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42
“귀엽기는 개뿔!”
외모와 달리 그녀는 무투가였고, 일격을 내지를 때마다 구로이의 기체가 흔들리면서 내부에 굉음이 터졌다.
“오냐! 아주 뼈까지 박살을 내 주마!”
파일럿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휘둘렀다.
구로이의 허리가 가속하면서 두꺼운 포신이 에텔라를 후려쳤다.
쿠우우우웅!
파일럿은 더 이상 자신의 허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창백하게 질렸다.
뒤늦게 멀티비전을 확인하자 여자가 팔꿈치를 얼굴까지 치켜든 자세로 구로이의 포신을 막아 낸 상태였다.
“어, 어떻게? 팔 한쪽만 17마력인데.”
“후우우우.”
심호흡을 하며 팔근육을 진정시킨 에텔라는 구로이의 측면으로 돌아 들어갔다.
음양파동권-벽뢰장.
구로이의 다리를 장법으로 강타하자 파동을 타고 철이 울리면서 굉음이 파일럿의 고막을 타격했다.
“으아아악!”
자신도 모르게 귀를 잡자 구로이의 두 팔이 똑같이 따라 하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빌어먹을! 저 가슴 큰 여자 좀 어떻게 해 봐! 인간이 아냐! 괴물이다!
-이쪽이 먼저야! 엔진 동맥만 골라서 자르고 있다! 검사부터 처리해!
“아니, 누굴 먼저 잡으라는 거야!”
구로이의 허리를 휘돌리며 좌우를 살핀 카냐가 짜증 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어느 쪽이고, 난리도 아니었다.
쾅! 쾅! 쾅!
기체에 전해지는 충격에 카냐의 한쪽 눈이 감겼다.
남은 한쪽 눈으로 비전을 확인한 그녀의 시야에 나무에 촉수를 박고 숲을 날아다니는 촉수 괴물이 보였다.
“저 망할 괴물이!”
캉캉캉캉캉캉캉캉!
구로이의 탄환이 촉수 괴물이 돌아다니는 일대의 나무를 모조리 부러뜨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괴물은 쉴 새 없이 빛을 쏘아 대며 교전을 이어 가고 있었다.
텅! 텅!
빛에 맞을 때마다 수십 톤의 구로이가 흔들렸고, 그 충격은 파이퍼로 연결되어 있는 카냐에게 온전히 전해졌다.
“저거 진짜 짜증 나네!”
괴물 하나 잡으려고 탄환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군수 커뮤니티의 방해로 반란군의 무기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만큼 파일럿은 최대한 효율적인 타격을 수행할 수 있는 자들로만 선별된다. 아크의 명사수인 그녀가 구로이에 탑승할 수 있는 이유였다.
“왜 저딴 괴물이……!”
무엇보다 그녀를 짜증 나게 하는 것은 괴물의 능력이 그리워하는 사람의 마법과 닮았다는 점이다.
시로네가 일화의 술을 중지시킨 사건은 단순히 카냐의 어머니를 살린 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가 남긴 바람은 현재 거대한 태풍이 되어 반란군 제1원칙의 신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저딴 괴물을 보고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몸서리치도록 불쾌한 일이었다.
“탄환이 얼마가 들든, 너만큼은 반드시 처치한다!”
주위의 나무가 모조리 부러지는 바람에 시로네의 활동 반경은 극히 좁아졌다.
장기전으로 가면 승산이 없음을 깨달은 시로네는 로브를 젖히고 본격적으로 마법을 시전했다.
마치 망막처럼 스피릿 존을 따라 중심으로 모인 빛이 한 줄기의 적색 광선이 되어 구로이의 다리에 쏘아졌다.
몸통을 터뜨리는 게 가장 확실하겠지만 교전 중에 타격을 입히려면 다리 쪽의 구동 관절이 적합했다.
-경고! 기체 내부 열 감지! 냉각장치 가동! 출력 허용 범위를 초과했습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카냐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계기판을 확인했다.
구로이의 정면도가 그려진 인터페이스에 왼쪽 다리가 빨간 불빛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에너지 과출력! 에너지 과출력!
계기판의 출력량이 끝없이 올라갔다.
240퍼센트, 370퍼센트, 마침내 600퍼센트에 도달하자 무릎 쪽의 구동 관절이 굉굉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꺄악!”
구로이의 몸체가 기울면서 탑승석이 땅에 처박혔다.
마치 건물에서 떨어진 것 같은 충격이 뼈를 울렸지만 카냐는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죽어라, 괴물…… 응?”
노이즈가 일던 아몰레드 비전이 선명해지면서 총구를 겨누는 지점의 타깃에 자동적으로 포커스가 맞춰졌다.
“뭐, 뭐야?”
카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꿈에서까지 나타났었던 한 소년의 얼굴이 비전에 크게 확대되어 있었다.
두 번째 연옥 (4)
“시로네?”
카냐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명 시로네였다. 하지만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일까?
아니, 이제는 그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화면 속의 인물이 시로네라면 절망에 빠진 반군에게 또다시 새로운 희망을 실어 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5호기가 쓰러졌다! 엄호하라!
무전을 들은 카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멀티비전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부분의 기체가 이동 불가 상태였지만 여전히 탄을 쏠 수 있는 장치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시로네를 겨냥하고 있었다.
“잠깐, 안 돼요!”
카냐는 황급히 무전 버튼을 눌렀다.
“쏘면 안 돼요! 적이 아니에요!”
응답이 들리지 않자 무전을 보내고도 안심이 되지 않은 그녀는 시로네를 확인했다.
무슨 배짱인지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이런……!”
비상 탈출 버튼을 누르자 조종석의 강화유리가 펑 하고 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구로이의 싱크로 머신에서 파이퍼를 박탈시킨 카냐는 수풀을 엉금엉금 기어 나오며 손을 들었다.
“중지! 사격 중지!”
빠져나온 5호기의 스피커에서 소대장의 음성이 들렸다.
-사격 개시.
틱! 틱! 틱!
카냐는 눈을 질끈 감았으나, 남은 세 기의 구로이에게서 들리는 거라고는 강철이 튀는 소리뿐이었다.
“뭐, 뭐야?”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카냐는 풍경이 일그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곡의 중심에는 한 쌍의 거대한 톱니바퀴가 맞물린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세인의 이퀄리브리엄이 가스의 화학작용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평정시킨 것이었다.
“불발! 불발탄입니다, 소대장님!”
“나도 마찬가지다. 점화 플러그 확인해.”
“이상 없습니다! 이런……! 컥!”
쿠웅!
쿠안과 에텔라가 한 기의 구로이를 쓰러뜨렸다.
실력에 비하면 오래 걸린 감이 있지만 대생물전에 특화된 두 사람이 신체 능력으로 기계를 박살 냈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구로이의 강화유리가 펑 튀어 나갔다.
파일럿은 싱크로 머신에 매달린 채 기절해 있었고, 아르민이 옆에 서 있었다.
좌표만 확실하면 설령 밀폐된 공간이라도 침투할 수 있는 시공간 마법사 특유의 섬뜩함이었다.
다른 팀원들도 손쉽게 구로이를 파괴했고 그나마 멀쩡한 기체는 소대장이 타고 있는 구로이 한 기뿐이었다.
가올드는 마치 미지와 조우하듯 흥미롭게 턱을 쓰다듬으며 구로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악수를 청하는 대신 보랏빛을 내는 기체의 안면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려. 죽고 싶지 않으면.”
퍼엉!
강화유리가 천장으로 치솟으면서 소대장이 파이퍼를 장착한 상태로 가올드에게 뛰어들었다.
“죽어라!”
“안 돼요, 소대장님!”
카냐가 소리쳤으나 소대장이 들고 있는 시그나는 이미 가올드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카냐?”
가올드는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치 별개인 듯, 그의 주먹이 빠르게 휘둘려 소대장의 턱을 강타했다.
“아욱!”
볼품없이 추락한 그는 풀린 눈으로 바닥을 뒹굴었다.
만약 가올드가 프레스 마법을 해제하지 않았다면 이번 일격으로 그의 얼굴은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냐, 시로네?”
시로네는 눈을 의심하며 더욱 자세히 살폈다.
“카냐지? 너, 카냐 맞지?”
카냐는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텅! 텅! 파이퍼마저 중간에 박탈시킨 그녀가 맨몸으로 달려가 시로네의 품에 안겼다.
“시로네, 시로네! 으아아아앙!”
죽일 듯이 싸우던 적대 관계에서 갑자기 달짝지근한 풍경이 펼쳐지자 모두 어리둥절했다.
“정말로…… 시로네라고?”
반란군 중에 시로네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일화의 술을 저지한 최초의 네피림.
샤마인 73구역에서 시작된 폭동을 기점으로 반란군이 조직되었고, 그들은 시로네를 ‘73구역의 빛’이라 칭하며 뜻을 기리고 있었다.
카냐는 뒤늦게 눈물을 훔치고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이상한 것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못 알아봤어.”
정체를 감춘 채 적으로 만났다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기에 시로네는 개의치 않았다.
“괜찮아. 레나는 잘 있어?”
“응. 본대에 있어. 널 보면 기뻐서 까무러칠 거야.”
“하하! 그래, 부모님은?”
“아빠는 아직도 정정하셔.”
“……그렇구나.”
시로네는 어머니에 대해 묻지 않았다.
당시에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기에 카냐가 말하지 않는 것으로 이후의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에 좋은 죽음은 없다.
하지만 시로네는 그녀가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행복하게 떠났기를 바랐다.
“내가 돌아간 뒤로 얼마나 지났어?”
“정확히 432일.”
카냐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시로네가 일화의 술을 저지한 날이야말로 반란군에게는 기념비적인 날이었으니 계산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432일이라.’
시로네가 살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대였다.
거핀의 문은 공간을 왜곡하는 방식이기에 거리로 인해 발생하는 시간의 오차는 없다.
그럼에도 이곳의 시간이 조금 더 빠른 이유는, 행성 주위에 있는 중력장의 영향일 터였다.
시로네는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천국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라고 들었는데 여기까지 오면서 천사는커녕 마라조차 보지 못했어. 어째서 그런 거야?”
카냐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잘 몰라. 정말 치열하게 싸웠었는데, 아니 거의 도망쳤지만, 어쨌든 어느 날부터 천사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어. 반드시 순찰을 돌던 대보름의 날에도 말이야.”
정신 마법을 연결시켜 주며 듣고 있던 세인이 눈을 빛내며 끼어들었다.
“변화가 생긴 게 정확히 언제부터지?”
“음, 한 130일 정도 됐을까요?”
130일.
원래 세계의 시간대와 대조해 보자면 대략 세 달 전후 무렵부터였다.
천국에 잠입한 가올드 친위대에게서 연락이 두절된 것도 그때부터라는 것이 먼저 떠올랐다.
‘확실히 천국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대체 뭐지? 미로와 관련이 있는 건가? 아니면…….’
소대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구로이를 살폈다.
73구역의 빛이라 불리는 시로네라면 어떤 이유든 싸울 필요가 없으나 그로 인해 잃은 것이 너무 컸다.
“큰일이군. 기체 파손이 심각해.”
시로네가 미안한 표정으로 다가갔다. 창 정비가 아니고서는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죄송해요.”
“그쪽이 미안할 건 없지. 선제타격을 한 건 우리니까.”
거기에 대해서 일말의 책임이 있는 분대장 여자가 억울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보이며 호소했다.
“하지만 저 남자가 먼저 괴상망측한 환영을 펼쳤어요. 당해 보시면 알겠지만 누구라도 적으로 인식했을 겁니다.”
플루가 딴죽을 걸었다.
“그 전에 그쪽이 먼저 아크를 겨눴잖아?”
“그 전에 저 남자가 먼저 시비를 걸었지.”
“시비를 걸기 전에 너희가 먼저 오해했지.”
여자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럼 저렇게 생겨 가지고 어떻게 오해를 안 해! 한 대 칠 것처럼 다가왔잖아!”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결국은 가올드의 얼굴이 죄라는 의견까지 나오자 소대장은 더 이상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됐어. 그건 그만두고 빨리 기체 수습해서 본대와 합류하지. 본대도 현재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야.”
세인이 물었다.
“본대는 어디에 있지?”
“망자의 평원. 현재 거인 소탕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