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67
하지만 모퉁이에 기대어 히죽거리고 있는 남자는 끝까지 다가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흐흐, 어차피 우리는 시로네만 데려가면 된다고. 그러니 차라리 여기서……!”
“키아아악!”
모퉁이 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검은 물체에 남자가 붙잡혀 바닥에 쓰러졌다.
이어서 벌레 떼처럼 시커먼 것들이 복도를 잠식하며 빠르게 방향을 틀어 이쪽을 노려보았다.
“으아아아악!”
남자를 쓰러뜨린 생물체가 배를 바짝 붙이며 몸통을 흔들자 모퉁이 밖으로 삐져나온 두 다리가 흔들렸다.
“아, 안 돼! 하지 마! 으아아아!”
가라스였다.
시로네가 격리실에서 봤던 것과는 형태가 전혀 달랐지만, 어차피 이곳에 모인 가라스 중에서 똑같이 생긴 형태는 하나도 없었다.
가라스는 종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생물체를 덮쳤다.
“키익! 키익!”
가라스에게 붙들린 아카마이가 컥 소리를 내며 동공이 커지더니 몸을 부르르 떨며 추락했다.
안티테제에 잠시 묶여 있던 가라스들이 번식거리를 놓친 울분을 토하듯 괴성을 내지르다가 복도 쪽으로 달려갔다.
“이, 이런……!”
온갖 생물의 특성들이 뒤섞여 있는 가라스의 돌진 앞에서 대머리 남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마법을 사용하는 정도로는 위협조차 되지 못했다.
설령 온몸이 난자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놈들은 남자의 배 속에 2세를 심을 것이 분명하니까.
시로네는 반격을 위해 비축했던 힘으로 플루를 끌어당겼다.
벽에 촉수를 박고 거리를 벌리자 처참한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검은 생물체들이 복도를 잠식하듯 바글거리고 있었다.
그 어둠의 밑바닥에서 대머리 남자가 힘겹게 기어 나와 시로네에게 손을 뻗었다.
“제, 제발…….”
절망의 끝에서나 볼 수 있는 표정이었다.
“죽여 줘.”
“키이이이이! 키이이이이!”
“으아아아악!”
대머리 남자의 상체가 활짝 들리더니 얼굴에 놀람과 충격, 공포가 동시에 밀려들었다.
시로네와 플루는 머리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어둠에 가려 가라스의 행위를 볼 수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가자, 시로네.”
플루가 옷깃을 잡아당기자 시로네도 눈을 까뒤집고 침을 흘리는 남자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욕망의 아귀가 사령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대보름의 날 (6)
20분 전.
격리실의 유리관을 탈출한 가라스는 그곳에 있는 모든 생물체와 교배를 시도했다.
그것은 플루의 의도와 정확히 일치한 사건이었으나,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가라스가 얼마나 무서운 생물체인지 알고 있는 그녀조차도 번식욕에 대한 정확한 수치를 가늠하지 못했던 것이다.
며칠 동안 좁은 유리관에 갇혀 있었던 가라스는 생애 최고로 초조한 상태였고 자유를 찾았을 때의 번식욕은 인간의 무려 20만 배에 달했다.
가라스가 타종에게 주입한 유전정보가 배아에서 성체로 자라는 기간은 평균 14시간.
하지만 후세를 전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힌 지금은 출산 시간이 고작 3초에 불과했다.
“기아아앙! 기아아앙!”
거대 생물체가 산고의 괴성을 내지르는 동시에 배 속에서 수십 마리의 가라스가 튀어나왔다.
태아의 상태로 굼실거리던 새끼들은 10초가 지나지 않아 성체로 성장했고, 또 다른 생물체를 덮쳤다.
말 그대로 기하급수.
모든 동의 아파트에서 가라스의 새끼가 태어났고 급기야 격리실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쾅! 소리를 내며 철문이 튀어 나가더니 마치 댐에 갇힌 물이 쏟아지듯 온갖 형태의 가라스가 복도를 내달렸다.
급류를 이룬 놈들은 자의에 상관없이 복도의 갈림길에 충돌했고, 유체역학의 힘을 따라 갈라지며 사령부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
“후욱! 후욱!”
가라스가 휩쓸고 지나간 복도에는 희생자들의 처참한 흔적만이 남았다.
오직 가라스에게 당한 대머리 남자만이 벽에 등을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배는 복수가 찬 듯 잔뜩 부풀어 있었고, 팽만감은 초당 2배 이상 빠르게 커져 갔다.
“허억! 허억!”
떨리는 손이 바닥에 있는 단도를 쥐었다.
양손을 들어 그것을 역수로 쥐고 자신의 배를 겨누는 남자의 표정이 공포에 잠겼다.
“크으으윽!”
찔러야 한다. 오직 그것만이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하지만 남자는 결국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단도를 멀리 집어 던졌다.
“으아아아아!”
남자의 배가 폭발하면서 둥그렇게 몸을 말고 있는 검은 괴물이 흘러내렸다.
구부러진 척추가 완전히 펴졌을 때의 몸길이는 무려 1미터에 달했고, 앙상한 두 팔과 역관절의 다리로 바닥을 짚으며 혀를 길게 빼냈다.
얼굴은 해머에 맞은 듯 일그러져 있었고 눈은 없었으며 뇌는 머리 위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키, 키키키!”
치타처럼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기던 가라스가 예민한 후각으로 생물의 냄새를 탐지했다.
“나……는…… 종의 왕……이다.”
팍!
바닥에 4개의 균열이 깨지면서 가라스의 몸이 사라졌다.
***
시로네와 플루는 뒤를 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복도를 내달렸다.
어디로 가든 가라스가 있었고, 도주할 공간이 점차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 몸으로 전해져 왔다.
“선배님! 어떡하죠? 이러다가 포위당하겠어요.”
가는 방향에서 가라스의 무리가 나타났다.
걸음을 멈춘 플루가 피닉스를 휘두르자 불의 소용돌이 뻗어 나갔다.
“키아아아! 키아아아!”
열기에 가라스의 피부가 죽처럼 녹아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내 켄서의 능력으로 상처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쳇! 이번엔 재생인가?”
가라스는 분명 강한 생물체는 아니다.
하지만 10초 이내에 후세를 만들 수 있는 기괴한 번식력과 온갖 생물체가 격리되어 있는 실험실이라는 환경이 합쳐지자 말도 안 되는 종이 탄생했다.
격리된 공간에서 폭발적으로 개체 수가 늘어나자 몇몇 돌연변이는 동족에게마저 번식을 시도했고 그럴수록 가라스는 강하게, 더욱 강하게 진화한 것이다.
시로네는 질린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여태까지 레이시스가 어떤 생물체를 수집했는지는 가라스의 형태만 보고도 대부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제가 처리할게요.”
시로네의 눈앞에 암구가 탄생하며 달려드는 가라스를 모조리 짓이겼다.
켄서의 형질에는 암구가 제격이라는 것을 학습한 덕분이지만 이 또한 운이 좋았을 뿐이다.
어떤 생물체든 천적은 있는 법이고 가라스는 현재 무한대의 변이가 가능한 환경 아래에서 활개치고 있으니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건 그들이었다.
“키리릭! 키리릭!”
천장에서 점액질이 흘러내리더니 수십 개의 주머니처럼 변해 매달렸다.
주머니의 중심부가 가로로 갈라지면서 튀어나온 눈동자가 안티테제를 발동하자 두 사람의 동작이 멈췄다.
“크윽!”
동시에 투명귀 호로로스의 능력을 받은 가라스가 플루의 종아리를 물었다.
하얀 피부에 선명하게 박힌 이빨 자국을 본 시로네는 심적초월을 끌어 올려 반격했다.
뱀 형태의 투명한 가라스를 촉수로 짓이긴 것과 동시에 포톤 캐논을 천장으로 난사하자 벽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출구가 막혔다.
뒷일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시로네는 플루를 살폈다.
만약 호로로스에 독성 생물체의 형질까지 섞였다면 낭패였다.
“선배님, 괜찮아요?”
플루는 피가 흘러내리는 다리를 보았다. 거동을 못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강력해지는 가라스를 본 순간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내가 놈들을 유인할게. 너는 레이시스를 찾아. 그녀를 막지 못하면 임무는 실패야.”
시로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플루를 가라스의 먹이로 두고 떠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선배님, 저는…….”
“어서! 나랑 약속했잖아! 선택을 해야 할 때 망설이지 않기로!”
시로네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어떻게 선배님을 두고 가요! 차라리 제가……!”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시로네의 고개가 돌아갔다.
플루의 냉정한 눈동자가 시로네의 얼굴을 담았다.
“가. 갈 수 있어. 너도 알고 있잖아?”
시로네는 아프지 않았다. 뺨을 맞은 것보다도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이 더 컸다.
“레이시스를 처치해. 그런 다음 나를 구하러 와 줘.”
그럴 일이 없다는 건 두 사람 모두 알고 있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 시로네를 슬프게 했다.
“망설일수록 나를 구출할 시간은 줄어들고 있어. 만약 네가 다시 돌아왔을 때 5초 전에 내가 죽었다면 견딜 수 있겠어?”
“선배님.”
“2초 지났어.”
시로네는 눈을 질끈 감고 일어섰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의 목숨에 대고 거짓말을 했다.
“반드시 돌아올게요.”
시로네는 땅을 박차고 달려가 모퉁이를 돌았다.
거의 동시에 건너편에서 가라스의 무리가 달려왔다.
플루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로네를 떠나보낸 홀가분함으로 표정은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고마워. 너는 좋은 아이야.’
건조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지어졌다.
“안녕, 시로네.”
피닉스를 짚고 일어선 플루의 표정은 전에 없이 매서웠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불타도 상관없을 정도의 전능으로 마력을 증폭시킨 그녀가 피닉스를 내밀었다.
공인 8급의 마법사 플루가 보유한 최강의 마법이었다.
헬파이어!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작렬의 불꽃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
시로네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이 무너져 내릴 듯한 슬픔은 퓨직스 머신이 있는 실험실에 도착하자 차가운 분노로 돌변했다.
쇠조차도 잘릴 것 같은 눈빛으로 실험실을 노려보던 시로네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적막한 가운데 기포 끓는 소리만이 들렸다.
보이는 것은 연구원의 시체뿐.
레이시스가 메모리 비전으로 펼쳤던 퓨직스 머신의 유리구에 생물체들이 담겨 있었다.
시로네는 하나의 유리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마치 이빨로 씹은 듯 토막이 나 있는 이카사의 몸이 담겨 있었다.
거꾸로 뒤집어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시로네의 눈에 씁쓸한 감정이 담겼다.
‘이카사.’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생각은 나중으로 미뤄 둘 수밖에 없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시로네가 물었다.
“이제 속이 시원해? 이게 당신이 바라던 결과야?”
레이시스가 피처럼 붉은 입술을 끌어 올리고 태연하게 걸어왔다.
“스스로를 가둔 꼴이 됐구나. 그러게 가라스는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시로네는 천천히 돌아섰다.
“어차피 당신도 마찬가지야. 지금이라도 포기해. 사령부는 폐쇄될 거야.”
“깔깔깔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데? 내가 고작 약해서, 강함 따위를 동경해서 이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천만에.”
빠직! 빠직!
레이시스의 뼈가 뒤틀리며 근육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최강의 생물체다.”
그녀의 신장이 2미터, 3미터를 넘어 천장에 닿을 만큼 커졌다.
온통 붉은 피부에 창자 같은 꼬리가 다발로 얽혀 있고 근육질의 몸체에는 알 수 없는 생물들의 눈, 코, 입, 이빨 등의 기관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움직이고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괴함.
기능과 상관이 없기에 오직 절대적인 악의만이 담긴 추악한 몸이었다.
“시로네, 나와 하나가 되어라.”
레이시스의 중성적인 저음이 울리는 순간 자동 반사적으로 포톤 캐논이 뻗어 나갔다.
하지만 노리는 것은 레이시스가 아닌 퓨직스 머신이었다.
쾅! 콰콰콰쾅!
포톤 캐논의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인 레이시스가 퓨직스 머신을 가로막았다.
강력한 충격에도, 탄탄한 육체는 미동조차 없었다.
사탄의 율법-악의 화신.
인간이라면 육체가 붕괴될 정도의 신적초월이지만 온갖 생물과 결합한 레이시스의 내구력은 천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다.
“크아아아아!”
레이시스가 강력한 화염을 토하자 순간 이동으로 회피한 시로네는 아르망의 촉수와 포톤 캐논으로 대응했다.
실험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레이시스는 퓨직스 머신 앞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밀리는 쪽은 시로네였다.
화염에 번개까지 뒤섞이면서 어디로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레이시스가 몸을 날려 시로네의 목을 붙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