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63
그때 불길한 음파가 사령부를 흔들었다.
시로네의 심장이 덜컹 떨어졌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들어 봤던 소리다.
‘설마……!’
시로네와 플루가 복도로 나왔을 때 이미 사령부는 패닉 상태였다.
연옥에 사는 사람이라면 지겹도록 들었던 천사의 바이브레이션이었다.
“흐음, 이곳이란 말이지?”
사령부 밖에서 대보름의 빛을 받고 있는 이카사는 발끝을 모으고 턱을 괸 채로 허공에 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절벽이었지만 바벨의 탐색 결과에 거짓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자연 속에 은신해도 인간이 사는 곳에는 특유의 인위적인 느낌이 묻어나기 마련.
연옥 전체를 탐색한 바벨은 반군 사령부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이곳을 지목했다.
확률은 무려 83.3785퍼센트였다.
“게 없느냐, 하찮은 인간들아!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이카사가 소리쳤으나 절벽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고요했다.
물론 벽 안쪽에서 이곳을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후후,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이카사는 두 팔을 활짝 펼치고 달의 기운을 받았다.
타락천사의 존재감은 평천사에 비해 훨씬 떨어지지만 대보름의 날이라면 인간 정도는 쉽게 쓸어버릴 수 있으리라.
“하아아아아.”
차가운 신음 소리와 함께 그녀의 성광체가 광륜으로 펼쳐지더니 고유의 지성이 헤일로에 박히기 시작했다.
어떤 연산이 완료되면서 헤일로에 진한 먹빛 계열의 수많은 마법진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갔다.
‘나는 욕망한다.’
무한 사법 광륜 헤일로-발할라 액션.
퍽! 둔탁한 소리를 내며 암벽에 주먹의 형상이 찍혔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절벽 전체에 권격의 소나기가 내리꽂히듯 정신없이 홈이 파이기 시작했다.
퍼퍼퍼퍼펑!
온 세상이 소리로 가득 찬 듯했다.
가히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되는 속도로 두들겨 맞은 절벽에서 먼지가 피어오르고 산맥이 자취를 감췄다.
사령부 안에 숨어 있던 노르인이 머리를 부여잡고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절벽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지반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보라, 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들인가…….’
이카사의 눈동자는 흐리멍덩했다.
욕망이 눈앞에 실현된 현장 속에서, 건조한 쾌락이 등골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대보름의 날 (2)
반군 제1사령부.
사령관 크루드는 밖에 나와 대보름을 바라보았다.
저 달이 뜨는 날마다 부대 하나가 사라졌던 기억이 떠오르자 가슴속에서 복수심이 꿈틀거렸다.
‘죽은 전우를 위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승리한다.’
“고민이 많은가 보군.”
크루드는 고개를 돌렸다.
세인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그가 다시 달을 돌아보며 말했다.
“별로. 아직까지 천사의 순찰은 보고되지 않고 있다. 이번 대보름의 날도 무사히 넘어갈 모양이야.”
세인의 시선이 크루드와 같은 곳을 향했다.
“그렇군.”
크루드가 돌아서서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너는 어떻게 되고 있지? 연구는 끝난 건가?”
신의 징벌에 필요한 정확한 좌표를 얻기 위해 밤낮을 지새우며 행성 운동을 관측하던 세인이다.
“어느 정도는.”
“천문이라. 하늘 아래 미물에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특히나 전쟁 중이라면 말이야.”
“아직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 하지만 조만간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의미가 될 때가 올 거다.”
크루드는 한쪽 눈썹을 올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아직은 밝힐 수 없어. 어쨌든 반군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다. 적어도 일방적으로 얻어맞지는 않을 거야.”
‘일종의 자폭 전술인가?’
행성의 운동을 연구하는 것으로 크루드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가올드나 세인조차 시로네의 방법을 들었을 때는 황당했을 정도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충성!”
막사에서 나온 카냐가 경례를 올렸다.
옆에는 레나와 아버지인 위쳐가 서 있었다.
수명이 다한 아내를 떠나보내고 천국을 나온 위쳐는 현재 메카 대원에게 정비 기술을 알려 주는 군무원이었다.
크루드가 경례를 받았다.
“그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아, 그게…… 막사에 있기가 조금 답답해서요.”
구로이 부대원이 야밤에 가족과 산책을 하는 건 권장 사항이 아니지만 크루드는 나무라지 않았다.
반군이라면 누구나 대보름의 날의 불안감을 느낄 권리가 있었다.
카냐가 세인에게 물었다.
“시로네에게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나요?”
“며칠 전에 가드락이 다녀갔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더군.”
시로네가 네피림의 능력으로 제2사령부를 뒤집어 놓은 일화는 제1사령부에서 소수만 아는 기밀이었다.
다른 간부와 마찬가지로 크루드 또한 시로네가 제2사령부로 편입된 것이 불쾌했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정말로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레이시스가 시로네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세인이 돌아보았다.
“반목이 있었다고 했지. 생물학 실험에 대한 견해 차이?”
“표면적으로는. 하지만 전쟁 중에 생물 실험을 한 정도로 전력의 절반을 버리지는 않아. 당시에 그녀가 했던 짓은 메카족은 물론 노르족의 상식에도 맞지 않는 것이었다.”
“도를 넘었다는 건가? 무슨 짓을 했기에?”
크루드의 얼굴이 잔혹하게 일그러졌다.
“레이시스는…….”
끼이이이이이잉!
천공을 찢는 파열음이 크루드의 말을 삼켰다.
“크으으윽!”
직접 골을 강타하는 음파에 크루드가 인상을 찡그렸고, 카냐와 레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엎드렸다.
두 딸을 양팔로 짓누른 위쳐가 돔 형태로 전기가 흐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초음파야. 마그네틱 필드와 충돌했어.”
세인은 감정이 사라진 얼굴로 철륜안을 번뜩이며 고개를 쳐들었다.
하늘 저편에서 달빛에 반사되는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들고 있었다.
-탐색 알고리즘 종료.
바벨은 탐색 기능을 끄고 연옥 전체를 탐색한 결과를 무선통신 기술을 통해 카리엘에게 전송했다.
-마그네틱 필드 감지. 타깃 가능성 92.7퍼센트.
그녀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울창한 숲뿐이었지만 전체 풍경의 0.3퍼센트가 다른 풍경과 똑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프로그램이 감지했다.
빛을 복사해서 붙인 것 같은 인위성.
반군 사령부였다.
-공격 모드로 전환.
바벨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타격 승인.
음속 폭음을 터뜨리며 직사로 날아온 바벨이 사령부 영공에 들어오자 세인이 매스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바벨이 땅에 꽂힌 지점을 중심으로 직경 30미터짜리의 거대한 크레이터가 탄생했다.
사령부 전체에 비상 사이렌이 울리고 막사 동에 불이 다발적으로 켜지기 시작했다.
“제길! 도대체 뭐지?”
크루드가 이를 악물고 크레이터로 걸음을 옮기는 그때 먹빛을 내는 장신의 여자가 철컥철컥 발소리를 내며 크레이터 위로 걸어 올라왔다.
카냐의 목소리가 떨렸다.
“기, 기계잖아요?”
-신민을 처단하라.
바벨의 프로그램에 짧은 명령이 떨어졌다.
***
무한 사법 광륜 발할라 액션.
이카사의 고유 능력인 발할라 액션은 원인과 결과를 역전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무언가를 욕망하면, 그 행위에 걸리는 시간과 노력을 차후에 갚는 조건으로 결과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에서 B로 가고 싶다고 욕망했을 때, 이카사는 원래라면 10초가 걸리는 거리를 곧장 도달할 수 있다.
단 A와 B지점 사이에 장애물이 있을 경우, 그것을 우회하거나 파괴하는 가능성에 대한 대가까지 지불해야 한다.
만약 장애물을 부숴야만 B에 갈 수 있고 거기에 걸리는 시간이 5분이라면, B지점에 도착한 이카사는 5분 10초 동안 행동 불능 상태에 빠져 원인을 채우게 되는 것이다.
그 인과율을 계산하는 것이 바로 발할라의 핵심.
풍선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반대쪽이 부풀듯이 A라는 욕망을 설정했을 때 B라는 결과가 자동으로 나오게 된다.
따라서 발할라의 계산 능력을 벗어난 욕망은 애초부터 현실로 실현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저 바위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라고 욕망했을 경우 실현은 불가능하다.
애초부터 바위 안에는 들어갈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바위 안에 어떤 식으로든 공간이 생성되어 있을 경우, 설령 이카사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실현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발할라의 연산체계가 수학적 진리가 아닌 전체에서 부분을 아우르는 아카식 레코드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뜻한다.
비슷한 경우로 ‘저 인간의 목을 베고 싶다’라는 것도 현실화시키기 불가능하다.
인간의 차후 행위를 발할라는 연산할 수 없고, 따라서 ‘액션’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시로네만 제거하면 된다.’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먼지구름을 내려다보는 이카사의 눈빛은 차가운 살의를 담고 있었다.
다시 평천사로 복권되기를 원하는 그녀에게 시로네는 개인적 복수에 더해 반드시 죽여야 하는 존재였다.
현재 카리엘이 천국 내에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지만, 중죄를 두 번이나 저지른 이카사의 입장에서는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인 것도 사실이었다.
‘슬슬 돌아오는군.’
22분 42초.
정상적인 인과율 아래에서 이카사가 오직 주먹으로만 산 하나를 무너뜨리는 데에 걸렸을 시간이다.
대보름의 날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가히 천상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위력이었다.
그렇게 22분 42초가 지나가는 동안 지상의 반군들은 먼지구름을 걷어 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집단 마법 마하가르트로 먼지를 날리고 있지만 산 하나가 통째로 무너진 연무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절벽이 무너지기 전에 가까스로 빠져나온 시로네와 플루는 어디로도 이동하지 않고 주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큐브릭에서 피닉스를 꺼내 휘돌린 플루는 스피릿 존에 도킨스 알고리즘을 부여했다.
특정 속도 이상으로 스피릿 존에 물체가 침투했을 시 자동으로 몸이 반응하는 기능.
그에 따라 시로네도 아르망을 꺼내 금강무장을 발동하자 플루는 곧바로 변화를 깨달았다.
넝마 같던 로브가 새것처럼 깨끗했고, 인공두뇌 외는 바벨에서 봤던 울티마 시스템처럼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울티마 시스템과 통합했어요.”
플루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다가 미련을 접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전투에 도움이 되는 기능이라도 있어?”
아직까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울티마 시스템과 통합한 이후에 아르망으로 전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모르겠어요. 생각을 공유하는 것에서 통합으로 변했는데 그게 어떻게 작용할지는…….”
마침내 먼지구름이 걷히고 휘영청 밝은 대보름이 다시금 지상을 밝게 비췄다.
드러난 지상의 풍경은 처참했다.
사령부 절벽은 멀쩡한 기둥 하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졌고, 잔해 아래에는 노르인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한 번의 기습으로 만들어진 결과.
상식을 파괴하는 이런 능력이야말로 신민들이 천사를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저건……!”
시로네는 하늘에 떠 있는 찬사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카사.’
에이미, 테스, 아린이 납치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무력하게 지켜보게 만들었던 타락천사.
시선으로도 쫓아가지 못할 만큼 빠른 움직임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전율이 치밀 정도였다.
“시로네, 왜 그래?”
“일전에 본 적이 있어요. 타락천사예요.”
평천사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생존 확률이 올라갔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이카사가 팔짱을 끼고 아래로 내려왔다.
불길한 바이브레이션이 반군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후후후, 그러게 나오랄 때 나왔어야지. 벌레보다 못한 주제에 내 말을 거역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니?”
천사의 능력을 통해 그녀의 말이 정신으로 전해지자 생존한 간부 중의 1명이 소리쳤다.
“나에게 집중해! 집단 마법으로 대항한다!”
간부가 거대 마법 아루오페를 준비했다.
공기의 정을 이용하는 마법 중에서도 최고의 절삭력을 자랑하는 마법이었다.
수십 명의 마법사가 간부에게 스피릿 포스를 연결하는 것을 지켜보던 이카사가 비웃음을 지었다.
“어리석은 것들.”
이카사가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공간 속에 확률로 존재하는 전자의 움직임과 흡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