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41
이단 사냥으로 붙잡힌 사람이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알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지원군을 기대할 수 있었다.
“저 여자의 사지를 자르고 몸통만 가져와라!”
말만 들어도 이빨이 달달 떨렸다.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으나, 이미 그녀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케르고 전사들은 두 팔을 자르기 위해 박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그때 강력한 섬풍이 일면서 케르고 전사의 곁으로 흐릿한 잔상이 스쳐 지나갔다.
“뭐……!”
여자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케르고 전사들의 얼굴이 마치 코르크 마개가 뽑히듯이 몸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7명 남았군.’
허공에서 회전하며 쿠안은 남은 적의 위치를 파악했다.
한 번의 베기로 6명을 죽였고 그 베기의 과정에 열두 번의 미세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적이다! 죽여라!”
전력의 절반을 잃은 뒤에야 케르고족은 습격자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몸을 날렸다.
쿠안의 몸은 3개의 방향으로 뻗어 나간 외중력의 실에 묶인 채로 기이한 움직임을 이어 나갔다.
진자처럼 진동하다가 갑자기 튀어 나가자 그를 지나쳐 간 네 명의 몸에서 핏물이 쫙 하고 뿌려졌다.
‘앞으로 3명.’
또 한 명의 전사가 목이 잘렸다.
‘2명.’
분노한 케르고 부대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들 또한 외중력을 구사하지만 어디까지나 적을 베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쿠안처럼 조롱당하는 기분까지 들게 하는 기묘한 움직임은 처음이었다.
“케르고의 기술을 능멸하지 마라!”
부대장이 언월도를 휘두르자 쿠안의 동선이 같은 극끼리 만난 자석처럼 휘어지더니 부대장을 지나쳐 날아갔다.
“하하! 걸렸다!”
케르고 전술의 기본인 함정 파기.
미리 잠복해 있던 말총머리의 전사가 날아드는 쿠안에게 검을 내리그었다.
“응?”
하지만 손에 걸리는 느낌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살피자 분명 검의 반경 안으로 들어와 있어야 할 쿠안이 허공에 떠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쿠안은 말총머리 전사를 짜증스럽게 노려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동시에 그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마치 실타래가 감기듯 부대장이 있는 곳으로 끌려갔다.
“대장님! 뒤를!”
부대장이 반응하기도 전에 쿠안의 검이 목을 땄다.
외중력이 사라지면서 바닥에 착지한 그는 회전하며 검을 던졌다.
화살보다 빠르게 날아간 검이 추락하고 있는 말총머리 전사의 명치를 꿰뚫은 상태로 나무에 박혔다.
케르고인이 전멸하자 숲이 정적에 휩싸였다.
현란한 전투였지만 시간은 고작해야 5초 남짓에 벌어진 일이었다.
시로네 일행은 그제야 현장에 들어갔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쿠안의 실력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으나 막상 당사자의 얼굴은 짜증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제길! 나란 놈은 대체 얼마나 쓰레기가 되어 버린 거냐.’
예전이라면 외중력 한 호흡이 끝나기도 전에 모두를 베어 버리고도 남았을 터.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1명이 남았고, 마지막 처리도 비검을 이용한 임시응변에 지나지 않았다.
“쿠안 씨, 괜찮으세요? 혹시 부상이라도…….”
시이나가 다가오자 쿠안은 황급히 표정을 지웠다. 그녀에게 동정을 받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밸런스가 완벽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시이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쿠안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마법사인 그녀가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그냥 준비한 말을 꺼냈다.
“정말 대단했어요. 검사의 기술을 많이 접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안목을 넓힌 것 같아요.”
쿠안에게는 오히려 부끄러운 말이었다.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곁을 지나치자 시이나가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뭔가 실수했나?’
한편 메카족은 가올드가 다가오자 긴장한 표정으로 무기를 움켜쥐었다.
이들이 나타난 덕분에 목숨을 구하기는 했지만 현재 연옥에서 명확하게 피아를 식별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1명의 검사가 케르고 부대를 전멸시켰다면 실력으로는 확실히 밀린다고 봐야 했다.
“당신들 누구야? 이단인가?”
가올드는 세인을 돌아보았다.
팀원 중에는 천국의 언어를 익힌 사람도 있지만 절반 이상이 통역이 필요했다.
세인의 정신계 마법에 비로소 여자의 말이 이해되자 가올드는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동시에 메카족이 움찔 물러섰다.
몸에 장착된 파이퍼가 칭, 소리를 내며 움직인 거리만큼 관절 접합 부위의 각도를 좁혔다.
두 번째 연옥 (3)
메카족의 간격 안으로 강도처럼 쳐들어간 가올드는 고압적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너희 반란군이지? 본부가 어디야?”
본토에 가려는 이유 중에 반란군의 핵심 거점을 찾는 것도 포함되어 있으니 이들에게 듣는다면 수고로움 하나를 더는 셈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겁에 질려 있던 여자의 얼굴이 가올드의 목소리를 듣자 확 바뀌었다.
벌떡 일어선 그녀가 아크를 치켜들고 소리쳤다.
“군수 커뮤니티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죽는다!”
분대장의 지시에 대원들도 싸울 자세를 취했다.
시그나와 엑스드를 앞세운 그들의 표정에는 죽음마저 불사하겠다는 각오가 엿보였다.
“당장 이곳을 떠나! 안 그러면 아크의 밥이 될 테니까.”
아크의 레이저가 가올드의 미간을 겨누었다.
폭발성 구슬을 쏘는 메카의 원거리 무기.
하지만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여자도 알고 있었다.
‘목숨을 걸었으니 공갈 협박이라도 해 보는 수밖에.’
“크크. 크크크크.”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 듯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가올드의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생겼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동자는 어디에도 없는 불꽃을 담은 채 이글거리고 있었다.
“짜증 나게 쫑알대고 있어.”
대초열지옥이 메카족을 휘감았다.
오해든 착각이든 상관없다. 겁 없이 덤비는 자들을 곱게 봐줄 만큼 가올드는 호인이 아니었다.
초열지옥에 빠진 메카족 대원들은 하나같이 창백한 얼굴로 침을 흘리며 다리를 덜덜 떨었다.
아귀의 비명 소리가 들릴 때는 고막을 찢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소름이 끼쳤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공포가 아니었다.
분대장으로서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여자조차도 턱을 덜덜 떨며 힘없이 주저앉는 게 전부였다.
“흐으으. 그, 그만. 제발…….”
메카족이 전의를 상실한 뒤에야 가올드는 극기를 풀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여자가 고개를 쳐들고 원망스럽게 그를 노려보았다.
“어째서 우리를 괴롭히지? 우리는 천국에 대항해 싸우고 있어. 너희도 같은 인간이잖아?”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군수 커뮤니틴지 뭔지가 아냐. 그리고 예전부터 경계인을 모조인으로 부르며 비하했던 건 너희 아니었나?”
“그, 그건…….”
여자가 반박하려는 그때 메카족의 뒤편에 있는 숲에서 나무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거대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듯했지만 아직까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마그네틱 필드 해제. 아르곤 엔진 가동.
숲의 풍경이 아른거리면서 불투명한 어떤 형태의 경계선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정체를 드러낸 것은 신장 4미터에 육박하는 이족 보행의 기갑 전차였다.
상체와 하체의 비율은 1대1로 안정감이 있고, 역관절의 짧은 다리에 상대적으로 길고 두꺼운 팔을 가진 형태.
엔진 소리에 맞춰 유압실린더가 각기 다른 사이클로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적 발견. 선제타격을 허용한다.
전차는 4개의 손가락이 달린 손바닥을 쭉 내밀며 돌진했다.
가올드가 물러서자, 앞으로 고꾸라지듯 상체를 기울이며 땅을 내리찍었다. 흙이 철벽처럼 일어섰다.
쏟아지는 흙을 맞은 전차는 형태와 무게로 봤을 때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을 듯 보였으나 다리를 계속 전진시키더니 2톤가량의 흙을 퍽퍽 퍼내며 중심을 되찾았다.
그러는 사이에 시로네 일행은 저마다의 전투 간격을 유지한 채 거리를 벌렸다.
시로네 또한 금강무장을 발동하여 후드를 뒤집어쓰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건 뭐지?’
이족 보행 전차의 허리가 물 위에 떠 있는 기름처럼 유려하게 돌아갈 때마다 상부의 조종석이 전방을 살폈다.
조종석은 유리 재질의 타원형 구슬이었고 전기가 흐르는 듯 보랏빛 광택을 내고 있어, 내부를 살필 수 없었다.
“구로이. 메카족 전투 시스템 2단계 장비예요.”
강난의 설명에 가올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호오, 확실히 실물이 좋군.”
서류로 제원만 확인했을 때는 그저 걸어 다니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실전에서 접하자 기동성도 뛰어나고 파일럿의 실력에 따라 전술적인 운용도 가능한 장비였다.
특히나 자기장을 왜곡하여 존재감을 지우는 방식은 최근까지의 서류에도 기재되지 않은 최신 기술이었다.
구로이의 상단부가 빙글 돌아가더니 메카족을 향했다.
“2분대 전원 무사한가? 케르고인은?”
스피커를 통해서 전해지는 목소리는 중성적이었으나 말투로 보건대 남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케르고족은 섬멸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니야.”
구로이의 조종석이 다시 가올드에게 돌아갔다.
“저들은 누구지?”
여자는 잠시 말을 골랐다.
턱수염 남자는 분명 자신의 입으로 군수 커뮤니티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보여 준 환상은 맹목적인 적의 없이는 가할 수 없는 무형의 폭력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그 지옥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미쳐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우리를 공격한 적이다.”
구로이는 내부 채널을 이용해 지시를 내렸다.
-저들을 소탕한다. 타격 모드로 변환. 아르곤 엔진 기어 5단계로 상향하라.
철컹! 철컹! 철컹!
전진하는 다섯 기의 구로이가 일제히 손의 형태를 바꾸었다.
4개의 손가락이 바깥으로 접히고, 안쪽에서 시커먼 구멍을 가진 거대한 총신이 튀어나왔다.
-사격 개시!
캉캉캉캉캉캉캉캉!
공이 역할을 하는 수백 킬로그램짜리 철 실린더가 엄청난 폭으로 흔들리자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굉음이 들렸다.
묵직한 탄환이 분당 삼백 발의 속도로 튀어 나가면서 바위를 터트리고 나무들을 우지끈 부러뜨렸다.
한 기의 구로이가 가올드에게 몸체를 틀었다.
시커먼 탄환이 가올드의 30센티미터 앞까지 빠르게 날아오다가 무언가에 파묻힌 듯 급격히 속도가 줄어들었다.
푹푹! 푹푹푹푹!
에어 실드를 관통하지 못한 탄환들이 모여들면서 시커먼 쇠의 장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흐음, 쇠구슬이군.”
가올드는 탄환이 회전력을 잃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나를 손으로 붙잡았다.
그러자 구로이 부대의 당혹함이 기체의 흔들림을 통해서 전해져 왔다.
-소, 소대장님! 탄환을 손으로 잡았습니다!
-계속 사격해! 놈들은 경계인으로 추정된다!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적을 판단하지 마라!
손에 잡힌 탄환의 무게를 달아 보던 가올드가 엄지를 튀기며 위로 날려 보냈다.
“에어 건 같은 거로군. 맞으면 꽤나 아프겠어.”
강난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아요. 아니면 내가 해요?”
떨어지는 탄환을 가올드가 낚아챘다.
“챙겨. 내가 직접 타 봐야겠어.”
속없는 소리에 강난은 이를 갈았으나 일단 지휘관이 내린 결정을 번복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는데요? 손상 없이 탈취할 수 있어요?”
강난이 세인을 돌아보며 묻자 철륜안이 돌기 시작했다.
“계산 중이다. 1분 정도 걸릴 거야.”
강난은 걱정스럽게 전장을 살폈다. 1분이면 이미 다섯 기 전부 끝장나고도 남을 시간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젠장! 도대체 이것들은 누구야?”
구로이 3호기의 파일럿은 죽을 맛이었다.
조종석 전면에 설치된 아몰레드 비전에는 7개의 분할 화면이 360도 전방을 아우르고 있지만, 검을 든 남자는 마치 화면과 화면 사이를 뛰어넘듯 눈으로 포착하기가 어려웠다.
‘이 세계는 이상한 것들이 많군.’
쿠안은 구로이의 이곳저곳을 베어 보았다.
검이 그어질 때마다 철판이 살점처럼 벌어지면서 전기가 튀었다.
‘갑옷보다 두꺼운데? 사람은 어디에 들었지?’
우연찮게 엔진 동맥을 절단하자 출력이 떨어진 3호기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크윽! 이 자식이!”
파일럿은 두 팔을 치켜들고 중심을 되찾았다.
메카 전투 시스템 2단계에 해당하는 구로이는 기본적으로 1단계를 충족시켜야 운행이 가능하다.
1단계는 다름 아닌 파이퍼로, 구로이의 동작 기관이 파일럿의 신체 각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근력 증강이 되지 않은 자는 팔 한쪽도 쉽게 움직일 수 없다.
그렇게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겨우 안정감을 찾은 파일럿은 쿠안의 위치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건 쿠안이 아닌 갈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꺼벙한 안경을 쓴 귀여운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