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32
광속을 정복한 마법사이니 시로네는 그 칭호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시이나로서는 당혹감만 깊어질 뿐이었다.
“시간 마법사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
아르민은 끝까지 침묵했다.
거사를 앞두고 혼란은 좋지 않다고 판단한 세인이 아르민을 소개했다. 아르민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시이나에게는 아이러니였다.
“이스타스의 상층부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력한 시간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광안의 아르민이라면 이보다 적격일 수 없지.”
시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설명을 들을수록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고 있었다.
“케이라 씨,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지금 장난치는 건가요?”
언제나 발랄하게 웃으며 가끔씩 얄미운 말을 던지던 케이라였으나 이번만큼은 웃지 않았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싸늘하게 눈을 내리깔며 고압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말을 가려서 하시죠, 올리페르 시이나 씨. 우리는 화이트 라인 소속, 상아탑 인류안전집행부의 마법사, 아르민과 케이라입니다.”
“화이트 라인…….”
아르민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시로네도 이번만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레드 라인에 협회가 있고 블랙 라인에 파벌이 있다면 화이트 라인은 오직 상아탑으로 귀결되는 완벽한 독립기관이다.
세상에 악용되지 않는 마법.
지배자의 신념에 휘둘리지 않는 순수성.
이 두 가지가 모토인 상아탑의 마법사들은 오직 순수하게 마법의 극단을 추구한다.
일반 직원조차 일국의 대마법사와 맞먹는다고 알려져 있는 그들의 무력은 일개 왕국이 넘볼 수준이 아니다.
상아탑 소속의 증명서를 들이밀면 왕족조차 벌벌 떠는 마법사회의 절대군주인 것이다.
그런데 아르민이 상아탑 소속으로 여기에 와 있다.
그것도 인류안전집행부의 마법사로.
상아탑 마법사들은 부서에 차별을 두지 않지만 레드 라인의 입장에서는 사회에 그나마 연관이 있는 인류안전집행부의 눈치를 가장 많이 보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32년 전에 콘 왕국의 독재자 이고르가 강령술에 손을 뻗치자 인류안전집행부의 마법사가 단신으로 들어와 그의 무릎을 꿇게 하고 바닥까지 기게 만든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케이라는 가올드에게 다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르민이 고집을 부려서 어쩔 수 없이 오긴 했지만 기왕 일을 벌였으면 실속을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아르민은 실속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아르민을 데려왔으니 그쪽도 약속을 지켜. 첫째, 미로의 시공에서 얻은 정보에 대해 상아탑은 기록 및 전파 권한을 갖는다. 둘째, 올리페르 시이나의 천국행을 금지시킨다. 두 번째 조항 때문에 아르민이 여기 온 것은 알고 있지?”
“물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해 두자고. 시이나가 납득했을 경우다. 누군가를 설득시키는 건 정말이지 질색이거든. 특히나 여자라면 말이야.”
“뭐, 괜찮아. 그건 아르민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중에 내가 분명히 당신에게 두 번째 사항을 각인시켰다고 아르민에게 말해 줘야 해.”
“크크크, 너도 정말 어렵게 사는군.”
케이라는 말해 봤자 뭐하냐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고집불통 아르민.
사실 상아탑에서는 현재까지도 천국에 대해서 이렇다 할 판단을 내리고 있지 않다. 아직까지는 인간 사회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민은 가올드의 술수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스타스의 상층부를 열기 위해서는 최고위 시간 마법사가 필요하고, 미로를 탈환하려는 가올드가 그의 존재를 모를 리 없었다.
아르민의 행적을 조사한 끝에 얻은 성과는 상아탑이 아르민을 붙잡을 수 있는 이유와 동일했다.
올리페르 시이나.
아르민에게는 목숨과도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여자.
케이라는 그렇기에 더더욱 시이나가 싫었다.
‘쳇, 저 여자가 그렇게 좋냐? 애교라곤 찾아볼 수 없는 멋대가리없는 여자를.’
세인이 정신 지배를 풀자 10명의 요원들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땅바닥에 쓰러졌다. 거사를 앞둔 지금 생각을 기동하는 데 일말의 변수도 없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요원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끝내지. 바로 들어가겠다.”
세인이 말과 함께 계기판의 버튼을 눌렀다.
89채의 창고가 특정 형태로 맞물려 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만큼은 시로네도 아르민에 대한 생각을 접어 두고 이스타스를 바라보았다.
화이트 라인 상아탑 소속의 시간 마법사, 레드 라인 제1급 대마법사, 블랙 라인 최고의 정신 계열 마법사.
각기 다른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3명의 대마법사가 모인 자리에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이스타스의 상층부가 개방되려 하고 있었다.
최종 결단 (6)
쿠르릉. 쿵쿵.
이스타스의 건물이 차곡차곡 쌓이며 거대한 덩어리 형태의 구조물로 변했다. 마치 거인이 굵은 두 다리를 대지에 뿌리내리고 있는 형태였다.
거인의 오른쪽 다리에 있는 창고를 개방한 세인이 알페아스에게 말했다.
“저희가 들어가면 이스타스를 다시 가동시켜 주십시오.”
천국에 가지 않는 사람이 미로의 시공을 확인할 자격은 없다.
적어도 알페아스는 그렇게 생각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생각이었다.
“시작하자.”
가올드의 얼굴에서는 장난기가 사라져 있었다.
드디어 미로를 만난다.
그녀가 삼매경에 빠져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20년 동안 차곡차곡 담아 두었던 분노가 흔들릴지도 모르니까.
모두 창고에 들어가자 알페아스는 이스타스를 재가동시켰다.
세인이 설정해 놓은 패턴을 따라 큐브 형태의 건물들이 복잡하게 결합 이탈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쿵. 쿠쿵. 쿵.
이스타스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세인의 호박색 홍채는 째깍째깍 움직이고 있었다.
왼쪽 홍채는 15도 각도에서 좌우로 까닥이고 오른쪽 홍채만이 구간마다 다른 가속도를 보이며 돌아가고 있었다.
세인은 걷는 속도를 유지시키는 대신 보폭을 달리했다. 공간을 제어하여 시간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이쪽으로.”
창고의 중심에서 직각으로 방향을 꺾은 세인이 문을 열자 또 다른 창고가 올라와 문과 문이 통로로 연결되었다.
경계선을 넘어가는 즉시 전에 머물렀던 창고가 아래로 떨어지며 다른 블록에 추월당해 멀어져 갔다.
그런 과정이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엄청나다. 서번트가 아니면 흉내도 낼 수 없겠어.’
창고가 움직이고, 세인이 움직이고, 시간이 움직인다.
기존에 알고 있던 공간에 대한 개념이 붕괴되는 기분이었다. 시로네는 정말로 4차원 시공간을 거닐고 있었다.
세인의 걸음이 최종 목적지 앞에 멈추자 시로네의 눈빛에 아련한 감정이 담겼다.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
그리운 간판이 걸려 있었다.
언제나 제자리로 돌려놓지만 균형을 무시하듯 저절로 기울어지는 삐딱한 간판이.
문을 열자 요원들이 들쑤셔 놓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루키가 칠판에 적은 수식이 군데군데 지워졌고, 네이드가 그토록 버리고 싶지 않아 했던 그림책들도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세인은 소파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앞으로 도달할 12초 후의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 그 시공간 좌표에 이스타스의 상층부가 있다. 이제부터는 아르민, 당신의 차례다.”
아르민은 세인을 지나쳐 앞으로 나섰다.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스케일 마법사로서 구구절절 설명이 없이도 이스타스의 상층부가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7초. 6초. 5초.”
세인이 카운트를 시작할 무렵 마치 폭풍 기류에 휘말린 듯 강렬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상층부가 있는 시공간의 좌표가 그들에게 다가오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연구회의 기물들이 강풍의 공기 밀도에 녹아 흐릿해지고, 소파 앞에 놓인 테이블에 갈리앙트에서 봤던 거핀의 문과 흡사한 형태의 석문이 잔상으로 중첩되고 있었다.
쿠우우우우우!
“4초. 3초.”
시간이 지날수록 풍경은 더욱 옅어졌고 반대로 석문의 색감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기물들이 점멸하더니 멀어지는 시공간 좌표 속에서 투명하게 변해 갔다.
“2초. 1초.”
온갖 풍경이 사라지고 오직 석문의 형태만이 100퍼센트 실체화에 도달하는 순간.
“지금이다.”
아르민이 마법을 시전했다.
스톱.
“세상에…….”
시이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에텔라도, 시로네도,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르지 않았다.
특정 공간, 특정 시간에 숨어 있던 이스타스의 상층부가 스톱 마법에 붙잡혀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20년 전, 세상을 놀라게 한 천재적인 소녀가 등장했다. 그리고 인류는 그 소녀를 누구도 찾아올 수 없는 시공간 속의 어느 한 좌표에 감금시켰다.
이것이 바로 알페아스 마법학교에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이스타스 상층부의 진실이었다.
‘이런 것이었구나.’
시로네는 비로소 세인의 말을 이해했다.
큐브의 원점. 수많은 요원들이 뒤져도 찾아낼 수 없었던 곳.
아르민이 석문에서 돌아서며 말했다.
“시간을 멈춘 이상 문은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가급적 빨리하는 게 좋을 거야. 마법이 해제되는 상황이 온다면 미로의 시공에 갇히게 될 테니까.”
그럴 상황이 벌어질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목숨이 걸린 일인 만큼 신중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일전에 시로네 또한 미로의 시공에서 빠져나온 적이 있지만 언로커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게다가 현재 미로는 삼매경에 빠져 있는 만큼 그녀의 도움을 바랄 수도 없었다.
가올드는 차후의 문제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제1급 대마법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심장이 두근거렸고,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상기되어 있었다.
“가자, 세인.”
“음.”
뒤를 따르는 세인의 홍채 또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냉정과 흥분이 동시에 작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
그가 안티매직 최강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이유는 이처럼 감정과 이성을 완벽하게 분리시킨 덕분이었다.
“시로네라고 했나? 네가 하는 게 좋겠군.”
상층부로 가는 문은 거핀의 문처럼 이모탈 펑션을 통해 봉인을 해제하게 되어 있었다.
어차피 팀에 언로커는 2명이나 있다. 다만 아르민은 스톱 마법에 집중하는 게 좋으니 개방은 시로네의 몫이었다.
시로네가 이모탈 펑션을 개방하자 석문의 문자들이 빛을 내더니 작은 큐브로 분해되어 구의 형태로 퍼졌다.
물질이 녹아내리면서 거대한 블랙홀이 탄생했다.
“저기…… 누가 먼저 들어가죠?”
이유는 모르지만 왠지 순서를 정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당장은 상관이 없지만 훗날 역사에 유의미한 사건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테니까.
“봉인을 푼 사람이 들어가는 게 옳겠죠. 시로네, 당신이 첫 번째 출입자입니다.”
아르민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시로네를 떠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이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제는 아르민이 누구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럼 들어갈게요.”
잠시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거대한 신전의 중심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펼쳐졌다.
높이 2킬로미터에 달하는 기둥들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풍경은 의심의 여지없는 미로의 시공이었다.
‘이곳에 다시 오게 될 줄이야.’
블랙홀에서 하나둘씩 사람들이 넘어왔다.
시로네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모두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거대한 스케일의 신전에 말을 잃은 듯했다.
“어라? 그런데…….”
시로네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두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미로가 보이지 않았다.
“시로네, 여기 혹시…….”
“아뇨. 미로의 시공이에요. 1년 전에 왔을 때하고 조금도 다르지 않아요.”
가올드가 플라이 마법을 시전했다.
펑 소리를 내며 그의 몸이 빠르게 신전의 끝과 끝을 비행했다.
양력으로 기동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기압력을 폭발시켜서 비행하는 ‘제트’ 계열의 마법이었다.
가올드는 넓은 신전을 빠르게 돌아다녔다.
시로네의 양익과 유사한 비행이지만 무브먼트의 수준은 차원이 달랐다.
자리로 되돌아온 가올드의 얼굴이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초열지옥이 금방이라도 펼쳐질 듯했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
“진정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그저 미로의 시공에 미로가 없을 뿐이야.”
미로의 시공에 미로가 없다.
실제로 없으니 사실이지만,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 미로의 시공에 출입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 또한 삼매경에 빠진 상태라면 자력으로 빠져나가기도 불가능하다.
아니, 애초에 그게 가능했다면 가올드가 20년을 기다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이재킹이군.”
세인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마도 천국에서 미로를 납치한 것 같다.”
가올드가 물었다.
“그게 가능한 일이야? 여태까지 천국에서 분자 하나조차 넘어온 적이 없어.”
“아뇨, 있습니다.”
아르민이 허리를 구부려 바닥의 잔해를 주웠다.
미로의 시공에 충격이 가해졌을 때 천장에서 무너져 내린 돌 부스러기였다.
손가락을 비벼 재질을 확인한 그가 말했다.
“얼마 전 미로의 시공에 균열이 갔다고 들었습니다. 토르미아 왕국에도 율법자가 넘어왔죠. 아케아니스 신단의 마도사가 처리하고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지만 고작해야 정신체야. 인간을 통째로 납치하려면 균열 정도로는 어림없어.”
“상아탑의 의견도 같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생각이죠. 천국이라면, 특히나 대천사들이라면 특별한 방법을 찾았는지도 모릅니다.”
세인이 턱을 괴고 자문했다.
“어째서 미로를 데려갔지?”
그것은 일견 의아한 의문이었다.
천국은 최후의 전쟁을 도모하고 있고, 미로의 시공이 생긴 이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침투의 의사를 드러내 왔기 때문이다.
시로네가 물었다.
“당연히 이곳 세상으로 쳐들어오려고 그런 거 아닐까요?”
에텔라가 말했다.
“아니. 아마도 그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