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49
“네. 선배님도 조심하세요.”
두 사람이 각자의 탈의실로 들어가자 두 기의 드론이 서로 갈라서듯 주인의 뒤를 따랐다.
바깥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플루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공동이었고, 내부로 들어가는 또 다른 문이 설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노르족 여성이 다가왔다.
“옷을 벗어서 저에게 주세요. 검사가 끝나면 돌려 드릴게요.”
“어디까지 벗어야 되지?”
“전부 다요. 소독실에서 살균하고, 혈액과 체모를 채취해야 하거든요.”
플루는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씩 끌렀다.
제2사령부에 합류했더라도 레이시스는 아직까지는 신뢰할 수 없는 여자였다.
최악의 사태에서 기습을 당할 수도 있지만, 나신의 상태라는 것이 그녀의 전투력을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뭐, 옷에 방어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보다 궁금한 것은 노르족의 검사였다.
‘혈액을 채취한다고? 그걸로 뭘 하려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 남은 속옷 하의를 벗어서 건네주자 여자가 바구니에 담으며 말했다.
“저기, 그 반지도 빼 주셔야…… 흡!”
나체가 되고도 태연했던 플루의 눈이 갑자기 차갑게 변했다.
여자를 뚫어지게 노려보던 그녀가 약지를 치켜들고 반지를 비추며 말했다.
“이건 안 돼. 어차피 살균이 목적이라면 반지 같은 건 상관없는 것 아냐?”
큐브릭에는 피닉스가 보관되어 있다.
마력을 증폭시키는 도구인 만큼 속옷은 벗어도 반지는 뺄 수 없었다.
“아, 네. 딱히 상관은 없어요. 그럼 이쪽으로.”
창백하게 질린 여자가 도망치듯 문을 나서자 플루는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의도적으로 살기를 드러낸 이유는 여자의 반응을 떠보기 위함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반지를 빼내려 했다면 이번 검사 또한 함정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여자에게서는 별다른 의도를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너무 깊게 생각했나?’
플루는 여자의 뒤를 따라 다음 방으로 향했다.
제 2 사령부 (3)
탈의를 끝낸 시로네는 긴 터널을 걸어갔다. 벽의 틈새에서 가스가 세차게 뿜어져 나와 몸을 살균시켰다.
혹시라도 수상한 의도가 숨어 있을 수도 있기에 시로네는 숨을 참고 그리 길지 않은 터널을 완주했다.
다음 관문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동굴이 나왔다.
천장에 뚫린 수많은 구멍으로 태양 빛이 반짝이고 있어 마치 밤하늘의 별을 연상시켰다.
잠시 천장을 바라보던 시로네는 고개를 내리고 눈앞에 있는 괴상한 것에 집중했다.
“이건 뭐지?”
거대한 젤 타입의 액체가 푸딩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시로네가 사용법을 모르고 머뭇거리자 천장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균된 몸을 코팅하는 절차입니다. 그대로 뚫고 지나오십시오.”
“흐음.”
시로네는 드론을 먼저 입구 쪽으로 날려 보낸 다음 숨을 크게 들이쉬고 젤의 내부로 파고들었다.
실제 푸딩처럼 미끌미끌했기 때문에 걷는 데 어려움 같은 건 없었다.
다만 기분은 굉장히 이상야릇해졌다. 예민한 부위가 자극을 받자 살짝 얼굴에 홍조가 깃들었다.
다음 방으로 들어가자 붉은 빛이 쏘아지는 따듯한 공간이 나왔다.
몸에 묻은 젤이 순식간에 마르면서 시로네의 전신을 완벽하게 코팅했다.
“아하, 이런 거구나.”
99.99퍼센트의 살균이 완료되었다.
***
마지막 방에 도착한 시로네는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10개가 넘는 유리관에 다양한 색상의 액체가 기포를 일으켰고, 호스를 타고 사방으로 흘러다녔다.
테이블 위에는 실험에 필요한 유리 기구들과 출처를 알 수 없는 생물의 어떤 부위들이 핏물이 덜 마른 채로 진열되어 있었다.
흰색 가운을 입은 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입구에서 만났던 대머리가 시로네와 플루의 옷을 들고 으르렁거리는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사령관 레이시스가 그녀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붉은 망토를 걸치고 요염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옷을 입고 있었기에 시로네는 조금 쑥스러웠으나 임무 중에 약한 모습을 보일 만큼 실전 경험이 적지는 않았다.
“여기는 어디죠?”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묻자 레이시스가 어떤 기분인지 안다는 듯 눈웃음을 지으며 화두를 돌렸다.
“어때, 노르족의 살균 시스템이? 완벽하지?”
실제로 그랬기에 시로네는 순순히 인정했다.
“네. 상당히 체계적이던데요.”
그때 반대편 문이 열리면서 플루가 들어왔다.
“윽.”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소리를 겨우 입 안쪽에 담아 둘 수 있었다.
반면에 플루는 수많은 자들이 돌아다니는 곳에서도 거리낄 게 없다는 듯 주위의 풍경부터 살폈다.
그러다가 시로네를 발견하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빨리 왔네? 별일 없었어?”
“아, 네.”
플루는 시로네의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래도 마법사인지 역시 큐브릭은 끝까지 고수하고 있었다.
‘하긴, 이 정도도 못 하면 그냥 애지.’
실제로 시로네 또한 반지를 빼 달라는 요청에 단호하게 거절한 바였다.
하지만 그는 플루의 손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물론 해도 상관은 없는 일이지만…… 그녀를 믿고 싶었다.
시로네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플루는 주위에 있는 기물들을 유심히 살폈다.
‘생물학 실험실. 여기서 대체 뭘 연구하는 거지?’
학자들이 테이블에 놓인 이름조차 모를 생물의 기관들에 달려들어 해부하는 모습에서, 마법협회 지하에 있는 실험실의 정경이 겹쳐졌다.
레이시스의 향수에서 나는 피 냄새의 근원이 아마도 여기인 것이라면, 그녀 또한 상주하고 있다는 것.
단순히 스피릿 포스를 측정하기 위해서라면 피 냄새가 밸 때까지 있을 이유가 없었다.
‘흐음, 확실히 수상한데?’
레이시스가 플루에게 다가왔다.
“미안해. 많이 놀랐지? 여자에게는 신경을 더 썼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소독실과 연결된 유일한 실험실이라서. 오염되지 않은 체모와 혈액이 필요하거든.”
플루는 당당하게 한쪽 다리를 옆으로 빼고 골반에 오른손을 얹었다.
알면서도 일부러 그랬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신체검사라니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는 너무 꽁꽁 싸매고 있는 거 아니에요?”
레이시스는 유쾌하게 웃었다.
“호호호! 나름대로 사령관이라서. 조금만 기다려. 금방 끝내고 옷을 줄 테니까.”
주사기를 든 여인이 다가와 시로네와 플루의 피를 순차적으로 뽑았다. 옆에서는 2명의 인원이 달라붙어 그들의 체모를 채취했다.
레이시스는 태연한 그들의 모습에 만족스러웠다.
“너희의 마법을 연구한 적이 있지. 노르족의 정신과 메카족의 지식이 섞여 있는 체계더군. 하지만 내 생각에, 역시나 너희는 노르에 더 가까워.”
거대한 고깃덩어리의 해부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플루가 레이시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죠?”
“육체의 무의미함을 이해하고 있으니까. 노르족은 정신세계에 몰두해 있는 종족이지. 이곳에는 헐벗고 절단된 수많은 육체가 있지. 사실 인간의 몸이라는 것도 해체해 놓고 보면 기능의 집합에 지나지 않아. 정말로 중요한 건 여기에 담겨 있거든.”
레이시스는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하지만 메카족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어. 자기들은 신나게 쇠를 녹이고, 두들겨 까고, 이상한 것을 만들면서 말이야. 사실 생물학 실험이라는 것도 똑같아. 하지만 놈들은 그것을 혐오했고, 노르족을 미개하다며 배척했지.”
시로네는 메카와 노르의 반목이 어느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샘플 채취가 끝났습니다.”
절차가 완료되자 대머리가 옷을 가져다주었다. 시종 노릇을 하는 게 고까웠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시로네가 물었다.
“스피릿 포스 측정은 언제 하죠?”
“이제부터 시작할 거야. 자, 이걸 봐.”
노르의 학자들이 두 사람에게서 채취한 혈액과 체모의 일부분을 푸른 액체에 담갔다.
거품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면서 연녹색의 걸쭉한 물로 변하자 레이시스가 엘릭서 분리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노르족의 비전으로 내려오는 약물이야. 그린, 옐로, 화이트 엘릭서를 특정 비율로 섞은 다음 생물의 세포체와 융합시키면 생물학적 기질이 드러나는 물질이 생성되지. 이걸 증류수에 중화시켜서 마법을 시전하면 친화력을 알 수 있어.”
“호오, 그렇단 말이지.”
플루가 가까이 다가와 턱을 괴고 지켜보았다.
엘릭서를 사용하는 생물학 실험은 그녀에게도 처음이었다.
“부담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친화력이 낮다고 해도 실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야. 한마디로 마법에 관한 너희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것이라고 보면 돼.”
잠재력.
아직 마법사회 초출인 시로네와 플루에게는 언제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화두였다.
또한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측정 방법이었기에, 임무를 떠나서 알고 싶은 속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 하면 되는 거예요?”
“아니. 전통에 따라 신입은 노르족이 보는 앞에서 친화력을 측정하게 되어 있어. 비공개로 측정하면 나중에 말이 나올 수 있으니까. 퍼센트에 따라 계급이 정해지고, 열심히 훈련하면 승진도 가능해.”
시로네와 플루는 바깥으로 나갔다.
전부는 아니지만 사령부에 근무하는 대부분이 공터에 모여 있었다.
공터 중앙에는 액체를 담는 드럼통이 2개 설치되어 있고 바닥과 연결된 유리관이 땅 밑을 통해 휘어져 올라와 10미터 높이까지 솟아올라 있었다.
장치를 구경하는 동안 대머리가 20리터들이 물통 2개를 낑낑대며 들고 왔다.
시로네와 플루의 생물학적 기질이 담긴 액체였다.
그것을 드럼통에 들이붓자 지하 유리관에 잠겨 있던 은빛 액체가 수위를 높이더니 정확히 0에 맞춰졌다.
레이시스가 단상에서 소리쳤다.
“이제부터 새로운 대원을 맞이하는 전통을 시작한다!”
모든 노르인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스피릿 포스 측정에 대해 한 치의 속임수가 없음을 내가 보증한다. 또한 오늘 나온 결과에 따라 이들의 직위가 결정될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친화력 측정을 시작한다.”
“내가 먼저 할게.”
플루가 팔을 걷어붙이고 장치로 걸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대머리가 측정법을 설명했다.
“통에 두 손을 담그고 마법을 시전할 정신 상태를 갖춰라. 그러면 액체의 압력이 변하면서 유리관의 수위가 올라갈 것이다.”
“흐음, 그럼 나는 스피릿 존에 들어가면 되는 건가?”
플루가 액체에 두 손을 담그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대머리가 여태까지 고생한 게 생각났는지 입술을 비죽거리며 말했다.
“참고로 내 친화력은 16퍼센트다.”
“그래서?”
“노르족 상위 20퍼센트 안에 드는 수치지. 너희의 마법이 아무리 치졸해도 직위를 결정하는 건 잠재력이라는 뜻이야. 그러니 최대한 발악하는 게 좋을 거다. 내 부하로 들어오면 고달플 테니까.”
대머리가 얼굴을 들이밀고 속삭였다.
“흐흐, 아까 널 봤지. 아주 죽이던데?”
플루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육체의 무의미함 좋아하시네.’
처음부터 믿지도 않았지만, 레이시스의 언변에는 시종 무언가를 포장하거나 감추려는 느낌이 깔려 있었다.
생물학 실험이니, 인간의 육체가 어떠니, 말은 그럴싸해도 결국 인간은 인간인 것이다.
‘확실히 뭔가 있어.’
플루는 생각을 접고 측정에 집중했다.
보물 같은 추억이라도 얻은 듯 콧구멍을 벌렁거리고 있는 대머리 아저씨보다 잠재력이 낮다면 정말로 죽고 싶을 테니까.
“시작한다.”
플루가 눈을 부릅뜨고 스피릿 존으로 들어가자 액체가 부글거리더니 유리관의 수위가 쭉 하고 올라갔다.
“우와아아아!”
사람들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시선은 무려 2미터가 넘는 지점에 멈춰 있었다.
“이, 이십…….”
친화력 28퍼센트.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28퍼센트라면 노르 사령부에서도 최고 간부급에 속하는 친화력이었다.
만약 지금부터 고대 마법을 배운다고 해도 몇 년 뒤면 충분히 강자가 될 수 있는 재능인 것이다.
입을 떡 벌리고 유리관을 올려다보고 있던 대머리는 천천히 플루에게 고개를 돌렸다.
배시시 웃으며 기다리고 있던 플루가 대머리를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내 부하.”
“아, 아니, 이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대머리 아저씨 몸은 궁금하지도 않으니까. 물론 볼 것도 없겠지만, 호호!”
정수리까지 빨개진 대머리를 뒤로하고 플루가 자리로 돌아왔다.
시로네가 하이 파이브로 맞이했다.
‘역시 플루 선배님이야.’
왕립 마법학교의 수석 졸업생.
고작 스물두 살에 공인 8급에 오른 미래의 대마법사였으니 재능만 놓고 봤을 때는 왕국에서도 손에 꼽힐 터였다.
“잘하고 와. 확실히 실력을 보여 주라고.”
시로네가 측정 장치로 걸어가자 플루로 인해 웅성거렸던 소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반군의 상징인 73구역의 빛.
그의 진면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후우.”
시로네는 숨을 고르고 두 손을 액체에 넣었다.
긴장된 분위기가 심장을 짓누르는 가운데 그가 눈에 힘을 주고 스피릿 존으로 들어갔다.
퍼엉!
통 속의 액체가 끓다 못해 분수처럼 솟구치며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어? 어어어어?”
노르인들이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쳐들었다.
무려 4미터가 넘는 높이었다.
“말도 안 돼…….”
친화력 42퍼센트.
노르 역사상 이렇게 높은 수치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뭐, 뭐야? 고장 난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