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48
시로네는 팍 하고 손바닥을 감옥에 댔다.
그의 손에 빛이 집중되기 시작하자 문지기가 황급히 물러섰다.
들은 바에 의하면 시로네는 친화력에 관계없이 빛을 자유자재로 부리고, 그것으로 사물을 파괴할 수도 있다.
“흥! 그래 봤자……!”
문지기 또한 반군 사령부의 길목을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고대 마법의 실력자.
주위의 초목을 모조리 끌어온 그는 넝쿨을 꼬아서 창처럼 날카롭게 만든 다음 반격할 준비를 했다.
‘뭐지?’
하지만 반격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오지 않았다.
시로네의 손에 모인 빛이 점차 어둡게 변해 가더니 나무덩굴이 기괴하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암구.
두꺼운 나무들이 뒤틀리는 광경을 문지기는 손을 놓고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으드득! 으드드득!
뼈가 짓이겨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한데 얽혀 있던 반구형의 감옥이 지상에서 뜯어져 나왔다.
으드드드드드드득!
급기야 공간에 생긴 구멍을 향해 일그러지면서 모조리 빨려 들기 시작했다.
마치 대식가가 살아 있는 생물을 통째로 삼키는 것처럼 나무는 뿌리부터 버둥거렸고, 그럼에도 결국 강제로 섭취당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클로브와 가드락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일전에 시로네가 빛으로 바위를 깨트렸을 때도 이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다.
“저, 저게 무슨 마법이에요, 스승님?”
“…….”
가드락이라고 하여 알 도리가 있을 리 없었다. 아마도 문지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노르인 모두가 넋을 잃은 채 시로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 2 사령부 (2)
“이, 이럴 수가…….”
문지기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가 알기로 시로네는 빛의 마법을 구사하는 네피림이었으나, 오프리카를 파괴한 것은 어둠의 마법이었다.
문제는 지금이 태양이 내리쬐는 대낮이라는 점이다.
빛의 정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곳에서 어둠의 힘을 구사하는 것은 율법에서 자유로운 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계속할 거야?”
플루가 큐브릭에서 마법 지팡이 ‘피닉스’를 꺼내 휘돌렸다.
시로네에게 선공을 빼앗겼지만 조금만 늦었다면 봉황정이 튀어나와 감옥을 초토화시켰을 터였다.
문지기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우리는 노르족이다. 실체 없는 신화 따위에 휘둘리지 않아!”
문지기가 소리 마법 페리를 시전하자 마치 까마귀가 우는 듯 불길한 소리가 천공을 수놓았다.
바람의 마법 에이오스를 타고 3명의 노르인이 문지기의 뒤에 착지했다.
가근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노르 근위병이었다.
“어이, 웬일이야, 네가 우리를 다 부르고? 어라?”
근위병 중 대머리 사내가 시로네 일행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저 애송이들은?”
“제1사령부에서 온 놈들이다. 저 금발 머리는 73구역의 빛, 시로네다.”
“시로네?”
대머리는 시로네를 빤히 바라보았다.
문지기와 마찬가지로 그의 인상도 불쾌한 듯 구겨졌다.
“아아, 그 시로네? 덜떨어진 메카족에게 붙은 놈 말이군.”
플루가 앞으로 나가며 말했다.
“더 부를 사람 있어? 우리도 바쁜 몸이니까 할 거면 빨리 하지?”
문지기가 근위대에게 일렀다.
“방심하지 마라. 놈들의 마법은 우리와는 마법 체계가 달라.”
“알고 있어. 우리보다 훨씬 허접하지.”
플루가 콧방귀를 뀌며 피닉스를 앞으로 내미는 그때 시로네가 어깨를 짚으며 나섰다.
“제가 할게요, 선배님.”
노르인이 시로네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든 천국과의 전쟁에서 핵심적인 위치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사령부 예하 수만 명의 노르인을 집결시키려면 지금부터 네피림의 능력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좋아. 대신 빨리 끝내.”
플루가 자리를 내어주자 시로네는 천천히 문지기를 향해 걸어갔다.
“우리를 사령부로 데려다줘. 무의미한 싸움을 계속할 필요는 없지 않아?”
“흥, 확실히 소문값은 하는군. 하지만 그거 아나? 노르의 진짜 강력함은 이제부터라는 걸.”
문지기가 눈을 부릅뜨며 동료들에게 말했다.
“마하가르트를 준비해라.”
대머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마하가르트?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못 들었어? 놈은 이상한 마법을 사용한다. 한 번에 끝내는 게 최선이야.”
“쳇!”
대머리는 할 수 없이 말에 따랐다.
계급을 떠나, 사령부의 입구에서는 문지기의 판단이 최우선이었다.
남은 세 사람이 대머리의 동작을 따라 했다.
고대 마법은 현대 마법처럼 개성적이지 않지만 때로는 그런 성향이 장점이 되기도 한다.
바로 집단 마법을 시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주위의 대기가 묵직하게 응집하는 게 느껴지자 시로네는 정면에 광자를 압축시켰다.
4명의 노르인이 동시에 마법을 시전했다.
“마하가르트!”
기체의 밀도를 넘어선 강풍이 밀려들었다.
일단 휩쓸리면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벽에 처박혀 사지가 터져 나가는 강력한 위력의 마법이었다.
시로네는 이를 악물고 포톤 캐논을 쏘았다.
무거운 섬광이 대기의 중심에 파고들자 공기에 주름이 접히며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급기야는 고막이 찢어질 듯한 파열음을 내며 마하가르트를 산산조각 찢어발겼다.
“크으으윽!”
마하가르트의 후폭풍이 밀려들어 노르인의 옷깃을 펄럭거렸다.
소리의 파동만으로도 정신이 날아갈 지경이었다.
“마, 마하가르트가…….”
노르족의 집단 마법은 메카족의 3단계 전투 시스템만큼이나 치밀하고 강력한 체계였다.
완벽하게 팀워크가 맞아야만 시도할 수 있는 마법.
그런 마법이 1명의 손에 파괴되었다는 것은 노르의 전투병들에게는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이었다.
플루는 지금의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멍청하긴. 밀도의 차이를 고려했어야지.’
풍력이 아무리 강해도 한 점에 압축되는 포톤 캐논을 밀어내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현대 마법에서는 에어 마법을 프레스 계열과 블로 계열로 분화시켜 수많은 상황에 응용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그나저나 짧은 시간에 상당히 단련했네.’
포톤 캐논의 위력이 마법협회에 있을 때보다 월등히 강해져 있었다. 아마도 졸업반 생활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산탄 무브먼트와 레이저 유도를 함께 수련한 사이인 만큼 플루는 시로네의 성장이 자신의 일처럼 기뻤다.
***
시로네 일행은 문지기를 따라 숲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시로네가 선보인 무위는 충격적이었지만 노르 전투병의 마음까지 꺾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마음으로 복종하는 자는 사령관뿐이었고, 그녀가 노르족을 승리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럼에도 생각을 고친 이유는, 더 이상 자신들이 판단할 범주를 넘었기 때문이다.
어떤 원리로 발동이 되는지는 알 도리가 없으나 4인 합격을 일격에 파괴한 시로네의 실력은 재고할 가치가 있었다.
“안내는 하겠지만 우리가 너를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사령관님은 결코 메카족과의 동맹을 허락하지 않으실 테니까.”
플루가 물었다.
“대체 무슨 일 때문에 갈라선 거야? 뭔가 계기가 있었을 거 아냐?”
메카와 노르의 사고방식이 다르기에 갈등이 생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천국이라는 공공의 적이 존재하는 전시에는 어떻게든 힘을 합치는 게 보편타당한 흐름.
단순히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갈라서지는 않았을 거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메카족은 오만하지. 그들이 아는 게 가장 대단한 줄 아니까. 노르에게는 노르만의 방식이 있다. 하지만 놈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어. 전쟁이란 이길 생각으로 하는 것. 나약한 놈들과는 다시는 손을 잡고 싶지 않아.”
걸음을 멈춘 문지기가 관목 이파리를 옆으로 젖혔다.
“다 왔다. 이곳이 우리의 사령부다.”
시로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눈에는 그저 깎아지른 절벽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사령부?”
문지기가 페리 마법을 시전하자 특유의 새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잠시 후 절벽의 수십 군데에서 구멍이 생기더니 노르 경계병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땅이 진동하면서 절벽이 요새로 탈바꿈되기 시작했다.
지상에 문이 열리고, 높은 곳에서는 돌로 만든 계단이 내려왔다.
‘고대 마법이구나.’
자연계의 친화력을 이용하는 노르인은 산 전체를 마법적으로 조형하여 천연의 요새를 세운 모양이었다.
사령부에 도착하자 보기에도 쟁쟁한 실력자들이 시로네 일행을 에워쌌다.
정문에서 키가 크고 도색적인 인상의 금발 여자가 도도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노르족 대마법사, 반군 제2사령관 레이시스였다.
“무슨 일이지? 푸린의 새소리라니.”
문지기는 시로네 일행을 세워 두고 레이시스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나직하게 속삭였다.
플루는 허공에 떠 있는 드론의 통역 모두를 내부 채널로 바꾸고 소리를 증폭시켰다.
망막 비전에 소리 수집 불가라는 경고 창이 떴다. 마법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소리가 퍼지는 것을 차단하고 있는 듯했다.
“흐음, 알았다.”
보고를 들은 레이시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로네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스피릿 포스 32퍼센트에 달하는 고대 마법의 강자.
플루는 언제라도 행동을 취할 수 있게끔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까지 무표정하던 레이시스의 얼굴은 시로네 앞에서 갑자기 환해졌다.
“환형합니다, 73구역의 빛이여.”
예상치 못한 환대에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레이시스는 두 팔을 벌리고 시로네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녀에게서는 진한 향수 냄새가 났다.
피처럼 진한 향수 냄새.
레이시스는 시로네 일행을 절벽 내부의 본거지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 시점에서 클로브와 가드락이 이탈하고, 남은 두 사람은 사령관실로 안내되었다.
바닥에 양탄자가 깔려 있고 3인용 소파가 마주 보듯 배치되어 있었다.
시로네에게는 확실히 메카족보다 친숙한 풍경이었다.
소파 사이의 상석에 앉은 레이시스가 자리를 권하자 시로네와 플루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다른 소파에 앉았다.
만일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협공이 용이한 포지션.
레이시스는 흔하지 않은 그들의 좌석 배치를 바라보더니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곳에 온 이유가 뭐지?”
시로네가 말했다.
“짐작하고 계실 텐데요. 제1사령부에서 동맹 제안을 했어요.”
레이시스는 턱을 괴고 다리를 꼬았다.
“동맹이라. 이제 와 그게 무슨 소용이야? 합쳐서 뭘 어쩌게?”
시로네는 크루드를 설득시켰던 세인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이야기를 들은 레이시스도 이번만큼은 신중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흐음, 이지스 시스템을 마비시킨다. 만약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야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지.”
“일단 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변수를 만들 수 있어요. 그러니 제1사령부와 손을 잡고 같이 움직이는 게 어때요?”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레이시스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만약 그렇게 해서 천국을 정복하게 된다면, 왕은 누가 되는 거지?”
“네? 왕요?”
“내 말은, 이 동맹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거야. 처음 반란을 일으킬 때는 사이가 좋았지. 하지만 지금은 메카족과 볼 장 다 본 사이 아닌가? 내가 이러저러해서 동맹을 하자고 지시해도, 대원들이 순순히 따라 줄 거라고 생각해? 이미 한번 갈라섰어. 그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기는 했지만, 두 번째도 뒤통수를 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잖아?”
노르족의 입장에서는 분명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시로네가 대답을 못 하고 있자 레이시스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
“제안이라면?”
레이시스의 검지가 시로네를 찌르듯 가리켰다.
“73구역의 빛. 반군 전쟁의 상징인 네가 제2사령부에 편입된다면 나도 적극적으로 대원들을 설득시켜 볼 용의가 있는데.”
플루가 물었다.
“나쁜 제안은 아니지만, 상관없는 거 아닌가요? 어차피 동맹을 맺으면 다시 통합되는 거잖아요.”
“맞아, 상관은 없지. 그래서 제안하는 거야. 노르인은 상대가 거절할 제안을 할 만큼 멍청하지 않거든. 다만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우리도 보험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자유의 상징을 노르족이 갖는다, 그 정도면 충분히 대원들을 설득시킬 수 있지.”
플루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시로네는 순순히 승낙했다.
메카와 노르에게 각자의 사정이 있듯 시로네 팀도 어떻게든 반군만 움직이면 되는 일이었다.
“좋아요. 전쟁이 끝났을 때 제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노르족이에요.”
레이시스가 환한 미소로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좋았어! 잘 생각한 거야. 그럼 이제부터 등록하러 갈까?”
“네? 등록이라뇨?”
“제2사령부에 들어왔으니 당연히 측정해야지, 너희의 스피릿 포스.”
***
시로네와 플루는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2개의 탈의실 앞에 섰다.
스피릿 포스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검사가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신체검사였다.
탈의실로 들어가기 전에 플루가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싸우기보다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에 치중해. 가장 중요한 건 합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