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36
시로네는 창백한 얼굴로 질려서 빠르게 다가오는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상 궤도로 비행을 시작했을 때는 지상이 까마득한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카이드라는 양력 기반형 괴조. 산소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서 근력 기반의 생물보다 더 높은 고도에서 비행할 수 있지. 이러면 탐색계 조너의 알고리즘을 피할 확률도 높아진다요.”
기본 직경 2킬로미터의 스피릿 존을 지닌 조너들이라면 하늘을 수색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고도를 높일수록 스피릿 존의 형태를 타깃형이나 스나이퍼 모드까지 변형시켜야 하니 탐색 범위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시로네는 비로소 현실감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정말로 줄루였던 것이다.
“직접 데리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이렇게 대단한 분이 마중을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가올드는 조만간 협회가 움직일 거라고 했다요. 내부에 정적이 있는 모양이야. 최대한 빨리 정비해서 천국으로 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요. 그래서 내가 운반을 맡았지. 지금은 시이나라는 여자를 데리러 가는 길이다요.”
“아, 그렇군요.”
“물론 사안이 급하지 않아도 내가 왔을 것이다요. 세인은 결과를 내기 위해 써먹을 수 있는 건 뭐든 써먹겠다고 했다요. 나야 팀에서 유틸리티를 전담하게 될 테니 임무에 필요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도 된다요.”
줄루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하나의 팀으로서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된다. 선후배를 떠나, 각자의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시로네는 씩씩하게 고개를 숙였다.
***
켄트라 도시.
토르미아의 유명한 목축 지대인 켄트라에서 생산되는 고기는 육질이 좋아 왕성 공납품으로 지정되어 있다.
요식 사업 또한 활발해서, 거리 하나가 전부 레스토랑으로 채워져 있었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녔고 가죽으로 만든 옷이 유행했으며 채찍이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시이나가 약속 장소를 이곳으로 정한 이유는 고기가 맛있어서도, 켄트라 특산품을 사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이곳이 바로 크레아스와 바슈카에서 출발했을 때 정확히 중간 지점이기 때문이었다.
시이나는 레스토랑 간판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크레아스에 비해 통속적인 분위기였고, 예약을 해 놓기는 했지만 자리는 드문드문 비어 있었다.
웨이터가 따라 준 물 한 컵을 다 비운 그녀는 초조한 심정으로 오늘 만날 사람을 기다렸다.
약속 시간까지 20분 정도가 남았으나 그가 나올 것인지는 여전히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제정신이라면 나올 리가 없다.
맞선을 보고 나서 연락 한번 없다가 고작 공인 5급 축하 서신 한 통 받았다는 이유로 점심 약속을 잡다니.
그것도 급속 전보로.
새벽에 전보를 받고 부랴부랴 준비해서 켄트라 도시까지 고기를 먹으러 나올 사람은 없는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종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들어왔다.
카이젠 검술학교의 교관 파르카 쿠안.
장내의 분위기를 주시하는 차가운 눈빛은 여전했지만 차림새는 저번 맞선 때와 다르게 상당히 신경을 쓴 모습이었다.
얼음장 같은 쿠안의 시선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시이나를 확인하고서야 조금 누그러졌다.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몸을 옮기자 귀족들의 시선이 전부 그에게 집중되었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한 적은 없지만 이럴 때면 언제나 군중 속의 낙오자라는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특히나 사람들의 시선이 쿠안에게서 시이나로 옮겨졌을 때는 이 자리의 모두를 베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시이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었다.
성격답게 살가운 미소까지는 지어 주지 못하지만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태도였다.
그녀를 위해 두 눈을 희생한 아르민도 있다.
시이나는 쿠안의 다리가 불편하다는 사실이 조금도 거슬리지 않았다.
편견의 시선이란 의식한다고 감출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쿠안도 시이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주제도 모르고 여기까지 나섰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와 주셨군요. 무례한 부탁을 해서 죄송해요.”
“급한 전보인 만큼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음식이 나왔으나 두 사람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저 고기를 자르고 입에 넣는 데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누가 됐든 이런 자리에는 면역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도 남자인 쿠안이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공인 5급의 마법사. 젊은 나이에 정말 멋지시군요.”
시이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고, 쿠안이 거절한다면 곧바로 갈리앙트로 떠나야 했다.
“부탁드릴 게 있어서 전보를 보냈어요.”
축하 인사의 답례치고는 이상한 말이었기에 쿠안은 식기를 든 채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말씀하시죠.”
시이나는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다.
팀을 위험에 빠트릴 정보는 차단했지만 어차피 세상의 눈치를 보는 것도 내일이면 끝나는 마당이니 내용은 핵심적이고 거칠 게 없었다.
“……그래서 팀원 중에 히트맨이 1명 있었으면 해서요. 쿠안 씨가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던 쿠안은 떨그렁 소리를 내며 식기를 접시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입맛이 떨어진 듯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시이나는 차분하게 기다렸다.
죽으러 가자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역사에 오명을 남기게 될 것이다.
어차피 설득은 불가능한 일.
이제부터는 온전히 그의 판단에 맡길 따름이었다.
쿠안은 식당 바닥으로 시선을 돌린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다시 시이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무엇이든지요. 밝힐 수 있는 정보라면.”
“왜 저죠?”
시이나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보다시피 제 다리는 온전치 못합니다. 그리고 저는 다리가 중요한 검사죠. 왜 굳이 저여야만 합니까?”
“그건 쿠안 씨의 실력이…….”
시이나는 입에 발린 칭찬을 목 안으로 삼켰다.
쿠안이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와 점심을 먹으려고 먼 길을 달려올 남자는 없을 테니까.
아르민은 이제 마음으로 떠나보냈지만 그렇다고 쿠안의 마음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저 진실을 밝히고 그의 결정을 기다릴 뿐이었다.
“쿠안 씨는, 언제 죽어도 상관없으니까요.”
시이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모도, 형제도, 연고도 없다고 들었어요. 쿠안 씨가 죽어도 움직일 수 있는 세력은 없죠. 혹시나 일이 잘못된다고 해도 뒷감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쿠안은 멍한 눈으로 시이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면전에 대고 이런 얘기를 하다니.
어쩐지 긴급 전보를 받았을 때부터 어울리지 않게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코 실력을 간과해서는 아니에요. 쿠안 씨의 검술은…….”
“큭큭. 큭큭큭큭!”
고개를 떨어뜨린 쿠안이 어깨를 떨며 웃자 시이나가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그쳤다.
“언제 죽어도 뒷감당할 필요가 없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쿠안이 섬뜩한 눈빛을 발하며 입꼬리를 찢었다.
“제대로 찾아오신 겁니다.”
이제야 알았다, 어째서 이 여자였는지.
편견이 없는 만큼 동정도 없다.
가식적인 인간의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그에게는 속 시원한 자기 비하였다.
쿠안은 조금 전의 생각을 철회했다.
그래도 신이 아직까지는 자신의 삶을 들여다봐 주고 있긴 한 모양이다.
천국이라.
검귀의 무덤으로 삼기에 이보다 적합한 곳이 또 있을까?
쿠안은 테이블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죠. 급한 것 같은데. 준비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신변 정리는 이미 10년 전에 끝났으니까요.”
“그래 주시면 고맙지만, 최소한 기별이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1명의 검사로서 내린 결심이니까요. 죽는 순간에 각오하면 늦습니다. 전쟁터로 가는 길에 뒤를 돌아볼 필요는 조금도 없죠.”
조금은 극단적인 각오였지만 히트맨의 역할을 맡을 사람으로서 이보다 적합한 인물도 찾기 힘들었다.
동기야 어떻든, 인류의 미래를 짊어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자살 특공대.
시이나는 그의 각오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쿠안 또한 1명의 검사로서 검에 맹세하듯 손잡이를 움켜쥐고 고개를 숙였다.
“저야말로.”
태스크 포스 (3)
갈리앙트 섬을 향해 비행하던 괴조 카이드라는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화물 선박을 발견하고 고도를 낮추었다.
줄루가 카이드라를 해제하자 시이나와 쿠안을 포함한 네 사람이 빠른 속도로 바다를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줄루와 시이나는 플라이 마법으로, 시로네는 광익을 펼쳐 낙하 속도를 조절했다.
검사인 쿠안에게 고도는 익숙한 환경이 아닐 테지만 그는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배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근진동으로 외중력을 발생시켜 중력가속도를 상쇄하는 능력은 마법사의 기술에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다.
시이나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죽음의 마술사의 실력에 감탄했다.
10년 전만 해도 검술 무브먼트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이라고 평가받던 인물.
그런 자가 아킬레스건을 잃어버렸다. 마치 자신을 위해 눈을 잃어버린 그 사람처럼.
‘그러고 보니 닮았구나.’
네 사람은 선박을 향해 몸을 날려 인적이 없는 후미의 갑판에 착지했다.
동시에 줄루가 오토프리즘을 소환하여 모두를 투명 상태로 만들었다.
‘역시 실력자들이 모이니까 쉽게 해결되네.’
바다에 떠 있는 배 위에 잠입하여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갈리앙트로 갈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될까?
만약 세인이 있었다면 이퀄리브리엄으로 소리까지 차단할 수 있을 터였다.
천국이 얼마나 위험한 곳이든 이 정도의 팀이라면 쉽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창고에는 육지의 생산품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네 사람은 구석의 쌀 포대가 쌓인 곳으로 가서 두 사람씩 마주 보는 식으로 등을 기대고 앉았다.
“항구에 도착하면 오토프리즘은 소환할 수 없다요. 조너에게 들킬 위험이 있으니까. 플루가 중간 접선지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가급적 들키지 않게 빠져나가야 한다요.”
시이나는 쿠안에게 로브를 건넸다.
줄루는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로도 충분히 얼굴을 가릴 수 있고 시로네는 금강무장을 사용하면 깔끔하게 해결된다.
그로부터 1시간 뒤에, 배가 항구에 정박했다. 창고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급하게 문이 열렸다.
벽에 기대어 숨어 있던 네 사람은 선원들이 들어오자마자 문을 빠져나갔다.
갑판은 섬에서 올라온 인부들이 화물을 적재하느라 분주했기에 네 사람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선착장에 내려가자 선박 정비공, 화물 운반 인부, 창고 관리인, 무역업자 등으로 바글바글했다.
시로네하고는 인연이 깊은 지스 또한 도크 사이를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여행객들을 호객하고 있었다.
“자, 자! 짐 들어 드립니다! 갈리앙트의 명물, 케르고 유적지도 안내해 드려요! 통역도 가능합니다!”
시로네는 금강무장의 로브를 깊숙이 눌러쓰고 살며시 고개를 돌려 지스를 바라보았다.
‘여전하구나, 지스. 유나도 잘 있지?’
앵무 도적단이 떠났다고 하여 그 자리가 비어 있을 리는 없지만 나름대로 건실하게 살아가는 듯했다.
“응? 누구지?”
지스가 돌아보자 시로네는 살며시 고개를 숙이고 일행을 따라 도크를 벗어났다.
인사라도 나누고 싶지만 세상과 작별하고 사지를 향해 가는 마당에 할 이야기는 없었다.
‘행복해라, 지스.’
시로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지스의 곁으로 친구들이 울상을 지으며 다가왔다.
“어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손님이 안 걸리지? 응? 지스, 왜 그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누구 왔어?”
“아니, 왠지 기분이 이상해서. 저 사람들 말이야.”
친구는 후드의 인물들을 바라보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지스의 나쁜 버릇이 또 나온 모양이었다.
“야야, 저런 사람들에게는 신경 꺼. 보기만 해도 살벌하잖아. 괜히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려.”
또 다른 친구가 동의했다.
“10년 호객꾼인 내 직감도 그래. 저 사람들, 엄청나게 위험하다는 냄새가 풍기거든.”
지스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리운 감정이 물씬 스며들었다.
‘그러고 보니…… 잘 살고 있으려나?’
“어이! 여기 짐! 잡부 없어?”
여객선에서 내린 거구의 남자가 양손에 짐 가방을 들고 뒤뚱거리며 다가왔다.
지스는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손을 들고 달려갔다.
“네네! 갑니다!”
***
케르고 유적지.
가올드, 강난, 세인, 줄루, 플루, 에텔라, 시이나, 쿠안, 시로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9인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오며 가며 말들이 돌았기에 딱히 브리핑을 따로 할 필요는 없었다.
유적지 내에도 몇몇의 요원이 있었으나 하루 동안 대기했던 세인의 선에서 모조리 해결되었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기에 얼굴은 가리는 게 좋다.
하지만 핵심 타깃인 가올드는 후드를 젖히더니 로브마저 벗어 땅바닥에 던졌다.
강난이 어금니를 깨물고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입으시죠.”
“답답해. 어차피 이제 들어가면 끝이야. 이제부터 우리는 케르고 자치 지구로 간다.”
세인이 덧붙였다.
“거핀의 문에 대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실력을 보고 뽑을 거야. 이 멤버에서 한 사람 정도는 보충될 수도 있겠지.”
일행은 중앙 사원의 동쪽에 있는 계단식 제단으로 향했다.
일전에 시로네가 이모탈 펑션을 열어 미로의 시험을 통과했던 곳이다.
케르고 원주민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으나 예전에 시로네가 봤던 사람과는 달랐다.
카둠 족장이 수명을 잃었으니 모르긴 해도 케르고 부족의 정세도 상당히 변해 있을 터였다.
1년 전에 친구들과 찾았을 때는 무시무시한 기도를 뽐내던 원주민이었으나 가올드 일행을 보자 오히려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문지기 또한 케르고 전사라면 9명이 동시에 자아내는 칼날처럼 정련된 기운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가올드가 성큼성큼 다가가 말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