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71
세인을 블랙 라인 정신 계열의 최강자로 만든 기술로, 이퀄라이징의 수평값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즉, 수평값이 100이라면 속도를 1로 줄이는 대신 힘을 99로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
설정에 따라 변형값은 무한하기에 실제 메커니즘은 이처럼 직관적이지 않지만,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자신보다 월등한 상대마저 꺾을 수 있는 가공할 잠재력이 담겨 있다.
-새로운 프로그램 감지. 탐색.
바벨의 광륜은 즉각 세계의 변화를 인식했다.
가장 큰 변화는 세인의 속도가 그녀를 상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인이 빨라진 것도, 바벨이 느려진 것도 아니다.
정확히 정의하자면 두 개체의 상대속도를 이퀄라이징하면서 만들어 낸 결과였다.
27억 개에 달했던 바벨의 필살 대응 방식이 고작 200만 개로 급격히 떨어졌다.
바벨이 하나의 개체를, 그것도 인간을 대상으로 여기까지 연산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물론 여전히 세인을 즉살시킬 200만 개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하지만 바벨이 진정으로 무서운 이유는 거기에 대한 안도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완전 무정의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방심도, 초조함도 없다.
바벨은 오직 기존의 연산을 되풀이하며 우직하게 세인을 압박할 뿐이었다.
‘정말 까다롭군.’
전투를 유리하게 이끄는 수백 가지의 환경을 이퀄라이징한 세인이 수평값을 맞추기 위해 떨어뜨린 것은 정신력이었다.
정신 계열 마법사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만큼 그의 스피릿 존은 조너만큼이나 거대하지만, 지금은 고작 20제곱미터의 면적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바벨은 지체 없이 근접전으로 들어갔다.
필살 대응 방식의 가짓수가 83만 개나 올라간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괴물이다. 빈틈이 조금도 없어.’
여태까지 수많은 강자를 상대한 세인조차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무력이었다.
초월적인 능력은 아니지만 완전무결한 알고리즘에서 파생되는 전투력만큼은 천사와 견줄 정도였다.
키잉! 키잉!
바벨의 수도가 세인의 뺨을 스칠 때마다 예리한 굉음이 고막을 찌르고 들어왔다.
‘나는 이미 덫에 걸려 있다.’
바벨이 무언가를 확신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버틸 수 없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앞으로 10초 후에 세인의 목이 떨어져나갈 터였다.
-필살 대응 방식 : 3만 2,564개.
원인이 결과를 내고 그 결과는 다시 새로운 결과의 원인이 된다.
전투 시작부터 발생한 모든 인과율이 현재의 결과에 일조하면서 대응 방식의 개수가 기하급수로 떨어져 갔다.
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죽는다!’
세인이 확신하는 순간에도 반군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명확한 죽음은 오직 세인만이 깨닫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그때 눈앞에 거대한 강철 기둥이 내리찍혔다.
바닥에 깔린 바벨을 확인하기도 전에 세인은 고개를 쳐들었다.
높이 30미터에 달하는 기갑체가 팔로 지면을 강타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메카 전투 시스템 3단계에 속하는 타이탄이었다.
반군 사령부에서도 총 세 기밖에 없는 장비로, 질량 3천 톤에 육박하는 가공할 물리력과 마그네틱 펄스로 만들어 내는 열 섬광포의 위력은 메카 기술 중에서도 최고였다.
한 기를 생산하기 위해 수십만 개의 엘릭서와 수천 톤의 광물이 필요한 것은 물론, 시스템을 이루는 프로그램조차도 아무나 설계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구로이를 조작하기 위해 파이퍼가 필요하다면 타이탄은 구로이에 탑승하지 않고서는 조종할 수 없다.
타이탄의 팔 하나를 움직이는 데에만 10톤의 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파이퍼, 구로이, 타이탄 순으로 힘이 전달되는 방식이기에 덩치에 비해 극도로 민감한 장비였고, 그렇기에 파일럿의 실력에 따라 전투력도 천차만별이었다.
바벨을 짓누른 타이탄 1호기에 탑승한 자는 천재 파일럿이자 반군사령관인 크루드였다.
딱히 세인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서 끼어든 게 아니다. 지금이라면 반드시 해치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잠시 후 조종간에 밀려드는 막강한 힘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크으으윽!”
쇠가 긁히는 소리가 들리면서 바벨이 두 손으로 타이탄의 거대한 손바닥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크루드가 조종간을 잡아당기자 플라즈마 엔진이 폭발할 듯 강력한 굉음을 내며 힘을 전달했다.
그럴수록 바벨의 광륜은 더욱 빠르게 회전했다.
급기야는 노바처럼 퍼지면서 말도 안 되는 중량을 밀어내고 몸을 바깥으로 빼냈다.
쿠아아아아앙!
타이탄의 손바닥이 다시 추락하자 지면이 파열되면서 수십 미터 높이의 흙기둥이 솟아올랐다.
세인은 미끄러지듯 후퇴해 전장을 아울렀다.
구로이의 화망이 천공을 수놓고, 남은 두 기의 타이탄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바벨을 향해 열 섬광포를 쏘아 대고 있었다.
정신없이 전투를 치르는 대원들 사이에는 아버지를 잃은 카냐와 레나도 섞여 있었다.
“죽어!”
카냐는 눈물을 흘리며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탄환보다 빠른 물체를 맞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바벨 프로그램 : 광역 전투 시스템 가동.
-대상 : 전적.
-전투 패턴 : 학살.
-필살 대응 방식 : 7개.
새로운 알고리즘을 적용한 바벨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전장을 질주했다.
은색 섬광이 지나가는 자리에 있는 모든 구로이가 폭발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쿵! 쿵! 쿵! 쿵!
세 기의 타이탄이 지면을 후려칠 때마다 수십 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는 세인의 발에도 진동이 전해져 왔다.
‘구로이로는 해치울 수 없어. 이미 무력을 비교할 수 있는 범주조차 벗어난 적이다.’
크루드는 절묘한 조종 실력으로 바벨을 따라 이동했다.
사람의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속도였지만 레이더에는 여전히 바벨의 궤적이 그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관성을 계측하는 것이었고, 타깃을 적중시키는 것은 온전히 조종사의 몫이었다.
‘여기다!’
부아아아아앙!
타이탄의 양쪽 어깨가 열리고 시커먼 동굴 같은 포구가 튀어나와 열 섬광포를 쏘았다.
-회피 가능성 : 0퍼센트. 방어 태세로 돌입.
바벨은 비행을 멈추고 두 팔을 엑스 자로 겹쳤다. 동시에 무지막지한 섬광이 금속 기체를 지상으로 메다꽂았다.
콰아아아아앙!
대지가 검붉은 빛을 띠며 용암처럼 녹아내리는 자리에 두 무릎을 구부린 바벨이 연기를 뿜어내며 서 있었다.
‘제길! 대체 뭐로 만들어진 거야?’
단언컨대 순수 광물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어떤 합금을 써야 저런 열 내구성을 가질 수 있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10초.’
열 섬광포의 에너지를 10초 이상만 집중시킬 수 있다면 천하의 바벨이라도 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계산한 크루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바벨이 10초 동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가 속출했다.
세인이 모든 환경을 바벨에게 불리한 쪽으로 이퀄라이징했음에도 밀리는 상황이었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해.’
세인은 전투에서 한 걸음 물러선 뒤에야 깨달았다.
저 기계는 인간이 만든 것이 결코 아니다.
단지 기계처럼 보이는 것일 뿐, 내부 프로그램은 인간의 전지를 까마득히 벗어나 있었다.
천사의 작품? 혹은 그 이상의 무엇?
세인이 느낀 바벨의 기이함은 그 정도였다.
-전투 시스템 변경.
반군의 숫자가 설정한 만큼 줄어들자 바벨은 마침내 동작을 멈췄다.
“지금이다! 전원 공격!”
크루드가 즉각 지시를 내렸고, 수천 발의 탄환이 그녀를 강타했다.
불똥을 튀기는 바벨의 육체는 마치 불꽃 그 자체였다.
-맵 병기 발동. 코드명 바벨.
마침내 바벨이 자신의 진정한 존재 가치를 드러냈다.
상체를 활처럼 젖히자 목이 떨어져 나가면서 등 뒤로 넘어가고, 이어서 가슴이 열렸다.
유리구가 박힌 포신이 드러나고 상체까지 다리 뒤로 넘어간 상태에서 팔과 다리가 땅에 박혀 지지대의 역할을 했다.
쿠르르르르르!
타이탄을 겨누는 바벨의 유리구 앞에 전기적 현상이 일어났다.
“열 섬광포! 직사로 꽂아!”
위기를 느낀 크루드가 타이탄 세 기에 달린 6개의 포구를 집중시켰다.
광역 타격 무기로 지상을 향해 직사하는 것은 교범에 없는 전투 수칙이지만 지금은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열 섬광포 여섯 줄기가 바벨을 향해 쇄도하는 것과 동시에 바벨의 유리구에서 거대한 광전자포가 발사되었다.
두 에너지가 충돌하자 사령부 전체가 대낮처럼 밝아졌고, 세상이 타오르는 소리로 가득 찼다.
한쪽 어깨에 구멍이 뚫린 크루드의 타이탄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크윽! 제길!”
-바벨 시험 발사 완료. 연사 가동.
바벨의 포구에서 조금 전의 위력을 무시하듯 사방팔방으로 광입자포가 쏘아졌다.
말 그대로 맵 병기.
1분 안에 사령부 전체가 초토화될 정도의 화력이었다.
“제길! 할 수 없지!”
세인은 바벨에게 달려가 최후의 방법을 시도했다.
일월광륜의 이퀄라이징을 바벨의 시스템에 처박자 우우우웅! 머릿속이 진동하면서 꿈을 꾸듯 정신이 흐트러졌다.
‘대체 이건…….’
수없이 정신을 단련한 그조차도 망각의 늪에 빠져 버릴 정도의 방만하고 복잡한 시스템.
그 수많은 회로의 중심을, 푸른 빛줄기가 관통하고 있었다.
***
“하아, 하아.”
모든 것이 얼어붙은 적막한 니플헤임에 안내인의 숨소리만이 들렸다.
빙결의 정령과 계약을 한 그조차도 이대로는 몇 시간을 더 버티지 못할 듯했다.
2티어급 몬스터인 샐러맨더마저 더 이상 불길을 높이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저 얼어 죽지만 않았을 뿐, 동사의 그림자는 스멀스멀 그들의 발목을 향해 좁혀 오고 있었다.
강난이 얼어붙은 입을 간신히 열었다.
“대체 헬이 어디라는 거야?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니겠지?”
안내인이 죽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난 배운 대로 왔을 뿐이야. 그 이상은 나도…… 몰라…….”
안내인은 욕심을 부린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었다.
블랙 엘릭서를 산더미처럼 가지고 가서 본토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눈앞에 닥친 현실 앞에 신기루일 뿐이었다.
“이, 이제 더 이상은…….”
안내인이 유언을 내뱉으려는 그때 줄루의 걸음이 멈췄다.
혹독한 추위는 그녀의 육체를 끔찍한 상태로 몰아넣고 있었지만 얼굴만큼은 여전히 차분했다.
“가올드, 저곳.”
줄루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의 빙상 아래에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사방에서 작은 그림자들이 흘러들어 와 합쳐지더니 볼록한 종 모양으로 일어서며 빙판 위로 솟아올랐다.
적인가?
어찌 됐든 그림 리퍼의 무리를 처단한 이후로 처음 나타나는 변화였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가올드가 인내심을 가지고 안내인을 따라 여기까지 온 이유였다.
잠시 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니플헤임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광경이었으나 솟아오른 어둠이 점차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쿠쿠쿠쿠쿠쿠쿠쿵!
빙판이 흔들리자 강난은 중심을 잡고 어둠을 노려보았다.
신장 10미터의 검은색 바탕에 흰 띠의 로브를 입은 무언가가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다리는 보이지 않았고, 로브의 끝이 수십 갈래로 쪼개어져 나풀거렸다.
‘이건…… 엄청나다!’
강난은 이를 깨물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무려 태양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치이익!
아래에서 들린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샐러맨더의 불길이 완전히 꺼진 채 얼어붙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
안내인이 놀란 소리를 냈다.
발끝에서부터 희열이 차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희열이 머리에 도달했을 때, 그는 이미 땡땡 얼어붙은 시체로 변해 있었다.
“엄청난 마력이다요.”
줄루가 샐러맨더의 시체를 지우고 정신을 집중시켰다.
어떤 상사를 시전할 것인가는 상대가 어떤 성향을 띠느냐에 따라 달라질 터였다.
“나는 죽음의 신 헬.”
가올드의 눈썹이 꿈틀했다.
“니플헤임의 방랑자들이여, 너희의 생명을 수급하겠다.”
“크크크.”
그림리퍼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 상대를 앞에 두고도 가올드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샐러맨더가 사라졌으니 이제부터는 육체로 불을 피워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런 거였군. 지역이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