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4
마크의 예상을 깨고 검은 철봉이 고무처럼 휘어지더니 올가미 형태로 올라왔다.
마치 철사를 구부려 원을 만든 듯했다.
“으악! 뭐야!”
기겁하는 것과 동시에 마크의 몸이 커다란 원을 그대로 관통해 빠져나왔다.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형태 변환이 끝난 철봉의 강도는 강철에 육박했다.
‘왜 이러는 거야?’
그때 기계적인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경고. 경고. 건널 수 없는 다리의 기관 장치를 가동합니다. 레벨 10. 레벨 10.
“……뭐?”
기관 장치가 작동된 이유도 의문이지만, 레벨 10은 건널 수 없는 다리의 최고 난이도였다.
죽죽 사출되는 검은 철봉이 휘어지고 뒤틀리면서 흉흉한 형태의 장애물을 만들었다.
“저, 저게 뭐야?”
클래스 포의 실습 난이도가 레벨 6이었으니 지켜보는 자들의 공포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갑자기 기관 장치가 가동되다니!”
교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졸업반 수준의 장애물은 형태도 복잡하지만 사출 속도가 워낙에 빨라 부상의 위험이 높았다.
“제길!”
사드가 가장 먼저 공간 이동을 시전해 기관 통제실로 날아가자 남은 교사들이 물었다.
“교장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진급 시험은…….”
남은 학생은 시로네와 마크.
승자를 예측할 수 없는 박빙의 승부에서 시험이 중단되면 분명 뒷말이 나올 터였다.
특히나 진급 시험이라면 학생 수준이 아닌 수많은 가문의 입김에 시달려야 한다.
‘그냥 진급이 아니야. 2클래스 진급이다. 이미 탈락한 학생들도 형평성을 주장하겠지.’
그런 의미에서 교사들의 물음은 정당했으나 알페아스는 버럭 화를 내었다.
“지금 그런 것을 묻고 있는가! 당장 시험 취소하고 참가자에게 중지하라는 신호를 보내!”
***
공간 이동의 굉음을 타고 지상에 도착한 사드는 인상을 찡그리며 통제실로 갔다.
“누군지 걸리기만 해 봐라.”
명문 알페아스 마법학교에서 기관 장치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사건이 터지다니.
‘아마도 베이크겠지.’
담당 직원의 실수라고 단정 지은 그는 기관실의 문을 거칠게 비틀었다.
“어?”
문은 잠겨 있었다.
어쩌면 실수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비로소 그의 눈빛이 심각해졌다.
“나랑 해보겠다는 거냐?”
오른손에 거대한 불꽃을 피워 올리는 순간 스피릿 존을 통해 문 안쪽이 느껴졌다.
‘어?’
누군가 철문에 등을 대고 앉아 있었다.
이대로 마법을 시전하면 사람까지 폭사할 것이기에 일단은 경고를 보냈다.
“빨리 문 열어. 파이어 스트라이크를 시전할 거야. 열지 않으면 너도 죽어.”
“상관없어요. 아니, 제발 그렇게 해 주세요.”
“너, 마리아냐?”
그녀를 전담한 적은 없지만 사드가 졸업반에 있을 때부터 학교를 다니던 아이였다.
“맞지?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진급 시험이 엉망이 됐어. 이건 정말 큰일이라고.”
“죄송해요. 제가 또 사고를 치고 말았어요.”
“일단 얼굴 보면서 얘기하자.”
“선생님, 저 이제 퇴학당하는 거죠? 아니지, 감옥에 가게 되는 걸까요?”
“아니야, 마리아.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들어 줄게.”
“꿈을 꾼 것 같아요. 저지르고 나서야 알게 됐어요. 제가 미쳤나 봐요. 죄송해요.”
“그러니까 문 열어. 거친 방법 쓰고 싶지 않아.”
“살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 저는 이제 어떡하면 좋죠?”
“…….”
마리아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은 사드는 손바닥의 불꽃을 가만히 잠재웠다.
기관 장치를 꺼서 진급 시험을 정상화시킬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에를랑 마리아.’
어떤 학생이었더라.
얌전하고, 소심하고, 학교의 어떤 서류에도 이름이 잘 오르지 않는 아이.
“그래, 알았다.”
사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서더니 생각하기 싫다는 듯 난간에 앉았다.
“나오기 싫으면 나오지 마라.”
마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고리를 흔들며 소리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진정할 수 있었다.
정적 속에서 사드는 하늘을 보았다.
‘여전하군.’
학창 시절, 너무나 푸르러서 싫어했던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하늘이었다.
“선생님.”
“……왜?”
“제가 미우시죠?”
“너 모르냐? 난 여자는 안 미워해.”
“어째서 세상은 불공평한 걸까요?”
“불공평한 게 싫으니? 너처럼 예쁘게 태어나는 경우도 드물어.”
“천재 마법사라 불리는 선생님은 몰라요, 재능이 없다는 게 어떤 건지. 잘해 보려고 해도 절망감만 앞서요. 뭘 해도 안 될 것만 같아요.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아세요?”
“그럼, 아주 잘 알고 있지.”
예상 밖의 대답에 마리아는 철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이요?”
“어디 보자, 교사가 된 지도 벌써 4년이 지났네. 내가 이 학교를 스물두 살에 졸업했으니 말이야. 네가 입학했을 당시에 나는 졸업반이었겠구나. 선생님이 알페아스 마법학교 출신인 건 알고 있지?”
“네.”
“그럼 한번 떠올려 봐. 사드라는 천재가 학교에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니?”
“…….”
그러고 보니 기억에 없었다.
입학과 동시에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시로네의 경우만 따져도 특이한 일이었다.
“아뇨. 선생님 이름은 못 들어 본 것 같아요.”
“당연하지. 성적은 중하위, 재능도 없지, 그렇다고 집안이 빵빵하지도 않지, 날마다 학교 바깥에서 싸움만 하고 돌아다녔으니까.”
“선생님이요?”
“클래스 하나 뛰어넘을 때마다 꼬박꼬박 2년을 채웠지. 졸업반에서는 3년이나 꿇었고. 물론 지금의 너보다는 상황이 좀 나아 보이긴 한다만. 하하하.”
마리아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마치 그녀의 표정이 훤히 보인다는 듯 사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똑같은 거 아닌가? 최고가 아닌 이상 결국 어느 구간에서든 정체는 오게 되어 있어. 나도 그랬지. 아득바득 졸업반까지 올라가기는 했는데, 거기서는 늘 꼴찌였거든.”
“그런데 어떻게……?”
“잘나가는 교사가 됐냐고? 하하! 다 운이야. 아주 괴팍한 마법사에게 걸려서 된통 혼났거든.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 어느 하나 포기할 용기도 없으면서 성공을 꿈꾸는 건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마리아는 말이 없었으나 생각은 조금 복잡해졌다.
“경쟁할 필요 없어. 싸우는 게 싫다면 싸우지 않고 이기면 되는 거야. 남들보다 어려운 길일 수도 있을 테지만, 너에게는 그런 용기가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것.’
마리아가 물었다.
“어떤 사람이었어요, 선생님을 혼낸 마법사는?”
“너에게도 아주 친숙한 분이지.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교장이시니까.”
“네? 교장 선생님요?”
사드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그래. 그날 이후로 나는 그분의 직전 제자가 되었어. 덕분에 인생 폈지, 뭐. 대륙에서 이름난 마법사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니 나 같은 개차반 같은 놈도 천재 소리를 들으며 떵떵거리는 거 아니겠냐? 하하하!”
마리아는 다시 울적해졌다.
누군가의 행운조차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은, 결국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거야. 누군가는 재능을 타고나고 누군가는 열심히 노력하지.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 같은 놈에게도 가끔은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는 거야. 그래서 세상은 살아 볼 가치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자리를 털고 일어난 사드가 철문을 향해 돌아섰다.
“어때, 마리아? 여기서 끝내기에는, 여태까지 해 온 게 너무 아깝잖아. 조금만 더 해 보면 어떨까?”
마리아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더 이상 뭘 어떡하라는 거죠? 찾아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기적을 기다리며 인생을 걸어야 하나요? 만약 찾아오지 않으면요?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건데요?”
“무슨 소리야, 마리아?”
사드가 손으로 철문을 짚으며 말했다.
“지금 이렇게, 너에게도 기적이 찾아왔잖아.”
“…….”
마리아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흐윽.”
어쩌면 평생을 기다렸던 말 앞에서 뜨거운 눈물이 끝없이 쏟아져 내렸다.
“선생님을 믿고 한 번만 더 맡겨 주면 안 될까? 반드시 훌륭한 마법사로 만들어 줄게.”
“정말요? 저도 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재능은 잘하는 게 아니야.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이지. 그 마음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거란다. 마리아, 너는 뛰어난 학생이야.”
마리아는 엉엉 울어 버렸다.
그렇게 담아 둔 감정을 쏟아 내던 그녀가 퍼뜩 깨닫고 철문을 열었다.
“선생님, 빨리 장치를……!”
사드는 입맛을 다셨다.
“그건 이미 늦은 것 같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조명 마법이 터졌거든. 진급 시험은 취소야.”
“그, 그럼…….”
“상황이 좀 복잡해지겠지만, 그것도 다 내 일이지. 일단 너는 네 생각만 해.”
그때 공간 이동의 섬광을 타고 시이나가 도착했다.
“사드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시이나 선생님?”
도끼눈을 치켜뜬 표정이 심상치 않았으나 그녀도 마리아를 보고 일순 당황했다.
사드가 물었다.
“왜요? 이미 시험은 끝났잖아요. 그보다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안 끝났어요!”
“네?”
“두 사람 다 포기하지 않았다고요. 지금도 경기가 진행되고 있단 말이에요!”
가능한 일인가?
건널 수 없는 다리의 난이도 레벨 10은, 졸업반의 연습 과제였다.
물론 막상 졸업반이 되면 딱히 신경을 쓰는 종목은 아니지만, 클래스 세븐인 두 사람이 목적지까지 완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제길!”
사태를 파악한 사드가 기관실로 몸을 돌리려는데 공간 이동의 섬광이 착지했다.
에텔라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확인한 시이나가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에텔라가 소리쳤다.
“시로네가…… 시로네가!”
건널 수 없는 다리(4)
***
시이나가 기관실로 향하기 전.
알페아스의 지시에 따라 교사들은 시험 중지를 뜻하는 조명 마법을 일제히 시전했다.
하늘이 붉게 물든 상태로 발광했으나, 시로네와 마크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엄청난 트랩이다.’
철봉이 휘어지며 다양한 크기의 원형 고리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정면에서 보기에는 마치 그물처럼 중첩되어 빠져나갈 틈은 없는 듯했다.
‘포기해야 하나?’
시로네와 마크는 서로를 곁눈질했다. 그리고 시선이 충돌하는 것과 동시에 순간 이동을 전개했다.
그아아아앙!
두 사람의 모습이 장애물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되자 교사들이 소리쳤다.
“어리석기는! 끝까지 할 생각인가?”
시이나가 말했다.
“먼저 포기할 수 없는 거겠죠. 나중에 이것으로 말이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정말 큰일이군. 사드 선생님은 대체 뭐 하는 거야?”
교사들이 혼란스러운 이유 중에는 알페아스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도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알페아스는 화가 난 상태였다.
특히나 시로네에게.
‘때로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되는 법이다. 그 정도는 알고 있는 게 아니었더냐?’
하지만 또한 긴 인생에서 깨달은 것은.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경우도 있는 법이지.’
삶에 정답은 없다.
무엇을 선택하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면 타인의 생각은 무의미한 법이기에.
“그대로 진행시키게. 두 사람 모두 내 판단에 납득할 수 없는 듯하니.”
교사들은 놀랐다.
“네? 하지만 만약 사고라도 나면 큰일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알페아스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내가 책임지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