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69
현재 심장이 뛰지 않는 상태였고, 로브가 젖혀져 드러난 얼굴에는 눈이 뒤집어져 있었다.
“푸우.”
사탄, 레이시스는 비로소 모든 게 끝났음을 느끼고 홀가분하게 숨을 내쉬었다.
군데군데 근육이 파열되어 있고, 마지막 일격에서 얻어맞은 관자놀이 쪽에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네피림을 우습게 본 대가였다.
“확실히 대단하군.”
레이시스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로써 모든 게 갖추어졌다.
형질을 통합시킬 네피림, 아름다운 육체를 선사할 천사,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결합시켜 줄 생물체들.
“나는, 오늘 신이 된다.”
자신의 손으로 죽인 측근들의 시체를 뛰어넘어 퓨직스 머신으로 걸어간 그녀는 장치를 가동했다.
퓨직스 머신의 엔진이 돌아가면서 중앙의 유리관에 불이 들어왔다.
일화의 술을 개시할 때였다.
레이시스는 마지막 남은 유리구에 들어가 문을 닫고 정좌를 취했다.
잠시 후 8개의 유리구에 플라즘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레이시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대통합이다. 완성을 향한 여정이다.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 중심의 유리관에서 재탄생되었을 때,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가 되어 있을 터였다.
검은 액체의 수위가 빠르게 차올랐다. 급기야 그녀의 턱을 넘어 얼굴까지 뒤덮었다.
조각난 이카사도, 쓰러진 시로네의 모습도 액체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끝났구나. 이것으로…….’
위이이이이잉!
그때 천장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플라즘의 수면을 뚫고 아련하게 들리는 소리에 레이시스는 눈을 번쩍 떴다.
‘뭐지?’
다리에 힘을 주었으나 물에 풀린 떡밥처럼 이미 플라즘에 육체의 내구력이 급속도로 약해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불길했다.
“크으으으으!”
레이시스는 사력을 다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유리구의 천장까지 올라온 뒤에야 겨우 몇 센티미터 높이의 시야를 얻을 수 있었다.
‘저, 저건……!’
레이시스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노르인의 옷을 입고 있는 플루가 퓨직스 머신의 장치를 조작하고 있었다.
‘어째서 여기에?’
대원들의 옷을 뺏어 입었다면 격리실에 갇힌 복제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곳의 클론은 지성이 없다.
‘아니, 이미 가스로 죽이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플루는 클론인가? 아니면 진짜 플루인가?
그때 천장에서 다시 한 번 사이렌이 울렸다.
-경고! 경고! 메인 타입 초기화! 1번 유리구에서 8번 유리구로 메인 타입 변경!
가르륵!
레이시스의 입에서 기포가 올라왔다.
8번 유리구에 들어 있는 생물체는, 다름 아닌 시로네였다.
대보름의 날 (8)
“키키키! 인간은 재밌지. 감정이 눈에 드러나니까.”
플루를 짓누른 가라스가 혀를 길게 빼냈다.
뒤늦게 태어난 탓에 번식 개체를 형제들에게 전부 빼앗긴 놈에게 눈앞의 인간은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가라스의 말대로 플루의 눈은 공포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끔찍한 일에 대한 공포는 아니었다.
사실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두통과 분명치는 않지만 어딘가 끊어진 느낌이 드는 듯한 사고.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하고, 아니, 만약 자신의 본체였더라도 그런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 본체에게나 복제에게나 소멸의 두려움은 똑같이 다가온다.
그렇기에 플루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마른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한 명의 마법사로서 소임을 다했다는 만족감 때문이었다.
“이거나 먹어라.”
가라스는 인간이 중지를 치켜드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 짧은 고민의 순간 플루의 눈이 서서히 감겨 갔다.
‘시로네, 꼭 훌륭한 마법사가 되어라.’
아마도 시로네가 봤던 문서에는 자신이 복제라는 것에 대한 증거들이 적혀 있었을 터였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 줘서.’
구하러 와 준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복제된 생명체가 아닌 한 명의 플루로 인정해 주어서 행복했다.
클론의 수명은 고작 일주일.
그래도 멋진 인생이었다.
플루의 손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고, 가라스는 그제야 밑에 깔린 생명체가 물건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번식이란 결국 종족 보존의 욕구. 2세를 낳을 수 없는 존재에게는 어떠한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정점을 찍고 있던 흥분이 수면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감정의 낙차만큼은 견딜 수 없이 짜증 났다.
“크아아아아!”
플루의 목을 붙잡고 벽에 집어 던진 가라스가 상체를 쳐들고 굉굉한 포효를 터뜨렸다.
생물! 생물이 필요하다!
번식에 관련된 일에 한해서는 극단적인 진화를 보이는 그의 후각이 먼 곳에 있는 또 하나의 생물체를 감지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생물의 냄새를 좇는 가라스의 잔상이 검은 바람처럼 복도를 따라 길게 늘어졌다.
***
레이시스는 사력을 다해 버둥거렸다.
하지만 근섬유가 플라즘에 올올히 분해되어 가면서 의지와 상관없는 방향으로만 팔다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안 돼! 다시 되돌려야 해!’
현재 1번 유리구에 갇힌 시로네는 울티마 시스템을 장착한 타입B.
거기에 메인 타입까지 설정되었으니 이대로 일화의 술이 진행된다면 모든 유기질은 시로네를 중심으로 합쳐진다.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플루를 직접 눈으로 보고서도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유리구에서 나갈 수 있는지, 상황이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인지, 눈앞에 보이는 여자는 정말로 플루인지.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몇 가지 의문만이 계속해서 맴도는 순환의 늪에 빠질 뿐이었다.
퓨직스 머신을 수정한 플루가 천천히 돌아섰다. 거의 동시에 플라즘이 끝까지 차오르면서 레이시스를 뒤덮었다.
차분한 걸음걸이로 유리구에 다가가자 턱! 하고 레이시스의 손바닥이 안쪽에 찍혔다.
레이시스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꺼풀이 사라져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고 눈동자에는 여전히 풀지 못한 의문이 감돌고 있었다.
플루는 오른손의 약지를 들어 보였다. 본래 큐브릭을 끼고 있어야 할 자리가 다른 피부색보다 훨씬 연했다.
‘그렇다면 본체? 하지만 대체 언제부터…….’
플루가 큐브릭을 뺀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시로네가 없는 틈에 지하 실험실을 염탐했을 당시였다.
클론 격리실을 살핀 그녀는 레이시스가 어떤 의도로 시로네를 사령부에 받아들였는지 직감했다.
시로네의 클론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같은 세계의 유전자를 지닌 플루를 이용한다.
또한 가라스의 형질까지 더해지면 클론을 급속도로 성체까지 키워 내는 것도 가능했다.
퓨직스 머신, 기억 전달 장치, 각종 생물체의 형질을 조사한 그녀는 한 가지 생각에 착수했다.
격리실에 갇힌 클론에 본체의 기억을 전이시킨다.
마지막 기억만 잘라 내고 드론과 큐브릭을 클론에게 넘긴 다음 스스로 격리실에 들어가 반격의 기회를 기다리는 일은, 육체적, 심리적 중노동이었으나 효과는 강력했다.
상대방을 이기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뒤에서 칼을 꽂는 것.
사각만 있으면 신도 죽일 수 있다는 암살자의 격언대로 사령부 전원에 대한 심리적 사각을 이용한 전술이었다.
‘설마, 격리실에 숨어 있었다고?’
레이시스는 멍한 표정으로 플루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한 번도 의심하지 못했을까?
신체검사를 할 때도 반드시 차고 있던 큐브릭. 드론 없이는 통역조차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무의식에 깔려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일 여지조차 없었다.
“덜 떨어진 표정 그만 짓고 사라져, 이 악마야.”
액체에 잠긴 레이시스는 플루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들은 것보다 훨씬 강력한 감정이 치솟았다.
‘감히 네까짓 게……!’
레이시스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고무처럼 말랑했진 치아가 순식간에 으스러졌다.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어차피 전부 하나가 되는 것뿐이다! 나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는 거야! 내가 이겼어!”
물에 먹힌 레이시스의 외침을 뒤로하고 플루는 시로네가 담긴 1번 유리구로 달려가 벽을 두드렸다.
“시로네, 정신 차려! 시로네!”
격리실을 탈출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일화의 술은 상당히 진행되어 있는 상태였다.
가장 먼저 취소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것은 너무 감정에 치우친 판단이다.
만약 취소를 시켰을 때 시로네가 플라즘에 절반 이상 분해된 상태라면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차라리 이대로 진행시키되 메인 타입을 시로네로 바꾼다. 그렇다면 설령 괴물이 되더라도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을 시킬 수 있다.
시로네 또한 이해해 줄 것이다.
그것이 마법사니까.
“시로네! 시로네!”
하지만 마음만큼은 지금 당장 시로네가 깨어나 무언가를 해 주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플루의 목소리가 액체 매질을 타고 전해지는 순간 멈춰 있던 시로네의 심장이 움찔 수축했다.
7할이 녹아내린 레이시스와 달리 아르망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시로네의 육체는 아직 손상되어 있지 않았다.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 시로네와 통합한 아르망은 생에 대한 기본적인 본성으로 최후의 방법을 시도했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강력한 충격을 주자 시로네의 몸이 물속에서 거칠게 튕겼다.
다시 충격이 들어가고, 또다시 심장을 압박하는 순간 동공이 활짝 열리면서 입 밖으로 공기가 새어 나왔다.
“컥! 커억!”
사망 상태에서 빠져나온 충격으로 시로네는 팔다리를 휘두르며 허우적거렸다.
유리 벽에서 둔탁한 충격음이 전해지고 어렴풋이 플루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선배님?’
그녀가 살아 있다. 그 하나의 사실에 도달하자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생존 테스트 2단계 빙옥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정신 회복 속도였다.
‘차갑게. 가장 차가운 정신 상태로.’
비로소 아르망이 녹아들어 가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유리구에 갇혔다는 뜻이고 이대로 진행되면 레이시스에게 흡수되고 말 것이다.
‘광폭을 시전해서……?’
유리구를 깨고 탈출하려는 순간 사망 직전의 기억이 연결되면서 황급히 판단을 되돌렸다.
레이시스는 들어 본 적도 없는 4각 마라.
이미 전투에서 1패를 안은 지금 빠져나가 봤자 더욱 강화된 레이시스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과정은 달라도 플루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 시로네는 스피릿 존을 거두고 대신에 아르망을 강화시켰다.
‘버티자. 버티는 거야!’
일화의 술이 끝났을 때 어떤 정신이 주격이 될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울티마 시스템이 장착된 아르망이라면 4각 마라와 승부를 걸어 볼 만했다.
아르망의 유기질이 한계치까지 재생되면서 시로네의 육체를 플라즘으로부터 보호했다.
그리고 마침내 1분을 버텼을 때 유리구의 밑바닥으로 플라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시로네는 껍질을 깨고 변태하듯 아르망을 아래로 뽑아내면서 수면 위로 올라갔다.
목숨은 건졌으나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아르망이 레이시스에게 주도권을 빼앗긴다면 중앙 유리관에 만들어지는 것은 마검이 아닌 악마 그 자체일 터였다.
쿠우우우우우!
공기가 타는 듯한 소리에 레이시스는 눈을 떴다. 액체 상태에서 모든 게 선명했다.
출렁거리는 유동성, 생명을 촉발하는 전기적 자극, 이카사의 발할라 액션, 진마이식종 갈토믹의 마력, 링거의 단단한 갑옷까지 모든 것이 통합되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세상 모든 것이 하나.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본래는 하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던가.
저 멀리서 푸른빛이 내려와 온 세상을 은색으로 물들이자 레이시스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반사되는 빛 속에 사탄을 만나기 전의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순백의 살결, 남들보다는 조금 발달한 가슴, 탄탄한 허벅지…….
‘후후. 그래도 발은 여전히 못생겼네.’
레이시스는 맑은 눈물을 흘렸다.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제…… 됐어.’
푸른빛이 섬광처럼 타오르고 모든 게 하나로 돌아갔다.
“쿨럭! 쿨럭!”
플루의 도움으로 유리구에서 빠져나온 시로네는 탁한 액체를 모조리 토해 냈다.
위장이 녹아내렸는지 고통이 막심했다.
“시로네, 괜찮아?”
“아뇨. 너무 아파요. 그런데 선배님은 어떻게……?”
그때 중앙의 유리관이 번쩍 빛나면서 일화의 술이 종료되었다.
대화를 멈춘 시로네와 플루가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유리관이 덜컹 소리를 내며 열렸다.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아르망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성공, 성공이다.”
아르망의 울티마 시스템이 메인 타입으로 작용하면서 여타의 형질들을 통합시킨 게 분명했다.
기뻐할 시간도 없이 시로네는 걸어갔다. 위장이 상해서 한시라도 빨리 금강무장을 발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콰아아아앙!
실험실 문을 박살 내고 온갖 형태의 가라스들이 밀려들었다. 지하 실험실에 남은 번식 대상이 더 이상 없었으니 전원 이곳으로 흘러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키익! 키이이익!”
욕구 불만에 휩싸인 수백 마리의 가라스들은 생애 최고조로 흥분한 상태였다.
시로네가 아르망을 붙잡는 것과 동시에 플루가 봉황정을 발동했다.
피닉스가 없이도 봉황정의 위력은 대단했으나 불타오르는 가라스는 죽음마저 불사하고 덤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