 감당할 수 없는 변수가 된다.”
헤르시가 또박또박 내뱉자 페르미는 차갑게 몸을 돌렸다.
“해.”
“아, 알았어.”
페르미가 장내를 떠나자 남은 네 사람도 눈치를 보다가 뒤를 따랐다.
전투장 주변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몇몇 학생들이 필사적으로 스크리머를 말리는 중이었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싫어하는 자들이지만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아이더가 죽을지도 몰랐다.
“놔! 저 자식, 죽여 버리겠어! 이거 놓으라고!”
“스크리머! 진정해! 아이더는 중상이야! 네가 치면 진짜로 죽어!”
전신 골절 환자에게 더 이상 때릴 곳은 없겠지만 스크리머의 성격이라면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죽으라고 치는 거야! 건방진 자식이 감히 내가 설계한 판을 엎어?”
합의되지 않은 전략으로 팀을 실격패시켰다. 게다가 페르미와 결탁까지 했으니 뒷골목 의리에 민감한 그로서는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으아아아! 짜증 나!”
스크리머는 땅바닥을 발로 차서 아이더에게 흙을 뿌렸다. 보다 못한 의무대원이 죽일 듯이 노려보며 삿대질을 했다.
“너! 환자에게서 10미터 이상 떨어져! 안 그러면 교사에게 보고하겠어!”
“아우! 제기랄!”
이성을 되찾은 스크리머는 학생들의 손을 뿌리치며 돌아섰다.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지만 부상에서 회복되면 아이더는 반쯤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스크리머는 식수대로 걸어가 물통의 뚜껑을 열고 한번에 들이켰다. 그러다가 시로네 일행이 다가오자 물통을 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겼다고 기고만장하지 마라. 아이더만 아니었어도 승부는 몰랐으니까.”
네이드가 코웃음을 쳤다.
“웃기고 있네! 어차피 우리가 잡은 경기였거든? 그리고 약속했을 텐데? 마야에게 사과한다고 말이야.”
스크리머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내뱉은 말이 있으니 사과는 해야겠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억울한 측면도 있었다. 아이더라는 희대의 꼴통을 데리고 어떻게 경기를 이긴단 말인가?
“쳇! 사과는 무슨. 야, 물이나 마셔라.”
스크리머는 이걸로 끝내자는 듯 물통을 건넸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여전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야가 흠칫 놀라며 어깨를 떨자 스크리머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우, 몇 대 맞았다고 겁에 질려서는. 저런 게 무슨 마법사가 되겠다고…….’
마야는 마법에 재능이 없다. 아니, 재능을 떠나서 사고방식부터가 마법사답지 않다.
어차피 사람 성격이야 백인백색인 것이고 현실에서 중요한 건 누가 관철시키느냐이다.
얼굴은 퉁퉁 부어 있고, 눈은 겁에 질린 토끼 같고, 벌받는 사람처럼 손을 모으고 있는 자세 같은 것들이 하나같이 심기를 거슬리게 하고 있었다.
“마야, 너…….”
그냥 마법사 하지 마라.
스크리머는 다음 말을 속으로 삼켰다. 어차피 그녀의 인생이고 그녀가 선택해야 하는 일이다.
또한 마법사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바라보자 미친개에게 물려서 넋이 나간 모습도 조금은 동정이 갔다.
“그래, 미안하다.”
스크리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마야의 손에 물통을 쥐여 주었다.
“돼지 멱따는 소리라고 한 거 미안하다고. 노래 잘 부르던데 열심히 해 봐라. 아이더는 신경 쓸 필요 없어. 돌아오자마자 내가 다시 병원으로 보내 버릴 테니까.”
“스크리머…….”
마야에게 스크리머는 어려운 사람이다. 언제나 화만 내고, 하필이면 자주 같은 조에 걸려서 눈빛만 마주쳐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그런 사람에게 사과를 듣자 여태까지의 서러움이 북받치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아우, 진짜 적응 안 돼서 못 있겠네. 야, 사과했으니까 됐지? 난 간다.”
스크리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물통 하나를 더 들고 훈련장을 떠났다.
***
고지 점령 평가가 끝나고 2주가 지난 휴일.
시로네와 네이드, 이루키는 꽃을 들고 고급반으로 향했다. 이번 논문으로 왕성에서 상을 받은 시이나가 공인 5급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토르미아 왕국 예하의 마법학교에서 공인 5급의 마법사가 평교사로 있는 학교는 왕립 마법학교를 제외하고는 없었으니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도 괜찮을까? 졸업반 애들은 강철문 밖으로 잘 안 나가잖아. 후배들에게 위화감 조성한다고 말이야.”
“그래도 축하는 드려야지. 발표회 때도 그렇고, 많이 신경을 써 주셨으니까.”
대화를 나누며 고급반 건물로 들어가는 순간 복도에 있던 학생들의 눈이 모두 휘둥그레졌다.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는 졸업반 선배가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세 사람씩이나.
“우와! 시로네 선배님이다!”
“이루키 선배님이랑 네이드 선배님도 있어!”
강의실에서마다 학생들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순식간에 복도가 막혔다.
초롱초롱 빛나는 후배들의 눈을 보자 시로네는 사누엘의 초음술 시범에 경악했던 예전의 추억을 떠올렸다.
‘하긴, 나도 저랬지.’
사누엘과 비슷한 수준의 실력자들과 매일 겨루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함께 수업을 받았던 후배들이 전보다 훨씬 어리게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클래스 포의 최고 유망주 오에른이라고 합니다!”
인파에서 앳된 소년이 걸어 나와 허리를 꾸벅 구부렸다.
작년까지만 해도 통합 수업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기에 시로네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에른?”
“네. 이번 학기에 입학했어요. 선배님은 모르실 거예요.”
“아, 전학생이구나.”
오에른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도 늦게 마법을 시작했어요. 시로네 선배님하고 비슷한 경우죠.”
시로네는 그제야 오에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법학교에 들어오자마자 클래스 포라면 입학 테스트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결과를 냈다는 얘기였다.
‘응?’
갑자기 위험한 기운이 전해지자 시로네는 학습된 본능으로 스피릿 존에 들어갔다. 오에른의 스피릿 존이 예리한 창처럼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흐음, 그렇다 이거지.’
고급반에서 주목받는 유망주라면 시로네에 대한 일화를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그의 추종자인 마크와 마리아가 터줏대감으로 버티고 있으니까.
아이더가 졸업반에서 이탈했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터였다. 졸업 일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클래스 포에서 1명이 월반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의욕이 남다른 건 당연했다.
‘어때요? 이 정도면 선배님도 인정할 수밖에 없겠죠?’
졸업반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오에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마법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시로네에 비해 자신의 재능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시로네는 열여덟 살에 입학했음에도 클래스 세븐부터 시작했다. 반면에 자신은 그보다 두 살이나 어리지만 한번에 클래스 포에 입학한 수재였다.
시로네는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이래서 졸업반 학생들이 강철문을 잘 나서지 않는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후배들을 일일이 상대해 주다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니까.
‘확실히 재능은 있네. 하지만…….’
시로네는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오에른을 노려보았다.
스피릿 존이 공격형으로 변하면서 무려 200개에 달하는 가시가 오에른을 향해 뻗어 나왔다.
“으악!”
기겁한 오에른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뒤로 땅을 짚은 그는 질린 표정으로 시로네를 올려다보았다.
스피릿 존에서만큼은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건만 조금 전의 공격형은 차원이 달랐다.
‘말도 안 돼. 분명히 마크가 수비형이라고 했는데…….’
시로네가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너. 공격형에 특화되어 있구나?”
“네? 아, 네.”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짧은 만남으로 파악한 성격만 놓고 봐도 에이미처럼 기운이 펄펄 넘치는 후배였다.
“정신을 예리하게 만든다고 전부가 아니야. 공격형은 속도와 순발력이 중요해. 너처럼 계속 같은 정신 상태를 유지하면 금방 익숙해지고 말거든.”
“그, 그렇군요.”
오에른은 멍하니 시로네를 올려다보았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격차가 심했다.
‘이것이 졸업반인가?’
시로네가 한 걸음을 옮기자 복도를 막고 있던 학생들이 물길이 갈라지듯 쫙 하고 좌우로 열렸다.
“진짜 당돌한 애네. 꼭 예전 이루키 보는 것 같잖아?”
네이드의 말에 이루키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 시로네가 끔찍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이루키에 비하면 정말 겸손한 편이지.”
“자신감은 실력에 비례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 아이가 나보다 겸손한 건 당연한 일이야.”
“하여튼 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은…….”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복도 끝으로 멀어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수십 명의 후배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급변하는 정세 (2)
공인 5급 마법사 승진 기념 회식을 끝낸 시이나는 알큰하게 취한 상태로 숙소에 도착했다.
수많은 꽃다발을 받았지만 그녀가 가지고 들어온 것은 시로네가 주었던 꽃이었다.
구두를 벗으며 아래를 내려다보자 각종 기관에서 보낸 축하 서신이 수십 통이나 와 있었다.
한 무더기 서신을 챙기고 책상에 앉은 시이나는 머리를 넘기며 하나씩 살폈다.
토르미아 국방 마법연구소, 왕립 마법박물관, 기후협회, 마법사연금공단 등 끝이 없었다.
“후우, 나도 성공하기는 했나 보네.”
시이나는 겉옷을 벗으며 일어났다. 숙취는 문제가 아니지만 땀을 많이 흘려서 일단 씻고 싶었다.
상의를 벗어 책상에 던진 그녀는 쌓여 있는 서신에서 독특한 기관의 인장을 찾아냈다.
“카이젠 검술학교?”
올리페르 가문에서 태어나 줄곧 마법사로 살아온 그녀였기에 검술 쪽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교사회에서 만난 사람인가?”
시이나는 편지를 뜯어 이름을 살폈다.
파르카 쿠안.
“아…… 쿠안 씨가.”
작년에 올리페르 가문의 압박으로 선을 보러 나갔다가 만난 사람이 쿠안이었다.
나쁘지 않은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말투가 차갑고 태도도 냉랭했지만 무례의 선은 넘지 않았던 남자.
“어떻게 알고 서신을 보냈지?”
교사회를 통해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검술과 마법은 분야가 전혀 다르다 보니 평소부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상황이었다.
“이건 답신을 보내야겠네.”
시이나는 속옷만 걸친 채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서랍을 열어 편지지를 꺼낸 그녀는 만년필에 잉크를 묻히고 종이에 가져다 댔다.
톡.
백지에 찍힌 점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아르민 오빠…….’
축하를 받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있다면 아르민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위해 두 눈을 양보했던 사람.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오르는 건 꿈도 꾸지 못했을 터였다.
시이나는 점만 찍힌 편지지를 서랍에 넣었다. 쿠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미 떠나보낸 아르민의 잔상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잘 지내고 있는 건가? 작품도 공개 안 하는 것 같고.’
크레아스에서 작업을 하다가 떠난 뒤로 그에게서는 한 통의 편지도 오지 않았다.
최소한 세 달에 한 번씩은 편지를 보냈던 사람이기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하긴.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니까.’
누가 누구를 걱정할 수 있을까?
공인 5급의 마법사가 되었지만 아르민 앞에서 시이나는 여전히 어린 날의 울보 여동생일 뿐이었다.
시이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후후. 오빠, 나 잘했지?”
***
생애 가장 끔찍한 꿈이었다.
하늘에 뚫린 도시 크기의 구멍에서 수많은 마라들이 쳐들어왔다.
인간에게 악마, 마신, 신이라 불리던 존재들이 지상의 생물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를 잃었다.
벌판처럼 깔린 시체들 사이에 시로네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죽어 있었다.
‘안 돼! 안 돼!’
에이미의 시체 앞에서 시로네는 오열했다.
눈을 감지 못한 그녀의 시선이 창공에 떠 있는 수십 마리의 마라를 원통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아타락시아가 무서운 속도로 집적되었다. 시로네의 머리털이 전부 곤두섰을 때 거대한 섬광이 천공을 휘저었다.
마라들이 빛에 파묻혀 사라졌다.
그렇게 세상 전체가 빛으로 채워지는 순간, 외곽에서부터 어둠이 밀려들어 빠르게 빛을 뒤덮었다.
시로네는 어둠 속에 홀로 남게 되었다. 세상에 남은 유일한 인간에게는 고독이라는 이름마저 어울리지 않았다.
시로네는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잃어버린 자들을 되돌려달라고 어둠 속에 대고 소리쳤다.
“시-로-네-여.”
탁한 목소리가 고막을 찢고 들어왔다.
작고 가느다란 섬광이 지나가더니 어둠이 위아래로 열리며 거대한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로네의 눈이 부릅떠졌다. 거대한 눈동자의 중심에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 ……!”
시로네는 피를 토해 가며 소리쳤다. 생애 이토록 무언가를 증오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마치 물속에 잠긴 듯 들리지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어둠에 박혀 있을 뿐인 거대한 눈동자가 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에게는 남겨진 질문에 답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 ……!”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온갖 저주의 말과 폭언이 눈동자에게 쏘아졌다.
꿈에서조차 자제력을 잃어버린 그는 두 주먹으로 어둠을 내리쳤다. 원망, 울분, 그리움이 떨리는 어깨에 담겼다.
거대한 눈동자는 처음으로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동공의 움직임은 없었지만, 분명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