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53
생물의 정의 (4)
플루는 시로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다고?”
바벨은 천사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
천국에 신민들이 살기도 전부터 있었던 장소를 고작 열아홉 살인 시로네가 왔을 가능성은 없었다.
“사실 잘 모르겠지만…….”
“흐음, 데자뷔 같은 건가?”
평소라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을 테지만, 강철 골렘들이 시로네를 공격하기 직전에 쓰러진 사실까지 더하면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일단 다른 곳으로 가 보자. 여기는 너무 위험해.”
“잠깐만요. 저걸 두고 가겠다는 겁니까?”
조원이 원뿔 위의 전기를 가리켰다.
전기의 정령이 아니더라도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물건이었다.
플루도 생각은 같았으나, 느낌이 좋지 않았다.
죽은 조원도 실력이 떨어지는 자가 아니었으나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산탄에 몸이 부서지지 않았던가.
“시로네, 네 느낌은 어때?”
시로네는 발광하는 전기를 뚫어지게 살폈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오래전에 있었던 일처럼 아련한 감흥이 밀려들었다.
‘내가 저걸 본 적이 있었던가?’
예전의 기억을 더듬던 시로네의 입이 움직였다.
“울티마.”
“응? 시로네, 뭐라고?”
“네?”
시로네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뭐라고 중얼거렸잖아. 울티마?”
“어라? 제가 그랬어요?”
플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철두철미한 그녀가 착각할 리는 없기에 사실이겠지만,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단 살펴보는 게 좋겠어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더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바벨의 트랩을 통제하는 장치도 조종실에 있을 테니까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좋아. 하지만 조사는 내가 할게.”
“선배님, 그건…….”
“내 말 들어. 이런 일은 원래 2인자가 하는 거라고.”
어떤 상황이 닥쳐도 시로네만은 살려야 하기에 플루는 위험을 감수하고 다가갔다.
피닉스를 꺼내 살며시 전기에 대 보자 치직 소리를 내며 성난 듯 커졌으나 별다른 자극은 없었다.
“흐음, 위험하지는 않은 것 같아.”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조원이 몸을 날려 전기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내 거야!”
레이시스에게 시로네를 감시하라는 임무를 받은, 인중이 긴 남자였다.
냉철한 성격이기에 그런 임무를 맡겼겠지만 물욕 앞에서는 그도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전기력이 팔을 타고 흡수되기 시작하자 그는 정령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소리쳤다.
“정령이여, 나와 계약하라!”
조종실에 푸른 빛이 번지면서 정령의 힘이 남자에게 스며들었다.
거대한 개념이 머릿속에 차오르자 그의 눈동자가 자신도 모르게 뒤집어졌다.
“이, 이럴 수가. 이건 너무나도…… 엄청난…….”
황홀한 듯 말을 중얼거리던 그의 얼굴이 갑자기 펑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시로네와 플루는 얼굴이 사라진 남자의 모습을 황당한 듯 쳐다보았다.
“어리석기는. 아무리 그래도 확인도 안 하고 덥석 물면 어쩌자는 거야?”
인내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만큼 노르인들의 정령에 대한 열망은 강했다.
스피릿 존을 통해 언제 어디서건 마법을 발동할 수 있는 시로네와 플루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심리였다.
플루가 마지막 남은 조원을 노려보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두 팔을 들고 물러섰다.
목숨보다 비싼 건 없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시로네, 이래도 더 할 거야?”
플루가 그만 접자는 의미로 물었으나 시로네는 남자의 죽음으로 오히려 확신이 들었다.
바벨은 헤나로 봉인이 되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신민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다.
“이곳을 출입했던 자들은 천사나 네피림이었을 거예요. 즉, 이모탈 펑션이 기본이 되어 있다는 거죠. 강철 골렘이 등장한 것도 네피림이 아닌 자가 들어왔기 때문이고요.”
플루도 정황을 따졌을 때 높은 확률로 시로네의 말이 옳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벌써 사망자가 2명이나 나왔으니 주의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조심해. 만일의 사태라는 것도 있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시로네는 전기에 손을 뻗었다.
따갑다는 느낌은 없었고, 손끝을 타고 생물처럼 전기가 타고 올라왔다.
“헉!”
그때 머릿속에 바람 소리가 들렸다. 마치 드릴로 두개골이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울티마 시스템-전 우주적 통합 정보 체계.
율법의 수로 따지자면 1.
그 어떤 것과도 겹치지 않는 유일무이한 1진수의 개념들이 빛에 가까운 속도로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흐으윽!”
시로네는 남자의 머리가 터진 이유를 깨달았다. 지금 자신의 머리가 그럴 것 같았으니까.
이모탈 펑션을 개방하자 엄청난 해방감이 밀려들면서 울티마의 개념들이 무한의 통로로 빠져나갔다.
머릿속이 텅 비었다.
오직 가느다랗고 푸른 한 줄기의 빛만이 통로의 바깥쪽에서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남은 조원이 침을 삼키며 다가왔다.
“뭐, 뭐였습니까, 그 정령은?”
시로네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시 말해 보세요.”
“아, 정령의 속성이 뭐였는지 궁금해서요.”
드론의 통역 모드를 끈 상태에서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
발음까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말의 의미가 저절로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대체 누가 이런 시스템을 만든 거지?’
신민의 언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기호도 단일 시그널로 통합되어 해독할 수 있었다.
시로네가 원뿔에 손을 밀어 넣자 전기가 손등을 관통하면서 기계장치들이 가동되었다.
정보의 흐름이 혈관처럼 선명하게 읽혔다.
“그게 조종 장치였구나.”
플루의 말에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인 회로에 접속해 바벨을 탐색했다.
가히 하나의 성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거대한 구조물의 조감도가 상상하듯 자유로이 떠올랐다.
쿵! 쿵!
조종실 벽을 열자 튜브 형태의 유리관이 등장했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붉은 원통형의 빛이 솟구쳤다.
“저게 메인 승강기예요.”
아라보트에서와 같은 원리의 승강기가 세 사람을 순식간에 지하 100미터 아래로 이동시켰다.
“우와, 엄청 크다.”
끝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평수의 통제실이었다.
전방에 실물보다 10배는 크게 나올 것 같은 거대한 화면이 떠 있고, 옆에는 조종실에 있었던 것과 같은 원뿔 형태의 기둥이 서 있었다.
시로네는 거칠 것 없이 손을 밀어 넣었다.
어째서 이곳에 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까? 어쩌면 그 해답이 여기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울티마 시스템으로 통제실의 기록을 열람하자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시로네는 책을 읽듯 차분하게 검색했지만 플루가 보는 화면에는 온갖 페이지가 잔상을 일으키며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화면이 멈추면서 헤나도, 신민의 언어도 아닌 이상한 글자가 천천히 떠올랐다.
오직 시로네만이 글자를 따라 동공을 움직였다.
울티마의 단일 시그널을 통해 그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의미가 전해져 왔다.
기록 : 바벨 프로젝트
광력 오메가 133년-제1인류 가이아는 탄생 이후 최초로 성별, 성향, 개성 등 생물학적 난관을 모두 극복하고 통합 정신 체계를 이룩함.
오메가 187년-가이아는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 광자계 이탈을 시도하지만 앙케 라의 아카식 레코드의 장벽에 가로막혀 실패.
오메가 201년-가이아, 천국과 전쟁 개시. 울티마 시스템과 아카식 레코드의 충돌.
오메가 387년-앙케 라, 제1차 리셋 시도. 가이아, 울티마 시스템으로 저지.
오메가 412년-앙케 라, 제2차 리셋 시도 실패.
오메가 666년-가이아, 최후의 전쟁에서 패배. 가이아인 개체 수 90퍼센트 감소.
오메가 689년-제1차 항전 돌입. 가이아는 천사의 무한 알고리즘을 분석하여 헤일로를 구현하는 데에 성공.
오메가 717년-가이아, 앙케 라를 제거하기 위한 전략적 살상 병기 제작. 바벨이라 칭함.
오메가 738년-바벨, 대량생산 체제 돌입.
오메가 777년-가이아, 제2차 항전 패배.
오메가 799년-가이아의 대표 (기록 말소), 제2차 광자계 이탈 가능성 제시.
울티마 시스템의 승인 허가.
오메가 892년-(기록 말소), 앙케 라와 회담. 결렬.
오메가 927년-앙케 라, 일화의 술로 울티마 시스템을 해체.
가이아인은 케르고, 노르, 메카로 분리.
오메가 987년-(기록 말소), 이카엘의 (기록 말소)를 신민에게 공표.
천국 대혼란.
오메가 999년-최후의 가이아인 (기록 말소), 광자계 이탈.
기록 종료.
‘이게 대체…….’
시로네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신민이 탄생하기 전, 가이아라는 인류와 앙케 라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기록되어 있는 파일이었다.
통합적 정보 체계를 이룩한 가이아는 앙케 라를 죽일 수 있는 바벨이라는 고대 병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최후의 전쟁에 패하면서 케르고, 노르, 메카의 세 종족으로 분리되었다는 역사였다.
전체 기간을 백분율로 쪼갠 듯했기에 1년이 얼마의 시간을 뜻하는지는 알 도리가 없으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마지막 남은 최후의 가이아인, 즉 화면에 (기록 말소)로 적혀 있는 자가 이 기록을 남긴 자라는 것을.
‘기록 말소는 두 가지 종류야. 하나는 가이아인의 이름, 또 하나는 이카엘이 큰 죄를 지었다고 했던 일.’
화면이 리셋되었다.
아마도 마지막 남은 가이아인이 새겼을, 한 줄의 문장이 깜박거렸다.
무한을 넘어.
시로네가 그것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자 플루가 참지 못하고 다가왔다.
“뭐야? 알 수도 없는 걸 왜 그렇게 보고 있어?”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울티마 시스템에 관해 밝히기에는 조원의 귀가 거슬렸다.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일단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요. 저를 따라오세요.”
통제장치를 작동시키자 철벽이 열리면서 길이 생겼다.
바벨은 저 길의 끝에 있다. 최초의 인류가 신을 죽이기 위해 만든 최강의 병기가.
‘어떤 모습일까?’
통로를 지나가자 자궁과 흡사한 형태의 공동이 나왔다.
한 줄기의 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아래를 비추고 있었고 그곳에 인간을 닮은 무언가가 무릎을 꺾은 채 앉아 있었다.
검은 광택이 나는 매끈한 금속 재질의 여성이었고, 천장에서 내려온 전선들이 주렁주렁 연결되어 있었다.
조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천, 천사잖아…….”
“아뇨. 바벨이에요.”
플루가 물었다.
“바벨?”
“바벨은 이곳의 이름이 아니에요. 천사의 능력을 모방한 일종의 고대 병기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말만 하고 있잖아. 설명을 제대로…….”
위이이이잉!
공동의 시설이 가동되면서 전력이 흘러들었다.
수십 가닥의 전선을 통해 바벨에 전기가 공급되는 게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 전해져 왔다.
쉬지 않고 번개가 내리치는 지역이라 전력 공급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엄청난 출력량이었다.
구조물 전체 전력을 빨아들인 바벨의 몸이 강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로 자궁을 통해 어미의 영양분을 모조리 빨아들인 태아가 마침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이었다.
여리고 가느다란 바벨의 목이 꼿꼿이 들리고, 무릎꿇었던 다리가 무중력상태처럼 일어섰다.
2미터가 넘는 키에 늘씬한 몸매, 푸른 날개가 확장되면서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시로네가 알고 있는 누군가와 지독히 흡사한 외모였다.
“이카엘?”
바벨의 눈에 붉은 빛이 켜지고 머리 위에 시리도록 밝은 백광의 광륜이 회전하면서 굉음에 가까운 고주파가 들렸다.
“시, 시로네. 여기서 나가자.”
플루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천사를 모방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