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61
‘어쨌거나 할 수밖에 없겠지.’
시로네는 미련을 접고 아르망과 울티마 시스템을 공유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단일 신호로 정보를 교환한다면 거의 자신의 피부처럼 아르망을 느낄 수 있다.
미래의 변수는 현재의 간절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천국에 온 이상 내일은 없었고, 조금이라도 강화의 여지가 있다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통합 정신 체계 구성.
“허억!”
시로네는 고개를 쳐들고 상체를 활짝 열었다.
아르망의 유기질이 급격히 조여들면서 몸을 압박했다.
수십 개의 촉수가 가시처럼 튀어나와 들쑥날쑥 움직이더니 회오리처럼 휘감기며 형태를 변화시켰다.
“우와아아아!”
반군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시로네를 지켜보았다.
넝마 같던 로브가, 심플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울티마 버전(기능 장착 : 0)
시로네의 생각 속에서 이상적인 마법사의 로브가 유기질의 말단까지 통제하면서 그대로 구현된 것이다.
‘엄청나다. 이건 그냥 내 몸이잖아.’
여태까지 뇌를 사이에 두고 정보를 공유했다면 이제는 이성을 건너뛴 본능의 영역에서 신호가 오가고 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통합이었다.
시로네의 복잡한 정신을 단순한 신호로 변화시켜 사물에 담아 버린 것.
그렇기에 시로네와 아르망은 완벽한 호환을 이루며 신경절의 말단까지 연결될 수 있었다.
‘2개의 울티마 시스템…….’
생물이든 비생물이든 모든 신호를 단일화시켜 통제할 수 있는 개체가 또 하나 생긴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는 시로네조차 모르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네피림이시여! 우리를 승리로 이끄소서!”
“73구역의 빛이 천국의 빛이 될 때까지!”
프로파간다의 연출로서는 완벽한 상황이었다.
***
진마이식종 갈토믹.
연옥 사냥 랭크 S급에 해당하는 강력한 종으로, 명확한 형태가 없는 젤 타입의 붕괴형이지만 공격을 받을 시 악의 율법을 흡수하여 강력한 개체로 의태한다.
현재 아르민 일행을 몰아세우고 있는 갈토믹은 인간의 상반신에 말의 하반신이 섞인 형태였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검은 섬광이 휘몰아쳤고, 절벽만 한 암석들이 산산조각 파괴되었다.
S급 생물체라면 반경 100킬로미터 이내의 환경에서는 천적이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뜻.
무엇보다 갈토믹의 진가는 율법을 흡수하여 자신의 힘으로 바꾸는 어마어마한 마력에 있었다.
“크라우! 크라우!”
독특한 기합 소리를 내며 날아오른 갈토믹이 두 주먹을 질풍처럼 휘두르자 거리가 사라진 것처럼 지상이 초토화되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 아르민 일행이 반격을 시작했다.
블리자드가 깔리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가운데 쿠안과 에텔라가 갈토믹을 포위했다.
검과 권이 합을 맞춘 듯 리듬 속에 리듬이 섞였고, 빈틈없이 짜인 공격의 템포 속에서 갈토믹은 충격을 받고 지상으로 추락했다.
아르민이 슬로 마법을 시전하자 느려진 시간에 갇힌 갈토믹의 머리 위로 시이나의 글레이셔 보밍이 떨어졌다.
60톤에 육박하는 무게의 빙하가 추락하자 땅이 울렸다.
피어오르는 냉기의 연무 속에서 마지막 기력을 짜낸 갈토믹이 인마의 창처럼 시이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동시에 S자 궤적을 그리며 날아든 쿠안이 시이나의 앞에 떠오르듯 나타나 회전했다.
초당 10회의 고속 회전에서 발생하는 공기의 떨림이 고막을 찌를 무렵 쿠안의 검이 갈토믹을 두 쪽으로 갈랐다.
후우우웅.
쿠안의 회전력이 바람을 타고 시이나에게 전해져 왔다.
그녀의 빙결 마법과 더해져 콧잔등이 차가웠다.
시이나에게는 경험과 학습, 훈련으로 터득한 기습 상황에 대비하는 방어 방법이 열 가지가 넘게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인사를 해야 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했어요.”
“카운터를 날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시이나는 말을 자르고 멀어지는 쿠안의 등을 바라보았다.
천국에 와서 더욱 잘 알게 된 사실이지만 참으로 차가운 성격이었다.
그것은 시이나의 차가움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한 번쯤은 깊은 얘기를 나눠 보고 싶은데…….’
시이나는 쿠안이라는 검사에게 조금씩 흥미가 생겼지만 반대로 쿠안은 자괴감만 깊어져 갔다.
‘빌어먹을! 완전히 맛이 가 버렸군.’
갈토믹을 베는 것에 기술적인 실수는 없었다. 다만 뛰는 심장이 문제였다.
일 검의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은, 시이나가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
쿠안에게는 생소한 감정이었다.
누군가의 생각 따위, 여태까지 들여다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의 행동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
‘정신 차리자. 이곳은 전장, 그리고 나의 무덤이다.’
“시이나, 괜찮아?”
쿠안을 바라보고 있던 시이나는 아르민이 오자 곧바로 표정을 고치고 차갑게 돌아섰다.
“어린애도 아니고, 이제 그런 걱정은 사양하겠어.”
에텔라는 서로 다른 곳을 가리키는 세 사람의 감정적 화살표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팀워크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쩌면 이런 상황이 묘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역시 대단하네, 아르민 씨.’
갈토믹은 대륙의 어떤 몬스터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만큼 강력한 생물체였다.
물론 여태까지의 사냥에서도 약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4명의 합격이 주효한 것도 있지만 아르민의 공이 컸다.
군중 제어는 전투에 치명적인 기회를 선사한다. 그리고 현재 파티에 속해 있는 아르민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중 제어를 구사할 수 있는 마법사일 것이다.
‘이대로만 가면 빠른 시일 내에 공장을 돌릴 수 있겠어.’
에텔라의 예상대로 야맹에 도착하자 경호원들이 수군거렸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A급 이상의 생물체를 잡아 오니 첫날에 동료의 목을 베어 버린 증오조차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갈토믹의 사체를 확인한 프랭크와인이 입꼬리를 올렸다.
“대단하군. 이렇게 빨리 공략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는데.”
공략법 같은 걸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만큼 아르민의 군중 제어는 효과가 탁월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엘릭서는 뭐가 나왔지?”
에텔라가 순순히 밝혔다.
“화이트 엘릭서 12개, 그린 엘릭서 중급 32개, 레드 엘릭서 상급 15개요.”
“대박이군. 고생했는데 잠시 쉬고 오는 게 어때? 그거라면 본토에서 흥청망청 쓰고도 남을 거야.”
아르민이 말했다.
“놀러 온 게 아닙니다. 섭식귀 쿠젠, 광합성 괴수체 올키르, 갑식광물종 링거. 이 세 종의 몬스터만 잡으면 계약은 성사되는 겁니다.”
“물론이지. 그때부터는 공장 한 동을 통째로 내줄 테니 만들고 싶은 건 뭐든 만들자고.”
“그만 가 보겠습니다.”
아르민 일행이 방을 나서자 프랭크와인의 옆에 서 있던 미트건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본토의 일류 사냥꾼들도 갈토믹은 며칠을 두고 잡습니다.”
“아마도 저 장님 때문이겠지. 다른 놈들도 쓸 만하지만 저 장님은 느낌 자체가 달라. 사냥 등급으로 치자면 트리플S 이상이다.”
프랭크와인의 촉은 장사는 물론 사냥에서도 동물적이었다.
“그래서 우려되는 겁니다. 훗날 야맹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장사꾼이 사람 가려 가면서 장사하나? 사체나 보내, 레이시스에게. 우리가 내건 조건도 잊지 말고.”
미트건은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으나 결국 입을 다물고 방을 나섰다.
홀로 남은 프랭크와인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찢어졌다.
‘크크크크, 알고 봤더니 엄청나게 큰 판이었군. 그렇지, 레이시스?’
***
퓨직스 머신이 번쩍 빛을 냈다.
유리관이 해체되면서 생물 결합이 끝난 시로네가 튀어나왔다.
울티마 시스템이 없는 타입A의 클론은 확실히 타입B와 차이가 났다.
아직까지는 특정 형질을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있으나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의 붕괴가 일어났고, 형태 또한 통제가 되지 않았다.
시로네의 몸은 붉은 비늘로 덮여 있었고 한쪽 눈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야맹에서 받은 사체의 종합적인 퓨전이 치러지는 날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진마이식종 갈토믹의 형질이 더해진 날이기도 했다.
“사, 사령관님. 이 수치를 보십시오! 엄청납니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마력 측정 장치의 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갈토믹의 마력 증폭이 시로네의 화신과 결합하여 어마어마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시로네의 마력이 폭발하면서 아카마이가 흔들렸다.
프로토 타입에서 더욱 강화된 아카마이임에도 안티테제가 깨질 정도의 위력이었다.
콰아아앙!
실험실의 사방으로 포톤 캐논이 쏘아지자 레이시스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아아, 시로네. 너는 너무 아름다워.’
그것은 악마적인 사랑이었다.
상대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는, 오직 소유욕만이 전부인 사랑.
“사령관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러다가는 실험실이……!”
연구원의 외침이 포톤 캐논의 굉음에 파묻힐 때까지도 레이시스는 미동조차 없었다.
결합이 진행될수록 시로네는 최강의 생물에 근접해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얻은 정보는 모조리 아카마이를 강화시키는 데에 사용될 것이다.
“후후후. 어디, 첫 키스부터 시작해 볼까?”
레이시스의 피부가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허리가 휘면서 늘어나고 등을 따라 척추뼈가 튀어나왔다.
대퇴부는 바위처럼 단단해졌고, 발바닥은 파충류처럼 뾰족하게 늘어났다.
“크아아아아!”
그녀의 입에서 불과 번개가 뒤섞인 연기가 직사로 토해져 시로네를 뒤덮었다.
“크으으으으!”
시로네의 몸이 녹아내렸으나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무한세포증식체 켄서의 형질이었다.
“캬캬캬캬! 멋지구나, 시로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시로네는 투명귀 호로로스의 능력으로 모습을 감췄다.
울티마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그의 정신 속에서는 다양한 괴물들의 본성이 그대로 작용하고 있었다.
“사라졌다! 빨리 찾아!”
연구원이 스캔 장치에 도착하는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점액이 그를 녹였다.
“으아아아아!”
산성독왕 무우사의 능력.
제대로 맞으면 엘릭서로 조제한 초강성 금속마저 녹아 버리고 만다.
점액이 바닥에 떨어지자 독성 가스가 피어올랐다.
연구원들이 목을 붙잡고 괴로워했고, 레이시스는 넓적한 손을 들어 점액을 막았다.
순식간에 손이 흘러내리며 뼈가 드러나더니 뼈조차도 다 쓴 성냥개비처럼 후두두 떨어졌다.
“크윽!”
레이시스 또한 여기까지 한계였다.
더 싸우다가는 연구원의 말대로 실험실이 초토화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아카마이를 방출해!”
기절 직전인 연구원이 엉금엉금 기어가 스캔 장치를 눌렀다.
시로네의 좌표가 확인되자 좌우 벽에서 세 마리의 아카마이가 추가로 들어와 안티테제를 발동했다.
필사적으로 시로네를 붙잡고 있는 아카마이의 눈동자에 하나같이 핏줄이 일어섰다.
그럼에도 시로네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괴물로 변한 레이시스의 얼굴이 황당하게 일그러졌다.
‘네 마리의 아카마이로도 붙잡는 것이 고작이라니.’
단순히 새로운 형질이 더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생물학적 피드백을 통해 시로네의 잠재력이 폭발하고 있었다.
***
아르민 일행은 야맹에서 리스트를 받은 이후 처음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그들을 난감하게 만든 생물체는 사냥 등급 더블S에 속하는 갑식광물종 링거였다.
신장 2미터에 체중 14톤.
4개의 발이 달려 있지만 급할 때는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말아서 구른다.
속도가 빠른 것도 사냥을 어렵게 만들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회백색 금속으로 뒤덮인 갑각이었다.
콰콰콰콰콰콰!
링거가 돌진하는 자리에는 여지없이 길이 생겼고 나무고 암석이고 가릴 것 없이 모조리 터져 나갔다.
아르민은 링거의 좌우에 두 종류의 슬로 마법을 시전했다. 시간대가 엇갈리면서 엄청난 속도로 링거가 튕겼다.
쾅! 콰콰콰쾅!
시간의 상대성으로 봤을 때 철근이라도 찢겨 나가야 할 공격이었으나 링거는 그저 난회전을 먹은 공처럼 주위를 굴러다닐 뿐이었다.
“후우, 이건 정말이지…….”
아르민도 이런 생물체는 처음이었다.
강함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라면 링거는 내구력에 있어 단연 독보적인 생물체였다.
쿠안의 칼이 이빨조차 들어가지 않는 것을 확인한 에텔라가 결정을 내렸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해가 져도 못 잡겠어요. 협력하죠.”
시이나가 말했다.
“오빠가 슬로로 링거를 늦춰 줘. 내가 앱솔루트 제로를 시전할 테니까.”
에텔라도 그 방법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럼 제가 마무리할게요.”
짧은 회의를 끝으로 곧바로 실전이 치러졌다.
슬로에 걸린 링거가 느려지자 시이나가 빙결 최강의 마법이라 할 수 있는 앱솔루트 제로를 적중시켰다.
“키아아아아아!”
동시에 에텔라가 달려들었다.
천수관음 번뢰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