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26
갑자기 귀가 생긴 것처럼 시로네는 비로소 꿈속에 있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대체 뭘? 내가 무슨 질문에 답해야 하는 거야?”
“…….”
눈동자가 물었다.
“허억!”
자지러지듯 놀란 시로네는 상체를 세웠다. 메모지가 덕지덕지 달라붙은 책상 가림판이 눈에 들어왔다.
‘내 방. 내 방이구나…….’
시로네는 다시 책상에 고꾸라졌다.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했고 탈진한 것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후우, 대체 뭐야? 왜 이런 이상한 꿈을…….”
뺨에 달라붙은 종이의 질감을 느낀 그는 몸을 세웠다. 빼곡하게 글자가 새겨진 노트 중에서 하나의 단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천국 파괴.
밤새도록 마법을 연구하다가 잠이 들었다. 말 그대로 대량 학살 마법을 개발하는 셈이다. 여전히 해법이 없다는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악몽을 꾼 것이 아닌가 싶었다.
어느덧 새벽 5시였다.
시로네는 노트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천국 파괴 마법에 관련한 아이디어만 벌써 노트로 열 권이 넘어갔다. 신의 입자에 대한 이해도는 한층 높아졌으나 그럼에도 가올드가 제안한 기준을 충족시킬 가능성은 여전히 0퍼센트였다.
‘아니, 분명 방법은 있어. 아마도…….’
완성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마법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여전히 뇌리에 정답과도 같은 희미한 울림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듯한 물로 몸을 씻은 시로네는 크로스백에 노트와 펜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겨울에 시작된 졸업반도 어느덧 여름을 향하고 있었다. 밤이 짧아져서 그새 동이 텄고 탄산수를 섞은 듯 공기가 상쾌했다. 숲에서는 청쾌한 새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정말로 천국에 갈 수는 있는 건가?’
가올드를 만났을 때만 해도 1년이 금방일 것 같았다. 하지만 졸업반의 바쁜 일정 속에 살다 보니 어느덧 그에 얽힌 모든 약속들이 꿈처럼 몽롱하게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어? 시로네?”
시로네가 고개를 돌리자 마야가 정원 벤치에 앉아 눈을 깜박이는 게 보였다. 양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있었다.
“마야,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응? 나는 항상 지금 일어나는데? 기상 음악 연주해야 되니까. 그러는 너는?”
매일 아침 음악 소리에 잠에서 깼던 시로네지만 그런 사소한 고충이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 그렇구나. 나는 자다가 일찍 깼어. 시간이 남아서 산책 좀 하는 중이야.”
“그렇구나.”
고지 점령 이후 전보다 가까워진 두 사람이지만 단둘이 만나는 상황은 원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기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고개를 숙이고 머그잔을 뽀드득 엄지로 밀어내던 마야가 용기를 내서 벤치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앉을래?”
시로네는 사양하지 않았다. 머리를 식히러 나온 참이지만 마야와 함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마법사가 각자의 영역에 칼같이 선을 긋는 반면에 마야는 그 선 너머로 성큼 들어와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자신이 감당할 일을 남에게 떠넘기기 싫어하는 게 마법사인 이상 시로네도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다정함은 치열한 졸업반 일정에서 점차 삭막해져 가는 시로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주는 오아시스였다.
“좀 마실래? 아직 따듯해.”
마야가 설탕과 우유가 섞인 커피를 건넸다. 스트레스에 시달린 시로네로서는 단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상대가 마야이기에 스스럼없이 손을 댈 수 있는 것이었다.
“응, 고마워.”
시로네가 입을 대고 커피를 마시자 마야의 얼굴이 발그레해지더니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표정이 어두워 보이네.”
시로네는 끙 소리를 내며 벤치에 등을 기댔다.
“근래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데 도무지 실마리가 안 풀려서. 며칠째 잠도 못 자고 고민 중이야. 게다가 오늘은 지독한 악몽까지 꿨거든.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아.”
마야가 보기에도 시로네의 몸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졸업반에서 승승장구하는 중이니 걱정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는데 시로네 정도 수준이 되면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나도 가끔 노래 부를 때 그렇거든. 너무 잘 부르려고 하면 이상하게 힘이 들어가서 잘 안되는 경우가 있어.”
시로네 또한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정신이 흐르지 않는다는 통찰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대하를 이룰 수 없다.
한계까지 쥐어 짜낸 상태에서 둑을 텄을 때, 정신은 비로소 거대한 급류가 되어 천재적인 발상에 도달하는 것이다.
“흐음, 잘 모르겠어. 쉽든 어렵든 도무지 말이 되어야 말이지. 이러다가는 미쳐 버릴지도 몰라.”
시로네는 고개를 한껏 젖혔다. 부지런한 새들이 아침거리를 찾아 창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마야의 표정이 안쓰럽게 변했다. 얼마나 고민이 깊으면 눈 밑에 다크서클이 저렇게 짙게 생겼을까?
“시로네…….”
마야의 손이 시로네의 손을 덮었다. 그런 와중에도 시로네의 시선은 하늘에 고정되어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어서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용인하는 것인지 알 도리는 없지만, 시로네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시로네, 무슨 일인지 말해 주면 안 될까?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사소한 부분을 놓칠 때가 있는 법이잖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면 해결책이 나올지도 몰라.”
시로네는 천천히 눈을 깜박거렸다.
‘흐음, 도움을 구하라?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지. 하지만 이건 국가 기밀인데, 대체 누구에게…… 응?’
시로네의 눈꺼풀이 열린 상태로 굳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죽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만큼 정적인 기질이었다.
마야는 시로네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시로네를 위로해 주고 싶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그의 여자가 되어.
그녀는 시로네에게 몸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이래도 되는가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싫다면 손을 잡았을 때부터 거절의 의사를 표했을 것이다.
어쩌면 시로네도 다음에 올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닐까?
주관적인 생각에서 객관적인 용기를 얻은 마야는 통통한 입술을 살며시 벌리며 시로네의 입을 향해 전진했다.
“시로네, 혹시 내가…….”
“신의 입자.”
“응?”
시로네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소리들이 새어 나왔다.
도움을 받는다.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뇌리에 미약하게 흐르던 빛이 엄청난 속도로 증폭되면서 소름이 끼쳤다. 마침내 뇌가 뻥 뚫리는 듯한 청량감과 함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마야!”
“미, 미안해! 나는 그냥……!”
마야는 황급히 몸을 웅크렸다. 정신을 차린 뒤에야 무엇을 시도하려고 했는지 깨달았다. 변태로 오인받기에 딱 좋은 상황, 아니 어쩌면 진짜로 변태가 아닐까?
시로네는 탁 소리가 나게 머그잔을 내려놓고 마야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저기, 시로네, 그러니까 있잖아, 내가 왜 그랬냐면…….”
그리고 말을 들을 새도 없이 마야를 끌어안았다.
마야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머리가 몽롱해지면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희열이 차올랐다.
“고마워, 진짜로 고마워! 드디어 알아냈어!”
마야의 어깨를 붙잡고 힘차게 흔들어 대던 시로네는 반쯤 넋이 나간 사람처럼 크로스백을 메고 튀어 나갔다.
“미안해! 할 일이 생겼어! 이따가 보자!”
전력으로 달리던 시로네가 휘청 고꾸라지자 마야는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소리를 치기도 전에 그는 다시 중심을 잡고 공원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마야는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은 운이 좋은 게 아니라 횡재한 날이었다.
마야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시로네! 열심히 해! 파이팅!”
시로네는 대답 대신 주먹을 불끈 들어 보였다.
급변하는 정세 (3)
쾅!
숙소 문을 세게 열어젖힌 시로네는 같은 힘으로 문을 후려 닫고 책상으로 뛰어들었다.
가지런히 세워 두었던 노트들이 다시금 널브러졌다.
그중의 하나를 펼친 시로네는 백지가 나올 때까지 노트를 빠르게 넘긴 뒤에야 펜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핵심. 핵심부터 적어야 돼. 그러니까, 핵심이 무슨 뜻이지? 아, 맞아, 핵심부터…….’
두뇌가 완벽하게 각성한 상태라 너무 많은 생각들을 한꺼번에 처리하지 못할 정도였다.
펜을 쥐고 있는 손이 벌벌 떨렸다. 누군가가 머릿속으로 들어와서 생각을 훔쳐 가기라도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선은 큼지막하게 가이드라인을 작성했다. 일단 망각의 위험은 벗어났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손은 바빴고, 여태까지 기록했던 노트들을 펼치고 수많은 발상들을 핵심에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펜촉이 종이를 벨 것처럼 움직였다.
생각의 속도만큼이나 글씨는 괴발개발 했고, 눈은 깜박이지도 않은 채 필기의 여정을 추적해 나가고 있었다.
이론이 끝나고 남은 건 계산이었다. 시로네는 간단한 물리계 이론을 통해 현실성 여부를 검증했다.
정확한 계산은 전문가의 검증을 받아야 하지만 단순한 수식만으로도 가용성은 판별이 가능했다. 그런 문제였다.
마침내 계산이 끝나자 시로네는 탁 소리가 나게 펜을 내려놓았다.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해에 자신이 원했던 수치를 상회하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시로네는 넋이 나간 채로 노트를 바라보았다.
영혼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미동이 없던 그의 목구멍을 타고 침이 꼴까닥 넘어갔다.
쾅!
두 주먹이 해머처럼 책상 위를 내리쳤다. 얼굴을 가슴까지 파묻은 시로네는 한참이나 움직이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하아아아.”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시로네의 얼굴에는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 냈다는 초반의 희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로…… 되잖아.”
아직 확신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 이론상으로는 가능한 일이었다.
복잡한 제약이 걸리는 반면 상황만 맞아떨어진다면, 시로네는 천국을 지도상에서 지워 버릴 수 있었다.
덜컥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워낙에 가능성이 적었기에, 아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나아갈 필요조차 없었던 영역으로 생각이 뻗어 나갔다.
분명 최후의 전쟁을 도모하는 천국에 카운터를 날리는 것은 나름의 정당방위일 수 있다.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을 끝까지 가 볼 필요는 없다는 게 지성의 주장이다.
하지만.
‘아이더의 성향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그래도 똑같은 전략을 펼쳤을까?’
이것은 조금 어려운 문제였다.
아이더가 마야를 공격하지 않았다면, 그럼에도 지성적인 판단으로 그를 이탈시켰다면 결과가 지금과 같을까?
마법사가 효율을 따지는 기준에는 두 가지가 있다. 명분과 실리. 페르미가 실리에 치우친 효율이라면 시로네는 명분을 우선시하는 성향이다.
실리는 즉각적인 결과물을 내지만 명분은 흐름을 주도하여 최종적으로 큰 이득을 낸다.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볼 수 없다. 다만 천국 파괴의 건은 확실히 실리에 치우친 전략이었다.
“이카엘을 만나야 해.”
그녀는 어째서 아타락시아를 전수해 주었을까? 당시의 선택이 천국을 파괴할 수 있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이카엘을 만나야 해.”
그녀를 반드시 만나야 하는, 하나의 이유가 더 생겼다.
***
졸업반 일정이 어느덧 12주 차를 넘어갔다.
여태까지 숨 돌릴 틈조차 없이 바쁘게 달려온 학생들이지만 근래 교내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아니, 학교를 넘어 왕국 전체가 시끄러웠다.
졸업반 학생들의 손에는 항상 신문이 잡혀 있었다. 식당에서든 공원에서든, 마법협회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전 마법협회 협회장 미케아 가올드, 반역죄로 수배 중
시로네는 신문 상단에 떡하니 박혀 있는 헤드라인을 여러 번 읽다가 기사로 눈길을 돌렸다.
10일 전 토르미아의 국왕 아돌프 12세의 암살 기도가 있었다는 글이 보였다.
아돌프는 폭군도 아니었고 바슈카에서도 인기가 좋았기에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암살의 배후로 지목된 사람이 미케아 가올드라는 점이었다.
신문사는 경쟁적으로 관련 증거들을 싣고 있었다.
암살 기도가 있기 2일 전에 그가 협회에 발길을 끊고 은신했다는 사실 또한 정황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인용되었다.
공원에 들어온 학생들이 푸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 참, 다른 것도 아니고 반역죄라니. 어쩌려고 그런 짓을 한 거야?”
“누가 아니래? 예전에는 학교의 자랑거리였는데, 이제는 학교의 수치가 되어 버렸잖아. 반역죄면 학교도 타격이 크지. 후배 앞길을 막아도 유분수지 말이야.”
가올드가 앞에 없으니 하는 얘기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시로네는 다시 기사를 읽었다.
가올드와 함께 사라진 인물로는 마법협회 경비대장 간도와 3층 관리인 플루도 포함되어 있었다.
신문의 아래 칸에는 어제 열린 국가안전대책비상청문회의 질의응답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마법협회 직원들 대부분이 가올드의 반역을 의심하는 정황들을 줄줄이 늘어놓고 있었다.
유일하게 마법협회 마법서고 관리자인 공인 3급의 이자벨만이 가올드의 무죄를 주장했으나 결국 그녀는 왕국 국가정보 요원들에게 현장 체포되어 현재 수감 중이었다.
“후우, 복잡하게 돌아가네.”
시로네는 구기듯 신문을 접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올드가 반역을 꾀했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니, 가올드 정도의 실력자라면 반역도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도대체 왜? 라는 점이었다.
네이드가 말했다.
“제1급 대마법사라도 국가가 움직이니까 도망치는 신세구나.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아까 보니까 우리 학교에도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가던데. 이루키, 너는 뭐 아는 거 있어? 아버지에게 편지 같은 거 자주 오잖아.”
용뢰의 수장인 알비노라면 분명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테지만 이루키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고만 말씀하셨어. 게다가 편지 같은 것에 적을 내용도 아니고. 아까 그 사람들은 아마 국가정보원 소속일 거야. 가올드가 피신할 수 있는 곳은 전부 수색하고 다니겠지.”
이루키는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방학 중에 그가 마법협회에 다녀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시로네, 너는 뭔가 아는 게 있어?”
“…….”
시로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특히나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말을 조심해야 했다.
공인 3급의 이자벨이 현장 체포될 정도라면 친구들은 물론 자신에게도 위해가 가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가올드는 정말로 국왕을 암살하려고 했을까?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았다.
무려 20년이나 준비한 프로젝트가 이제 몇 개월 앞으로 다가와 있다. 국왕 암살조차 프로젝트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너무 허무하게 실패한 감이 있었다.
‘기사에서 보면 가올드는 안하무인의 성향을 자주 드러냈다지. 타국 외교관에게 국왕의 욕을 했다고도 적혀 있어. 하지만 계속 협회장 자리를 유지하지 않았나? 어떤 방식으로든 두 권력자 사이에 감정적 평형상태는 유지되어 왔다고 봐야 해. 그런데 갑자기 그게 깨졌다. 어째서 지금이지?’
만반의 대비를 해도 모자랄 천국행을 앞두고 벌어졌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경솔하고 엄청난 사건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필연적인 것인가?’
시로네는 시간을 역전시켜 생각해 보았다.
‘가올드는 20년 동안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정보를 완벽하게 통제하기란 불가능할 거야. 점화의 시간이 가까워졌기에 어딘가에서 불을 끄려는 행동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는 게 가장 타당해.’
가정이 사실이라고 본다면 최악의 상황이었다.
시로네는 가올드의 프로젝트에 속해 있는 인물. 국정원에서 파고들다 보면 자신의 이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체 누가 움직인 거지? 토르미아 왕국? 아니면 그 너머의 무엇? 어디까지 알고 있지? 아니, 언제까지 감출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대비를 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