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28
우오린이 상자를 여는 순간 미스트라의 검이 싱 하고 예리하게 움직이더니 피 분수가 솟구쳤다. 잠시 후 쿵 하고 미스트라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오린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상자 안에 들어 있다는 정보였다.
상자에는 두 가지 안건에 대한 문서가 담겨 있었다.
첫 번째 문서 표지에 적힌 제목은 ‘거핀 말소’였다.
리셋이 19년 전에 일어났으리라 추정되기 때문에 그 이후에 태어난 우오린은 밑사건이 미스트라보다 흐릿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성전은 물론 각국의 주요 기관에서도 파악이 끝난 사안이기 때문에 딱히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우오린은 구시대의 유물이 된 첫 번째 문서를 옆에 내려 두고 그 아래에 깔려 있는 새로운 문서를 꺼내 들었다.
‘이거로군…….’
커피 잔을 향해 내밀던 손길이 멈칫하더니 다시 되돌아와 문서를 두 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문서의 중앙에 적힌 제목을 음미했다.
앙케 라 말소
우오린은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저장이 먼저고 분석은 그다음이었다.
5분 만에 200페이지를 토씨 하나까지 전부 외운 그녀는 촛대를 가져와 문서를 불태웠다.
불꽃을 응시하는 우오린의 눈빛이 전에 없이 매서웠다. 미스트라가 전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네가 옳았다, 미스트라.’
간도가 문을 노크하고 들어왔다. 나갔을 때하고는 완전히 달라진 풍경에 잠시 말을 아꼈으나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되돌아와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 대관식을 거행할 시간입니다.”
“알았다. 지금 나가마.”
간도는 바닥에 쓰러진 미스트라에게 고개를 돌렸다.
보검으로 목을 벤 그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베기였음은 보지 않고서도 알 수 있었다.
“시신은 어떡할까요?”
“치워.”
우오린은 생각을 방해하지 말라는 듯 짧게 답했다.
간도는 발걸음 소리조차 조심하며 시체를 치웠다.
자신을 낳아 주신 어머니였다. 하지만 이제는 미스트라가 우오린이었다. 인간의 상식으로 대할 수 없는 존재. 그것이 테라제다.
우오린은 자리를 박차고 성큼성큼 복도로 나갔다.
23층 플로어 타워의 끝에는 수십만의 제국민들이 모인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발코니가 설치되어 있었다.
커튼을 젖히고 발코니로 나가자 엄청난 인파가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테라제를 발견한 지상에서 거대한 함성이 터졌다. 천지가 요동하고 열기가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여황 폐하 만세! 여황 폐하 만세! 여황 폐하 만세!”
우오린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더 이상 오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음량이 2배 이상 치솟으면서 청각을 마비시켰다.
온 세상이 발밑에 있었으나 우오린은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인간은 개체 수만큼이나 다양한 개성을 갖춘 특이한 생물체지만, 모아 놓으면 결국 그저 인간이라는 이름 하나로 묶이는 종족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아닌, 그저 인간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자신을 향해 포효하고 있었다.
‘시로네, 시간이 없다. 이카엘을 만나라. 네가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오린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직 태양만이 그녀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인류는 멸망하고 만다.’
최종 결단 (1)
플루에게 커피를 건넨 시로네는 따로 챙겨 온 옷가지가 있냐고 물었다.
플루는 오는 도중에 다 써 버렸다고 했다. 붕대나 로프 등, 긴급 상황에서 쓰일 일은 많았다.
시로네가 건네준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체력을 회복하는 시간 동안 자초지종을 들려주었다.
가올드가 체포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편집증에 가까운 인간에 대한 불신 덕분이었다.
아니, 어쩌면 세상의 그 무엇도 믿지 못하게 되었을 만큼 그의 바람이 간절했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가올드가 20년 전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내세운 한 가지의 철칙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극히 사소한 변수라도 발생했을 시 모든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사태를 주시한다.
간도가 마법협회에서 2시간 정도 이유 없이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다.
사실 누구에게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적인 사건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올드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 친위대를 해산시키는 한편 자신 또한 협회를 벗어났다.
하지만 왕성의 대응은 예상보다 훨씬 빨라서 대부분의 친위대가 체포되었다.
가올드와 강난, 플루만이 무력에 의지해 도주에 성공했으나 협회의 추적자들 또한 집요하게 꼬리에 따라붙었다.
그렇게 쫓기고 쫓기다가 도착한 곳이 결국 가올드의 모교인 알페아스 마법학교였다.
시로네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플루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살아서 여기까지 도착한 게 기적이었다.
“정말 고생하셨네요.”
당분을 섭취한 덕분에 플루의 혈색은 빠르게 좋아졌다.
팔을 뻗어 큐브릭을 작동시키자 봉황 장식의 마법 지팡이가 손바닥 앞에 탄생했다.
“마땅히 은신할 곳이 없기도 했지만, 꼭 그런 이유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은 아냐. 협회장님은 알페아스 님을 만나고 싶어 하셔. 하지만 추적이 너무 심해서 나를 보내신 거야. 나야 잡혀도 죽으면 그만이니까. 어쨌거나 시로네, 네 도움이 필요해.”
가올드의 실력이라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추적은 무리겠지만 협회에는 규정외식자도 다수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좋았다.
“협회장님은 지금 어디 있죠?”
침대에서 내려온 플루가 마법 지팡이를 빠르게 휘돌리더니 등 뒤로 넘기고 문으로 향했다.
“내가 안내할게. 물론 따라오겠다면 말이야.”
플루의 말에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만약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여기서 끝내라는 말이었다.
“우선은 만나서 얘기를 들어 보고 싶어요.”
헛된 희망에 목숨을 거는 건 비효율적이다.
어차피 협회에 들어간 순간부터 가올드하고는 얽혔다. 이럴 경우 이불 속에서 얼굴만 가리고 있기보다는 직접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필사적으로 단련했구나, 시로네.’
시로네의 기질은 3개월 전과 또 달랐다. 생명이 극한의 환경에서 진화하듯 시로네 또한 졸업반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장한 것이다.
“그래, 일단 협회장님의 얘기를 들어 보고 판단은 네가 해. 하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플루는 지팡이를 등 뒤로 넘기고 묵례했다.
“우리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가올드의 앞에서는 결코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또한 처음으로 시로네를 마법사로 대우한 제스처였다.
“지금 출발하죠.”
시로네는 확답을 미루고 문을 열었다.
우비를 걸친 두 사람은 건물 뒤편의 산을 탔다. 마법을 시전하면 간편하지만 100퍼센트에 근접한 확률로 조너에게 걸릴 것이다.
가올드는 마법학교를 둘러싼 산맥의 반대편에 은신하고 있었다.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지만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도착했을 때에는 어느새 새벽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 산을 타는 건 보통 강행군이 아니지만 플루는 숨을 고를 틈조차 없이 우비의 후드를 넘기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협회장님, 시로네를 데려왔습니다.”
시로네를 들여보낸 그녀는 다시 동굴 밖으로 나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추적자를 경계했다.
동굴 안에서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뿐이었다.
어둠의 끝에서 화르륵 불꽃이 치솟더니 얼굴만 동동 떠 있는 것처럼 가올드가 모습을 나타냈다.
동굴 막장에 등을 기대고 한쪽 다리를 세우고 있는 가올드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여어, 시로네.”
플루의 상태만 봐도 도피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가올드는 전과 다름없이 건재했고 특유의 광기 어린 미소도 그대로였다.
“한가해 보이시네요.”
“크크크, 백수 생활도 할 만하군. 하긴, 협회에서도 그다지 일은 안 했지만.”
가올드가 앞자리를 가리켰다.
“앉아라. 차는 못 내와도 네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한 보따리나 있으니까.”
시로네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쩌다가 당한 거예요?”
가올드는 턱을 괴고 합죽이처럼 입을 다물었다. 분하거나 원통하다기보다는 괘씸하다는 감정이 주였다.
“간도가 내 비리를 터트렸다. 물론 대부분은 조작된 비리지. 이번만큼은 아돌프 왕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사실 꽤나 오래 참아 준 셈이고. 문제는 내 친위대의 대부분이 구속되었거나 현재도 색출되고 있다는 거야.”
“어째서 간도의 배신을 예상하지 못했죠? 협회장님의 친위대는 고르고 고른 사람들이잖아요.”
“너다운 질문이구나. 확실히 그 부분은 나도 할 말이 없다. 보기 좋게 당한 셈이지. 하지만 덕분에 일의 배후를 캐는 건 쉬워졌어. 아마도 간도의 뒤에는 테라제가 있을 거다.”
“테라제라면…….”
카샨의 여황이다. 또한 카즈라에서 만났던 우오린의 어머니이자 발키리의 수장이기도 했다.
알고 있는 것만 나열해도 테라제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는 쉽게 짐작이 갔다.
하지만 간도의 배신이 그녀와 연결이 되는 이유는 아직까지 알 수 없었다.
“너, 카즈라에서 우오린을 만난 적이 있지?”
“네. 많은 도움을 받았죠. 그녀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흐음, 도움을 받았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큭큭.”
시로네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는데 웃길 이유가 무에 있단 말인가?
가올드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그쳤다.
“아마도 테라제는…… 미토콘드리아 이브일 거다.”
“미토콘드리아, 이브요?”
“성전을 제외하고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겠지. 아마도 네가 만난 우오린이라는 여자는 테라제 여황일 것이다.”
“알아듣게 말을 해 주세요.”
가올드는 미토콘드리아 이브에 대해 설명했다.
테라제는 미토콘드리아의 돌연변이를 통해 딸에게 자신의 기억을 전달할 수 있다. 기억을 각성하는 시기는 개체마다 다를 것으로 추정.
하지만 당시에 우오린이 이미 각성한 상태였다면 시로네는 우오린이 아닌 테라제 여황을 만난 게 되는 셈이다.
“그런 식으로 테라제는 인류 발생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기억을 지니고 있지. 그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다. 그녀에게는 너 또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부속품일 뿐이야. 그 증거가 바로 네가 들고 있는, 최강의 오브제 이다.”
시로네는 허리에 찬 아르망을 만졌다.
단순한 호의는 아닐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듣고 나자 소름이 끼쳤다. 가장 두려운 것은 테라제의 정체를 깨달은 지금조차도 어떤 의미로 이것을 선물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테라제의 능력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알다시피 우리는 특이한 세계에 살고 있지. 거핀 말소. 즉, 이미 리셋이 되었고, 리셋 이후의 삶을 다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부터는 추측이지만 테라제는 리셋 이전의 기억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내 편집증적인 관리를 뚫고 간도가 친위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설명이 가능해지지.”
“간도가 태어난 순간부터 오늘의 사건을 예견하고 심어 두었던 거로군요.”
이해가 빠르다면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가올드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당한 거지. 어떤 인간도 거기까지 예측할 수는 없어. 테라제이기에 가능한 일이야.”
확실히 이런 경우라면 천하의 가올드도 어쩔 수 없다.
결국 수족은 전부 잘렸고 20년을 계획했던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모든 걸 잃었기에 가올드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오직 하나밖에 남지 않았을 터였다.
“남은 승산은 얼마나 되죠?”
가올드는 천국에 간다. 친위대를 잃었어도, 반평생 넘게 설계했던 계획들이 물거품이 되었어도 갈 것이다. 전 인류의 목숨을 내버리고 미로를 구하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가올드는 느긋하게 등을 기대고 팔짱을 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 하지만 나도 20년 동안 놀기만 했던 건 아니지. 최후의 비책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모든 걸 잃은 건 아니다. 어쨌든 너도 있고 말이야.”
“협회장님을 도와 드리겠다는 얘기는 아직 하지 않았는데요.”
“크크크! 애송아, 너무 힘주지 마라. 내 상황을 이야기한 이유는 이제부터 너에게 내릴 지시를 납득시키기 위해서야.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너랑은 작별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이나 해.”
시로네는 지금의 말로 확신했다.
세상과 싸우고 있는 시점에서 학생의 안위 따위를 신경 쓸 여유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저에게 제안을 하셨을 텐데요?”
가올드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모든 것이 완벽했을 당시의 거래였고, 무엇보다 1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였다.
“설마 방법을 찾았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방법까지는 아니지만…….”
“흐음.”
가올드는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어설픈 거짓말로 제안을 할 아이가 아니다. 하지만 정말 뭔가를 찾아냈다고 보기에는 자신감이 없는 말투였다.
“좋아, 들어 보지. 천국을 어떻게 파괴할 거지?”
“그 전에, 약속해 주세요. 만약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협회장님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제 목숨과도 직결된 문제니까요. 또한 천국행을 결정하는 최종 선택권은 언제나 저에게 있어야 해요.”
불합리한 거래였다.
가올드는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는 정보를 전부 털어놓는 반면에 시로네는 언제든 발을 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 일단 들어 보자.”
가올드는 흔쾌히 수락했다.
어차피 협상이란 이기적인 두 사람이 만나서 타협점을 찾는 과정이다. 오히려 감정에 휘둘리는 말이 나왔다면 시로네를 믿을 수 없었을 터였다.
딱히 불리하다고 볼 수도 없는 게, 시로네는 ‘조건을 충족시키면’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물론 천국을 파괴할 방법이 있다면 어떤 리스크라도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1년의 시간을 주었음에도, 처음부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맡긴 일이었다. 허무맹랑한 방식이라면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아마도 현재 시로네의 실력으로 보건대 결과는 필연적으로 후자가 될 터였다.
‘사소한 정보라도 얻어 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가올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기본적으로는, 아타락시아를 이용한 마법이에요,”
“아마도 그렇겠지.”
시로네는 10분간에 걸쳐 마법을 설명했다.
가올드는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다.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땅을 내려다보며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니, 어쩌면 천국을 파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뭐 그런…….”
가올드에게서 반응이 없자 시로네의 목소리가 점차 기어들어 갔다. 막상 입 밖으로 내뱉고 보니 머리로만 생각했던 난관들이 더욱 높게 다가와서 자신감이 사라진 탓이다.
시로네의 말이 끝난 뒤에도 가올드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끝없이 조금 전의 이야기를 복기하고, 복기하고, 복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더욱 위축된 시로네가 말을 보탰다.
“그러니까 협회장님이 그러셨잖아요, 일단 가능성만이라도 발견한다면…….”
“크.”
가올드의 입에서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크크크! 크크크크! 크크크크크크!”
아무리 억누르려고 해도 웃음이 목을 긁어 댔다. 결국 버티지 못한 그가 고개를 쳐들고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동굴이 쩌렁쩌렁 울리자 플루가 놀란 표정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가올드의 신변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고 다시 철통같은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시로네는 멍하니 가올드를 바라보았다. 그의 웃음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가올드는 한껏 입꼬리를 찢으며 시로네를 노려보았다. 불꽃에 비친 눈동자가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미……친……놈.”
가올드가 누군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최종 결단 (2)
중동. 파라스 왕국.
고대 문명의 근원지인 파라스의 서쪽 지도에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아카드 사막이 황토색으로 칠해져 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의 바다.
영겁의 시간 달구어진 이곳에서 생물이 버티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크림을 바른 듯 부드럽게 펼쳐진 모래 위에는 인간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