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72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니플헤임의 왕.
그것이 바로 헬의 정체였다.
정신 무장 (2)
바벨의 시스템 중심부에 떠오른 일월광륜이 모든 정보를 세인에게 전달했다.
그것은 마치 세인의 의식이 시스템 속으로 흘러들어 간 것과 똑같은 효과였고, 세인은 그곳에서 빛의 거미줄처럼 얽힌 회로를 관통하는 한 줄기의 푸른 섬광을 발견했다.
‘이건…….’
울티마 시스템은 한 줄기의 신호에 불과하지만 세인은 그 신호 속에서 어떠한 정보도 추출할 수 없었다.
난해함이나 복잡함과는 차원이 다른, 고도로 함축적인 하나의 개념.
너무나 거대해서 인간의 인지로는 한 번에 담아낼 수 없는 극한의 통찰이었다.
‘대체 이런 걸 누가 만든 거지?’
세인은 울티마 시스템을 따라 끝없이 올라갔다.
푸른 섬광이 지나가는 자리에 천사의 체계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마치 길목을 차단하듯 중심부를 가로막고 있었다.
마법진의 개념 또한 인간이 읽기에는 난해했으나, 오히려 복잡하다면 세인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일월광륜의 이퀄라이징으로 마법진의 신호를 분석한 세인은 충격을 받은 듯 눈을 번쩍 떴다.
‘젠장! 그런 거였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제아무리 천사의 마법진이라도 이 완벽한 단일 통합 신호를 교란시키지는 못한 듯했다.
마법진의 알고리즘이 바꾼 것은 오직 하나, 금속 천사의 수행 목적뿐이었다.
‘누군가가 적 감지 설정을 건드렸다. 반군이 아니야. 오히려 이것은…….’
천사를 죽이기 위한 병기.
그렇다면 세인이 할 일은 하나였다. 천사의 마법진을 해제하여 설정을 되돌리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천국에 카운터를 날릴 수 있었다.
일월광륜!
너무나 선명해서 회전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광륜이 천사의 마법진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예상보다 훨씬 방대한 정보량에 세인은 압도당했다.
‘빌어먹을! 이게 고작 적 감지 설정 하나를 바꾸는 데에만 들어가는 정보라니.’
시스템을 관통하는 푸른 섬광이 얼마나 위대한 지적 산물인지 뼈저리게 체감할 수 있었다.
‘안 돼. 이대로는 너무 늦어.’
서번트에 이퀄라이징까지 갖춘 세인이지만 마법진을 완전히 해체하려면 200시간은 족히 걸릴 듯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내부에서 파괴하는 수밖에.’
일월광륜을 천사의 마법진 중앙에 장착하는 순간 광륜의 회전이 멈췄다.
급정지의 여파가 세인의 머리를 박살 낼 정도로 강력하게 밀려들었다.
“크윽!”
마법진의 핵심 논리가 세인의 논리를 압도하고 있다.
이어서 마법진이 찬란한 빛을 발하더니 역으로 세인의 논리를 공격해 들어왔다.
일월광륜이 술자의 논리와 정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가해진 쇼크에, 세인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게 말이 되는가? 어떻게 이런 명제가 성립되지?’
인간이 수천 년 동안 발전시켰던 사고를 천사의 마법진은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었다.
일월광륜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불쾌한 금이 그어졌다.
세인의 눈이 점차 뒤집어지고, 악문 이빨 사이에서는 핏물이 새어 나왔다.
‘이것이 끝인가…….’
세인의 의식이 나락의 끝으로 떨어져 갔다.
그 순간 울티마 시스템이 섬광을 확장시키면서 마법진에 스며들었다.
일월광륜의 역회전이 멈췄다.
죽음 직전에서 의식이 깨어난 세인은 상상을 초월하는 현상에 전율했다.
‘이럴 수가.’
오직 하나로 이루어진 신호가 복잡한 천사의 마법진의 연결 고리를 빛처럼 빠르게 끊어 내고 있었다.
‘대체 뭐지, 이 시스템은?’
우주 전체를 완벽하게 함축하는 단 하나의 신호.
아카식 레코드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통찰 앞에서는 천사의 대논리마저도 바보의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았다.
-울티마 시스템 재접속.
-바벨 원시 시스템 가동.
세인이 창출한 작은 변화가 카리엘의 논리 체계를 먼지 한 톨만큼 부정확하게 만들면서 바벨이 초기화되기 시작했다.
마법진이 파편으로 쪼개지자 세인은 이퀄리브리엄을 발동했다.
2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면서 카리엘의 파괴된 논리를 잘근잘근 갈아 무의 세계로 되돌렸다.
울티마 시스템은 여전히 단순했으나 거대해졌다.
빛이 확장되면서 마침내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우우우우웅!
바벨의 광전자포가 수도꼭지를 잠그듯 소멸했다.
이어서 땅에 박힌 다리와 팔이 올라오고 상체가 일어서면서, 변신하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쿵! 쿵! 쿵!
파일럿의 긴장이 풀리자 파이퍼로 전달되는 힘이 줄어들면서 구로이 수십 기가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된 거지? 끝난 건가?”
광전자포가 연사되는 20초 동안 반군사령부는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크루드가 운전한 타이탄이 파손되었고 사령부 전력의 절반이 사망한 상태였다.
-바벨 프로그램 초기화.
전투 자세를 취하고 있던 바벨이 손을 내렸다.
이어서 전기적 날개가 점으로 분해되고, 고개와 무릎이 천천히 아래를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신호 없음.
-사용자 등록 대기 상태.
바벨은 고대 유적에서 잠들어 있던 모습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다음 사용자가 나타날 때까지 대기했다.
반군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가증스러운 모습.
구로이의 조종석이 열리더니 카냐가 시그나를 들고 달려왔다.
“으아아아아!”
쾅! 쾅! 쾅!
바벨의 얼굴을 검으로 두들길 때마다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으나 금속의 표면에는 그을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열 섬광포에도 끄떡없는 내구력이라면 고작 시그나 따위로 상처를 입힐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마치 죄를 달게 받겠다는 듯 미동조차 하지 않는 바벨의 모습이 카냐의 마음을 절망으로 빠트렸다.
“언니, 그만해!”
레나가 울면서 달려와 카냐를 말렸다.
금속 덩어리에게 분풀이를 해 봤자 때린 사람의 몸만 상할 뿐이다.
“놔! 죽여 버릴 거야! 놓으란 말이야!”
“그러다가 다시 작동하면 어떡해? 이건 그냥 기계잖아!”
“아아아아아!”
카냐는 시그나를 팽개치고 하늘을 향해 절규했다.
아버지를 잃었음에도 복수할 방법조차 없는 것이 너무나 분했다.
“후우!”
세인은 코피를 닦고 천천히 일어섰다.
타이탄에서 내린 크루드가 냉정함을 유지한 채 다가왔다.
“결국 해냈군. 고맙다. 덕분에 피해를 줄였어.”
이미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크루드가 상대한 바벨의 무위는 그 정도였다.
“아니, 자체 시스템이 스스로 오류를 복구한 거야. 나는 그저 자물쇠를 열었을 뿐.”
크루드는 심각한 표정으로 바벨을 돌아보았다.
“수많은 노르인을 만났지만 너만 한 실력자는 본 적이 없어. 그런데도 그런 소리를 한다면, 저 기계는 대체 뭐지?”
“나도 자세한 것은 몰라. 유일하게 아는 건 신민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는 거지. 대천사용 고대 병기다.”
“고대 병기라…….”
크루드는 작동을 중지한 바벨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을 아래에서 들여다보던 그는 여전히 패널의 붉은 빛이 깜박이고 있음을 확인했다.
“동력이 꺼진 건 아니군. 수면 상태인가?”
“아마도. 천사의 마법진을 파괴하면서 시스템이 초기화된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단 말이지. 흐음.”
크루드가 눈을 빛내며 일어섰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것을 사용하는 건 어때?”
세인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바벨의 시스템을 직접 탐색한 장본인으로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음을 단언할 수 있었다.
“바벨의 시스템은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은 통합적 신호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로서는 해독할 수 없어.”
바벨의 기능은 타이탄을 초월한다.
아군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전력에 엄청난 도움이 될 테지만, 어떤 인간이 그 신호를 해독할 수 있을까?
‘이걸 어떻게 이용하지?’
냉철한 세인의 생각 속으로 희생자들의 울음소리가 스며들었다.
***
태양을 가린 건 어둠이 아니었다. 그것은 억겁의 세월 동안 흘러든 죽음의 기운이었다.
니플헤임의 지배자 헬이 크기를 키우며 존재를 과시하자 가올드 일행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죽음과 가장 닮은 것은 어쩌면 추위일지도 모른다.
온도로는 나타낼 수 없는 사망의 기운이 뼛속까지 침투해 생명력을 억제하고 있었다.
“후우우우!”
강난은 눈을 부릅뜨고 몸에 힘을 불어 넣었다.
생명으로 이겨 내야 한다.
세포 하나하나를 활성화시켜 살아 있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안내인과 같은 꼴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때, 가올드의 얼굴이 악귀처럼 구겨지면서 강력한 대기압이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통각 10만 배.
쿠우우우웅!
벽지가 벗겨지듯 어둠이 쓸려 내려왔으나 이내 죽음의 기운이 다시 공간을 잠식했다.
그럼에도 헬에게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태양조차 차단한 기운을 고작 공기의 압력으로 지워 낼 수는 없을 테니까.
‘생의 의지?’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의지였다.
“오만한 자여, 어찌하여 죽음을 거부하느냐.”
헬이 몸을 높이며 근엄한 목소리를 냈으나 가올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확실히 이번 건 까다롭군.’
그림리퍼보다 강력한 기운을 억누르는 데에 필요한 통각의 한계치를 어름해 보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답이 없자 헬이 다시 말을 걸었다.
“가증스러운 미로를 찾아 죽음으로 걸어왔느냐. 하지만 네 앞에 기다리는 건 망자의 신뿐이리니.”
미로.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올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며 핏줄이 전부 일어서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지?”
“망자에게는 모르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간섭하지 않을 뿐이다.”
“크크크크! 그렇단 말이지.”
가올드의 눈에 흰자가 드러났다.
몸에서 극기의 아지랑이가 퍼지자 죽음의 기운마저 겁에 질린 듯 뒷걸음질을 쳤다.
강난은 위험을 감지하고 다가갔다.
통각의 한계치가 어디까지인지는 몰라도 예전의 한계는 이미 넘은 상태였다.
“사람 말을 뭐로 아는 거예요! 분명 하지 말라고……!”
“닥쳐.”
강난의 입이 굳게 닫혔다.
이렇게 되면 말릴 수 없다. 가올드의 머릿속에는 오직 미로 생각밖에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미로는 어디 있지? 곱게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 한 번 더 죽고 싶지 않으면.”
“미로는……!”
헬이 소리쳤다.
“키에에에에에에!”
이어진 말은 심장을 멎게 할 정도로 사나운 귀곡성.
로브가 벗겨지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죽음을 합쳐 놓은 듯한 헬의 얼굴이 드러났다.
죽음의 기운이 칼날처럼 예리해지면서 밀려들자 강난의 앞을 가로막은 줄루가 상사를 시전했다.
“포스메터리.”
까오오오오올!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새가 두 사람을 휘감았다.
어둠의 기운이 바로 다음 순간 그들을 강타했으나, 어떠한 충격도 주지 못하고 그저 지나갈 뿐이었다.
시공간 새, 포스메터리.
리치 소환사로 유명한 줄루지만 포스메터리 또한 오직 그녀만이 상사할 수 있는 2티어급 몬스터였다.
포스메터리는 적도에 있는 카나리카 섬에서 4년 주기마다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내며 3초 동안 비행하다 사라지는데, 아마도 다른 차원에 머무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천 년 전부터 목격되었던 포스메터리의 기록을 모두 수집한 줄루가 상사에 성공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2년.
4년에 한 번, 3초 동안 머문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확한 기간은 고작 9초에 불과했고, 사람들은 리치에 이어 줄루의 천재성을 찬양하는 주요한 일화로 삼고 있다.
콰콰콰콰콰콰콰!
포스메터리는 두 사람을 3초 동안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시켰고 그동안에 일어난 모든 일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강난은 눈앞을 지나가는 죽음의 기운을 처음으로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실제로는 절규하고 있는 망자의 얼굴이 무한히 겹쳐진 패턴이었다.