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70
“키키키! 찾았다.”
사력을 다해 가라스를 막아 내던 플루는 문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든 가라스들이 공격을 멈추고 지금 막 도착한 한 마리의 가라스에게 길을 열어 주고 있었다.
플루의 상체가 도킨스 알고리즘에 의해 젖히면서 엄청난 하중이 전해졌다.
눈앞에 시커먼 잔상이 지나가는 것밖에 보지 못했다. 속도만 놓고 따졌을 때는 그녀를 상회한다고 봐야 했다.
“키키키! 역시 재미있군!”
조금 전에 중지를 들고 죽은 인간과 똑같은 형태를 가진 인간을 보자 가라앉았던 흥분이 전보다 더욱 치솟으면서 세포를 활성화시켰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던 진화는 급기야 미싱링크의 간극을 초월하여 최종 진화를 이루었다.
굽은 척추가 펴지고 얼굴 또한 대머리 남자와 흡사할 정도로 인간에 근접했다.
주위의 대기가 일렁이는 것을 느낀 플루가 에어 실드를 두르는 순간 공기가 폭발처럼 팽창하면서 그녀를 밀어냈다.
‘큭! 스피릿 포스를……!’
노르인만이 가능한 정의 친화력. 대머리 남자에게서 태어난 가라스지만 위력은 그보다 훨씬 강력했다.
“팔다리는 뜯어 놓는 게 좋겠지!”
가라스가 흑색 잔상으로 변해 돌진해 오자 플루는 어금니를 깨물고 충격에 대비했다.
도킨스 알고리즘이라면 피할 수는 있겠지만, 척추가 끊어지는 건 각오해야 할 일이었다.
“크아아아악!”
그 순간 가라스가 정지했다. 마치 줄에 묶인 듯 어깨가 완전히 좁아진 상태로 상체를 쳐들고 괴성을 내지르자 플루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금강무장을 발동한 시로네가 가라스를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가라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안티테제?”
여태까지 그녀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금강무장이었다.
대보름의 날 (9)
아방가르드.
인간의 기준에서 금강무장의 디자인은 혁신에 가까울 정도로 과감했고 또한 아름다웠다.
신체의 굴곡을 따라 달라붙은 유기질의 갑옷에 금속질의 띠가 비대칭으로 지나갔고, 불꽃처럼 강렬한 적색 망토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렸다.
뼈 재질로 만들어진 장갑은 곤충의 마디처럼 연결되어 손끝까지 감쌌고 손톱은 송곳처럼 뾰족했다.
인공두뇌 외外에는 아카마이의 것이 분명한 눈동자가 삽입되어 가라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됐다! 이거면 붙잡을 수 있어!’
아르망의 추가 기능들이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 곧바로 시로네의 머릿속에 장착되었다.
사탄과 겨루면서 심적초월의 한계를 이미 높였지만 이번에는 그것과 비교가 안 되는 다양한 옵션들이 있었다.
“크으으으!”
안티테제에서 벗어날 수 없자 가라스는 난폭한 페로몬을 분비시켰다.
시큼한 냄새가 퍼지는 순간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가라스들이 왕의 명에 따라 모조리 시로네에게 돌진했다.
“위험해!”
플루가 생물의 천적인 파이어 미스트로 화염의 방어막을 쳤으나 가라스의 복종심은 무생물에 비견될 정도로 맹목적이었다.
놈들이 노리는 것은 오직 시로네뿐이었고, 살이 녹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방에서 연계 공격을 퍼부었다.
광폭!
시로네가 주먹을 아래로 내리며 마법을 시전하자 빛의 장막이 폭발하듯 공간을 쳐 냈다.
S급 생물체 진마이식종 갈토믹의 율법 강화로 더욱 강력해진 광폭의 위력은 가히 철판의 내구력과 맞먹었다.
초당 40회의 연타에 얻어맞은 가라스들은 뼈조차 으스러졌고, 도리깨질하듯 토막이 났다.
거기까지 확인한 플루는 전투를 중단하고 전열을 이탈하여 시로네의 뒤에 머물렀다.
가라스는 사령부 지하에 있는 모든 생물체를 섭렵했을 터.
번식력이 기하급수로 올라가는 특성상 실험실의 적을 처치해 봤자 끝도 없이 밀려들고 있을 게 분명했다.
‘봉황정으로는 버틸 수 없겠어. 이건 내 선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프로젝트에서 그녀의 포지션은 어디까지나 서포터다.
다재다능한 임무 수행 능력으로 팀원을 보조하지만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가라스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시로네도 핵심 요인 및 시설을 파괴하는 터미네이터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상태지만, 현재는 그런 수준을 까마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온갖 형질이 집결된 생물학적 병기.
수천 가지 종으로 분화되어 있는 가라스 중에서도 천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모습으로 진화되어 있었다.
“쿠아아아아아!”
거대한 도마뱀이 화염을 토해 아르망을 녹였으나 이내 무한세포증식체 켄서의 재생 능력으로 갑옷이 수복되었다.
여의치 않음을 깨달은 가라스의 무리에서 이번에는 고양잇과의 괴수들이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자 최강의 내구력을 지닌 갑식광물종 링거의 금속질이 생성되면서 시로네를 완전무결한 요새로 만들었다.
캉! 캉! 캉!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도.
가라스의 공격 무기가 모조리 부서지면서, 아픈 비명 소리가 실험실을 울렸다.
은빛 금속체가 다시 유기질로 생기를 띠더니 망토의 끄트머리가 가늘게 꼬이면서 붉은 촉수로 변했다.
적들을 후려갈긴 촉수의 끝에는 유기질을 섭취하여 휘발성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섭식귀 쿠젠의 이빨이 매달려 있었다.
발목 함정처럼 정확히 맞물린 치아가 가라스를 마구마구 물어뜯자 시로네의 몸에 폭발적인 힘이 밀려들었다.
땅을 박차고 가라스의 무리 속으로 파고든 시로네는 산탄 무브먼트를 연계하여 공격을 퍼부었다.
크기, 위력, 질량, 속도 등 모든 상태치가 상승한 섬광이 지나가자 스치기만 해도 가라스의 살점이 파열되었다.
“키아아아아!”
부하들의 죽음 속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가라스의 왕이 튀어나와 마법을 시전했다.
공기가 압축되면서 칼날보다 예리한 바람이 쇄도했다.
티티티팅!
바람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를 따라 시로네의 갑옷에 수십 갈래의 은색 선이 그어졌다.
에텔라의 음양파동권에도 부서지지 않은 링거의 금속질이었으니 바람 따위는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통째로 삼켜 주마!”
가라스는 시로네의 어깨를 짓누르고 턱관절을 한계치까지 벌렸다.
날카로운 이로 시로네의 얼굴을 뜯어내려는 그때, 인공두뇌 외가 안티테제를 발동했다.
“크아아악!”
가라스가 혀를 길게 뽑은 채로 움직이지 못하자 시로네는 정신을 모아 반격을 준비했다.
갈토믹의 능력이 율법을 증폭시켰고, 펑 소리를 내며 무려 직경 1미터에 달하는 대형 포톤 캐논이 압축되었다.
“거……!”
질량과 속도로 만들어 낸 섬광의 에너지가 가라스의 몸을 재가 될 때까지 불태웠다.
“키익! 키익!”
종족의 왕이 죽자 가라스 무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번식의 욕구 앞에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게 가라스지만 지금 그들의 앞에 있는 건 생물을 초월한 포식자였다.
시로네와 끝까지 싸우려는 놈은 소수였고, 대부분 몸을 돌려 문밖으로 도주하기를 택했다.
“큰일이야! 놈들이 빠져나가면 안 돼!”
가라스가 지하 실험실을 벗어나면 인근 생태계는 완전히 붕괴되고 만다.
아니, 놈들의 영향력을 가로막는 천외종이 주위에 서식하지 않는다면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해볼 수밖에 없나.’
시로네는 아르망의 마지막 옵션을 발동했다.
머리 위에 흑백의 색감으로 이루어진 광륜이 회전하면서 시로네의 욕망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발할라 액션.
욕망이 결과로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막연한 느낌으로 전해져 왔다.
승인 허가가 떨어지자 시로네는 지체할 것 없이 마법진을 전개했다.
아타락시아가 집적의 과정을 생략하고 눈앞에 탄생하더니 자동적으로 포톤 캐논이 생성되어 전방으로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대비할 시간조차 없이 벌어진 사건에 플루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틀었다.
안구근육에 마비가 올 정도의 밝은 섬광이 폭발하면서 굉음이 전방으로 질주했다.
섬광의 유지시간은 무려 3초.
입으로 세어도 한참이 걸리는 시간 동안 극단적인 질량파가 가로막는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나아갔다.
귀를 틀어막고 한참이나 움직이지 못하던 플루는 천천히 눈을 뜨며 고개를 돌렸다.
가히 절경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찰흙 덩어리를 칼로 뭉텅 썰어 낸 듯 꽉 막혀 있던 실험실이 섬광의 형태로 뚫려 있었다.
인간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자연적인 스케일 앞에서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찢어진 천장에서 빛이 새어 들어왔고, 어디에도 가라스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크으으으!”
시로네는 콧잔등을 일그러뜨린 표정으로 전방을 노려보았다.
결과에 대한 원인을 채우기 위해 시로네가 행동 불능에 빠지는 시간은 대략 23초.
아르망과 일체유심조를 이루면서 심적초월의 한계치를 높인 덕분에 얻을 수 있는 수치였다.
플루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천사의 능력까지 흡수되다니.”
원인과 결과의 등가교환이라 하더라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는 존재에게 인과의 역전은 엄청난 사건이다.
특히나 대천사의 능력인 초마력 증폭진을 즉시 전개할 수 있다면 행동 불능에 빠지는 정도는 단점이라 부를 수도 없다.
일단 포톤 캐논을 아타락시아에 통과시키면 그 위력 앞에 살아남을 생물체는 거의 없을 테니까.
편한 상태로 23초를 기다린 시로네는 구속이 풀리자마자 크게 숨을 불어 내쉬었다.
금강무장을 해제하고 검의 형태로 되돌아온 아르망은 묘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시로네는 정격조종을 이용하여 검을 눈앞에 띄우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마치 금속에 피가 흐르는 것 같은, 그래서 조금은 괴기스럽지만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중독성이 강한 빛깔이었다.
울티마 버전(기능 장착 : 6)
1. 이카사의 발할라 액션 : 원인과 결과의 등가교환. 교환 가능성에 대한 자동 연산.
2. 링거의 스킨 : 초강성 금속 물질 생성. 자동 반응.
3. 갈토믹의 마력 증폭 : 율법의 폭발적 강화.
4. 쿠젠의 섭식 대사 : 유기질을 섭취하여 휘발성 에너지를 발생.
5. 켄서의 절대 수복 : 세포 재생 속도 극대화.
6. 아카마이의 안티테제 : 율법을 역전시켜 대상의 행동을 억제함.
아르망의 기능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시로네는 문득 간과한 사실을 깨달았다.
총 8개의 생물이 합쳐졌으나 추가된 옵션은 6개밖에 없었다.
메인 타입인 아르망을 제외하고 빠진 형질을 되짚어 보니 레이시스의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일화의 술은 완벽했을 텐데. 형질이 흡수되지 않은 것은 4각 마라이기 때문인가?’
플루가 생각에 잠긴 시로네의 어깨를 짚었다.
“너, 괜찮아? 이렇게 싸우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시로네의 가공할 무용을 가까이서 지켜본 그녀의 목소리는 흥분감에 떨리고 있었다.
아르망의 능력이 더해진 시로네의 전투력은 천국과의 일전에서도 충분히 먹힐 정도로 강력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사실은, 그가 천국에 전대미문의 일격을 먹여야 하는 터미네이터라는 점이었다.
가장 두려운 건 시로네가 신의 징벌을 시전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것.
하지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임무 수행의 성공률 또한 대폭 상향될 터였다.
“저는 괜찮아요. 폐도 회복됐고요. 그런데…… 가라스는 정말 전멸한 거겠죠?”
플루는 섬광이 지나간 자리를 살폈다.
“실험실에서 번식 가능한 생물은 우리가 유일했으니까, 전부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을 거야.”
“하지만 예외라는 것도 있잖아요.”
“아니, 아마 그럴 일은 없을걸. 10일을 굶은 사람이 고기 냄새를 맡고 달려오지 않을 수 있을까? 가라스의 욕구는 그것보다 훨씬 클 테니까.”
갈라진 천장 사이로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등장했다.
잔해 더미 속에 파묻혀 있던 생존자들이었다.
시로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시스의 악행을 증명해 줄 사람이 있다면 오늘의 사건은 반군 통합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무사하십니까? 사령관은 어떻게 됐죠?”
“죽었어요, 전부 다.”
시로네가 띄운 드론으로 통역을 들은 대원들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하조차도 실험 대상으로 사용한 광기의 지휘관이 죽은 건 다행이지만 사령부의 피해는 회복 불가능이었다.
시로네가 지상으로 올라오자 처참한 몰골의 생존자들이 원을 그리며 모여들었다.
사령관이 죽고 간부들조차 전멸했다.
이제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은 73구역의 빛, 시로네뿐이었다.
“네피림이시여, 우리는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저희의 사령관이 되어 주십시오.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키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앙케 라를 부정하고 연옥에 모인 그들이 또다시 누군가를 신격화시키려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였다.
‘그게 더 쉬울 수는 있다. 하지만…….’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남에게 판단을 맡겨 버렸을 때, 인간은 인간 이상의 참혹한 짓을 저지르는 법이니까.
“알겠습니다. 반군 통합 작전을 실행할 것이니 일단 돌아가서 치료를 받으세요.”
마음에 드는 방식은 아니었으나 비참했던 대원들의 눈빛에 생기가 돌자 이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올드의 프로젝트였고, 자신의 생각만을 고수하는 것 또한 위험한 이상론일 테니까.
‘끝났구나.’
그렇게 제2사령부에서의 일이 막을 내렸다.
맡은 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두 사람이었으나 그들 사이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무거운 것들이 남아 있었다.
생명, 생물, 인간.
인간 또한 하나의 종에 불과한 이곳 연옥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의미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레이시스…….’
육체의 무의미함을 설파한 그녀가 사실은 가장 그것에 집착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성은 동물적 본성을 뛰어넘은 진화의 산물인가, 아니면 욕망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욕망에 불과한 것인가?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에 지친 시로네는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하에서 빠져나온 파리 한 마리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정신 무장 (1)
2개의 철륜안이 하나로 맞물려 세상을 이루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변화한다.
그것이 바로 일월광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