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5
평소에는 볼 수 없던 냉정한 태도에 교사들은 멍한 상태로 대답을 못 했다.
젊은 날의 알페아스를 짐작이나마 하는 건 이 자리에 없는 사드가 유일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전장을 향했다.
‘그래, 네 의지는 알겠다.’
시로네의 과거와 출신, 그리고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들은 그였다.
‘매 순간이 마지막 같겠지. 존중해 주마. 하지만 결과에 책임지지 못한다면…….’
알페아스는 미리 못을 박았다.
‘너의 마법 인생도 여기가 마지막일 게다.’
시로네는 정신이 아찔했다.
“크윽!”
트랩의 속도가 워낙에 빨라 하나를 피하고 다음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전체를 한꺼번에 읽어야 돼.’
미로에 비유하자면 지도를 통째로 기억하고 한 번에 달리는 식이었다.
‘끝이 없다.’
장애물을 피하느라, 전진하는 거리는 실제로 2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정신력이 먼저 소진될 거야. 어떻게든 나아가는 수밖에 없어.’
마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둘 다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최대한 멀리 나간 쪽이 나중에 유리할 거야.’
마치 불 고리를 뛰어넘는 서커스단의 사자처럼 마크는 장애물을 돌파했다.
“간다!”
급격하게 각도를 꺾으며 장애물을 관통하자 교사들도 감탄사를 터트렸다.
“순간 이동의 방향 전환은 결코 기본이 아니죠. 마크도 준비를 잘했군요.”
마크는 쾌재를 불렀다.
‘됐다! 할 수 있어!’
찰나의 순간 뒤를 살피자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시로네가 보였다.
‘흐흐, 겁에 질렸군.’
팽팽했던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이 들자 마크는 더욱 전진했다.
시로네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몇 개의 장애물을 피하고 전진하는 정도라면 시로네도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모든 장애물의 조합을 분석하면 활로는 딱 하나였다.
‘마크가 선택한 길은 막혔어.’
예상대로 마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함정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걸 느꼈다.
“크윽!”
철봉이 채찍처럼 출렁이며 수직으로 그를 덮치더니 이번에는 엑스 자의 물결파로 밀려들었다.
“흐으으으……!”
어느새 얼굴은 울상으로 변해 있었다.
끝없이 사출되는 철봉은 아예 허공에서 춤을 추듯 엉켜 그물처럼 변형되어 있었다.
‘저건 못 피해.’
처음부터 쉬운 길로 들어선 것이 패착이었다.
뒤늦게 기존의 루트를 이탈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물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학생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충돌한다!”
굉음을 내며 장애물이 지나가는 순간 지켜보던 자들의 눈이 질끈 감겼다.
반면에 담이 큰 학생들의 눈은 크게 뜨였다.
“시로네!”
타이밍 좋게 마크를 낚아챈 시로네가 순간 이동으로 그물망을 벗어났다.
목숨을 걸고 뛰어든 건 대단한 용기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무모한 선택이었다.
“설마 마크를 구하려고 뛰어든 거야? 착한 것도 정도가 있지, 여전히 재수 없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구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당연? 너라면 저렇게 할 수 있겠냐?”
“이 자식이! 거기서 내가 왜 나와!”
학생들이 옥신각신 설전을 벌이는 가운데 이루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게 아니야, 바보들아.’
한편 시로네는 막막했다.
최선의 루트로 마크를 구하기는 했으나 더욱 깊은 트랙에 갇혀 버린 상태였다.
“으아아! 살, 살려 줘!”
이미 맹수의 의지가 꺾인 마크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발버둥을 쳤다.
“가만히 좀 있어!”
소리치는 와중에도 시로네의 시선은 밀려드는 장애물을 살피고 있었다.
‘없어.’
마크를 데리고 함정 지옥에서 빠져나왔지만 두 번째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이라면 만들지도 않았을 거야.’
그 순간 상식의 틀이 깨졌다.
‘바보같이…….’
뒤로 물러서는 하나의 선택지가 더 있지 않은가.
“으아아! 우린 다 죽고 말 거야!”
마크의 비명을 자리에 남겨 두듯, 시로네는 순간 이동으로 힘껏 후진했다.
관중 속의 이루키가 벌떡 일어섰다.
“바로 그거야!”
물러서는 것도 전술이다.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 전후좌우를 냉정하게 살피는 게 관건이었다.
“간다!”
빠르게 거리를 벌린 시로네는 다가오는 거대한 장애물을 통째로 뛰어넘었다.
‘됐어!’
급한 대로 위험한 상황은 넘겼으나 레벨 10의 난이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시로네가 위로 올라가자 철봉이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그들을 추적했다.
‘올라가는 쪽의 궤도 이탈은 불가능하다는 건가?’
참가자가 지상으로 추락하지 않는 한, 건널 수 없는 다리는 끝까지 쫓아올 터였다.
“크윽!”
기울기가 생기자 트랩은 전보다 분석이 어려웠고 마크의 존재도 큰 부담이었다.
세리엘이 답답한 듯 투덜거렸다.
“어째서 저런 무모한 짓을 하는 거지? 마크가 탈락하면 진급할 수 있는데. 타인을 대동하고 순간 이동을 시전하는 건 응급 구조용이라 정말 위험하단 말이야.”
에이미가 짧게 말했다.
“원래 그런 성격이잖아. 남들이 생각에 그치는 반면, 실제로 하는 부류지.”
“시로네가 착한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마크는 사람까지 고용해서 방해했다고.”
‘아마도 그래서 더…….’
시로네가 이해된다는 게 조금 묘했지만, 사실이 그랬다.
“처음부터 순위에는 관심이 없었어.”
마치 그녀가 수많은 선택을 뒤로하고 졸업반 진급을 결정했을 때처럼.
“시로네는 누군가와 경쟁하는 게 아니야. 마법사가 되기 위해 달리는 거지. 본질적인 목표가 있는 사람은 과정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니까. 1등을 하든 꼴등을 하든, 우리가 하는 이 모든 행위는 사실…….”
마법을 잘하기 위해서 겪는 과정일 뿐.
세리엘이 생각에 잠긴 가운데 에이미는 고군분투하는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그래, 나였어도 해 보고 싶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재수가 없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레벨 10은 고급반의 누구도 건너지 못했어. 이 시험은 여기서 중단하는 게 맞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시로네가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마크의 고함 소리마저 듣지 못할 정도로 시로네는 트랩에 집중하고 있었다.
‘갈수록 난해해진다.’
어쩌면 당연한 일.
다만 그 정도가 심해서, 이제는 사물이 아닌 거대한 연가시가 꿈틀대는 기분이었다.
‘예측이 안 돼.’
그 생물적인 움직임을 뚫고 100미터를 전진했을 무렵 마크의 비명이 사라졌다.
게거품을 문 채 기절해 있었으나 시로네도 이미 자신을 잊은 상태였다.
전체를 생각하며 하나에 집중하는 것은 마치 사방식의 이탈형과 유사하다.
“…….”
논쟁을 벌이던 교사들도, 호들갑을 떨던 학생들도 이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알페아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위기는 능력을 끌어올린다. 하지만 누구라도 한계는 있는 법일 텐데…….’
어떻게 아직까지 버틸 수 있는 거지?
‘인간이라면 스스로 만족하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욕망이 아니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그보다 본질적인 곳에서 작동하는 목표 의식이었다.
‘따라서 집착은 존재하지 않고…….’
뇌는 완전히 열린다.
시로네는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육체는 분명 전진하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마치 공기가 된 것처럼, 시로네는 세상과 자신의 경계를 구분 지을 수 없었다.
지켜보는 에텔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무아지경에서 루트를 계산하고 있다. 아마도 스피릿 존의 밀도가 99.99퍼센트에 달할 거야. 위대한 고승조차 좌탈입망 상태에서나 가능한 일인데.’
카르시스 수도회의 최연소 비숍인 그녀이기에 짐작할 수 있는 경지.
현재 시로네에게는 다가오는 모든 트랩이 뭉뚱그린 하나로 느껴질 터였다.
‘하지만…….’
에텔라의 표정이 다시 심각해졌다.
‘모든 걸 느끼는 경지라고 해도, 기술은 또 다른 문제야. 다음 트랩은 정말 어렵다.’
시로네도 이미 느끼고 있었다.
장애물의 간격이 극단적으로 좁혀지면서 1미터의 틈밖에 남지 않았다.
‘더 잘게 쪼개야 해.’
기존 순간 이동의 10미터를 10분의 1로 줄이는 대신 10회를 연계하는 것.
클래스 세븐을 초월하는 난이도였으나 잡생각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좌우 패턴.’
시로네는 쌍열로 늘어선 고리 모양의 구조물 수십 개를 동시에 분석했다.
좌우좌좌우좌…… 생각이 끝나는 순간 구조물을 살필 겨를도 없이 순간 이동을 좌우로 흔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튕긴 것처럼 섬광이 지그재그를 그리며 고리를 관통했다.
‘빠져나왔다.’
아직 의식이 붙어 있다는 것만이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였다.
시야가 확보되자마자 상하 패턴의 고리들이 시로네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큭!”
직선으로는 각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그의 사고가 또 한 번의 도약을 감행했다.
‘극한으로 쪼개면…….’
시로네의 몸이 다시 빛나고, 이어서 터진 섬광이 앞구르기를 하듯 구부러졌다.
학생들의 입이 벌어졌다.
“빛이 휘었어?”
이루키가 또다시 일어나 짝눈을 크게 치켜떴다.
“레인보우 드롭! 결국 거기까지 가는구나!”
물결의 궤적을 그리며 나아가는 섬광을 학생들 대부분은 이해하지 못했다.
실제로 레인보우 드롭은 최상위 기술로, 순간 이동의 전공자들이 배우는 것이었다.
“정말 가능한 거야? 순간 이동이 어떻게 휘어지지? 빛은 직선으로만 움직이잖아!”
이루키가 머리를 똑똑 두드리며 말했다.
“간단한 원리야. 원을 미분하면 무한의 직선이 나오지. 순간 이동의 간격을 1천분의 1로 쪼갠 거야.”
“1천분의 1? 그걸 어떻게 계산해?”
“계산이 아니라 감각이야. 그렇더라도 힘든 일이지만. 전지보다는 전능의 힘이 엄청난 놈이랄까? 한마디로, 나와는 반대 성향을 가진 천재라고 할 수 있지.”
학생들은 다시 시험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천재 좋아하네. 클래스 파이브 주제에.’
건널 수 없는 다리의 속도가 최고치에 도달하자 눈이 적응한 시로네 외에는 구조물의 형태조차 쉽게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목표까지는 고작해야 30미터.
이제는 학생들도 기존의 구도를 잊고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었다.
마법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고급반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었다.
“교장 선생님! 저기!”
교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시로네의 성공을 시기라도 하듯 철봉이 마구잡이로 꼬이더니 입체적인 구조물을 만들어 냈다.
“제길! 용의 미로다! 저건 안 돼! 대체 사드 선생님은 아직까지 뭐 하는 거야?”
교사들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시이나가 인상을 쓰며 공간 이동을 시전했다.
‘사드! 당신 정말……!’
레벨 10에서 딱 한 번만 등장하는 용의 미로는 거대한 용의 얼굴을 한 트랩이었다.
일단 삼켜지면 끝이기에, 구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부 기억한 상태로 마법을 연계해야 한다.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며 패턴을 분석했다.
‘저기서 한 바퀴 돌고…….’
“으아아! 저게 뭐야!”
그 순간 의식을 되찾은 마크가 괴성을 지르자 스피릿 존이 크게 흔들렸다.
“크윽!”
그 순간에도 용의 미로는 아가리를 벌린 채 사상 최대의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건널 수 없는 다리(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