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27
“……로네. 시로네.”
시로네는 생각에서 깨어나 이루키를 돌아보았다.
“어,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너 괜찮아? 얼굴이 창백한데?”
네이드가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어라? 그러네? 시로네, 무슨 일인지 얘기해 주면 안 돼? 사실 네가 곤란해할까 봐 묻지 않으려고 했는데, 혼자서 감당하기 벅찬 일이라면 우리가 함께 싸워 줄 거야.”
발설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개인의 감정을 넘어서 친구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꼴이었다.
물론 이루키와 네이드 정도라면 그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의 침묵 또한 이해해 줄 터였다.
“미안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 말해 줄게.”
이루키는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로네는 멍청하지 않다. 말을 해서 해결이 될 일이라면 진즉 털어놓았을 터. 그저 친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화날 뿐이었다.
“알았어. 우리는 모르는 척하고 있을게. 하지만 고집은 부리지 마. 가장 중요한 건 너야. 만약 네가 위험해진다면 나도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시작할 테니까.”
메르코다인 가문의 이루키가 그렇게 말해 주자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알비노는 편지에 아무런 말도 적어 놓지 않았다고 했지만, 어쩌면 이루키는 예상보다 더 깊이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가문이었다.
“고마워. 하지만 정말로 괜찮아. 먼저 숙소로 들어가 볼게. 생각할 게 있어서.”
시로네는 차갑게 일어섰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이루키가, 네이드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에이미와 리안도 모르는 체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잘못되더라도, 사랑하는 가족만큼은 충분히 지켜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시로네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
여름이 되면서 비가 내리는 날이 잦아졌다.
아침은 화창했지만 변덕스러운 날씨는 어느새 비를 뿌려 대고 있었다.
그렇게 이른 장마가 찾아왔다.
자정이 넘은 시각, 시로네는 창문 앞에 서서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자벨이 체포되고 3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올드의 소식은 오리무중이었다.
신문에서 사실을 부풀려 더욱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는 바람에 이제는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지 모습을 감춘 것일 뿐일 수도 있다.
평가 일정 또한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으나 학생들의 의욕은 눈에 띄게 꺾여 있었다.
마법협회장이라는 왕국 최고의 마법사가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것이리라.
‘이자벨 씨는 괜찮을까?’
시로네가 아는 선에 한해서 이자벨은 가올드 친위대가 아니다.
그렇다면 청문회에서 가올드를 변호했던 것은 단순한 정 때문일까?
아니면 거기에 대해서도 자신이 알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레이저 유도 알고리즘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던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지막 날 자신의 손가락에 큐브릭을 끼워 주며 사용 방법을 알려 주던 다정했던 모습도.
똑똑.
노크 소리에 시로네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
교사들조차 잠에 들었을 시간에 누군가가 자신의 방을 찾아올 이유는 절대로 없었다.
똑똑.
시로네는 스피릿 존으로 들어갔다. 문밖의 인물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반경은 극히 좁았다.
발소리를 죽이며 문으로 다가가는 와중에도 정체불명의 인물에게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누구세요?”
대답이 없다는 건 친구들은 절대로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신호를 보냈을 테니까.
문을 부순다면 순간 이동으로 도주한다. 그렇게 한 가지 지침만을 머리에 박아 두고 거리를 좁혀 나갔다.
마침내 문 앞에 도착한 시로네는 판에 뚫린 구멍에 눈동자를 가져다 댔다.
초긴장 상태로 밖을 살핀 그의 표정이 한순간 멍해지더니 황급히 문고리를 붙잡고 돌렸다.
“선배님?”
플루가 부상당한 어깨를 붙잡고 서 있었다.
탈진한 듯, 얼굴은 창백했고 푸르스름한 입술은 덜덜 떨렸다. 한눈에 봐도 심각하게 고생을 한 몰골이었다.
옷은 너덜너덜했고 속옷조차 입지 않아서 홀딱 젖은 면 사이로 속살이 전부 비쳤다.
유일하게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안경 너머에 담긴 마법사의 눈빛뿐이었다.
“시로네…….”
플루의 얼굴에 잠시 안도감이 깃들더니 말을 끝맺지 못하고 시로네의 품으로 쓰러졌다.
“선배님. 선배님.”
플루를 끌어안고 침대로 옮긴 시로네는 복도를 꼼꼼히 살핀 다음 소리 없이 문을 닫았다.
침대로 돌아왔을 때 플루는 어느새 앉아 있었다. 가슴을 팔로 가리고 있었지만 시로네를 배려한 행동일 뿐 단호한 표정에서는 부끄러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따듯한 차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결국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바슈카에서 크레아스의 마법학교까지 도주했다.
그것도 아무 힘도 없는 자신에게 왔다는 것은 그들의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선배님!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걱정했잖아요!”
들어야 할 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플루는 말을 고르는 듯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녀의 얼굴이 원통함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간도 님이, 아니, 간도가…….”
플루는 천천히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철판도 뚫을 것 같던 예리한 눈매에 한 줄기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간도가 우릴 배신했어.”
급변하는 정세 (4)
카샨 제국.
대륙 북서부의 패자, 인간계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카샨 제국의 황제 대관식이 1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승계 절차는 언제나 그랬듯 비공식적이고 은밀했다.
거대 궁전 아가노스의 23층 첨탑에는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두 테라제와 사적인 비밀을 알고 있는 소수만이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테라제 미스트라에서 테라제 우오린으로의 권력 승계.
바깥에서 보기에는 부모가 자식에게 자리를 내주는 흔한 황위 계승식이지만, 누군가는 알고 있다.
바뀐 것은 이름뿐이라는 사실을.
테라제는 오직 자신을 거듭하며 유구한 세월을 살아온 ‘어떤 것’의 고유명사였다.
“이걸로 성전에 관련한 인수인계는 끝났어. 뭐, 성전이 끝났으면 다 된 거라고 봐야지.”
14시간 전 우오린은 중부 대륙에 있는 세계회의소에 들렀다가 오는 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 성전에 소개되었고, 1시간 후면 삼황계에 오르게 된다.
세계 최강의 슈퍼팩인 성전 내에서도 테라제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삼황계 아래로는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일곱 국가의 왕인 칠왕성, 요정족과 용족의 수장인 이군왕이 있다.
성전에 소속된 이 12명의 군주야말로 세계의 정점에 위치한 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순간에 카즈라의 공주에서 세상의 지배자가 된 우오린이었으나 표정에서는 기쁨을 찾을 수 없었다. 어차피 모든 것은 테라제라는 이름의 부분집합일 뿐이었다.
“잡설은 필요 없어. 너와 내 기억 사이에 오차가 없다는 것은 이미 검증했으니까. 하지만 의문이 있어.”
우오린이 걸음을 멈추고 미스트라를 돌아보았다.
“왜 이렇게 빠르지? 내가 황위에 오르는 건 앞으로 4년은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미와 딸의 기억은 공유되기에 두 사람은 둘이면서도 하나. 따라서 서로의 생각에서 변곡점이 생겼다는 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흐음, 그게 말이지…….”
미스트라는 우오린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흑발의 머리에 강렬한 눈매인 반면 우오린은 백발에 투명한 인상이었다.
남편인 오르캄프도 자신도 백발이 아니다. 그렇기에 돌연변이.
현재의 테라제를 있게 한 능력 ‘히스토리 서치’ 중에서도 극히 찾아보기 힘든 ‘미래시’를 가진 ‘자신’이었다.
어쩌면 수많은 딸들 중에서 우오린이 황제가 되는 건 기정사실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오늘의 황제 즉위는 미스트라의 머릿속에서도 계산되어 있지 않았던 변칙적인 착수였다.
“걱정하지 마. 소멸은 확실하게 할 테니까. 다만 네가 태어난 이후에 생긴 기억 중에서 꼭 전해야 할 것들이 생겨서 아가노스까지 따라온 거야.”
우오린이 삼황계에 오른 이상 미스트라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녀의 대에서 반드시 끝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황위 계승을 몇 년이나 앞당긴 것, 미케아 가올드를 반역죄로 몰아세우면서까지 빠르게 일을 추진시킨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방으로 들어간 미스트라는 책상 서랍에서 자물쇠가 달린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 우오린에게 넘겨주고 맞은편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이 상자 안에 너의 의문에 대한 모든 해답이 담겨 있어. 알아서 하겠지만 누구도 모르는 현 인류의 비밀이지. 잘 이용하면 강력한 무기가 될 테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내가 먼저 손을 쓸 수밖에 없었어.”
“어떻게 열지? 부술 수는 없을 테고.”
“열쇠는 나에게 있어. 아직은 보여 줄 수 없거든. 그 전에 너에게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어.”
정확한 시간에 맞춰 노크 소리가 들렸다.
거대 궁전 아가노스의 23층에 출입할 권한이 있는 자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기에 미스트라는 곧바로 들어오라 일렀다.
훤칠한 키의 남자가 들어왔다. 가는 눈매에 선한 인상, 보랏빛 머리를 올백으로 넘겼고 한 가닥만이 내려왔다.
전 토르미아 마법협회 경비대장 간도였다.
테라제 미스트라의 첫 번째 아들이니 생물학적으로는 우오린의 오빠가 되지만 정신분석학적으로 보자면 아들이 되는 셈이다. 테라제에게 혈족 계보가 의미 없는 이유였다.
간도는 두 어머니의 애매한 위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어머니.”
“그래, 이쪽으로 와. 이번 건은 잘 해결했구나.”
태어나자마자 토르미아로 입양되어 간자들의 손에 컸던 간도에게 토르미아의 마법협회는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거짓이었다.
가올드의 친위대에 들어간 것까지 어머니에 의해 설계된 거짓 인생일 뿐이었다.
그렇게 거짓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 간도가 발견한 유일한 진심이라면 가올드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가올드를 반역죄로 몰아넣었고 자신은 도피하여 어머니의 품에 도착해 있다.
“어머, 표정이 왜 그래? 설마 가올드 때문인가? 사적인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
“저에게 소중한 분은 오직 어머니뿐입니다. 하지만…… 그가 이룬 성취에는 마법사로서 존경심을 표합니다.”
“하아. 간도, 너는 테라제의 아들이야. 일개 마법협회장 따위를 존경할 필요는 없어.”
간도는 입을 다물었다.
삼황계라면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토르미아에서 보낸 그로서는 아직까지도 어느 쪽이 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우오린이 간도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온과는 확실히 다르구나. 이번에는 제대로 뽑았네.”
“후후, 그렇지? 아들이라 기대 안 했는데. 재능은 있으니까 마법사 쪽으로 키워 볼래? 옆에 두고 쓰고 싶으면 써도 돼.”
간도는 고개를 내렸다.
제대로 뽑았다? 잘 키워 봐?
테라제에게 있어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 생물? 그것도 아니라면 시계 속에 처박혀 평생 돌아가야 하는 톱니바퀴 부품인가?
“옆에 두고? 흐음, 난 크라우치로 만족하는데. 어디. 간도, 이쪽으로 와 봐.”
간도는 노예시장에 팔린 노예처럼 우오린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시선이 이곳저곳을 관통할 때마다 그 부분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다.
기분 나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오늘 자신의 생물학적 어미인 미스트라는 소멸한다. 우오린에게 버림받으면 남은 건 죽음뿐이었다.
“그래, 뭐…… 일단은 데리고 있어 볼까? 어차피 당분간 카샨에 신경 써야 하니까.”
“감사합니다, 어머니.”
간도는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바닥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은 죽을 것이다.
만약 우오린이 미스트라의 현신이라면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어떤 말도 믿어서는 안 된다.
“대신에,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오린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삼황계인 테라제에게 조건을 내세운다는 건 그만큼 살고 싶다는 얘기였다.
“말해 봐. 들어 보고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카샨의 어느 누구와도 대립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독립적 기관으로 인정해 달라는 뜻이었다. 만약 살아남아서 우오린의 보좌를 해야 한다면 당연한 조치였다.
“좋아. 두 번째는?”
“저에게 어머니를 비판하게 하지 마십시오. 저는 어머니를 위해 맹목적으로 싸우는 전사일 뿐입니다.”
포장을 했을 뿐 개처럼 부리라는 뜻이었다. 필사적이지만 비굴의 선까지 내려가고 싶지 않다는 의지.
어쩌면 그것 또한 마법사로서의 냉철한 타개책일지도 모르지만 우오린은 신경 쓰지 않았다.
강아지 한 마리 정도 키워서 나쁠 건 없으니까.
“목숨을 건졌구나, 간도.”
“어머니의 자애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미스트라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만 나가 봐. 남은 일이 있으니까.”
아마도 이것이 간도와 미스트라의 마지막 만남일 테지만, 그녀의 말투에서는 모성을 느낄 수 없었다.
간도가 방을 나서자 미스트라는 때가 됐다는 듯 품에서 열쇠를 꺼냈다.
“예정보다 빠르게 황위를 계승하는 이유는 변수를 만들기 위해서야. 가올드는 천국에 갈 것이고 무언가를 하겠지.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거야.”
“그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20년의 계획이 한 번에 틀어졌는데 말이야.”
“성공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결국 무언가가 변한다는 게 중요하지. 인간이 낮은 확률에 도박을 거는 이유는 승리의 보상이 패배의 좌절을 압도하기 때문이야. 나는 가올드에게 그것을 준 것뿐이지.”
“아직까지는 이해가 안 돼.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당연해. 그래서 너는 상자를 열어 봐야 해. 그곳에는 오직 나밖에 모르는 ‘밑사건’에 대한 데자뷔가 기록되어 있지. 그것을 읽으면 내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거야.”
테라제는 태고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고 ‘히스토리 서치’라는 고유의 능력으로 그 방대한 기억을 빠르게 탐색할 수 있다.
처음에는 단순 데이터 검색에 불과했다.
하지만 거핀 리셋이 발생하면서 이 능력은 폭발적인 진화를 하게 된다. 즉, 리셋 이후의 역사가 새로 생기면서 기존의 역사에 아래에 깔리는 ‘밑사건’이 생긴 것이다.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는 두 가지의 다른 시간선이 데자뷔를 통해 대비되면서 생긴 일종의 미래 예지 능력.
거기에 ‘미래시’까지 더해진 우오린이라면 그녀의 대에서 천국을 정복하는 것도 꿈만은 아닐 터였다.
“마지막까지 감춘 이유는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 히스토리 서치에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것 같아서야. 네가 직접 보고 판단해. 어차피 나는 너고, 너는 나니까.”
미스트라는 책상으로 걸어갔다. 열쇠를 넘겨준 시점에서 그녀 생애의 임무는 모두 끝났다.
우오린이 물었다.
“뭐로 할 거야?”
“아무거나 상관없지만, 그냥 깔끔하게.”
미스트라는 책상에 놓인 보검을 들어 보였다. 스르릉 물소리를 내며 뽑힌 칼날이 방 안의 빛을 산란시켰다.
우오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상자에 열쇠를 꽂았다. 그러는 동안 미스트라는 양손으로 손잡이를 쥐고 고개를 치켜든 다음 목덜미에 칼날을 가져다 댔다.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이던 그녀가 문득 떠올리고 우오린을 돌아보았다.
“맞다, 너 시로네를 먹는다고 그랬지? 그 생각은 아직도 변함없는 거야?”
우오린은 상자를 열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타락시아에, 잘생겼잖아? 나머지는 딱히 중요할 것 같지 않은데. 왜, 불안 요소라도 있어?”
“아니야. 그래, 그럼.”
미스트라는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촉이 조금 좋지 않았지만 이것 또한 흔한 일이었다. 테라제의 유구한 역사는 일개 소년에게 변수를 제공할 만큼 나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