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47
시간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무에 대수겠는가?
어차피 그것이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시간이라면.
***
전략회의실이 정적에 사로잡혔다.
니플헤임.
본토의 경계인들조차 접근을 금하는 곳으로, 그곳에 서식하는 존재는 한때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사악한 망령들뿐이었다.
크루드는 이번에도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너무나 위험한 곳이다. 블랙 엘릭서의 가치를 생각하면 수많은 자들이 도전을 해야 마땅하지만, 그것도 수천 년 전부터 발길이 끊겼어. 이유는 하나. 가면 무조건 죽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 선택해라.”
세인이 물었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보나? 이 상황에서?”
“니플헤임에 가지 않는다고 해도 동맹 관계는 유지할 수 있겠지. 기회는 지금만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제1사령부가 전면전에 나설 경우는 반드시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안전한 방법을 택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대로 빠른 길을 택하자니 너무 위험했다.
“가올드, 어떡할 거냐?”
세인은 지휘관에게 판단을 넘겼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의상 물어본 것에 불과했다. 미로의 생사를 알 길이 없는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니플헤임으로 간다.”
“흐음.”
크루드의 한숨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난 너희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렇기에 말리고 싶은 거야. 73구역의 빛을 이용해 반군의 규모를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째서 조급하지?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조급함은 실수를 낳는다.
가올드 또한 그 사실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시간은 여유롭지 않았다.
삼매경에 들어간 미로를 천국에서 죽일 수는 없겠지만, 또한 아무런 대책 없이 이런 일을 벌일 놈들도 아니었다.
“그건 알 거 없어. 세 가지 조건을 최대한 빨리 맞춰 주지. 그렇다면 불만은 없는 거 아닌가?”
“물론이지. 단, 가능하다면.”
크루드는 마지막까지 회의적이었다.
“이제부터 팀을 나눈다. 나, 강난, 줄루가 니플헤임으로 들어간다.”
세인이 물었다.
“그럼 나머지는?”
“아르민, 시이나, 에텔라, 쿠안이 군수 커뮤니티를 맡아. 시로네, 플루가 제2사령부를 설득한다. 현재로서는 이 방법 밖에 없겠지.”
세인의 생각에도 임무의 난이도를 고려해 최대한으로 쪼갠 인원 분배였다.
“그럼 나는 이곳에 남아서 전략을 짜지. 더불어 행성 운행에 대한 것도 파악해야 하니까.”
신의 징벌이 제대로 아라보트에 꽂히려면 낙하지점에 대한 정밀 예보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게 행성 운동에 관한 파악이었다.
“정말로 가겠다는 건가, 니플헤임에?”
크루드는 시로네 일행을 이해할 수 없었다.
10명이 떼로 달려들어도, 아니 반군에 지원을 요청해도 모자랄 판국에 팀을 나누겠다니.
“너희, 제정신이냐?”
가올드가 자리를 떠나며 말했다.
“아니.”
제 2 사령부 (1)
시로네는 플루와 함께 제2사령부로 향했다.
안내는 클로브와 가드락이 맡았고, 빛의 스폿을 타고 거리를 좁혀 가는 동안 다양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연구에 의하면 천사들의 ‘굽어보기’는 관측자의 시선이 이탈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장소를 눈앞으로 끌어들이는 식인 모양이야. 마치 방에 있는 서랍을 열어 그 안을 뒤지는 것과 흡사하지. 그렇다면 반군은 어떻게 굽어보기를 피했을까?”
사령부에서 받은 드론을 통해 가드락의 말이 통역되었다.
천국에서 생산한 드론에는 땅의 나라의 언어가 없지만 ‘야맹’의 물건에는 수많은 경계인의 언어까지 프로그램되어 있었다.
“으음, 서랍에 자물쇠를 건다?”
플루의 말에 가드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메카족의 방식이지. 자체 개발한 마그네틱 필드로 풍경을 교란하여 포커스를 잡지 못하게 만든다.”
시로네가 말했다.
“그럼 두 번째는 서랍을 많이 만든다인가요?”
“정답. 현재 우리가 향하는 제2사령부는 점조직처럼 흩어져서 운영되고 있다. 고전적인 은신 전략이지만 그런 만큼 리스크는 훨씬 적지.”
플루가 물었다.
“어떤 곳이죠? 제2사령부 말이에요.”
“나도 사령부는 가 본 적이 없어. 13대대에서 근무하다가 제1사령부로 편입되었으니까. 다만 통솔력을 중시하는 메카에 비해 노르는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지. 힘이 있는 자가 지휘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시로네가 말했다.
“그렇다면 사령관은 굉장히 강한 사람이겠네요.”
“그렇다고 들었다. 레이시스라는 여자인데, 소문에 의하면 스피릿 포스가 무려 32퍼센트나 된다고 하더군.”
스피릿 포스는 정에 대한 친화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스피릿 존보다 훨씬 본질에 근접한 정신 상태였다.
플루가 물었다.
“32퍼센트면 얼마나 대단한 거죠? 만약 100퍼센트가 되면 정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나요?”
“그건 무리지. 어디까지나 친화력이니까. 32퍼센트라면 한 방울의 물로 100명의 식수를 제공할 정도일까? 보통 노르의 친화력이 7~8퍼센트밖에 되지 않으니까. 1퍼센트 차이만 나도 마법적 위력은 기하급수로 커지지.”
시로네는 제2사령부 사령관의 모습을 막연하게나마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어쨌거나 나는 이 여정에 찬성이야. 메카는 거인에게 강하지만 요정에게 약하지. 반면에 노르인은 요정에게 강하다. 살아남으려면 연합은 필수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로네 일행은 빛의 스폿에 도착했다.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투명한 시냇물이 흐르는 위에 빛의 입자가 동실동실 떠다니고 있었다.
찰박찰박 물길을 밀어내며 시내로 들어간 가드락에 스폿에 주먹을 내밀고 빛의 마법 엘라이저를 준비했다.
빛이 주먹을 타고 스며드는 것을 바라보던 플루가 물었다.
“여기서 더 가야 돼요? 벌써 세 번째인데.”
“이게 마지막이다.”
만약 이곳에 오는 도중에 습격을 당했을 경우 정보가 누설될 수 있기에 아껴 두던 말이었다.
플루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로네에게 다가갔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있었을 때보다야 속은 편하지만, 지금은 온전히 그녀가 시로네를 지켜야 했다.
어젯밤 크루드와 협상을 끝내고 벙커를 나서면서 가올드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플루.”
“네, 협회장님.”
플루를 부른 가올드는 시로네를 흘끗 살핀 다음 말했다.
“걱정이 되는군. 다른 팀은 베테랑이 섞여 있지만 너랑 시로네는 다르니까.”
플루는 순순히 인정했다.
물론 가올드가 걱정하는 건 시로네와 플루의 안위가 아니라 프로젝트의 실패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선배님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목숨을 걸고 임하겠습니다.”
“만의 하나, 상황이 어긋난다면…….”
가올드는 말을 멈췄다.
그것은 플루에게 실로 경이로운 일이었다.
제동장치가 고장 난 기계에 비유할 수 있는 그가 머뭇거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플루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프로젝트에서 한 사람의 목숨이 없어져야 한다면 저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서포터로서, 무슨 일을 당하든 시로네만큼은 반드시 생환시키겠습니다.”
터미네이터의 포지션으로 팀에 합류한 시로네는 설령 팀원 대다수가 사망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생존해야 하는 태스크 포스의 마스터키.
그런 막중한 임무를 가진 요인과 서포터인 그녀의 목숨을 저울질한다는 자체가 마법사로서 부끄러운 일이었다.
가올드는 잠시 동안 말없이 플루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사악하게 입가를 찢으며 돌아섰다.
“크크, 믿어 보지.”
마지막 말이 플루의 가슴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멍한 표정으로 가올드의 넓은 등을 바라보던 그녀가 웃음기를 함박 머금으며 거수경례를 올렸다.
‘죽어도 좋아. 나는 최고의 팀에 들어온 거니까.’
“저기…….”
그때 멀리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크루드가 헛기침을 하며 걸어왔다.
설령 전시라도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주의인 그는 조심스럽게 감정을 드러냈다.
“혹시 불편한 일이 있으면…….”
“없습니다.”
플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기를 거두고 차가운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시로네는 송사리들을 발로 헤집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게 아니라면 영락없는 열아홉 살이었다.
시로네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실전에서 최선 따위의 단어는 의미가 없는 것도 사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완수하는 것만이 중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로네 또한 결의가 필요했다.
“잘 들어. 여기까지 온 이상 너도 마법사야. 아직 졸업을 하지는 않았으니까 비공식 마법사지.”
시로네는 어리둥절하게 플루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이제부터 나도 너를 프로로 대할 거야.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임무에 충실해야 된다는 얘기야. 불합리한 일을 하라는 게 아니야. 사실 무엇이 불합리한 것인지도 구분할 수 없지. 전쟁이란 그런 거니까. 만약 혼란이 생길 때에는 오직 임무에만 충실해.”
시로네라고 모를 리가 없다.
마법사 자격증도 없는 그를 지키기 위해 하늘 같은 선배들이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이다.
무엇보다 긴장되는 건,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거리낌 없이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살아야 해. 그런 임무야.’
시로네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싫은 일을 떠맡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신이 하지 못하면 결국 다른 사람이 그 몫을 감당해야 한다.
시로네는 결심했다. 아니, 기원했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부디 망설이지 않게 해 달라고.
“출발한다.”
엘라이저의 거대한 섬광이 하늘로 솟구쳤다.
***
세상이 따듯한 빛에 휩싸이면서 숲의 풍경이 아롱거렸다.
빛이 걷히고 나자 냇가가 있던 계곡에서 울창한 삼림이 조성되어 있는 숲의 한복판으로 풍경이 변했다.
플루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여기가 사령부인가요?”
“아니. 사령부의 문지기가 우리를 인솔할 거다. 아마도 여기서 훨씬 더 들어가야 할 거야.”
미행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들이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은신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가드락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 휘파람을 불었다.
소리 마법 페리가 시전되면서 수백 마리의 새가 지저귀는 듯한 소리가 숲의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잠시 후 1명의 남자가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에서 왔지? 오늘은 보고받은 바가 없는데?”
차가운 인상의 사내였다.
푸른 머리에 눈초리가 올라가 있고 왼쪽 머리를 삭발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오른쪽 머리가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가드락이 시로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1사령부에서 왔다. 소문은 들었겠지, 여기 이 소년이…….”
“아, 그렇군.”
남자가 손을 들며 마법을 시전했다.
숲의 마법 오프리카.
뒤편의 나무가 우수수 흔들리더니 수많은 나무 넝쿨들이 빠른 생장 속도를 보이며 시로네 일행에게 날아들었다.
“크윽!”
겁에 질린 클로브와 가드락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은 반면 시로네와 플루는 움직이지 않았다.
날아드는 궤적이 자신을 노리는 게 아니었다.
아마도 조금만 더 냉정을 유지했다면 누구나 파악할 수 있으리라.
넝쿨들이 팍팍 땅을 찍으며 박히더니 그 자리에서 아치를 그리며 자라났다.
순식간에 시로네 일행은 아치 패턴의 나무로 얽힌 감옥에 갇힌 상태가 되었다.
‘이것이 고대의 식물 마법.’
카즈라에서 보순과 겨루었을 때의 잔상에 의하면 공인 4급의 마법사도 이토록 빠른 생장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저 남자가 보순보다 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정의 친화력을 이용하는 고대 마법의 장점은 확실히 있는 듯 보였다.
‘어쨌거나 쉽지 않겠어.’
초면부터 무력시위를 하는 집단치고 제대로 된 협상을 한 적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문지기는 새롭게 오프리카를 시전해 또 다른 나뭇가지들을 끌어와 일행을 겨누었다.
“노르를 배신한 자들이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지?”
클로브가 감옥을 붙잡고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너, 여기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73구역의 빛, 시로네라고!”
적대하는 관계일수록 첩보전은 활발한 법.
문지기 또한 시로네가 돌아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전쟁 안 할 거야? 시로네가 있으면 반군의 사기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몰라서 물어?”
창처럼 날카로운 나뭇가지가 감옥의 틈새를 뚫고 들어와 클로브의 콧잔등 앞에서 멈췄다.
“큭!”
황급히 물러선 클로브가 반대편 감옥에 등을 찍었다.
오프리카는 친화력 10퍼센트가 넘지 않고서는 시전할 수 없는 마법.
친화력 7퍼센트에 불과한 그로서는 남자의 위세에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73구역의 빛이 어쨌다는 거냐? 노르를 비난하고 매도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같이 싸우자고? 우린 메카족 놈들의 힘 따위는 필요 없어. 고작 기계에 의존하는 놈들을 데리고 어떻게 천사와 겨루겠는가?”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시로네가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아닌 당신의 대장을 만나러 온 거야. 내가 생각하기에 노르족 전체의 운명을 걸고 무언가를 결정할 권한은 당신에게 없을 것 같은데?”
남자는 시로네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로네의 무용담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만 절대적인 힘의 기준이 있는 노르족은 단순히 신화만으로 현혹되지 않는다.
고작 요정부장 이기린을 쓰러뜨린 정도로 여기서도 통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73구역의 빛은 상당히 덜떨어진 놈이거나 자기 힘에 취한 애송이일 뿐이었다.
“그럴 수도. 하지만 문지기로서 권한은 있지. 네피림이든 73구역의 빛이든, 전쟁에서 중요한 건 힘이다. 메카에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무 감옥에 갇혀서 징징대 봤자 노르인은 콧방귀도 뀌지 않아.”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